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향 이병한
1.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기쁨, 이 세 단어는 다 같은 말 같지만 쓰이는 용례를 보면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밤새도록 고스톱을 치고 난 후에는 어제 밤 참 재미있었다. 라고 말하게 됩니다. 공연이나 예술 활동을 하고난 후에는 즐거웠다는 표현을 씁니다. 어떤 진리의 깨달음이나 일의 성취를 보았을 때 기쁨이 충만하다는 표현을 사용하게 됩니다. 어떤 감각적인 만족이 왔을 때는 재미있다 지성적인 만족이 왔을 때는 즐겁다, 영혼의 목마름이 해소 되었을 때 기쁘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2. 누구나 재미라는 장르를 경험하지만 거기에 절대적으로 심취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감각적인 욕구는 가장 황홀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런 만족을 느끼는 순간이 짧지만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강렬한 욕구를 참지 못해서 계속 거기에 집착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그것의 중독자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감각이라는 속성이 외부에서 자극이 들어가야만 느낄 수 있는 만족이기 때문에 그것을 끊고 살아가는 것을 이기지 못하고 한두 번 발을 들여놓다보면 그 맛에 집착을 하여 중독이 되어 그거 없이는 못산다고 말하게 됩니다.
3. 물론 재미와 함께 지성적인 면이나 영혼의 활동이 병행된다면 전체적인 균형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재미에만 심취하게 된다면 정신적인 면이나 영혼은 사막화 현상이 찾아오게 됩니다. 무엇에든 중독이 되는 것은 이미 균형이 깨졌다는 신호입니다. 편식이 건강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처럼 어느 한쪽의 중독 현상은 인격형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세 단어를 놓고 보면 재미는 맨 밑에 두어야 하고 중간은 즐거움 맨 위엔 기쁨이 위치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위를 향한 만족을 추구할수록 더 존귀하고 아름답게 되고 밑으로 내려가는 것은 타락하는 길이요 자신을 망하게 하는 길입니다.
4. 감각적인 욕구는 의지적으로 묶어두는 길밖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그것은 항상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느껴야지 그 욕정을 무제한으로 풀어 놓으면 삶은 엉망이 되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나게 됩니다. 아직 순결을 간직하고 있는 젊은이가 있다면 그것을 귀하게 여기고 그 어떤 유혹에도 소중한 것을 지켜가길 바랍니다. 그것은 절제하면 절제 할수록 그 욕구의 에너지가 창조적인 방향으로 분출 할 수 있게 됩니다. 재미를 덜 사용 할수록 그 에너지는 창조적인 것에 더 많이 사용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5. 건전한 삶의 양식을 지닌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서로서로 타락하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인간관계 형성이 중요합니다. 인간의 욕정이란 것은 묶어두는 길밖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재미로 흐르지 않도록 건전한 한마디가 필요합니다. 즐거움이란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가족이나 지성적인 모임이나 예술 활동을 통해서 느끼는 행복감을 표출 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즐거움 속에는 푸른 숲이 우거져 있습니다. 푸른 숲은 탄소동화작용을 통해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게 됩니다. 건전한 흐름을 위해서 많은 이들이 수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정신적인 푸른 숲을 가꾸는 자들이고 그들에겐 아낌없는 박수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6. 건전하고 아름다운 취미를 가지는 것은 우리 서로를 위하는 일입니다. 건전한 즐거움이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영혼의 건강을 보장해주는 방향입니다. 이렇게 건전한 문화가 형성되면 그 문화 자체가 하나의 그릇의 역할을 하여 그 안에 진리를 담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문화적 활동은 거기에 필요한 언어를 만들어내고 그 언어는 진리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궁극적인 목표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 다 필요한 재료들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지점은 위에 있습니다. 내려 갈수록 타락되는 것이고 올라가는 것은 더욱 아름답게 성화되어가는 좋은 쪽을 선택한 것입니다
7. 기쁨이란 영혼에서 분출되는 행복감 같은 것입니다. 이 기쁨이 오려면 양심의 가책이 없어져야 합니다. 무엇인가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있는 상황에선 느낄 수 없는 정서이기에 이 기쁨을 누리려고 많은 사람이 양심의 가책이 되는 부분을 뒤늦게 보상하려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양심을 속이고는 진리에 이를 수도 없거니와 늘 마음이 편하질 않기 때문입니다.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도 양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무심코 거리에 던지는 휴지조각 하나도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하는 한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겐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까지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힘들게 하거나 아프게 해놓고 기뻐 할 수는 없으니까요.
8. 양심의 가책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기쁨을 시작 지점일 뿐 전부는 아닙니다. 양심의 가책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기초공사와 같은 것이고 건축을 시작 하는 것은 진리와의 사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물론 진리와 사귐이 깊어질수록 기쁨의 샘도 깊어지는 것입니다. 샘은 비가 안와도 늘 맑은 물이 고여 있기 때문에 기쁨이 늘 변함없이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즐거움은 가시적이고 소유적인 것이지만 기쁨은 보이지 않으면서도 존재적인 것에 비중을 두게 됩니다. 그 사람이 기뻐 할 때는 사업이 성공한 것도 아니고 현실이 달라진 것도 아니지만 늘 기쁨이 충만해 있습니다. 진리는 언제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나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존재적인 기쁨을 누리는 사람은 현실적인 많은 욕심을 내려놓고 삽니다.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9. 진리와 사귄다는 것은 마치 진리와 연예를 하는 것에 비유를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진리는 단순한 삶의 이치가 아니라 인격을 가진 존재인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 때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이 궁금해집니다. 심지어 그가 가진 손수건 하나에도 관심이 가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모든 것이 다 궁금해지는데 이것이 사귐이 시작되었다는 처음의 증상입니다. 모든 것이 궁금한 상황이 되면 책을 손에 잡게 되는데 전에는 책 읽는 것이 힘든 노동같이 어려웠는데 진리와 사귀기 시작한 후에 읽는 책은 마치 연예편지 읽는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편지의 내용을 한번만 읽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반복적으로 읽어보고 심지어 외우게 되는데 외우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진리와 사랑에 빠진 상태이니까요 이 때 기쁨이 충만 한 것은 물론이고 세월 가는 것을 잊어버리게 되죠.
11. 어린 아이는 어린아이의 일을 좋아하지만 장성한 자가 되면 어리아이의 일은 버리게 됩니다. 진리로 인해 기쁨의 샘을 발견하게 된 후엔 자연히 재미는 멀어지게 됩니다. 때로는 생각이 나겠지만 전에처럼 절대적으로 다가오지는 않게 될 것입니다. 존재적 기쁨은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할뿐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중독현상으로 다가오지 않도록 조절 능력도 나타나게 됩니다. 혼자 있다고 외롭지도 않고 따라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찾아가던 어두운 일들도 멀리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사람은 원래 진리만으로도 충분한 기쁨을 누리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사람이 타락 할수록 진리와는 멀어지고 세상의 재미에 심취하게 되지만 그것은 영혼의 사막화만 불러올 뿐입니다. 여기에서 한번쯤 나의 삶의 방향은 어디인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삶의 방향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도 그렇게 결정 될 부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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