https://youtu.be/FreQmo74UCo?si=SE-tv9QVYf3MVLdf
Balletto - Stravinsky Le Sacre du Printemps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의 초연은 1913년 5월 29일, 빠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삐에르 몽뙤의 지휘, 니진스키의 안무로 거행되었다. 이 초연이 수습할 수 없을 정도의 일대 혼란을 일으킨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지금까지 그저 우아하고 온화한 음악에 익숙해 있던 빠리의 청중은 원시적이며 강렬한 리듬과 불협화음으로 가득한 스트라빈스키의 새 작품에 엄청난 쇼크를 받았다. 청중은 발장구를 구르고 휘파람을 불며 고함을 질렀다. 하도 소음이 요란하여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초연 때의 광경을 그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서주의 첫 소절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조소(嘲笑)가 터져 나는 분개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처음 한동안은 그래도 작은 편이었지만, 이윽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시위가 점차 커져 드디어 연주회장을 온통 뒤엎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들에게 반대하는 고함소리도 높아 가면서 혼란하기 그지없는 사태로 번져 나갔다. ...... 나는 니진스키의 옷을 꽉 움켜잡았다. 그도 불같이 격분하고 있었다. 자칫하다가는 무대로 튀어나갈 기세였다. 그렇게 되면 소란은 한층 더 극심해질 것이 뻔했다. 한편 디아길레브는 조명을 끄면 소동을 멈출 수 있으리라 믿고 담당자에게 불을 끄라고 명령했다.
또 초연때 지휘봉을 들었던 몽뙤는 『회상록』에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알다시피 청중은 거의 혼란 상태에 다다라 있었다. 새 샹젤리제 극장을 꽉 메운 그들은 이 발레에 대한 비난을 격렬하게 표시했다. 1층 앞쪽의 1등석과 박스석의 상류 빠리쟝들도 발코니의 열광한 군중들에게 난폭한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갖가지 표현을 동원하여 날카롭고 도발적인 지주를 외쳐 대고 있었다. "16번가의 매춘부!" 따위의 욕설이 몇 번이고 합창으로 되풀이 오가고 백작 부인들은 참을 수 없는 모욕에 지그시 이를 악물고 견뎌야 했다.
https://youtu.be/u7835eiU8iM?si=N_NZkKfsJ_DMMQNA
Mariinsky 2013 Le Sacre du Printemps
스트라빈스키의 봄의제전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한 세 번째 발레 음악 "봄의 제전"은 그의 작곡 세계에서 하나의 커다란 정점을 차지하고 있다. 이 곡 이전 작품들을 보면 "페트루슈카"에서 낭만주의나 인상주의적 냄새가 짙다거나 "불새"에서 스승인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왜냐면 이 기간은 그의 성장기나 다를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봄의 제전"을 정점으로 스트라빈스키는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고 있다. 즉 신고전주의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곡은 그의 실험정신의 극한에 해당되는 결과물에 해당한다. 이 곡으로 인해 현대음악에 미친 영향은 18세기 베를리오즈가 끼친 영향보다 더한 강도의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그의 이러한 실험정신은 초연 당시의 청중에게는 도저히 수긍하기 힘든 면도 있었으나 그 후의 연주에서는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처음에는 신랄한 비판을 가하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양손을 들어가면서 열렬히 칭찬을 아끼지 않는 쪽으로 변화되었다.
이 곡은. 러시아적인 과격함과 직선적이고 명쾌한 리듬감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말은 곡이 기존의 음악적 감성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극한의 리듬감을 사용했음을 뜻한다. 이로 인해 기존 음악에 대해서는 복수심이 불타 오를 정도로 강하게 작곡자의 의도가 표출되고 있다. 그러므로 스트라빈스키가 이 곡을 연주함에 있어서 가장 우려한 점은 바로 지휘자의 낭만적인 해석이다.
스트라빈스키는 악보대로 정확하고 명쾌한 해석을 바라고 있다. 이것은 곡의 성격이 누가 들어봐도 정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군더더기 없는 표현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직한 표현으로 나타는 순수한 리듬감은 최선의 음악을 만들 수 있다. 그렇기에 스트라빈스키가 피에르 몽퇴의 초연에 대해서는 상당히 흡족해 했었다고 한다.
스트라빈스키 Igor Fedorovich Stravinsky (1882.6.17 - 1971.4.6)
소련의 작곡가. 페테르부르크 출생. 양친의 권유에 따라 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하면서 N.A.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작곡 개인지도를 받았다. 1908년 관현악곡 《불꽃:Feu d’artifice》으로 러시아발레단의 디아길레프에게 인정을 받고, 그의 의뢰로 발레곡 《불새:L’oiseau de feu》(10) 《페트루슈카:Petrushka》(11)를 작곡하여 성공을 거둠으로써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그 후 제3작인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13)은 파리악단에서 찬반 양론의 소동을 일으켰으나, 그는 이 곡으로 당시의 전위파 기수의 한 사람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이 곡은 혁신적인 리듬과 관현악법에 의한 원시주의적인 색채감, 그리고 파괴력을 지닌 곡으로 앞의 2곡과 함께 이 시기의 그의 대표적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러시아혁명으로 조국을 떠난 그는 제1차 세계대전 후 신고전주의 작풍으로 전환하였으며, 발레곡 《풀치넬라:Pulcinella》(19) 《병사 이야기:Histoire du soldat》(16) 《결혼:Les noces》(12∼23) 등의 작품에 그의 새로운 작풍이 나타나 있다.
고전파와 바로크스타일의 정신을 부흥시키려고 한 음악풍조는 제1·2차 세계대전 사이에서 유럽음악의 주류를 이루었는데 그는 이 시기의 풍조에 선도적 역할을 했으며, 오페라 오라토리아인 《오이디푸스왕:Oedipus Rex》(27)과 《시편교향곡:Symphony of Psalms》(30) 등을 통해 이 작풍의 완성을 보았다. 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45년 미국으로 망명, 귀화하였다. 그는 한때 침체기를 거쳐 《3악장의 교향곡:Symphony in 3 Movements》(45)과 《미사:Mass》(48) 등으로 재기, 다시 제2의 전기(轉機)를 맞이하였다.
이는 이미 쇤베르크일파가 취해 온 음렬작법(音列作法)으로부터 12음작법(音作法)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었으며, 《칸타타:Cantata》(52)에서 시작하여 《아곤:Agon》(57)과 《트레니:Threni》(58) 등의 시도로 차차 엄격한 12음작법을 구사하였다. 그 이후로는 종교음악에 관심을 두어 《설교, 설화 및 기도:a Sermon, a Narrative and a Prayer》(61), 칸타타 《아브라함과 이삭:Abraham and Isaac》(63), 합창곡 《케네디의 추억을 위하여: la m?oire de Kennedy》(95) 등의 작품을 남겼다. 저서로는 《내 생애의 연대기:Chronicle of My Life》(35)와 그가 하버드대학에서 강연한 것을 정리한 《음악의 시학:Poetics of Music》 등이 있다.
글출처: 참마음 참이웃
https://youtu.be/GwNC6sLn7rI?si=Gk3wyb8GTBsPnn6r
Igor Strawinsky: Le sacre du printemps | Alan Gilbert | NDR Elbphilharmonie Orche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