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1960년 민주당정권 때,
서울시장은 카이젤 수염으로 유명한 김상돈
이었다. 맨 왼쪽이 아버지다
가운데 앉은이는 일본인 소다옹이다
서울시에서 명예시민증을 수여했다
소다옹은 일제때 조선의 고아들을 따뜻이 보살핀 ,고아의 아버지,다
울 아버지를 저 할아버지께서 어린 시절 키우다시피해서 더욱 각별한 해후였다
그사연이 신문에 특별기고 됐다
이때만해도 일본인이 어딜 감히 한국땅을 밟는가? 못 밟는다
그러나 소다옹은 왔다
ㅡ아버지 선거 홍보물,
단단히 묶은 노끈 그대로 지금 보관 돼 있다
이 묶음은 우리 집안을 묶어놓는 오랏줄이 된다
ㅡ숭인동 채석장 공터에 모인 청중 앞에서
연설한다 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이때부터 은근슬쩍 정치인의 꿈을 꿨다
ㅡ처음 선거에선 ,순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떨어졌다 이 포스터가 그때 것이다(1957년 )
2대 선거는 민주당때 했다(1960년 )
신민당 공천으로 출마해서 당선됐다
1대에 특이한 것은 정당소속이 ,순무소속,이다
그때나 이때나 정당에 염증을 갖고 있는 유권자를 향한 노림수다 그래도 당 공천이 더좋다
창신동 숭인동 산꼭대기엔 판잣집이 많았다
전쟁난민들이 많이 살았다
툭하면 철거반이 동원되어 판잣집을 때려부쉈다
그걸 해결해주면 당선이다
ㅡ당시는 국회가 참의원 민의원 양원제다
미국의 상하원제처럼,
연세대 총장이었던 참의원의장,백낙준이 보낸
연하장이다 민의원의장은 곽상훈이다
서울시의원의 끗발이 좋아서 육필의 연하장은 수북히 쌓인다
난 그걸 다 보관하고 있다
ㅡ이게 바로 1950년대 우리집이다
옆은 살림집이고 여기서 인쇄소를 하다 선거
사무실로 썼다
이 사진은 내가 10년전 쯤 찍은것인데, 전혀 개선되지 않은 폐가로 남아있다
서울 한 가운데서 이럴 수가 있는가
집터가 그렇게도 안 좋았나?
아버지는 당선후,
이곳을 사무실로 썼다
매일 문전성시다
아침마다 2ㅡ30명이 줄을 서서 아버지와의 면담을 기다린다
교장선생님, 상인, 고학생,경찰, 취직부탁 등 온갖 민원인들이 밀려온다
그리고 밥 한끼 먹고 간다
밥은 매일 가마솥에 한다 당시에 남의 집에 가서
밥한끼 얻어먹는 것은 대단한 승전보다
그때 정치인이 되면 보통 수백명정도의 식솔을
거느리게 된다
그들을 다 먹여살려야 하는게 정치인의 능력이었다
난 옆에서 이런 것들을 보면서 으쓱으쓱 했다
그런데 여기 두 분 땜에 5.16이 터졌다
윤보선 대통령은 장면 총리를 무지 싫어했다
한국인의 서로 미움은 늘상 그렇다
민주당정권이 무너지는 단초였다
어쨌거나 박정희는 쿠데타를 음모하고 있었지만 ......
5ᆞ16. 터졌을 때, 아버지가 이랬다
,6개월 만 늦게 터져도 선거빚은 갚았는데,
이 말은 수십년 내 기억에 머물렀다
ㅡ다음 계속ㅡ
첫댓글 하~
한편의 대하드라마 같은 인생사에 숙연해지는 글입니다..
우리의 부모세대는 참으로 격변의 시대를 살아낸 분들이지요..
마음먹는대로 가지않는것이 인생이고요..
과거로의 여행..
"어바웃 타임" 이라는 영화가 생각나는 군요..
현재의 상황을 바꾸려고 과거로 가보지만,..
고맙습니다
분발하겠습니다
와~~~
다음 기다립니다
타임머신을 타고간
과거로의 여행
흥미진진 합니다
따끈따끈 드라마틱한 사연들
삼편이 기다려져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심선생님 울 카페에 오시고서
매일 맛난 특별 음식 같은 선물에
취합니다.
넘넘 재미있어요.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푹 빠져듭니다.
어려운시기에 정치를 하셨군요
정치인으로서 무척 힘들었던 시기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많은 생각들을 떠올리며 글을 읽게 됩니다.
몰랐던 사실들과 잊고 있었던 사실들, 묻혀있던 기억들이
혼재되어 있네요...
다름 글을 기다려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