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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통교 아래 가게 각색 그림 걸렸구나
보기 좋은 병풍차屛風次의 백자도百子圖, 요지연瑤池宴과 곽분양 행락도郭汾陽 行樂圖며
강남江南 금릉金陵 경직도耕織圖며 한가한 소상팔경 瀟湘八景 산수도山水圖기이하다.
다락벽 계견사호鷄犬獅虎 장지문 어약용문魚躍龍門
해학반도海鶴蟠桃 십장생十長生과 벽장문차壁欌門次 매죽난국 梅竹蘭菊 황축榥軸을 볼작시면
...문에 붙일 신장神將들과 모대帽帶한 문비門裨들을
진채眞菜 먹여 그렸으니 화려하기 측량없다.
-한산거사漢山居士, 「한양가漢陽歌」(1844) 중 부분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는 한국 채색화의 전통적인 역할에 주목하고, 각 역할별로 19세기~20세기 초에 제작된 민화와 궁중장식화, 그리고 20세기 후반 이후 제작된 창작민화와 공예, 디자인, 서예, 회화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의 80여 점의 작품들로 구성된 특별전이다.
전시에는 제15대 조계종 종정 성파 대종사를 비롯한 강요배, 박대성, 박생광, 신상호, 안상수, 오윤, 이종상, 한애규, 황창배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 60여 명이 참여한다. 송규태, 오순경, 문선영, 이영실 등 현대 창작민화 작가 10여 명도 함께 참여한다. 그중 3인 작가의 커미션 신작을 포함하여 13점이 최초로 공개된다.
전시는 전통회화의 역할을 ‘벽사’와 ‘길상’, ‘교훈’과 ‘감상’등 네 가지 주제, 6개 섹션으로 구성했다. 첫 번째 ‘마중’에서는 가장 한국적인 벽사 이미지인 처용을 주제로 한 존 스턴 감독의 영상 ‹승화›로 전시를 마중한다.
스톤 존스턴, 〈승화 202〉1, 4채널 영상, 사운드 설치, 12분(分)
鷄鳴新歲德 犬吠舊年災 (계명신세덕 견폐구년재)
닭 울음소리에 새해 덕이 들어오고
개 짖는 소리에 묵은해 재앙이 물러간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신상호, 〈토행상〉, 2004, 석기에 유액
박효민, 〈컨탬포러리즈-춘.하.추.동〉, 2016, 한지에 채색, 175×130cm, 작가소장( 4편 중 2)
이응노, 〈구성〉, 1974, 나무, 136×70×5cm, 이응노미술관/
이응노, 〈의義 문자도〉, 종이에 수묵 담채, 38.5×26cm, 이응노미술관
안상수, 〈문자도 홀려라〉, 2018, 패널, 캔버스에 유채, 200x194cm, 작가 소장
두 번째 ‘문 앞에서:벽사’에서도 길상의 첫 역할인 벽사의 의미를 담은 도상들로 시작된다. 신상호 작가의 ‹Totem›을 시작으로 ‹욕불구룡도›와 ‹오방신도›, ‹까치 호랑이›, 성파 대종사의 ‹수기맹호도›와 같은 전통적인 도상들이 한애규의 ‹기둥들›, 오윤의 ‹칼노래› 등과 함께 펼쳐진다.
중봉 성파中峰 性坡, 〈수기맹호도睡起猛虎圖〉, 2012, 패널에 옻칠, 162×570cm, 작가소장
오순경, 〈현무도玄武圖, 청룡도靑龍圖, 주작도朱雀圖, 백호도白虎圖, 황룡도黃龍圖〉,
옻종이에 분채, 금니, 198×338cm, 작가소장(부분도)
작가미상, 〈욕불구룡도浴佛九龍圖〉, 연도미상, 한지에 채색, 10폭 병풍, 129.5×57.2cm, 경기대학교소성박물관
신재현, 〈호작도虎鵲圖〉, 96.8×56.9cm, 작가소장/
송규태, 〈호작도虎鵲圖〉, 유산지에 먹, 84.5×20.7cm, 작가소장
작가미상, 〈작호도鵲虎圖〉, 117×85cm, 10폭 병풍, 경기대학교소성박물관
오승우, 〈십장생도十長生圖〉, 2003, 캔버스에 유채, 145.5×145.5cm, 국립현대미술관
오윤, 〈무호도舞虎圖〉, 1985, 종이에 목판, 35×25.6cm, 유족소장
황창배, 〈무제〉, 1993, 캔버스에 혼합매체, 194x285.5cm, 서울시립미술관
이우환, 관계항, 1979, 종이에 수채, 64.8x54.5cm, 국립현대미술관/
오윤, 칼노래, 1985(1995년 리프팅) 목판, 종이에 채색, 32.2x25.5cm, 유족 소장(사후 판화)/
구본창, 호건, 보그 코리아, 2022 5월호, 경운박물관.
고(故) 이석희 여사가 손주를 위해 만든 호건과 딸을 위해 그린 호건본/
설윤형, S/S 서울켈렉션, 1999(사진:김정환)/
설윤형, F/W SFAA 서울켈렉션, 1996-1997(사진:김정환)/
진태욱, 2005(사진.구본창)/
서영희, 2022년 호랑이의 해를 위하여, 보그 코리아, 2022년 1월호(사진:황병문)
나오미, 〈용오름〉, 2014, 종이에 분채, 180×410cm, 동화약품
한애규, 〈기둥들〉, 2011, 테라코타, 181×30×33cm(10), 작가소장
세 번째 ‘정원에서: 십장생과 화조화’에서는 전통적인 길상화인 십장생도와 모란도 등 19세기 말 작품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길상 도상의 의미와 표현의 확장을 모색해 온 회화와 영상 작품 등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십장생도› 병풍과 함께 김혜경의 영상작품 ‹길상›, 전혁림의 ‹백낙병›, 김종학의 ‹현대모란도›, 손유영의 ‹모란 숲›, 홍지윤의 ‹접시꽃 들판에 서서› 등의 작품이 포함된다.
작가미상, 〈십장생도〉, 19세기, 비단에 채색, 10폭 병풍, 210.8 x 425.5cm,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김종학, 〈현대모란도〉, 2006 캔버스에 아크릴릭, 10폭 병풍, 작가소장
전혁림, 〈백락병〉, 2001, 캔버스에 유채, 250×340cm, 국립현대미술관
김혜경, 〈길상〉, 2022. 인터렉티브 설치
손유영, 〈모란숲〉, 2022, 종이에 채색, 135×500cm, 국립현대미술관 제작지원
네 번째 ‘오방색’에서는 높은 층고의 열린 공간 중앙홀에 2개의 작품이 설치된다. 모두 오방색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김신일의 설치작품 ‹오색사이›와 이정교의 거대한 네 마리 호랑이 작품 ‹사·방·호›가 선보인다.
이정교, 〈사·방·호〉, 2022, 자작나무 합판에 채색, 800*800*235cm(4)
이화자, 초여름, 1989, 종이에 분채, 6폭 병풍, 190×240cm, 작가소장
다섯 번째 ‘서가에서: 문자도와 책가도, 기록화’에서는 정원을 지나 들어간 어느 서가에서 만난 책과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 공간에서는 8명의 작가들이 선보이는 다양한 문자도와 이번에 최초로 공개되는 ‹매화 책거리› 8폭 병풍을 포함한 다양한 책가도,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상 격변의 시기를 입체적으로 조명한 기록화들을 경험할 수 있다.
작가미상, 〈매화 책거리도(8폭 병풍)〉, 19세기, 종이에 채색, 118x292cm, 개인 소장
규태, ‘〈책가도〉’, 205×53cm×8폭, 2011년
작가미상, 〈왕세자두후평복진하도王世子痘候平復陳賀圖〉, 1879, 비단에 채색,
10폭 병풍, 136.5x52.5cm, 고려대학교박물관
김유진, 〈창경궁 책가도〉, 2016, 비단에 채색, 120x330cm, 개인소장
박대성,〈반구대 소견〉, 2018, 종이에 수묵담채, 200×500cm, 작가소장
안성민, ‘〈날아오르다.Rise up〉’, 2022, 아크릴릭, 비닐 설치, 250x1000cm, 국립현대미술관 제작지원
김종원, 〈문問〉, 2021, 한지에먹, 경면주사, 210x148cm, 국립현대미술관 제작지원/
김종원, 〈암闇〉, 2021, 한지에먹, 경면주사, 210x148cm, 국립현대미술관 제작지원
강요배, 〈생존〉, 1980, 종이에 포스터물감, 파스텔, 70x134cm, 제주도립미술관
김혜경, 〈시간과 공간을 넘어〉, 2021, 8채널 영상(Full HD), 가변 설치, 작가소장
최유현, 〈효제도팔곡병풍孝悌圖八曲屛風〉, 1983-1986, 비단에 자수, 128×408cm, 작가소장
김선우, 〈파라다이스Paradise〉, 2021, 캔버스에 과슈, 227.3×181.8cm, 작가소장/
김보미, 〈자화상〉, 2020, 캔버스에 채색, 162×130cm, 작가소장
우평남,<자연예술가가 그린 풍경-봄〉, 2016, 캔버스에 유채, 130x362m, 작가소장/
우평남, <자연예술가가 그린 풍경-여름>, 2016, 캔버스에 유채, 130 362m, 작가소장/
우평남, <자연예술가가 그린 풍경-가을>, 2016, 캔버스에 유채, 130×162cm, 작가소장/
우평남, <자연예술가가 그린 풍경 겨울>, 2017, 캔버스에 유채, 130×162cm, 작가소장
임동식, <자연예술가와 화가-봄>, 2005, 캔버스에 유채, 130 362m, 대전시립미술관/
임동식, <자연예술가와 화가-여름>, 2005, 캔버스에 유채, 130 162m, 대전시립미술관/
임동식, <자연예술가와 화가-가을>, 2005, 캔버스에 유채, 130×362m, 경남도립미술관/
임동식, <자연예술가와 화가-겨울>, 2005, 캔버스에 유채, 130×362m, 대전시립미술관
마지막 ‘담 너머, 저 산: 산수화’에서는 서가를 나와 다시 정원에 들어서며 보이는 담 너머 펼쳐진 산수화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채색화 분야와는 다르게 감상화로 분류되어 중앙화단에서도 크게 유행했던 산수화의 다양한 변주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이종상, 〈원형상(源型象) 89117-흙에서〉, 1989, 동유화, 370x1230cm(407pcs,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박생과, 〈전봉준全琫準〉, 1985, 종이에 채색, 360×510cm, 국립현대미술관
이숙자, 〈백두산白頭山〉, 2000, 2014-2016, 수지에 암채, 227.3×900cm, 작가소장
이상범, 〈무릉도원武陵桃源〉, 1922, 비단에 채색, 10폭 병풍, 159x406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켈렉션
중봉 성파中峰 性坡, 〈금강산전도金剛山全圖〉, 2012, 종이에 채색, 10폭 병풍, 220x900cm, 작가소장
송규태, 〈서궐도西闕圖〉, 2014, 비단에 채색, 130x400cm, 개인소장
김은주, 가만히 꽃을 그려보다, 2011, 종이에 연필, 140 x 300cm, 작가소장
이인수, 〈둘-새들의 싸움〉, 1989,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홍지윤, 〈접시꽃 들판에 서서〉, 2014, 캔버스에아크릴긱, 220 x 640cm, 작가소장.
손동현, 〈이른 봄〉, 2020-2021, 종이에 먹, 잉크, 아크릴릭 잉크, 194×130cm(11),
국립현대미술관 제작지원
윤정원, 〈우리들의 시간〉, 2022, 비단에 금박, 채색, 249×200cm, 작가소장/
이근종, 〈꽃세상〉, 2012, 캔버스에 아크릴릭, 259×194cm, 작가소장
◆ 일제강점기 전쟁 원혼 달래준 <흥천사 감로왕도興天寺甘露王圖>
문성文性·병문炳文, <흥천사 감로왕도興天寺甘露王圖>, 1939, 비단에 채색, 159×226cm, 대한불교조계종 홍천사. 감로도는 망자의 천도 의식에 사용되는 불화이지만 이 작품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때 다양한 시대상을 생생하게 담고 있어 풍속화로도 손색이 없다.
“이거 불화佛畵 맞아요? 왜 코끼리가 나오는 서커스 장면 같은 게 있을까요.”
“그럼요. 상단의 다섯 여래를 비롯해 중단의 제사상과 제사 지내는 장면 그리고 그 아래에 아귀餓鬼도 있으니 불화 맞습니다. 이런 종류의 그림을 감로도甘露圖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왜 하단 부분에는 기차 터널이라든가 빌딩 도시 같은 이색적인 광경으로 가득할까요.”
“그래서 눈여겨볼 중요한 작품이지요. 1930년대의 대표적 풍속화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희귀한 불화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 문을 연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 전시장에서 나눈 대화의 한 대목이다. 문제의 작품은 화사畵師인 보응 문성普應 文性과 밑그림인 출초出草 담당 남산 병문南山 炳文 비구스님이 그린 ‘흥천사 감로도’(1939년)이다. 삼각산 흥천사는 서울 정릉 가는 아리랑고개 길목에 있다.
감로도甘露圖는 망자亡者 천도薦度 의식에 사용되는 독특한 도상의 작품이다. 떠도는 영혼을 위로해 주는 그림. 이 얼마나 훌륭한가. 그것도 억울하게 죽은 사람을 더 챙긴 그림이다. 천도 대상의 고혼孤魂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불행한 시대다. 마치 오늘날의 시대 상황과 비슷하다. 그래서 코로나19 사태는 ‘달콤한 이슬(감로甘露)’을 더 많이 기다리게 한다.
문성文性·병문炳文, <흥천사 감로왕도興天寺甘露王圖>, 1939,
비단에 채색, 159×226cm, 대한불교조계종 홍천사(부분도)
채색화彩色畵 중 빠질 수 없는 장르가 불화이다. 이 불화는 망자의 영혼을 천도하는 의식에서 예배의 대상이 되는 감로도甘露圖이다. 감로도甘露圖에는 불, 보살의 도상 뿐 아니라 당대의 풍속을 알 수 있는 장면이 도해된다. 이 불화는 서울 흥천사 극락보전極樂寶殿의 하단탱下段幀으로 봉안되었으며, 제작자는 화승畫僧인 보응 문성普應文性과 남산 병문南山炳文이다. 근대기 불화의 특징을 알 수 있는 작품으로 주목된다.
불화佛畵는 하단下段 육도六道 중생衆生의 고혼孤魂이, 중단中段의 감로甘露 시식의례施食儀禮를 매개로 상단上段의 불보살 불보살佛菩薩의 세계로 인도引導되는 구조이다. 감로도는 천도 대상인 고혼이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으며 기존 감로탱에서 사용되었던 도상을 현실에 맞게 새롭게 창출하였다. 화면 상단과 중단엔 고혼을 천도하는 오여래五如來(다보여래多寶如來, 묘색신여래妙色身如來, 광박신여래廣博身如來, 이포외여래離怖畏如來, 감로왕여래甘露王如來)와 시식단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삼존阿彌陀三尊과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의식의 도량으로 하강하고 있다.
중단부에는 시식단 앞으로 재를 지내는 화면이 비중을 차지한다. 법고, 바라, 나비춤을 추는 승려들의 모습이 의식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옆에 앉은 2위의 아귀는 해학스러운 표정으로 그려졌다. 하단부에는 방형으로 분활된 공간 안에 1930년대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장면들로 채워졌다. 도로 확장 공사에 부역 나간 한국인과 이를 감독하는 일본인의 모습, 번화가와 양복을 입은 신사와 빨간 양장을 입은 숙녀의 모습 등 1930년대 당시의 상황을 잘 대변하고 있다.
화면 우측에는 자동차를 타고 여행하는 장면 등 당시로서는 변화 된 신식新式풍경을 그리면서도, 모내기하는 모습과 새참을 내오는 광경, 관아에서 벌어지는 재판 등 전통시대 모습을 반영하는 모습도 공존하고 있어 변화해 가는 시대상을 함께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기차가 다니는 어촌, 가마 행렬, 코끼리 서커스단, 호랑이에게 쫓기는 장면, 고기잡이, 번화가, 대장간, 전당포, 전깃줄 공사, 다툼, 도로 확장 공사, 전화 거는 사람, 스케이트 타기, 뱀에 놀라거나 바위에서 떨어지는 소년, 거센 물살에 휩쓸려 가는 모습, 농악 장면 등이 당시의 풍속 장면이 다채롭게 배치되었다.
한편 총독부 현판이 걸린 건물 앞에 일본 헌병이 서 있고 건물을 향해 말을 타고 오는 일본 군인의 모습에서 이 불화가 일제 강점기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장면의 위와 아래쪽에도 총을 들고 전장을 나가거나 탱크를 타고 있는 진격하는 모습도 당시의 상황을 대변한다. 이와 같은 몇몇 전쟁 장면은 불화가 제작되었던 일제 강점기를 지나 광복 이후에 흰색으로 칠해 가려졌다가 근래에 다시 복원되었다.
독창적인 구성과 원근법, 명암법 등의 사용과 사실적 묘사, 채색 기법 등에서 서양화적 요소가 반영된 것을 알 수 있으며, 19세기 중엽 이후 도식화된 감로도와 달리 당시 시대 상황에 맞게 적용시켜 새로운 도상을 창출한 점이 돋보인다.
근대기 감로도의 새로운 도상 및 사회상을 보여주는 불화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글: 유경희)
이영실, <영축산 감로도靈鷲山甘露圖>, 2022, 목심에 옻칠, 270×280cm, 국립현대미술관 제작지원
이영실은 감로도의 도상을 차용하여 팬데믹 시대에 구원에 대한 염원을 담아 <영축산 감로도靈鷲山甘露圖>를 제작했다.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화면 상단에는 영축산 통도사靈鷲山通度寺를 상징하는 통도사 극락보전 남쪽 벽면에 그려져 있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타고 오는 지장보살과 영축산, 사리탑, 영축산문 등의 이미지를 섞어 넣었다. 아귀를 중심으로 하단에는 팬데믹 시대를 묘사하고 있다. 이 시대 반야용선은 구급차로 묘사된다. 지옥을 묘사하는 화면의 하단에는 뉴스와 문학작품 등을 통해 작가가 접한 지옥의 이미지들이 그려져 있다.
도스토옙스키F. M. Dostoevsky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에 나오는 파뿌리와 지옥의 노파이야기, 시지프스의 신화와 같은 상상의 공간뿐 아니라, 미국의 대공황을 배경으로 하는 존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에 등장하는 지옥같은 삶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걸어가는 거북이의 모습, 아프가니스탄 대 탈출시 비행기에서 추락하는 사람들의 모습 등 지옥과 같은 현실 또한 구원을 염원하는 감로도 형식의 작품에 반영하였다.
이영실, <영축산 감로도靈鷲山甘露圖>, 2022, 목심에 옻칠, 270×280cm, 국립현대미술관 제작지원(부분도)
보응 스님 작품 옆의 이영실 작품은 현대판 감로도로 옻칠 기법을 활용했다. 작품 속에는 코로나19 진료소 풍경 등 팬데믹 환경을 담았다. 옻칠 작업의 백미는 전시장 초입을 장식한 성파 종정스님의 호랑이 그림이다. ‘수기맹호도(睡起猛虎圖·2012년)’는 잠에서 깬 위풍당당한 자세의 호랑이를 크게 묘사한 대작이다. 어려운 시대의 아픔을 딛고 활기차게 일어서기를 기대하는 작가의 마음을 엿보게 한다. 채색 옻칠이라는 재료를 새삼 주목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중봉 성파中峰 性坡, 〈수기맹호도睡起猛虎圖〉, 2012, 패널에 옻칠, 162×570cm, 작가소장
‘흥천사 감로도’ 일부를 확대한 모습. 1930년대 일제가 벌인 전쟁 모습들이 담겼고,
일제가 설치했던 통감부 건물 앞과 기마병의 모습도 보인다.
‘흥천사 감로도’를 살펴보자. 한복판은 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재(齋)를 올리고 있는 장면이다. 그 아래의 흉측스럽게 생긴 아귀들은 목구멍이 바늘 같아 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존재다. 굶주린 귀신이다. 의식을 거행하는 옆에는 서양식 복장의 세련된 신사와 숙녀가 서 있다. 한마디로 이 그림은 시대 상황의 현장이 다채롭게 묘사되어 있다. 하얀 코끼리가 재주 부리고 있는 서커스, 자동차 여행에 나선 사람들, 전당포, 모내기 장면, 대장간, 전신주에 올라 일하고 있는 전공(電工), 도로 공사에 부역 나온 사람들, 멱살 잡고 싸우는 제복의 학생들, 스케이트 타고 있는 젊은이들, 재판장 모습 등 실로 다양하다. 모두 1930년대 일제강점기 시절의 단면이다. 풍속화로도 손색이 없다.
특히 이 그림에서 눈길을 강하게 끌고 있는 장면은 전쟁 모습이다. 하늘에는 비행기가 날고 있고, 지상에는 탱크를 동원한 전투 장면도 나온다. 육해공군이 모두 있다. 게다가 통감부 건물 앞의 기마병도 나온다. 일제는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켜 이른바 대동아전쟁으로 확전시켰다. 일제강점 시기 중에서도 전쟁 기간은 일상생활을 더욱 피폐하게 했고, 전사자를 비롯해 억울하게 죽는 사람들의 명단을 계속 쌓게 했다. 전쟁은 파괴의 화신이다. 그래서 떠도는 영혼의 수는 계속 늘어났다. 위로해 줄 망자는 왜 그렇게 늘어야만 했을까. 망자 위무의 역할은 바로 감로도의 몫이다. 흥천사의 그림은 이렇듯 어려운 시기에 치유의 개념으로 제작된 ‘달콤한 이슬’이다. 이슬 한 방울이면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생명의 물, 바로 감로수 그 자체이기도 하다.
‘흥천사 감로도’를 자세히 보면 전투 장면의 여섯 군데 정도는 바탕 색깔이 다르다. 광복 이후 친일이라는 누명을 의식해서 가려놓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의 은폐는 색상의 차이를 불러왔다. 현재는 가린 부분을 제거하여 시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전쟁 시기에 전쟁 장면을 그린 것은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특기사항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일반 미술계에서는 ‘흥천사 감로도’처럼 시대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을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왜 한국의 화가들은 현실을 작품에 담지 않으려 했는가. 현실의식의 부재는 한국 미술의 특징인가. 우리 그림에서 희비애락의 진솔한 장면을 만나기는 그야말로 별 따기와 다름없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당대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흥천사 감로도’는 매우 소중한 작품이라 하겠다.
불화에 담긴 당대의 현실 풍경,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사회적 거리 두기의 해제로 모처럼 거리는 활기를 되찾고 있다. 그래도 팬데믹 상황의 완전한 종식은 아니다. 그래서 감로도의 역할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억울하게 눈을 감은 이를 위로하기 위한 그림. 그것도 동시대의 현실 풍경을 사실적으로 다양하게 담은 그림. 감로도에서 하나의 교훈을 얻기도 한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전시정보/동아일보 2022년 06월 21일(화) 오피니언 [윤범모의 현미경으로 본 명화(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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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BTS 멤버 뷔, 슈가, 진, 정국, RM, 지민, 제이홉. /빅히트뮤직
첫댓글 고봉산 정현욱 님
생의 찬미
특별전 답게 다양한 장르의 걸작들이 눈과 마음을 사로잡을것 같네요
소개해 주신 사진만 봐도 전율을 느낄만한 작품들이 많을것 같다는 짐작을 하게되네요
시간되면 한번 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