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성희롱 사건을 취재보도한 자료입니다.
(아래 링크합니다)
. . .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저도 동양미학을 공부하고 미술을 전공하고 있지만 변호사의 말에 전혀 수긍이 가질 않습니다. 모든 교수가 그렇게 가르치지 않으며 또 그런 것을 교권이라고 주장하며 남용하지도 않습니다. 스스로 절제되고 품위있는 행동을 하려고 합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기에 이 문제는 개인의 명예회복보다 진정한 반성과 책임이 우선해야 합니다. 교수의 품격있는 언행을 우리 학생들이 보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문득 '염치'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염치(廉恥)...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이 없다면 차마 하지못할 일이 없겠지요. 이것이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불인지심(不忍之心)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 그것은 남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에게도 해당됩니다. 맹자께서 강조하신 마음입니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반성하면 병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내성불구(內省不疚)
제주에 유배중이던 추사 김정희가 아들에게 편지를 쓰고, 또 난(蘭) 그림에 화제를 써서 상기시킨 말이 생각납니다. "난을 치는 것, 즉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자신을 속임이 없는 데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무자기(無自欺) = 毋自欺 스스로 속임이 없어야 한다!
추사 또한 세상의 부귀영화를 탐하려는 자식에게 가장 먼저 부끄럼이 없어야 함을 가르친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네가 알고...
또 [대학]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열 눈이 바라보고, 열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으니, 엄하도다!"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모든 사람이 조용히 바라보고 손가락질 하고 있으니 행동뿐만 아니라 남몰래 혼자 먹는 마음조차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독(愼獨)을 강조합니다. 홀로 있음을 삼가라는 말은 남몰래 혼자 딴 마음 먹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입니다.
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표현은 자유지만,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는 것이겠지요. 옛말은 틀림이 없으니, 모두 스스로 돌이켜봐야 할 일입니다.
오늘은 [염치]와 [무자기]와 [신독]과 [심목소시 십수소지]로 나 자신을 돌아보며 작품을 해야겠습니다.
동양미학의 핵심은 여백(餘白)입니다. 여백이란 표현하고 싶은대로 다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고 절제하여 그냥 남겨두는 것입니다. 말로 다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동양미학의 개념으로 표현하자면, 언불진의(言不盡意)
그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지 않는 것입니다. 환언하면, 표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절제입니다. 절제는 깊이를 낳습니다. 그 깊이를 현묘(玄妙)라고 하지요.
오늘, 동양미학을 공부한 제 귀에 김씨 변호사의 말이 궤변처럼 들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내가 보기에 본 성희롱 사건의 본질은 말하지 않아어야 할 말을 애써 말한 것입니다. 이를 알고도 말했다면 사족(蛇足)에 불과하고, 모르고 말했다면 미학을 운운해서는 안 됩니다.
김씨의 그림에는 여백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여백이 과연 불필요한 것이었는가 묻고 싶습니다. 그림뿐만 아니라 언행에도 여백이 있었으면 합니다.
동양미학과 미술에서는 그 소작(所作)과 그 사람의 됨됨이가 일치하는 것을 최고로 칩니다. 작품과 인품 품격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명구가 탄생합니다. 서여기인(書如其人) 화여기인(畵如其人) 글씨는 그 사람과 같고, 그림은 그 사람과 같다.
그래서 나처럼 동양미학을 공부하고 전통을 공부하며 전통예술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욕먹지 않도록 줄곧 내성(內省)을 실천했으면 합니다. 나의 명예가 중요하다면 남의 인권과 명예도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하게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새삼 경전의 구절을 떠올리며 나에게 외쳐봅니다. 過則勿憚改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
知止 머물 자리를 알라!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