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파. 1907~08년경 피카소와 브라크에 의하여 창시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예술운동의 하나.
유럽회화를 르네상스 이래의 사실주의적 전통에서 해방시킨 회화혁명으로 지칭되고 있음.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1906~07)이 그 최초의 작품이다.
2. 두 번째 연인- 에바 구엘(Eva Gouel)
피카소는 9년에 걸친 페르낭드와 동거를 끝내고
친구 마르쿠스의 연인 에바와 사랑에 빠진다.
피카소가 깊이 사랑했던 에바는 몸이 약했고
그녀는 1차 세계대전 이듬해인 1915년 12월 14일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죽는다.
3. 세 번째 연인- 올가 코클로바(Olga Kokhlova)
피카소가 36세, 퍼레이드 공연 때 만난 러시아 장교의 딸인 발레리나 올가와 처음으로 결혼한다.
올가는 자유분방하고 편안한 것을 즐겼던 피카소와는 달리
세련되고 상류사회 생활을 즐겨 피카소를 피곤케 한다.
그녀는 피카소의 첫 아들 파울로를 낳았으나 피카소에게 늘 불안하며
그에게 집착하고 피카소는 그것에 염증을 느껴 결혼 4년 만에 부부관계는 멀어진다.
4. 네 번째 연인- 마리 테레즈 발터(Marie Therese Walter)
1927년, 피카소가 45세 되던 해에 관능미 넘친 17살 금발의 소녀 마리를
6개월 동안 ?아 다닌 끝에 걸작 ‘거울 앞에 선 처녀’의 모델로 세운다.
그녀는 22살 때 피카소의 두 번째 아이 딸 마리야를 낳는다.
피카소에게 가장 창조적인 영감을 준 여성이나 세련되지 못하고 무식하다고 그녀를 버린다.
그러나 그녀는 피카소가 죽었을 때 저승에서도 보살펴야한다며 자살을 택한다.
5. 다섯 번째 연인- 도라 마르(Dora Maar)
1936년, 피카소 나이 54세에 29살의 사진작가 도라 마르를 만나게 된다.
피카소의 모국어인 스페인어로 예술을 논할 정도로 지적인 여인으로
피카소의 ‘게르니카’ 시대를 함께하며, 이 작품의 제작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2차 대전의 시기를 함께 한 도라는 피카소 작품에서
‘우는 여인’으로 등장하고 피카소와의 이별로 정신착란증을 일으켜
정신병원에 입원한 불행한 여인이다.
6. 여섯 번째 연인- 프랑스와즈 질로(Fran?oise Gilot)
2차 세계대전 중에 20살의 젊고 아름다운 여류화가 프랑스와즈를 만나,
1945년 피카소가 63세 때부터 함께 살며 아들 클로드와 딸 팔로마를 낳는다.
피카소의 그림 속에서 그녀는 빛나는 태양이나 꽃으로 표현된다.
완벽주의자였던 프랑스와즈는 피카소의 외도를 용서하지 않고
그를 떠나 재혼을 한 유일한 여성이고,
자신이 낳은 아들과 딸을 피카소의 호적에 올려 어마어마한 상속을 받게 한다.
7. 일곱 번째 연인- 자클린 로크(Jacqueline Roque)
1953년, 피카소가 72세 되던 해 피카소가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내조를 해준 마지막 여인이다.
자클린은 딸이 있는 이혼녀로 8년간 동거한 뒤 1961년 34살의 나이에
80세의 피카소와 결혼하고, 피카소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함께 한다.
피카소를 사랑하고 존경했던 자클린은 요리를 잘하는 헌신적인 여인으로
피카소보다 13년을 더 살았으며, 피카소의 복잡한 재산 문제들을 처리한다.
1973년 92세로 피카소가 세상을 떠난 후
그와 함께 했던 수많은 여인들과 후손들은 한결같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피카소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리 테레즈는 목을 매달았으며,
자클린은 1986년 10월 15일 피카소의 105번째 생일을 앞두고
피카소의 무덤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올가와 피카소 사이에 난 아들 파울로는 약물 중독으로 죽었고,
피카소의 손자 파블리토는 피카소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왔다가 약을 먹고 자살했다
피카소에게 여인이란 어떤 존재였을까?
여성과의 만남이 예술의 근원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