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요약하자면 프랑스는 마지노선을 쌓고 거기에 안심하고 탱자탱자하다가 독일에게 당했다는 이야기를 우리의 어른(우익진영,국방홍보)들은 하시면서 언제나 안보의식,상무정신을 가지고, 군대를 중요시해야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과연 프랑스는 마지노선에 의한 태만과 국민들의 전쟁기피 심리때문에 의해 무너진 것인가? 그것에 관하여 알아보자.
1. 마지노 선은 무엇인가?
마지노선은 1930년대부터 프랑스의 국방장관 마지노(A.Maginot)에 의해 추진되기 시작한 '국경요새화' 사업이었다. 이는 160억 프랑이라는 공사비를 지출했고, 이는 프랑스의 2~3년 국비지출액에 맞먹는 금액이었다.
원래는 벨기에와의 국경지대에까지 연장하려 하였으나, 천문학적인 비용으로 그 공사가 독-불국경에만 한정되었다.
마지노선은 2~3중의 대전차 장애물과 75미리 이상의 중포,기관총,대전차포로 보강되고, 각 요새마다 지하철이 연결되어 병력수송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출입구에는 공기정화장치가 있어 독가스 공격에도 대비한 말 그대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거기에 극장,병원,카페도 있었으며, 어떤 프랑스 평론가는 '파리시내보다 낫다.'고 평할 정도였다.
2. 그렇다면 왜 마지노 선을 만들었나?
보통 논리학에서는 반증법이라는 것이 있다. 따라서 마지노선의 구축은 오히려 프랑스인들의 전쟁에 대한 철저한 대비태세의 반영으로 보아야 옳을 것이다. 더군다나 프랑스는 인구나 국력측면에서 독일에게 밀리고 있었기 때문에 1차대전 같은 대규모 살상전을 각오할 수 없었다. 따라서 자국의 피해를 줄이고, 적을 최대한도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방법은 철저한 요새에서 방어를 펼쳐야한다는 논리가 대두된 것으로, 일견 합리적이라 할 수 있겠다.
더군다나 프랑스의 이러한 전쟁대비 심리는 다른분야에서도 두드러졌는데, 전차의 생산량을 독려하여 독일에 맞먹는 2000여대의 전차를 보유할 수 있었다. 외교분야에서는 독일에 대항하여 폴란드,체코,헝가리등과 우호조약을 채결하고, 르카르노 평화보장 조약에는 이탈리아를 끌어들이는 세심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지적하엿듯이 프랑스인들은 전쟁을 싫어하였지만, 그렇다고 피하려고 하지도 않았다.-'극단과 혼란의 20세기 역사'에서 발췌.
즉, 프랑스인들은 1940년에 어느나라 국민들보다도 독일에 대한 대비가 철저했고, 때문에 미국의 많은 언론들은 프랑스가 히틀러를 길들여줄 조련사의 역활을 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3. 그렇다면 뭐가 문제였나?
문제는 다른데에 있었다. 바로 우선 장군들이 문제였다....
1차대전식 참호.보병전에 익숙해진 그들은 도무지 사고를 바꿀 생각이라곤 쥐뿔만큼도 없었다. 우선 그들의 경직된 사고는, 1939년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기 위하여 독-불 국경에는 7개 사단만을 남겼음에도 200만의 병력으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1차세계대전 당시의 상식, 즉 일반적 전투는 방어측이 유리하다.라는 가정에 전제되어 스스로 방어의 위치를 택한 것이다.
전차에 대한 그들의 사고는 더욱 우스웠는데, 전차의 기동성과 파괴성을 언급하고 중요시한 것은 영국의 퓰러나 프랑스의 드골이었음에도 독일인들이 그것을 중요시하고, 프랑스와 영국군은 전차를 보병을 지원하는 지상포대,혹은 방패정도로 생각했다.
즉 1차세계대전때 양군이 길다랗게 참호를 파고 보병을 배치하면, 전차 2~3대로 전선을 거뜬히 돌파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전차부대를 사단단위로 운영하기보다는 보병사단에 분산배치하여 각개격파 당하는 씨앗을 잘도 뿌려놓았다.
4.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좋다...그러나...
1940년이 되어 독일군의 프랑스 공격이 임박해지자...프랑스는 물론이고 독일 역시 마지노선을 '쉽게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따라서 독일군이 다른 돌파구를 찾을 것이 뻔했는데, 프-영군은 벨기에의 플랑드르 지방을 통하여 쳐들어 올것이라고 가정하고, 그곳에 병력을 배치해 놓았다.
그런데, 프랑스 육군정보부 제2부..즉 첩보국에서 독일이 세당을 중심으로 한 '아르덴'지역으로 주파할 것이라는 계획을 사전에 탐지하여 보냈고, 그 정보의 제공자는 독일군 군부의 중역이며,반 나치주의자였고, 노르웨이 전투에서 프랑스에 상당한 정보를 제공한 전적이 있었기에, 충분히 신빙성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르덴 지역이 뭐냐.....유럽에서도 보기드문 울창한 삼림지대로 전차와 같은 중장비의 통행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곳이다.
거기다 자신이 플랑드르에 대한 적의 침공을 확신하고 주장했던 연합군의 총사련관 가믈랭장군은 자신의 생각을 바꾼다는 것을 무슨 수치인양 생각했고, 따라서 정보를 무시해버렸다.
근데 우스운것은 1914년 제 1차대전 당시 프랑스군은 중포를 동원한 중장비를 아르덴 지역에 배치하여 싸운다는 발상을 한적이 있고, 더군다나 1938년 프랑스 기갑부대의 장교들이 그곳에서 직접 돌파훈련에 성공한 전적이 있는데도 그것을 간단하게 무시한 것이다.
결국 독일은 아르덴 지역에서 밀고 들어왔고, 단숨에 플랑드르 지방에 있던 영불 연합군을 포위하여 바다로 밀어버렸으며,파리를 함락시키게 된다.
5. 패배 그 순간에 있어서.
아르덴지역에서 공세가 개시되는 순간에도 가믈랭장군은 식사에 나온 코냑타령을 하고 있었다...여유작작함의 표현인가..흐음....-_-;;;
독일에 맞먹는 2천여대의 전차들은 각개격파당한다. 아니 그 각개격파조차도 너무 순조롭게 이루어진것이, 전차와 비행기를 보병에 대한 보조수단정도로 여기고 무전기조차 설치하지 않았던 프랑스군 수뇌부의 무능함 덕분에 독일군은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여하튼 독일군이 밀고오자 장군들은 결국 그자리에서 항복하고 만다. 병사들은 독일군에 맞서다가 흩어지고,덩케르크로 영국군 따라 도망치고..
사실...몽고메리 장군이 지적했듯, 프랑스 병사들은 용감하고, 강인했으며, 더 나은 장군의 지휘를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하지만 프랑스 병사들도 항복하는데..그 이유는 내각의 새로운 수뇌로 위대한 베르덩의 영웅 패탱장군이 지명되었고, 이에 프랑스 장병들은 우리의 위대한 패탱이 휴전을 하더라도 곧 반격에 나설 것이다.라고 여기고 총을 버렸다.(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는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2차세계대전에 보병장교로 참전했다.)
하지만, 패탱을 위시한 프랑스의 수뇌부들..즉 장군들은 괴뢰정부 비시정부에서도 정권을 잡고, 독일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며, 모든 문화.지식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탄압하고, 자유와 평등조차 우습게 여기며, 프랑스를 병영화시키는데 노력하고자 했다가..결국 종말을 맞았다.
6. 마치며...
사실...이러한 장광설을 늘어 놓는 것은 우리를 속였던 우익 군사단체들의 구라를 적발하고자 하는것 보다 더큰 이유가 있다.
바로 패배의 원인이 되었던 장군들...그들은 프랑스 군부내에서 일종의 권력을 형성하며, 자신들의 엘리트 의식에 빠져 있었고, 사고가 매우 경직되어 있었으며, 자신들의 하급자(즉 진취적인 젊은 장교들)의 의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여유조차 없었던 이들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것이 우리나라 군부,정치계에도 만연하다는 것이다.
예를 군부로 들자면 제 1차 서해교전 당시에 우리군이 승리했다고 자축하며, 우리군은 북한보다 한 단계 앞서 있다고 기염을 토하던 것이 장군들과 언론들이었다. 그러나 당시 강영오 제독만이 장비가 빈약한 함정들...즉 참수리급정도의 함정들에 최소한의 대포인 3인치 포라도 달아야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리고 2차 서해교전...우리의 참수리급 전투함들은 5인치 포를 쏘아데는 북한 배에 겨우 기관총급 벌컨포를 쏘아데며 응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북한군에게 많은 피해를 안겨주었다.(좃선일보는 무슨 참수리급에 5인치 포라도 달려있었던 것처럼 얘기하며, 우리는 이길수도 있었다는 논리를 폈지만!)
2차 서해교전에서 많은 장병들의 희생...막을 수 있었다...적어도 경직된 사고관과 승전경험(?)을 가진 장군들만 아니었다면...
문제는 군부만 그런가...아니다.....학계에서도 스승을 넘어서는 재능이나 온당한 비판마저 짓밟히고, 정치계는 말할 것도 없다...다들 생각 굳은 분들이 점령하고 계시다.
한 나라가 아무리 발전의 요인과 의지를 가졌다 해도, 그것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머리가 굳었다면 오히려 참담한 절망감과 폐허만이 남을 뿐이다....결코 나는 1940년대의 프랑스의 모습을 지금의 우리나라에서 보고 싶지는 않다.
그렇기에 감히 제안하기를..적어도 국민들의 생각만은 유연하고 열려있어야 한다. 국민들의 사고만이라도 살아있다면..그것은 벌판의 작은 불곳이 될 것이다...그리고 언젠가 그 불꽃은 벌판을 태울 것이다.
- 전쟁메니아이고 부족하기만 한 한 대학생이 처음 올리는 글입니다.;;
부족한점 있으면 많은 지적들 부탁드립니다.
첫댓글 우와~ 글잘쓰시네요 혹시 전문가아니신지-_-;;
고맙습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그리고 서해교전에 관한 자료는 딴지일보의 기자 펜더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음을 뒤늦게나마 밝히는 바입니다.
하마님 글 멋져요.
하마님의 글에 공감합니다.
님 날카로우십니다. 부럽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