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프스 나라 스위스에서 만드는 선박엔진 -
스위스 하면 먼저 생각나는 단어는 중립국, 알프스, 비밀은행, 요들송, 목가적 풍경, 시계 등이 있을 수 있다. 최근에는 2006년 6월 독일월드컵에서 우리와 같은 조(組)에서 만나 16강 진출을 겨룬 인연이 있다.
6월 24일 새벽 스위스와 대한민국이 경기를 벌일 때 양 팀 중 어느 쪽을 응원해야 할지 난감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스위스 회사인 '바르질라(Wartsila) 코리아'에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들이었다. 선박엔진 제조사 바르질라는 본래 핀란드에 본사를 두고 있었는데 스위스의 엔진 메이커 '슐저'(Sulzer)와 합병하면서 스위스가 본거지가 되었다.
○ 스위스에 본사를 둔 선박엔진, 슐저
'슐저'는 세계적으로 선박의 대형 엔진분야에서‘만 앤 비엔 더블유(MAN B&W)’다음으로 높은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회사이다. 엔진을 사람에 비유한다면 심장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선체를 가진 선박이라도 그에 설치된 엔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한낱 쇳덩어리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소유·운영하거나 건조한 선박에는 슐저 엔진이 많이 장착되고 따라서 이들 선박에서 엔진을 다루거나 조선소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슐저라는 단어가 귀에 익숙하다.
우리나라에 슐저 엔진이 보편화된 이유는 1910년대부터 일본의 군함에 이 메이커 제품이 설치되고 일본 내 미쯔비시 등의 조선소가 라이선스를 받아 이들 엔진을 생산하여 자국 선박과 수출선박에 장치하였으며, 우리나라가 일본 선박을 계속적으로 도입하여 운용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디젤 엔진은 1894년 독일의‘루돌프 디젤’(Rudolf Diesel)이 발명하였고 그 후 스위스의 슐저 형제가 루돌프디젤과 계약을 맺고 연구 개발 끝에 1898년 6월 독자적인 디젤 엔진을 만들었다.
이후 꾸준한 연구 개발과 함께 세계 여러 나라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각국에서 활발하게 생산함으로써 세계적인 선박용 대형엔진 메이커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현대와 쌍용 및 삼성 그리고 한국중공업 등이 직간접적으로 슐저와 연관을 맺고 있다.
슐저의 앞선 경영기법도 참고할만하다. 세계적인 엔진을 개발했지만 스위스에서 라인강을 따라 해항(海港)까지 며칠씩 걸리는 수송시간과 충분하지 않은 강의 깊이 그리고 점차 대형화 중량화 되는 엔진의 경향을 조기에 간파하고, 각국에 라이선스 생산권을 과감히 주어 현지 생산토록 하고 본사는 연구와 개발에 집중하는 오늘날의 최신 경영기술을 이미 100여 년 전부터 시작한 점 등이 그것이다.
○ 세계 2위 컨테이너 선사 본부가 스위스에
스위스가 내륙국가임에도 세계 2위의 컨테이너 선사를 가지고 있는 점도 놀랍다. 제네바에 본사를 둔 MSC(Mediterranean Shipping Company의)사는 1970년 설립되었고 2005년 기준 278척의 선박을 보유하고 650萬TEU 적재량을 가진다.
스위스가 1970년 갑자기 외항해운업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바다가 없는 국가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1921년 해양력에 대한 생각을 일찍이 가졌고 1938년 바다에서 라인강을 거쳐 본토까지 화물을 수송하는 운수국(運輸局)을 조직했다. 같은 해 운수국에서 15척의 그리스 선박을 용선하기도 했다.
라인강의 하항(河港)인 바젤항과 비르스펠든항도 적극 개발하여 로텔담이나 안티워프항까지 수상으로 연결된다. 이들 하항에는 컨테이너 터미널은 물론이고 보세창고, 곡물 사이로 및 유류탱커시설 등 까지 설치 운용되고 있다.
또한, 내륙국가의 제약을 뛰어넘어 유럽의 주요 물류국가로서 역할도 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해운업을 바탕으로 국제운송 주선업이 발달했다. 자국의 국제복합운송업체뿐만 아니라 독일 기업도 국제본부를 스위스에 두고 있을 정도다. 그로 인한 고용창출과 외화수입은 실로 막대하다. 지리적으로 서유럽의 중심에 있고 3개 국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등의 장점을 잘 살린 결과로 보인다.
산악국가의 한계를 극복한 스위스를 보면서, 3면이 바다인 반도 국가이고 세계 3대 기간항로(극동아시아-미주, 극동아시아-유럽, 유럽-미주) 중 2개 항로의 시종점(始終)에 위치한 우리나라가 지정학적 여건을 십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