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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45:16
내적 갈등을 이기고 원수를 선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요셉은 한때 자신을 노예로 부리던 바로와 그의 왕국에 선을 베풀었습니다. 증오와 보복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형들을 용서하며 선대한 것입니다. 그의 이 믿을 수 없는 선대는 성령의 은혜입니다. 사랑에서 나온 선대가 불러일으키는 힘은 무엇인가? 공주야! 요셉은 자신을 노예로 부렸던 바로와 그 왕국에 선을 베풀었다. 형들에 대한 증오와 보복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선대했다.
It is difficult to overcome internal conflicts and to have an enemy. Joseph did good to Pharaoh and his kingdom, who once enslaved him. He was not buried in feelings of hatred and retaliation, but forgave his older brothers and showed good faith. This incredible predecessor to him is the grace of the Holy Spirit. What is the power that the ancestors of love bring about? Princess! Joseph did good to Pharaoh and his kingdom, who enslaved him. He did not dwell in hatred and feelings of retaliation against his brothers, but rather presented them to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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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선함은 하나님께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결국 그의 선함 삶이 진실한 화해와 생명 구원을 이룬 것이다. 요셉과 형제들의 상봉 소식은 바로와 대신들에게도 큰 기쁨이었다. 그들은 가나안에서도 큰 기쁨이었다. 그들은 가나안에도 기근에 시달리는 요셉 가족들이 그들은 가나안에서 기근에 시달리는 요셉 가족들이 애급으로 내려와서 정착하고 풍족하게 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공급하였다.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아끼지 않고 배려하였다.
His goodness stemmed from a deep trust and faith in God. In the end, his life of goodness achieved true reconciliation and life salvation. The news of the Joseph and the brothers' reunion was a great pleasure for Baro and the ministers. They were also a great joy in Canaan. They provided everything for the famine stricken Joseph family in Canaan to descend to the level of affection, settle down, and live a rich life. They were delighted and considerate as if it were their own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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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얼마나 요셉을 신뢰하였으면 진심으로 요셉을 통해 자신의 나라가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 복의 근원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요셉이 자기 나라를 구했다는 것을 누구나 다 인정한 것이다. 경쟁과 대립은 미움과 시기를 낳지만 겸손과 섬김은 애정과 존경을 낳는다. 주위 사람들이 내가 잘 되는 것을 함께 기뻐할 만큼 나는 그들에게 덕을 끼치고 유익을 주는 사람인가? 요셉은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형들에게 큰 선물을 안겨주되 베냐민에게는 다섯 배를 준다.
How much he trusted Joseph, he sincerely said that his country was saved through Joseph. Everyone has admitted that Joseph saved his country as a descendant of Abraham, the source of blessings. Competition and confrontation produce hatred and envy, but humility and service produce affection and respect. Am I a person who gives virtue and benefit to people around me enough to be happy that I am doing well together? Joseph brings a great gift to his brothers returning to Canaan, but five times more to Benj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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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다투지 말도록 부탁한다. 지난 잘잘못을 따지거나 베냐민이 5배를 더 받은 것을 두고 문제 삼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는 끝까지 가족의 육신적인 안전만큼이나 하나 됨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 되는 사랑이 없는 안전이 없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양식 없음이 아니라 사람 없음이다. 죽은 아들이 살아났다는 소식에 야곱은 혼절한다. 죽은 아들의 소생은 그가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요셉의 죽음으로 산산이 깨진 요셉의 소생이요(27:11),
And please don't argue on the way back. It might mean that you shouldn't blame others or take issue with Benjamin's 5 times more. He stresses that we are one as much as the personal safety of the family until the end. There is no safety without love. What jeopardizes us in front of God is not lack of form but lack of people. Jacob is confused by the news that his dead son has survived. The resuscitation of his dead son is the resuscitation of Joseph, who was shattered by the death of Joseph (2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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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근으로 다 죽어가는 벧엘의 약속에 대한 소생이요, 제 힘과 지혜로 살다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사랑하여 붙잡던 것을 다 잃어버린 초로의 노인에게 은혜로 더해주신 희망이요 위안이었다. 그렇게 바라고 원하던 것도 많고 그것을 이를 지략과 힘도 가졌던 야곱은 이제 요셉의 생존 소식 하나로 ‘족하다‘ ’충분하다‘ ’더 바랄 것이 없다’ 할 만큼 가난한 마음이 되어 있었다. 자신이 스스로 이룬 것을 다 잃고 하나님이 주신 것만 남는 것이 인생이고, 그것이 가장 좋은 것이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It was a revival of Bethel's promise, which was dying of famine, and a hope and comfort that he added grace to the old man who had lost everything he loved and held like sand that escaped through his fingers after living with my strength and wisdom. Jacob, who had so much he hoped for and wanted, and had the resource and power to do so, was now poor enough to say "enough," "enough," and "there is nothing more" as news of Joseph's survival. He confesses that life is about to lose everything he has achieved and only what God has given him, and that's the best thing, and that's en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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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믿음과 사랑에서 난 선대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형들을 향한 요셉의 선대가 만들어낸 결과는 무엇인가?
나는 은혜의 통로인가, 복음을 막는 자인가?
속고 속이며 살아온 야곱 같은 내 인생, 어떻게 결자해지 할 것인가?
Who did the ancestors of Joseph's faith and love influence?
What is the result of Joseph's ancestors toward his brothers?
Am I a channel of grace or a blocker of the gospel?
My life like Jacob, who has been deceived and deceived, how will I be determ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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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가 야곱 일가를 궁에 초대하다(16-20)
a.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이 기뻐하다:16
b.파라오가 야곱 일가를 궁에 초대하다:17-20
야곱의 아들들이 파라오의 명령을 이행하다(21-28)
a.요셉이 형제들을 가나안 땅에 올려 보내다:21-24
b.형제들이 요셉의 소식을 야곱에게 알리다: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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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형들이(16a)
왔다는 소문이(16b)
바로의 궁에 들리매(16c)
바로와(16d)
그 신복이 기뻐하고(1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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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는(17a)
요셉에게 이르되(17b)
네 형들에게 명하기를(17c)
너희는 이렇게 하여(17d)
너희 양식을 싣고 가서(17e)
가나안 땅에 이르거든(1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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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아비와(18a)
너희 가속을 이끌고(18b)
내게로 오라(18c)
내가 너희에게(18d)
애급 땅(18e)
아름다운 것을 주리니(18f)
너희가 나라의(18g)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18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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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명을 받았으니(19a)
이렇게 하라(19b)
너희는 애급 땅에서(19c)
수레를 가져다가(19d)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19e)
너희 아비를 데려오라(19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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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너희의 기구를(20a)
아끼지 말라(20b)
온 애급 땅의 좋은 것이(20c)
너희 것임이니라 하라(2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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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아들들이(21a)
그대로 할 쌔(21b)
요셉이 바로의 명대로(21c)
그들에게 수레를 주고(21d)
길 양식을 주며(2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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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들에게(22a)
다 각기 옷 한 벌씩 주되(22b)
베냐민에게는(22c)
은 삼백과(22d)
옷 다섯 벌을 주고(2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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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또 이와 같이(23a)
그 아비에게 보내되(23b)
수나귀 열 필에(23c)
애급의 아름다운 물품을(23d)
실리고(23e)
암나귀 열 필에는(23f)
아비에게 길에서(23g)
공궤할 곡식과(23h)
떡과 양식을 실리고(23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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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형들을 돌려보내며(24a)
그들에게 이르되(24b)
당신들은 노중에서(24c)
다투지 말라 하였더라(2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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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25a)
애급에서 올라와(25b)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25c)
아비 야곱에게 이르러(2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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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여 가로되(26a)
요셉이 지금까지(26b)
살아 있어(26c)
애급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26d)
야곱이(26e)
그들을 믿지 아니하므로(26f)
기색하더니(26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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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또(27a)
요셉이 자기들에게(27b)
부탁한 모든 말로(27c)
그 아비에게 고하매(27d)
그 아비 야곱이(257e)
요셉의 자기를(27f)
태우려고 보낸(27g)
수레를 보고야(27h)
기운이 소생한지라(27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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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가로되(28a)
족 하도다(28b)
내 아들 요셉이(28c)
지금까지 살았으니(28d)
내가 죽기 전에(28e)
가서 그를 보리라(28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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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를 부르는 삶_the life of calling the line
선대를 베푸는 삶_a life of preeminence
선대가 일으킨 삶_the life created by the forefa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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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을 통해 출애굽을 준비시키신 주니, 야곱에게 기쁜 소식을 들려주시니 감사하나이다. 가해자이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운운하며 잘난 척 했던 지난날의 과오를 용서하옵소서. 공동체의 문제들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순전히 풀어지고 해결되게 하여 주옵소서.
O LORD, who prepared the Exodus through Joseph, Thank you for the good news to Jacob. The mistakes of the past, when he was an assailant, but he spoke God's will and pretended to be proud of himself. Forgive me. Let the problems of the community be solved and solved purely by God's grace.
2026.5.22.fri.Clay
신학 비평//
사랑에서 나온 선대는 왜 사람을 살리는가? 요셉의 선대는 단순한 착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처를 넘어선 믿음의 질서였습니다. 사람은 보통 자기를 아프게 한 대상에게 보복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심판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이 맡기신 생명의 대상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복수의 언어 대신 공급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내가 아버지를 봉양하리다.” 상처 입은 사람이 오히려 타인의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복음의 신비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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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요셉의 화해가 애굽 전체를 기쁘게 했다는 점입니다. 바로와 신하들까지 야곱의 가족을 환영합니다. 한 사람의 용서가 한 가정만이 아니라 한 나라의 분위기까지 바꾸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선은 개인 윤리로 끝나지 않습니다. 선은 공동체 안으로 번져 생명의 질서를 회복시킵니다. 그래서 요셉은 단지 “성공한 총리”가 아니라, 아브라함 언약의 통로로 서 있습니다. 복의 근원은 소유가 아니라 흘려보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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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요셉은 형들에게 “노중에서 다투지 말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인간 심리를 잘 아는 말입니까. 죄책감, 비교의식, 억울함은 다시 공동체를 찢어놓기 쉽습니다. 베냐민만 다섯 배를 받은 상황은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풍요보다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양식 없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 잃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반응도 깊습니다. 젊은 시절 그는 속이고 계산하며 무엇이든 붙들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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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생 끝자락에 남은 것은 “족하다”라는 고백뿐입니다. 하나님이 다시 돌려주신 요셉 하나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은 더 많이 가지는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이 남겨주신 은혜 하나를 붙들고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가난한 마음으로 가는 여정인지도 모릅니다. 요셉의 선대는 사람을 살렸고, 공동체를 묶었고, 야곱의 꺼져가던 생명을 다시 일으켰습니다. 사랑에서 나온 선대는 상대를 굴복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얼어붙은 존재를 다시 살아나게 합니다. 나는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존재인가, 긴장하게 만드는 존재인가? 내 삶을 통해 누군가는 “족하다”라고 숨 돌릴 수 있는 위로와 안전을 경험하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