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2.19 - 주산면
반핵 배메산신, 석산중지하라 !
바람으로 전기 만들세 - 막칠하세
▲ 1년 전 중지된 석산에서 현신한 주산면 배메산(231m) 산신령
이곳에 올해 또 석산개발 허가가 날 모양이나 어림없다. 8개월 동안 반핵투쟁
중 주산면민들은 배메산의 소중함을 알았으니,,,!
이 곳 배메산에서는 한반도에서 최초로 무문토기편의 볍씨자국이 습득되었다.
- 무문토기편의 볍씨자국,삼각형 돌칼등이 발견된(1965.전 영래 박사) 배메산은 서
남해안 일대의 쌀 농사 시원지이며, 그동안 일본에서는 많은 볍씨자국토기가 발견되
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1920년대 김해 조개무지에서 발견된 기원
전 1세기경으로 추정되는 탄화미가 전부였다. 이처럼 고대미(古代米) 자료가 불충분
하자 일본학자들은 벼농사의 일본→한반도 전래설을 공공연이 주장하며 그들의 우월
성을 과시했다. 그러던차에 당시 전영래 전주시립박물관장에 의해 -주산(舟山, 배메
산231m)-에서 1975년 두건이 보고되어 일본학자들의 학설을 일축해버릴 수 있었다.
▲ 배메산(주산면 소산리) 볍씨자국토기편 - 청동기시대
그리고 고인돌, 백자도요지, 백제시대 돌방무덤들이 배메산을 빙 둘러 계속 발견 된다.
▲ `01. 5.1 - 배메산은 중심부 능선으로 보안면과 이웃하며
현재 보안면쪽 배메산은 살점이 뜯기고 있다.
30여기 이상의 돌방무덤들이 주위에 흩어져 있으며 돌방무덤과 석산 사업장과는 100
미터 줄자가 남는 정확히 93.5미터이다.
산림법시행령 제91조의5 (채석허가의 제한)
① 법 제 90조의2제6항제1호의 규정에 의하여 산림안에서 채석허가를 할 수 없는 지
역은 다음 각호와 같다. [개정 2000·5·16, 2001·4·24]
1. 문화재보호법에 의한 문화재보호구역 및 그 보호구역의 경계로부터 200미터 이내
의 구역(보호구역이 지정되지 아니한 문화재의 경우에는 그 문화재로부터 200미터
이내의 지역), 도시공원법에 의한 도시공원구역, 자연공원법에 의한 자연공원구역·
공원보호구역, 사원경내지역
2000. 6
윤 덕향(전북대 박물관장. 호남 고고학 회장) 지표조사 (후 문화재청 지표조사)
,,,,,중략
3)유적의 보존
가. 위 유적들이 입지한 곳은 해발 231m 높이의 주산(배메산)의 주변지역에 해당되
는데 주산에는 토성이 자리하고 있다. 또 주산의 북쪽에 있는 표고 100m 내외의
사산에도 토성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들 토성이 있는 산의 구릉에는 삼한단계의
유적이 있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원광대학교 마한백제 문화연구소
; 1984. <전라북도 문화재지표 조사보고서(부안군편)>)
나.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고인돌, 가마터, 백제 돌방무덤은 보고된 바가 없는 것으
로 판단된다.
다. 주산과 사산에 자리하고 있는 토성은 삼한단계의 유적으로 판단되며 그 주변지
역에는 그와 관련된 유적 및 삼한을 전후한 시기의 유적이 존재하거나 존재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고인돌과 백제 돌방무덤들이 이에 속하
는 유적이다.
라. 따라서 주산(舟山-배메산)과 사산(蓑山-뉘역메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은 부안
의 고대문화를 밝히는데 중요한 곳이며 이 지역에 대한 철저한 지표조사가 이루
어지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유적보존의 방안이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마. 또 이 같은 정밀 지표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재로서는 이들 지역에 대한 개
발에 앞서 사전 지표조사가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바. 보다 근본적으로는 주산(舟山-배메산)과 사산(蓑山-뉘역메산)의 토성 유적을 문
화재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 소산산성(배메산) 유물 ▲ `01.4.14일 배메산 돌방무덤
▲04.02.19 - 배메산에서 본 사산(蓑山-뉘역메산), 황사가 띠를 이루었다.
석산이 멈춘 사산(뉘역메) 토성지
士山里(뉘역메) 土城址
(주산면 사산리 - 蓑山(蓑, 도롱이)
이 성터가 있는 사산은 사산제라는 저수지를 건너 서쪽에 울금바위 산성을 바라보
는 표고 약 100m 높이의 얕은 능선으로 연맥되어 있고, 다시 동북방으로는 낮은 구
릉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서북방은 하서만에 주입되는 하천의 저습지대가 있고, 동
방에도 동진강 상류인 고부천이 바로 산봉우리 아래 1.5km지점까지 접근해 있다. 사
산은 원래 쇄산으로 속칭 「도롱이 뫼」이다.
이는 『삼국사기』에 보이는 두량윤성의 豆良尹 伊와 같은 소리이며, 백제부흥군의
근거지였던 주류는 바로 두량윤의 중국측 기사명이다.
동일 사실을 기술한 『일본서기』「天智紀(天智紀)」에는'주유(州柔)'라고 적혀있
다. 이는 『위지』 마한조에 열거된 ′지반국, 구소국, 처로국, 모로비리국、중 처
로국이 이에 해당된다. 참고적으로 부언한다면, 지반은 지화-기벌-개화, 구소는 고
사, 고사부리, 모로비리는 모량부리의 별사(別寫)가 되므로, 모두 이 일대의 지명들
이다.
이 유적은 서남방으로 세장(細長)한 정상을 평탄하게 다듬고 臺下 약 4∼5m의 산복
에 위곽을 두른 것인데, 지형에 따라 서남방향의 타원형을 이루고, 장축 100m, 최
대 동서 폭55m, 면적 약 0.45ha에 이른다. 이 곳이 다른 성곽과 다른 점은 토단에
그치지 않고 내부의 흙을 외변에 성토하여 토루를 형성하고, 북변은 동서로 절토하
여 역시 성토하고 있다.
토루의 외호유무는 분명치 않다. 위곽에는 토루 외변에 성책을 세웠던 것으로 보이
며, 토루내변에는 약 60m 폭의 회랑도가 있다. 동변은 급준하여 석루의 흔적이 있
고, 서면 중앙에는 폭 4.2m의 문지가 남아 있다. 이러한 형태로 미루어 보아도 이
토성은 서방의 주류성으로 추정되는 울금바위산성의 동방전초기지의 역할을 하였을
것이나, 본래는 이곳이 마한시대부터 유지로 보인다.
▲ 사산산성(뉘역메산) 유물 ▲ 훼손된 고려청자 도요지 - 사산(뉘역메산)
바람으로 전기 만들세 - 막칠하세(주산면 돈계마을)
▲ 주산면 돈계리 돈계마을
- 돈계마을은 20만 평의 오리,우렁이 농법과 태양열과 지열로
에너지 전환하는 환경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