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고속도로는 무엇
일까? 바로 경부고속도로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50km가 넘는 거리..
지금 만들고 있는 경부고속전철이 단군이래 가장 큰 토목공사라고는 하
지만 가장 영향력이 컸고 가장 파급효과가 큰것은 아마 경부고속도로일
것이다. 과연 경부고속도로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박정희가 고속도로를 처음 본것은 알려진것과는 달리 1954년 미국 포병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때였다. 그리고 알려진것 처럼 독일의 아우토반
을 본것은 1964년 서독을 공식방문했을때 였다.
당시 한나라의 최고의 국가원수가 외국에 방문할때 국내항공기가 장거리
를 여행할수 없어 독일측이 한국정부에 여객기를 대여해주어서 올정로
비참한 국민소득 300불짜리 나라의 대통령이었다.
박정희는 아우토반을 보자 한국에 고속도로를 만들어야 겠다는 집념에
불타올랐고 이에 1967년 당시 전 교통부장관이었던 안경모를 부른다. 그
리고 박정희는 "국가 기간고속도로 건설계획 조사단"을 만들고 예산과
구간,건설시기,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세계은행은 후진국의 국가원수는 집권만 하면 종합제철과 고속도로
를 건설할려고 한다면서 그 비경제성에 비추어 일체 차관을 제공하지 않
겠다고 선언한바 있었다. 즉 종합제철과 마찬가지로 고속도로 건설은 우
리 순수 자본으로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니 문제는 예산이었다. 얼마나 저렴하게 하느냐?
박정희는 총5곳에 예산을 짜보라고 했다. 우선 건설쪽 전문부서인 건설
부. 아스팔트도로를 가장 많은 서울시청,예산전문가 재무부,역시 건설
의 전문가 육군 공병감실,그리고 국내 유일하게 고속도로 건설 경험이
있는 현대건설(태국의 고속도로를 건설한바 있음)
이들 부처들이 낸 고속도로 비용은 건설부 6백50억 서울시 180억,재무
부 330억,육군공병감실 4백90억,현대건설 2백80억
당시 서울시 건설비가 쌌던것은 시내도로 건설 감각으로 건설한것이었
고 건설부는 외국기준으로 한것이었다. 그래서 박정희는 재무부와 현대
건설안의 절충해서 3백억원에 10%의 예비비를 포함하여 330억원이었다.
그러다가 당초 대전~대구구간이 2차선에서 4차선으로 설계 변경되었고
노선변경으로인해 공시비가 100억원이 추가 되어 총 430억원 당시 67년
도 국가예산 23.6%달하는 규모였다. 거기에 공사시기는 68년2월1일 그야
말로 겨울... 누가 봐도 무모한 짓이었고 실패할 공사였다. 하지만 박정
희는 강행했다.
여기서 또다시 문제에 봉착된다. 예산문제가 겨우 해결되었지만 정치적
인 반대가 나온것이었다. 당시 야당인 신민당 총재 김영삼은 경부고속도
로 건설에 강력히 반대한다. 김영삼의 주장은
"정치공사" "투자 우선순위를 무시" "소수 자가용족의 향락을 위한 도
로"등이었고 김영삼은 경부고속도로 뿐만 아니라 포항종합제철과 울산공
장건설 반대시위를 벌였다. 개인적으로도 그런놈이 대통령이 되었으니
당현히 나라가 망할수 밖에....나라도 유신해서 김영삼에게 대통령자리
물려주지 않겠다.....
아무튼 경부고속도로는 박정희 진념아래 시작되었다.1968년12월21일 경
인고속도로가 완공되었도 동시에 서울-수원구간이 임시 개통되었다. 그
리고 70년 7월7일 서울-부산간의 전 구간이 완전 개통되었다. 하지만 국
토의 대동맥은 경부고속도로 하나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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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의 군사이야기★
(박정희 실록)3.국토의 대동맥을 건설하라.(1)무모한 모험의 시작.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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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2.2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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