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여름, 두 번째 천변에서
기혁
누군가를 떠올리면 이름보다 먼저
빛나는 부위가 있다
바람을 보는 눈이라던가
사시사철 봄볕을 숨겨둔 손
초록의 쓴맛을 소리로 바꿔주는 귀
머리의 명령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발
불협화음의 기억 속에서
만난 적 없는 한 사람이 걸어 나올 때
그런 온전한 모습이
사랑스러울 때
출생의 흔적과 절명의 흔적을 희석한
강물이
당신과 나 사이에 흐른다
같은 감정에 두 번 발을 담그는 것은
반칙이었지만 우리는 비로소
불순물처럼 서로를 바라보고
어깨를 쓰다듬는다
불투명한 여름의 투명한 전언에 대하여
고백의 근거지를 둘러싼 무수한
음모론에 대하여
사랑을 모르면 우주를 짊어질 수 있다
는 당신의 어깨와
무중력의 해이 사이에서
도무지 빠지지 않는 발을 남기고 나왔다
여름의 초록이 검정이 될 때까지
검정의 내부가 한없는 투명의 겹침이 될
때까지
젖음의 모노포니*는 내일에만 들리는
신청곡 같은 것
가능성이라는 말, 이따금 슬픔으로 향
하는 강가에서
당신의 어깨를 만진다
수북하게 쌓인 우주의 먼지를 툭툭 털
어 보는 것이다
*화성이나 대위법적인 요소가 없이
하나의 성부로만 이루어진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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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여름, 두 번째 천변에서 / 기혁
보라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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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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