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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며칠 후, 같은 곳 "뭘 먹고 살았을까?" 화영이 그 말에 혈문룡을 돌아보았다. "저 늙은이는…… 도대체 뭘 먹고 살았길래 주변에 이리도 먹 을 것이 없지?" 혈문룡이 광장 구석에 놓여 있는 귀조의 시체를 가리키며 투 덜거렸다. 화영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뭔가를 먹긴 먹었겠지." 혈문룡은 잠시 인상을 샨다가 혀를 차고 일어났다. 이 빌어먹을 장소에서는 시간의 흐름도 파악할 수 없다. 도대세 여기 들어와 있은 지 며칠이 지났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동안 먹은 것이라고는 들어올 때 가지고 왔던 건량과 물밖 에 없었다. 귀조라는 늙은이도 사람이고, 사람이면 반드시 뭔가를 먹었을 것이다. '설마 저 견혼승망들을 한 마리씩 먹지는 않았겠지!' 그는 석벽의 구석에서부터 차례차례 살피기 시작했다. 화영이 물었다. "뭘 하려고?" "그럼 이대로 굶을 텐가?" "물론 그러고 싶지는 않지." 화영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여문량을 향해 말했다. "시장하지 않으십니까?" 광장의 한구석에 가부좌를 틀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앉아 있 던 여문량에게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여문량은 여기 들어온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래도 그들이 준비해 온 얼마 안 되는 건량은 떨어진 지 한 참이나 되었다. 야광충은 무엇을 몰래 먹고 있는지, 아니면 아예 먹지 않아도 사는지 그들에게 건량을 나눠 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화영이 건네주는 건량을 사양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석두의 후예였다. 그가 무엇인가 먹고 싶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그가 뭔가 먹으려고 했다면 얼굴을 싸맨 천을 풀 어야 했을 것이다. 그는 천을 풀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배가 고프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굶어 죽더라도 얼굴 을 보이면 안 되는 사연이 있어서인지는 역시 그 자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가끔 광장 구석에 있는 연못에 가서 천을 뒤집어쓴 채로 연못에 얼굴을 담그곤 했다. 아마 물을 마셨다면 그때밖에는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화영은 혈문룡이 석벽을 따라서 뭔가를 찾고 있다는 것을 느 낄 수 있었다. 그가 무엇인가 찾을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그것이 먹을 것은 아닐 것이다. 화영은 눈으로 보지 않아도 이 광장 안에는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구석에 응크리고 있는 검은 표범을 잡아먹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때, 혈문룡이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 빌어먹을 고양이라도 잡아먹을까?" 화영은 웃었다. "나야 그런 말 들어도 괜찮지만 아묘는 좋아하지 않을걸." 검은 표범이 나직하게 으르렁거리며 혈문룡을 쏘아본 모양이다 혈문룡이 검은 표범에게 사정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됐다! 됐어! 농담으로 한번 해봤다!" 혈문룡이 그에게 다가와 귀에다 대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저놈이 더 굶으면 틀림없이 우리부터 잡아먹으려고 들 거야. 그 전에 우리가 선수치는 게 낫지 않을까?" 화영은 빙긋이 웃을 뿐 대답하지 않고 일어섰다. 야광충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뭔가 방법이 있을지도 모 른다고 화영은 생각하고 있었다. 혈문룡이 그의 뒤를 따라왔다. "그 백발의 귀신을 찾아가는 거냐? 그놈은 왠지 재수가 없단 말이야." 묘한 일이었다. 이렇게 이질적인 사람들이 한곳에 이렇게 모이는 것도 드문 일일 텐데, 극한 상황 속에서도 별다툼없이 그런대로 잘 지내는 것은 더욱 묘한 일이었다. 대충 듣기에도 혈문룡은 사막의 도적단 두목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거칠고 흉폭한 사나이인 줄로만 알고 있었지만 며칠 동안 갚이 좁은 장소에 갇혀 있으면서 얘기를 해보니 의외로 활 달하고 재미있는 구석도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두목다운 과단성과 도적단다운 자유분방함을 동시에 지닌, 밖에서 만났다면 대부분의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 을 법한 젊은이였던 것이다. 물론 화영으로서는 그의 생김새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목소 리와 느낌으로 짐작해 볼 때 적당한 체격에 절대 못나지는 않았 을 것이다. 혈문룡은 여전히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 백발귀(白髮鬼)! 정말 흔자 숨어서 딴짓하고 있는 거 아 냐? 어디다가 여자라도 숨겨 놨나? 그렇지 않고야 혼자 따로 있 을 이유가 없잖아?" 화영은 알고 있었다. 혈문롱의 머릿속에 방금 말한 대로 아주 그런 생각이 없다고 는 블 수 없지만, 정말로 진지하게 의심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 을……. 사실 사정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야광충은 그들이 같이 지내 는 광장이 너무 밝아서 싫다고 했다. 자기에겐 어두운 곳이 편하다고……. 혈문룡으로서는 바로 그 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광장이 밝은지는 그도 모른다. 광장의 석벽이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것같이 보였지만, 그런 광석에 대해서는 그는 아직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만약 저 빛이 너무 밝다고 느껴진다면, 그 정도로 빛 이 싫어 사람의 형체나 겨우 분간할 만한 그 정도의 빛이 밝다 고 느끼고 있다면, 그 백발귀 녀석은 낮에는 눈이 타서 죽을 것 이 아닌가? 물론 그가 흔자서 무엇인가를 먹올 정도로 치졸한 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를 그렇 게 나쁘게 보지도 않는다는 것이 혈문룡이 요즘 야광충을 보는 관점이었다. 사실 엄격히 따져 본다면 생명을 구해 준 은혜도 입은 적이 있는 것이다. 화영이팔 이 친구도 묘한 친구였다. 처음에 그가 맹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잘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가 움직이고 말하는 것을 보면 점점 더 그것은 믿올 수가 없는 일로 생각되엇다. 무슨 맹인이 눈 뜬 사람보다 사태를 더 잘 파악하는가? 지금만 해도 그렇다. 야광층이 이 미로처럼 뚫린 지하통로 어느 구석에 있는 줄 알 고 찾아간단 말인가? 그러나 묘하게도 화영은 미리 약속이라도 한 둣이 거침없이 찾아갔고, 그가 가는 곳에는 매번 야광충이 있었다. 그들 사이에 어떤 교감(交感) 같은 것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 될 정도였다. 오늘도 야광충은 벤야시리의 보물창고에 있는 모양이었다. 처음에 그 안을 구경했을 때 혈문룡은 뛸 듯이 기뻐했었다. 막대한 양의 은괴(銀塊)가 창고 하나에 높이 쌓여 있었던 것 이다. 그러나 기뻐한 것도 잠시였다. 밖으로 나가지 뭇하는데 은괴가 무슨 소용인가? 차라리 영약(靈藥)이라든가, 먹으면 한 달쯤 배가 고프지 않 은 그런 벽곡단(壁穀丹)이라든가 하는 것이 들어 있다신 정말 보탬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다음 두 개의 창고를 가 보고 산산이 깨 어졌다. 하나는 병장기가 가득 들어 있는 무기창고였고, 다른 하나는 곡식창고이기는 했지만 불행히도 다 썩어 버렸다. 고란고성이 사지(死地)로 변한 지 삼 년이 되었으니 그 동안 관리를 않았다면 썩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과일도 건포(乾脯)도 모두 썩어 버렸다. 창고 안에는 웬만한 고양이보다 큰 쥐떼만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야광충은 바로 거기 있었다. 화영이 물었다. "뭘 하고 있지?" 혈문룡은 그 안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화영만큼이 나 궁금했지만 물어 보지는 않았다. 어지간하면 야광충과는 대화를 딴기로 마음을 먹고 있던 참이 었다. 물어서 제대로 대답을 해 주는 일이 거의 없는 것이다. 창고 안 어두운 곳에서 감정이라곤 전혀 담기지 않은 목소리 로 야광충이 대답뻤다. "나갈 곳이 있나 하고……," 혈문룡은 귀가 번쩍 뜨였다. 그는 화영을 제치고 앞으로 나가 물었다. "찾았어?" 야광층이 짧게 대답했다. "아니." 혈문룡은 그 다음 말을 기타렸지만 야광충은 더 말하지 않았다. 혈문룡은 물었다. "그게 단가?" "그게 다야." 야광충이 그를 스쳐서 창고 밖으로 나갔다 "그럼 언제까지나 안 나가고 여기에서 살겠다는 건가?" 야광충이 갑자기 돌아섰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유리구슬같이 투명한 눈이 혈문룡의 가슴 에 깊이 파고들고 있었다. 저 눈을 볼 때마다 괜히 위축되곤 하는 것이다. 대막 흑룡사의 대두목이……! 일개 개인에게 위압감을 느낀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고 있었다. 야광충은 다시 돌아서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못 찾았다고 했지, 여기서 살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 화영이 야광충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뭔가 먹어야 할 텐데?" 야광충이 우뚝 섰다. "먹을 게 없진 않지." 그는 창고를 가리키고 있었다. 혈문룡은 눈살을 찌푸렸다. "창고 안에 식량이 남아 있었나?" "물론." "언제부터 알고 있었지?" "처음 들어섰을 때부터." 혈문룡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설마설마 했는데 결국 이런 인물일 줄은 몰랐다. 먹올 게 분 명히 있는데도 혼자만이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런데 같이 분노해야 할 화영은 오히려 미소를 짓고 있었다. "평소에 안 먹는 것이지만 어쩔 수 없군, 먹어야 나갈 수도 있을 테니 말이야." "무슨 소리들을 하는 거야?" 혈문룡의 의문은 금방 풀렸다. 창고 안으로 다시 들어간 야광충이 순식간에 고양이만큼 큰 쥐 다섯 마리를 잡아 들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혈문룡의 안색이 누렇게 변했다. "그걸 먹겠단 말이야?" 야광충이 차갑게 대답했다. "죽기 싫으면." 혈문룡이 중일거렸다. "대막 최고의 도적단 흑룡사의 대두목이 쥐새끼나 먹으면저 목숨을 부지해야 한단 말이야?" "죽기 싫으면." 화영이 야광충의 손에서 한 마리를 받아 들었다. "맛있을까?" 혈문룡이 기가 막힌 둣 그를 바라보았다. "그걸 정말 뻑겠단 말이야?" "어떻게 하면 맛있을까? 요리방법을 한번 생각해 보아야겠군." * * * "이대로 가는 겁니까?" 로부 옹고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대답할 괼요가 없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는다. 아루타이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사부, 로부 옹고트의 성격을……. 그러나 지금의 경우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부는 도대체 저 성안에 있는 무리들을 제거하고 싶기는 한 것일까? 언뜻 떠오른 생각이지만 그것이 점점 더 그럴둣하게 받아들여 지고 있었다. 사부의 이런 일련의 행동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것이다. 지금만 해도 단 천 명의 병력만을 거기에 지키도록 둔다는 것 은 아무리 그들이 확실히 지하통로를 폐쇄했다고 해도 역시 일 말의 불안감은 남는 조치였다. 그는 잡초를 뽑으면 뿌리까지 제거하지, 뭔가를 남겨 두는 성 미가 아닌 것이다. 바로 그의 사부 로부 옹고트에게 배운 방식이었다. 내가 모르는 무엇이 또 있는 것인가? 이런 생각 속에 가마는 좌우의 몽고군들에게 경호를 받으면서 고란고성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 * * "아, 한심하군." 화영이 그렇게 투덜대는 혈문룡을 보고 물었다. "이젠 배도 부를 텐데, 뭐가 그렇게 불만인가? 계속 아무것도 안 먹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혈문룡은 그 아무것도 안 먹고 있는 사람, 석두의 후예를 힐 끔 바라보고 다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저 친구도 이상한 사람이니까 내가 신경쓸 바가 아니지." "저 친구도?" 화영이 끝을 묘하게 올려 되물었다. "누가 또 이상하단 말인가?" "바로 자네! 그리고 저 녀석!" 그가 말하는 저 녀석이란 야광충일 것이다. 화영은 말만 듣고도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할 때 그 목소리 속에 절로 그 사 람에 대한 감정이 표현된다는 것을 보면 무척 재미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목소리만 듣고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혈문룡이 야광충을 지칭할 때도 말의 내용과 별로 관계 없는 그런 감정의 편린(片鱗)들이 그 속에 보이는 것이다. 혈문룡은 문득 누워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연못으로 다가 갔다. 그는 망설임없이 연못 속으로 뛰어들었다. 연못은 짙은 녹청색(錄靑色)이었다. 깊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오랫동안 고여 있어서 그런 것인 지는 들어가 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 물이 있는 덕분에 그들이 며칠이나마 갈증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연못은 꽤나 깊은 모양이었다. 하번 뛰어들어간 혈문룡은 상당한 시간이 홀렀는데도 다시 모 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화영이 중얼거렸다. "지하 수맥(水脈)으로 나갈 길이라도, 있는 것일까?" 대답한 것은 의외로 여태까지 침묵하고 있던 여문량이었다, "소용없는 짓이다. 사막의 지하수맥은 깊은 지하 암반 사이로 흐르는 것이야. 하루이틀 사이에 지상으로 나오지는 않지. 자칫 잘못하면 바다에 이를 때까지 나오지 못하고 흘러갈지도 모른다." 쥐들을 잡아와 같이 요리해 먹은 이후 광장에 잠시 앉아 있었 던 야광충이 한마디 거들었다. "내가 보기엔 그렇게 어리석은 자 같지는 않군." "그렇게 봐 주니 고맙군." 혈문룡이었다. 그는 연못에서 머리만 내놓고 떠서 거친 긴 숨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찾을 물건이 있어서." 그는 끈으로 연결된 철봉 억러 개를 들고 연못 밖으로 걸어나 왔다. 야광충이 그것을 힐끔 보자 그가 설명했다. "여의색자창!" 혈문룡이 그 칠봉의 한 토막을 잡고 허공에서 칠봉들을 돌렸다. 위이잉! 혈문룡의 손에는 어느새 끈으로 연결된 철봉들이 아니라 일 장에 달하는 장창이 들려 있었다. 질이 좋은 강철로 만든 것인지 창대에서 창끝까지가 예리한 팡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특히 창끝은 양쪽으로 창날이 붙어 있는데, 며칠 동안 연못에 잠겨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푸른빛 섬광을 발산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유물(遺物)이지." 그는 갑자기 홍이 난 둣 여의색자창의 중심을 잡고 머리위로 돌리기 시작쌨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창술(槍術)을 펼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그의 몸은 현란하게 움직이는 창 그림자로 가려저 버렸다. 양쪽으로 창날이 달려서인지 보통의 창보다 두 배나 삼엄한 경기가 바늘을 거꾸로 꽂아 놓은 것처럼 폭사되고 있었다. 혈문룡은 그 창 그림자 속에서 한 마리 용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일 장에 달하는 긴 창이 그의 손안에서는 전혀 거추장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그는 여의색자창을 수족(手足)의 연장이기라도 한 것처럼 완 벽하게 다루고 있었다. 쉬쉬쉬쉬……! 광장 안이 무거운 바람소리로 가득 찼다. 얼핏 듣기에도 대단히 무거운 물건이 움직이고 있다는 중압감 (重壓感)이 느껴졌다. 반 각 가량이나 이어지던 혈문룡의 장창무(長槍舞)가 끝나고 창을 비스듬히 옆으로 벌려 예를 표하는 그의 이마에는 땀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여문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은 창법이다. 동작과 가세가 상충(相沖)되지 않아 전 혀 무리가 없다. 엄밀하면서도 호쾌하고 무게가 있으면서도 가 볍게 움직이는 극상(極上)의 창법이야." 화영이 물었다. "그 창법의 이름이 뭐지?" 혈문룡이 여문량의 칭찬을 듣고 상기된 얼굴로 대답했다. "나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지. 이름붙일 수 없는 것도 세상에 는 많이 있다고……. 이 춤에는 이름이 없어." 여문량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말이다." 그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더니 화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진정한 도(道)에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는 말이 있지. 귀한 구경을 하게 해 주었으니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보여 주마." 화영이 검을 들어 여문량에게 내밀었다. 여문량은 오른손에는 자신의 장검을 들고 왼손에는 화영에게 서 받은 청풍검을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예전에 장주(蔣周)가 꿈에 나비가 되었었는데, 훨훨 나는 것 이 분명 나비였으며, 스스로 뜻에 맞아 자기가 장주인 줄 알 수 가 없었다." 여문량은 마치 시를 읊듯 혹은 노래를 부르듯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깨어 보니 분명히 장주였다. 그렇다면 장주 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된 것인 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것을 호접몽(蝴蝶夢)이라고 한다." 그는 장내를 잠깐 둘러보며 검을 천천히 위로 들어올렸댜. "나는 장자남화경(蔣子南華經)을 읽다가 이 대목에서 문득 깨 달아 '호접몽(蝴蝶夢)'이라는 춤을 만들었다. 어디 한번 구경해 보려무나." 여문량이 천천히 양손에 든 검으로 쌍검(雙劍)을 삼아 검무 (劍舞)를 추었다. 왼발이 오른발 앞으로 둥글게 내디뎌지며, 쌍검은 오른쪽 위 로 둥글게 올라가서 좌측 아래로 둥글게 내려 반쫌 겹쳐진 두 개의 큰 원을 그렸다. 단전(丹田)어림에서 쌍검은 벌려져 머리위로 올라가고, 우검 (右劍)은 우측방에, 좌검(左劍)은 정면에 작은 원을 그리는 동 안 오른발이 왼발 효으로 힘있게 내디뎌졌다. 좌측 옆구리에 모인 쌍검이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만 날 듯 스쳐가며 좌측방을 향해 아래위로 찔러지고, 왼발을 크게 내디뎌 허리로부터 쌍검에 힘을 보탠다. 여문량의 춤은 지루하고 느리게 시작되어 나중에는 사람은 없고 쌍검이 만드는 큰 원, 작은 원들만이 보일 정도로 빨라졌다. 쌍검은 면면부절(綿綿不絶) 끊이지 않고 원을 그리고, 원과 원은 서로 독립해 있으면서도 서로 고리처럼 이어져 사방이 원 으로 가득 차는 듯했다. 광장 중심으로 초록색 달이 떠을랐다. 달 안에서 나비들이 한마리 한마리 춤추듯 나오더니 초록색 달을 중심으로 춤을 추며 돌았다. 흐트러지는 듯 모이고, 제멋대로 나는 둣하면서도 큰 줄기가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검은 표범 아묘가 한발 두발 허공에 노 니는 나비를 향해 다가갔다. 야광충과 화영, 그러고 혈문룡과 석두의 후예도 멍하니 따라 일어섰다. 광장 안에서 호접몽을 보는 모두가 마치 넋을 잃은 사람처럼 다가가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화--악--! 달이 터져 나가며 사방으로 빛을 발하고, 춤추던 나비들이 그 빛을 따라 폭사되었다. 그리고 다시 광장은 제오습을 찾았다. 여문량은 쌍점을 들고 연못가에 서 있었다. 야광충과 화영, 그리고 혈문룡과 석두의 후예까지, 심지어는 아묘까지 그로부터 십여 장 떨어진 풀밭에 나가떨어져 뒹굴고 있었다. "호접몽은 일종의 환상(幻想)이다. 억타의 환상과 다른 점은 호접몽 안에서는 환상과 현실의 구별(區別), 즉 물아(物我)의 구별이 없고 허실(虛實)의 분별(分別)이 없다는 것이다. 마음먹 은 대로 현실이 환상이 되고, 환상이 현실이 된다. 내가 마지막 에 모두 환상으로 만들지 않았으면 너희들은 적지 않은 손해를 입었을 것이다." 여문량이 일동을 둘러보며 설명했다. "환상이라면 보지 못하는 화영과 짐승인 아묘까지 끌어들일 수 없지 않은가요?" 야광충이 물었다. "현실은 보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눈에 보이는 세 상이 전부는 아니지.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이 사실은 세상의 실 체인 것이다. 그것을 이름붙여 '기(氣)' 라고 하지만 사실은 기 이전의 어떤 것이다." 여문량은 화영을 보고 물었다. "영아는 아마 느낄 수 있으리라." 화영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호접몽을 이루는 기반이 그 힘을 다루는 것이다. 물(物)과 나[我] 조차도 구별이 없는데 하물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구별이 있으랴?" 그는 청풍검을 화영에게 돌려주고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광장 안은 침묵만이 감돌았다. 야광충의 얼굴이 홍조를 띠었다. 방금 본 또 하나의 경지, 신묘한 검도의 세계에 절로 흥분된 것이다. 한참 후에 여문량이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내 평생 탐구한 것이 검이었다. 도(道)에 이르려면 아직 멀 고도 멀었지만 심(心)과 환(幻)의 두 구결(口訣)은 체득했다 하 겠다." 그는 화영을, 그리고 야광충과 혈문룡 등을 바라보았다. "이제 영아에겐 심검(心劍)을, 너희들에게는 환검(幻劍)을 전 수했으니 이후의 성취는 너회에게 달려 있거니와……." 그렇다면 방금의 그 검무가 소위 환검을 전수한 것이었던가? 여문량의 말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는 다시 눈을 감고 사색 에 잠겨 들었다. 혈문룡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호접몽을 본 지 또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시간 내내 생각해 보고 또다시 생각해 보았지만, 단지 한번 본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무공을 전수할 때 수수께끼 문제를 내둣이 하는 사람이 있다 는 것을 듣기는 했지만 그런 빌어먹을 경우를 자신이 당할 줄은 몰랐다. 그야말로 알려면 알고 말려면 마라는 식의 태도 아닌가! 그는 골똘히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뒤로 벌렁 누워 버렸다. "그나 저나 억기에서는 언제나 나가는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혈문룡은 사실 더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갈 수는 있을까……?' 암담한 기분이었다. 아까부터 그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벽에 기대서 있던 야광충이 벽에서 등을 몌며 그에게 대답했다. "지금!" 혈문룡은 자신이 방금 무슨 말을 들었는가 의아해 챘다. "뭐?" "지금 나간다!" 혈문룡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지금 나가자고 했나?" 야광층은 더 이상 그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석두의 후예를 바라보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뭔가 중 얼거렸다. 내내 광장 구석에 흘로 앉아 있던 석두의 후예가 천천히 일어 섰다. 야광충은 혈문룡들을 바라보며 손짓했다. "저 옆으로 피해 있어." 혈문룡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유도 설명 않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고까웠던 것이다. "이유나……?" 화영이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혈문룡은 더 이상 투덜거리지 못하고 화영을 따라 야광충이 가리킨 곳으로 걸어갔다. 야광충은 한쪽에 그대로 앉아 있는 여문량을 바라보았다. "여노인도 준비하시오!" 여문량이 감았던 눈을 떴다. "너희들이나 나가거라!" 야광충의 눈이 가늘어졌다. "여기 남겠다는 뜻이오?" 여문량은 대답도 않고, 눈도 다시 감아 버렸다. 그리고 더 이 상 뜨지 않았다. 야광충도 더 이상 그에게 권하지 않았다. 그의 기색에서 완강한 거부의 뜻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혈문룡이 화영을 살짝 건드렸다. "이대로 두고 갈 건가? 네 사부인데?" 화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부님의 뜻대로!" 혈문룡은 입을 벌렸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 지 않았다. 그는 정말 이들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런 상황에 서 말해 봐야 그만 바보가 될 뿐이었다. 그는 그냥 화영을 따라 석벽에 기대어 섰다. 취리릿--! 야광충의 손에서 인명권이 번뜩였다. 우우웅! 견흔승망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며칠 전, 야광충과 싸웠을 때처럼 인명권 소리에 홍분하고 있 는 것이다. 야광충은 인명권을 머리위로 원을 그리며 돌렸다. 취리리리릿--! 인명권이 맹렬한 소음을 토해 내었다. 부우우웅--! 견혼승망들이 벌떼처럼 날아을랐다. 붉은 구름처럼, 한 줄기 회오리바람처럼 날아올라 야광충의 머리위로 모여들었다. 그것들은 인명권이 허공에 그리는 바로 그 원을 따라 날고 있 었다. 분명 인명권이 내는 소리에는 그것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되었지만 엽장청과 귀조가 사형제 관계라 는 것을 생각해 보면 여기에는 무슨 인과관계가 있을 법도 했다. 이제는 둘 다 죽었으니 물어 볼 곳도 없었지만……, 우연의 일 치든 아니든 대단히 편하게 되었다고 야광충은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이것이 아니라면 좀더 머리를 썩혔어야 했을 테니 말이다. 그는 석두의 후예를 향해 말했다. "누작쌈비!" 서장어였다. 그의 사부 예충은 식견이 비범한 인물이었다. 그가 아는 많은 것들 중에는 서장어도 있었고, 야광충은 그것 올 배웠다. 서장어에서 '주먹으로 뭔가를 때리다.' , 말하자면 '쳐라!' 는 뜻의 말은 '누자람비'였다. 그리고 '누작쌈비'는 '주먹으로 난타(亂打)하라.' 는 뜻의 말 이었다. 야광충은 석두의 후예에게 '마구 때리라.'는 식의 말을 한 것 이다. 파파파파팡--! 석두의 후예는 야광충의 말을 충실히 들었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더니 연속으로 수십 권을 연달아 쏘아 내었다. 그의 주먹에서 쏟아진 경기(勁氣)는 오 장 밖에 있는 석벽에 집중되었다. 콰콰콰쾅--! 지하광장이 들썩거렸다. 돌가루가 우수수 떨어지고, 연못의 물이 출렁거렸다. 혈문룡은 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의 입이 자기도 모르게 벌어졌다. "무슨 짓들을 하는 거야? 죽고 싶으냐?" 석두의 후예가 부수고 있는 식벽은 놀랍게도 견혼승망들의 집 이 있는 곳이었다. 벌집을 건드리면 벌들이 죽을 때까지 쫓아온다. 견혼승망이라고 자기들 집을 부수는데 좋아할 리가 없었다. 더구나 놈들은 벌보다도 몇 백, 몇 천 배나 지독한 놈들 아닌 가? 과연 견혼승망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우우웅……. 방금까지 인명권의 궤적을 따라 원을 그리며 돌아가던 붉은 빛무리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제 저 빛무리가 산산이 부서져 흩어지면 광장 안에 있는 모 든 사람들은 삶을 보장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취--키리리릭! 순간, 인명권이 방금까지보다 몇 배로 강한 소리를 토해 내었다. 야광충이 몇 배의 속력으로 인명권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견혼승망들이 주춤 멈,추더니 인명권으로 향했다. 인명권의 소리가 내뿜는 유혹이 집이 부서진 분노보다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석두의 후예가 야광충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천으로 둘러싸여진 머리가 야광충을 향하고 그의 손이 멈준 것이다. 둔해 보이는 그였지만 견흔승망만은 꺼리고 있는 둣했다. 야광충이 다시 서장어로 외쳤다. 석두의 후예가 고개를 끄덕이고 가슴앞으로 두 손을 모았다. 한참 동안을 꼼짝 않고 그렇게 서 있는 석두의 후예를 보며 혈문룡은 그가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지 의아했다. 그 의문은 곧 풀렸다. 석두의 후예가 딛고 선 석실 바닥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분명 아무 곳에도 충격이 가해지지 않았는데 그의 발아래만 물결이 일 둣 진동하고 있었다. 석두의 후예를 두껍게 감싸고 있는 겹겹의 옷 위로 금빛이 새 어 나왔다. 이내 그의 몸은 금빛으로 둘러싸였다. 석두의 후예는 가슴앞에 모았던 두 손을 천천히 앞으로 뻗었다. 고오오오……. 석실 안의 공기가 무건게 내려앉다가 한 순간, 한 방향으로 쏟아 나갔다. 석두의 후예에게서 비롯된 금빛이 석벽의 한 지점에 모였다. 콰콰콰콰……. 엄청난 소리가 났다. 엄청난 진동이 석벽의 한 지점에서 시작해서 광장 전체로 퍼 나갔다. 쿠쿠쿠콰콰콰콰……. 광장은 지진을 만난 것처럼 떨리고 있었다. 혈문룡과 화영이 귀를 막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단순히 큰 소리가 아니라 광장 안의 공기 자체를 압축시켰다 가 터뜨리면서 나는 소리였기 때문에 내공으로 단련된 그들조차 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떨림이 멎고 팡장을 뒤흔들던 공기의 여파(餘波)가 사그라 들 었을 때 혈문룡과 화영의 귀에 야광충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해 졌다. "빨리!" 혈문룡은 석두의 후예가 가격했던 식벽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거기에 큰 틈이 벌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틈 뒤에는 어두운 구멍이었다. 화영이 그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렇다! 지금 어찌된 일인지 영문을 따지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극도로 홍분한 견혼승망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력으로 석벽의 틈에 뛰 어들었다. 야광충의 의미를 알 수 없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석두의 후예가 그들의 뒤를 쫓아 구멍으로 뛰어들었다. 혈문룡이 물었다. "야광충은?" 야광층은 흔신의 힘을 다해 인명권을 휘두르고 있었다. 인명권에서 연속적으로 폭음(暴音)에 가까운 소음이 터져 나 왔지만 극도로 홍분한 견혼승망들을 일순간에 다스리기에는 부 족했다. 그러나 달리 어쩔 도리가 엎엇다. 지금 이 방법만이 견혼승망들을 달랠 유일한 방법이었다. 견혼승망들이 서식하는 그 석벽에 모종의 통로가 있을 것이라 는 것은 여기에 갇히게 된 그날 바로 짐작한 사실이었다. 견혼승망 같은 벌레들은 단 하루도 굶고 있지를 못한다. 사람은 굶주림을 참을 수 있지만 야수는 참지 못하고, 벌레들 은 더욱 그랬다. 만약 그것들이 굶주렸다면 제일 먼저 공격할 대상은 그들이었 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모든 통로가 폐쇄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견혼승 망들은 그들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그것들은 굶주리고 있지 않 았던 것이다. 그는 며칠을 두고 견혼승망들을 관찰했다. 광장에 이미 나 있는 통로로는 단 한 마리도 나가지 않았다. 그것들은 하루종일 석벽에 앉아 있거나 혹은 그 주변을 붕붕 거리며 돌아다닐 뿐이었다. 그러나 곧 그것이 모든 견혼승망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나치게 많았기 때문에 그 중의 반 이상이 어딘가로 움직이 고 있어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이었을 뿐이다. 분명 견혼승망들은 어딘가로 나가고 있었고, 무엇인가를 먹이 로 삼고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대답은 하나였다. 그들이 앉아 있는 그곳에 통로가 있는 것이다. 그 다음은 모험이었다. 통로가 있다고 해도 과연 사람이 다닐 정도의 통로가 확보되 어 있을 것인가? 혹시 견흔승망들만이 나갈 수 있는 좁은 통로가 아닐까? 그렇게 고심하는 중에 며칠이 다시 흘렀다. 결국 그는 결정했다. 이대로 있어도 어차피 죽는다. 그럴 바에야 단 한오라기라도 살아날 가능성이 있는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가 일행의 뒤를 따라 바로 나갈 수 없다는 것도 명백했다. 그마저 일행의 뒤를 따라서 통로로 진입하면 견혼승망들의 추 적을 막을 길은 전무해지는 것이다.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 하나는 먼저 간 일행들이 제대로 된 통 로를 찾아서 알려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위험한 벌레들을 잡고 있어 야 했다. 아직도 견혼승망들은 흥분해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야광충은 인명권으로 더 큰 소리를 낼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 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야광충이 갑자기 인명권을 석벽을 향해 던졌다. 키리리릭 ! 빛살처럼 빠르게 인명권이 날아가며 과연 그냥 돌릴 때보다 강한 소음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인명권은 금강석이 박힌 부분이 회전함으로써 소 리가 나는 것이지, 멈춰진 상태에서 허공으로 돌려서 소리가 크 게 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인명권이 석벽에 부딪쳐 튀어나왔다. 야광충은 손을 저어서 그 인명권을 다시 반대펀 석벽으로 던 져 보냈다. 그리고 다시 반대편, 또다시 반대편이었다. 끼이이이익! 광장 안이 인명권의 소리로 가득 찼다. 효과가 있었다. 견흔승망들은 석벽에 난 틈으로, 부서진 자기들의 집으로 돌 아가지 않고 광장 안으로 모여들었다. 야광충은 다시 인명권으로 허공에 원을 그렸다. 견흔숭망들이 그 원을 따라 다시 춤을 추었다. 일단은 진정시킨 것이다. 혈문룡은 기가 막혔다. 기껏 광장을 빠져 나왔더니 다시 막힌 석실이었다. 앞에는 갈라진 동굴 같은 것이 아직까지 나 있기는 햇지만 사 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것은 아니었다. 한 자 가까운 틈이 석벽에 길게 나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몸을 옆으로 돌리면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안으로 들어 갈수록 점점 더 좁아지는 것이 명백했다. 이렇게 들어가다가 중간에 끼이기라도 하면 오도가도 못할 것 이 아닌가? "어떡하지?" 화영은 고개를 저었다. "글쎄?" 혈문룡은 성질을 냈다. "대책도 없이 이렇게 뛰어들어오면 어떡해!" 화영이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혈문룡의 성질을 더욱 돋우웠다. 미소를 지을 때도 따로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아무데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미소를 지어서야 누가 제 대로 된 사람이라 보겠는가 말이다. 화영이 말했다. "나는 야광층이 말하는 대로 한 것뿐이야." 혈문룡이 손을 저었다. 알고도 남았다. 이 녀석은 야광충이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개념 없이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대책을 물어 본 자신이 잘못이었다. 그는 뒤로 돌아섰다. 화영이 그를 잡았다. "어디로 가나?" 혈문룡이 소리를 빽 질렀다. "돌아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 보아야 할 것 아냐?" 혈문룡은 지금까지 나왔던 십여 장 길이의 동굴을 되돌아 걸 었다. 다행히 견혼승망들은 그들을 쫓지 않고 있었다. 그는 석벽의 틈으로 조심스럽게 머리를 내밀었다. 아까와 마찬가 풍경이였다. 야광충은 인명권이라는 그 장난감 같은 물건을 계속 돌리고 있고, 견혼승망들은 여전히 공중에서 줌만 주고 있다. 그리고 그 한쪽 끝에서는 여문량이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 들과 자신과는 관계없다는 듯 초연히 앉아 있는 것이다. 광장 구석에 검은 표범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별로 신경도 쓰 이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앞이 막혔어!" 야광충이 이런 상황에서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담담한 말투 로 그에게 되물었다. "완전히?" "한 자 가량 틈이 있는데 갈수록 점점 좁아지고 있어!" "뚫고 나가!" 야광충의 대답은 간단했다. 혈문룡은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창백하던 야광충의 얼굴이 홍조를 띠고 이마에 땀 방울이 비치는 것이 보였다. 말은 담담하게 하지만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였다. 혈문룡은 입을 다물고 돌아섰다. 더 이상 그에게 할말이 없었다. 야광충도 그가 할 수 있는 최선(最善)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도 그래야 했다. 돌아온 그에게 화영이 물었다. "뭐라고 해?" 혈문룡이 반룡도를 뽑아 들었다. "뚫고 나가래." 그러나 혈문룡은 반룡도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한쪽에 멀거니 서 있던 석두의 후예가 그의 어깨를 잡아 뒤로 밀치고 앞으로 나섰다. 그는 손을 감싼 헝겊을 풀어헤치고 맨손을 드러내더니 맹렬히 벽 틈을 파고 나가기 시작했다. 그 손끝에서 금빛이 번쩍이는 것을 혈문룡은 놓치지 않았다. '특수한 내공을 운기하는 것인가?' 특수한 내공이든 아니든 석두의 후예가 벽을 파들어가는 속도 놀라웠다. 벽을 잡으면 벽이 부스러져 나가고, 돌을 잡으면 돌이 떨어졌 다. 흙은 말할 것도 없었다. 석두의 후예는 순식간에 일 장여를 파들어갔다. 허리를 잔뜩 굽히고 두 손 두 발로 기어야 나갈 수 있을 정도 로 옹색한 굴이었지만 순식간에 그 정도를 파 나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화영은 어느새 허리를 구부리고 석두의 후예가 파 놓은 돌과 벽조각을 긁어 내고 있었다. 헐문룡이 멍하니 서 있던 자신을 탓하며 그 일에 동참했다. 야광충은 차츰 지쳐 가고 있었다. 아무리 강철 같은 체력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벌써 몇 시진 째 견혼승망들을 잡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인명권을 사용하는 것은 언뜻 쉬워 보여도 여간한 집 중력과 기술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대충 돌리기나 하다가는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계속하다가는 곧 그의 체력도 바닥이 날 것이고, 그때 는 견혼승망들이 화영들의 뒤를 쫓아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된다. 그 자신이 제일 먼저 죽으리라는 것도 명백한 일이었다. 그때 한쪽에 앉아 있던 여문량이 눈을 떠 그를 바라보았다. "도구는 도구에 따라 쓰는 법이 다른 법이다." 야광충은 언뜻 그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과 그것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내가 인명권을 잘못 쓰고 있다는 것인가?' 여문량이 다시 말했다.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법을 아느냐?" 야광충은 대답하지 않았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뇌까리고 있지 않은가! 여문량은 그러나 그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옛적에 남곽자기(南郭子祁)가 계란을 던져 바위를 깨고자 했 다. 하나를 던졌더니 계란이 깨어졌다. 그러나 두번째 던졌을 때는 계란도 바위도 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 세번째 던졌을 때 는 계란은 멀쩡했는데 바위가 박살났다. 도구를 쓰는 법이 이와 같다." 여문량의 말은 시작할 때처럼 조용히 끝났다. 그러나 야광충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바늘로 찌르는 둣한 긴장과, 온몸이 아파올 정도로 육박하는 피곤함 속에서 그의 정신은 오히려 맑아지고 있었다. 여문량의 말은 거울에 비치둣이 뇌리에 새겨졌다. 그러나 그 의미는 하나도 이해되지가 않았다. '왜 이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하는가? 어떻게 계란으로 바위를 깼단 말인가?' 머릿속에서는 그런 의문들만이 소용돌이쳤다. 여문량은 그가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자 나지막히 한숨을 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힘에 거역하려 하지 말고, 흐름에 순응하라. 기(器)에 종속 되지 말고, 네가 기를 억지로 움직이려고도 하지 마라. 모든 사 물에는 각자의 길이 있으니 그 길과 네 자신을 맞추어 가라. 문득 야광충은 그 말이 자기가 알고 있는 어떤 것과 동일한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뭐와 같더라?' 생각이 났다. 바로 그것이었다. 귀조가 억지로 갖다 맡긴 그 책, 전륜나의 이론을 설명해 놓 은 그 책에서 나온 글귀와 정확하게 같지는 않았지만, 동일한 이치를 말하고 있었다. 힘에 거역하려 하지 말고 흐름에 순응하라는 것은 전륜나의 제일 원칙이었다. '그것이 지금 이 상황에도 적용된단 말인가?' 이 상황의 어떤 것과 그것이 맞아들어가는지 야광충은 생각했다. '모든 사물에는 각자의 길이 있느니……!' 야광충은 깨달았다. 여문량은 지금 그가 인명권을 억지로 다루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인명권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깨우쳐 주고 있는 것이다. 인명권 자체의 흐름, 그리고 그 길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지 않음을 꼬집은 말이었다. 야광충은 자신의 손끝에 매달려 있는 긴 줄과 그 줄 끝에 매 달려 있는 인명권 사이의 흐름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석벽 틈으로 혈문룡이 고개를 내밀고 소리쳤다. "길이 뚫렸어!" 야광충이 그를 향해 역시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먼저 가라!" "너는?" "나는 너보다 열 배는 빠르니까!" "빌어먹을!" 혈문룡은 온통 땀에 젖고 돌에 긁힌 상처투성이였다. 그의 손은 거의 눈 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반면에 야광충은 원래의 창백한 안색과 침착한 태도를 되찾은 것으로 보였다. 분명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시시각각 생명의 위협을 받았던 야광충이 체력소 모 면에서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야광충이 그렇게 태연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을 혈 문룡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석벽의 틈으로 난 동굴을 따라 달렸다. 저만큼에 그들이 만든 새로운 통로가 보였다. 화영과 석두의 후예가 그 옆에 서 있었다. "뒤에 따라온대!" 혈문룡은 통로로 뛰어들었다. 장장 십오 장이나 되는 긴 통로를 세 사람이 손으로만 파 낸 것이다. 물론 원래 틈이 있었고, 십오 장 밖에는 다행히도 또 다른 통 로가 가로지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할 수 있 었다. 그리고 그 통로의 끝이 성벽 바로 밖으로 통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또 하나의 행운이었다. 그들이 만든 통로를 가로지른 원래의 통로는 오랜 옛날부터 있었던 것 같았다. 아마도 먼 옛날에 이 성에 살던 왕족들이 성이 함락되었을 때 를 대비해 만들어 놓은 비상 탈출구였을 것이다. 그것이 수백 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생명을 살리게 될 줄이야 누가 짐작했을까? 밖은 어두웠다. 이제 기울었다가 새로 채워지는 달이 성벽 위로 떠 있었다. 그들 세 사람은 성벽 아래 풀밭에 엎드려 몽고군의 움직임을 상펴보았다. "얼마나 남았을까?" 화영이 대답했다. "많이. 그러나 전날보단 횔씬 덜." 혈문룡은 이마를 찡그려 질렸다는 표정을 해 보였다. 도대체 여기 이렇게 누워서 뭘 알아낸단 말인가? 그런데 이 화영이라는 맹인 녀석은 그가 눈으로 보고 알 수 있는 것 이상을 알아내지 않는가? 그러고도 화영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 앞에 있는 것은 백여 명 정도인 것 같은데 그 주변에서 도 사람의 낌새가 느껴지는 걸로 보아 우리가 나가려 한다면 그 보다 많아질지도 모르군. 정확한 것은 직접 보고서 알아내는 수밖에 없겠어" 혈문룡이 풀밭을 기어서 저만치에 서 있는 높은 나무를 향해 다가가며 짧게 말했다. "그 정도 알아낸 것도 대단한 거야." 한참 후에 그는 다시 돌아왔다. 그가 본 바로는 몽고군은 성벽을 완전히 에워싸지는 못하고 있었다. 분명 병력이 대폭 감축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포위망을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적어도 백 명이 모여 있는 몽고군 진영을 뚫어야 했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면 그 인근의 병력들이 모두 오여들지도 몰랐다. "어떻게 하지?" 화영이 태연히 말했다. "그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 "또 야광충이냐?" 혈문룡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도 내심으로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가 머리가 좋은 놈인 것은 분명했다. 화영이 갑자기 일어섰다. "온다!" 쉬익--! 그들의 머리위로 검은 그림자가 날았다. "뛰어!" 야광충의 목소리였다. 혈문룡은 잠시 어리둥절해 있다가 엉덩이에 불이라도 붙은 것 처럼 벌떡 일어나 야광충의 검은 그림자를 쫓아 뛰었다. 귓가로 견흔승망들의 날개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야광충은 견흔승망까지 몰고 나온 것이다. 어쩌면 견흔승망들이 그들의 뒤를 쫓아왔을지도 모른다. 그 어느쪽이든 일단은 피해야 했다. 야광충은 저만치 앞에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가는 방향은 바로 몽고군 진영쪽이었다. '어쩌려고 저러나?' 혈문룡은 야광충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의문은 가슴 속에 묻어 두고 열심히 뛰는 수밖에 없었다. 달리 행동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몽고군 보초가 그들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진영에 대낮같이 불을 밝혀 두고 있는 참이었다. 무장(武裝)을 한 채 자고 있었는지 천막 안에서 군사들이 우 루루 뛰어나와 그들을 막으려 했지만, 그보다는 그들 스스로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처지였다. 야광충의 뒤를 따라온 견혼승망들이 몽고군 진영을 덮친 것이다. 삽시간에 몽고군의 진영은 견혼승망들의 날개 소리와 몽고군 의 비명 소리로 가득 찬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혈문룡이 물었다. "어쩔 셈인가?" 야광충은 모래언덕 위에 서서 멀리 서쪽을 가리켰다. 그가 모종의 임무를 띠고 왔다는 것이 그제서야 기억났다. 그는 돌아갈 곳이 있는 것이다. '화영은?' 화영은 반대편을 가리켰다. 바로 그들이 떠나온 곳, 고란고성이 있는 방향이었다. "사부님을 모셔야 해." "말도 안돼! 거기에는 아직 몽고군이 있잖아!" "우리가 빠져 나간 이상 그들이 언제까지나 거기에 있지는 않 을 거야. 난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가면 돼." 여문량이 왜 거기에 남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 화영도 그 이유를 모를 것이다. 어쨌든 화영이 스승을 버리고 혼자 떠날 수는 없다는 것은 이 해가 갔다 "그럼 너는?" 혈문룡은 질문을 하고서 아차했다. 석두의 후예는 한마디밖에 할 줄 모르는 놈 아닌가? '또 그 말을 할까?' 석두의 후예는 이번에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손을 들어 사구(沙丘) 너머 어딘가를 가리켰다. 혈문룡은 웃었다. "며칠 사이에 제법 눈치가 생겼나 보군!" 모두들 갈 곳이 정해졌다. 그도 자신이 가야 할 곳을 알고 있었다. 백 명이 넘는 수하들을 잃고 돌아갈 면목은 없었지만, 어쨌든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가서 그들의 죽음을 알려야 했다. 그 다음 문제는 그 다음에 생각할 일이었다. 문득 화영이 야광충의 소매를 잡았다. "아묘도 데려가." 아묘! 검은 표범이 어느 사이에 그들의 옆에 와 있었다. 언제 표범이 그들을 따라 나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모두들 견혼승망과 몽고군을 신경쓰느라고 표범에게는 주의를 기울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야광충이 눈에 보이게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이놈을 나더러 맡으라고? 호시탐탐 나를 죽이려는 놈을?" 화영이 표범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곧 알게 될 거야. 네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야광충은 고개를 돌렸다. 혈문룡은 그것이 무안한 얼굴을 가리려는 행동임을 알 수 있 었다. 이 얼음처럼 냉정한 놈의 가슴에도 피는 흐르고 있는 모양이 었다. 그도 그랬다. 우연하게 만나 그야말로 우연히 생사(生死)의 위기를 같이 넘 고 보니 묘한 친밀감이 그들 속에 싹튼 것이다. 흑룡사의 극히 소수의 사람에게만 느껴지던 그런 동질감 이……. 야광충은 서쪽으로 갔다. 그는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검은 표범이 이상하게도 군소리없이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묘하게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혈문룡은 생각했다. "비슷한 놈들끼리라 그런지도 몰라." 검은 표범과 야광충은 소리없이 걷는 것에서부터 그 살기의 정도까지, 따지고 보면 비슷한 점이 많았던 것이다. 석두의 후예도 갔다. 뭔가 말을 했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혈문룡은 화영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아마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이 넓은 대막에서 다시 만나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와 화영은 어차피 가는 길이 달랐다. 한참을 걷다가 혈문룡이 돌아보았을 때 화영은 아직도 사구 위에 서 있었다. 은은히 쏟아지는 달빛 아래에서. |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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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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