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심장한 자극의 안식처 오아시스(OASIS),
그들의 대담한 휴식과도 같은 작품
<BE HERE NOW>
-ONE OF BRITAIN'S BEST KEPT SECRETS
물론 예외 없는 공식은 없다라는 문구가 뇌리를 스치긴 하지만 지금까지 팝/록 음악계의 중추는 미국 이외 지역에서의 성공에는 별반 관심이 없는 아메리카 제일주의 공식에 의해 움직여진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별 이변이 없는 한 이 공식은 앞으로도 그대로 통용될 전망이다. 세계 각국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아메리카 드림에 젖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앨범 판매고를 보장받을 수 있는 상업적인 면에서, 그리고 세계적인 지명도 획득을 위해 거쳐야만 하는 필연적인 보고라는 점에서 팝/록 음악계가 바라본 미국이란 나라는 그들에게 기회의 땅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팝/록 음악계에서 미국에 이어 제 2의 음악 영토로 분류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음악계가 처한 현실은 사실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크게 다를 바 없다. 물론 이곳 출신 뮤지션들 몇몇이 일본과 유럽 일부 지역에서 거의 살인적인 인기 몰이에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는 하지만 맥도날드 햄버거와 빌보드 차트에 그 입맛이 길들여진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을 따라잡기 위해서 그들이 뛰어 넘어야 할 벽은 그야말로 높고 험하다. 같은 영어권 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영국 음악에 배타적인 수용자세를 지닌 곳이기에 과거 비틀즈(The Beatles)와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그리고 듀란듀란(Duran Duran)을 거쳐 최근 부쉬(Bush)와 프로디지(Prodigy)에 이르기까지 브리티쉬 인베이전을 감행한 첨병들과 마찬가지로 이 기회의 땅 미국에서 획득한 오아시스의 성공은 누가 보아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시계는 멈춰도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이 말은 오아시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물론 같은 모습의 그들이지만 두 번째 앨범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95)의 발매 시점을 기준으로 오아시스의 이미지는 예전과 비교하여 상당히 분리된 느낌이다. 그들에게나 대중에게나 이제 맨체스터 타령이 더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 할 정도로 오아시스는 일개 지역 밴드에서 벗어나 영국의 국빈급 밴드로 발돋움했고 데뷔작 <Definitely Maybe> ('94)의 발매와 동시에 성공 가도로 올라선 이들의 고속 성장은 역(逆)으로 일개 인디 레이블이었던 밴드의 소속사 크리에이션 (Creation)의 인지도를 키워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1997년도 그래미에서 두 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두번째 앨범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의 미국 진출 성공을 통해 오아시스 판매고 호조에 따른 상업적인 성공뿐만 아니라 그 음악적인 면까지도 인정받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국내에서는 이들의 이름값이 아직까지 다른 밴드들에 비해 처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오아시스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는 분명 커다란 존재임이 틀림없다.
-INTRODUCING THE BAND-
스미스(The Smiths)와 스톤 로지스(The Stone Roses)를 탄생시킨 영국 록 음악계의 성지(聖地) 맨체스터 출신 5인조 밴드로 90년대 영국 음악계를 가장 확실하게 대변하고 있는 그룹 오아시스는 그들의 밴드적 이미지보다는 갤러거 형제의 건방진 태도와 그들이 내뱉는 독설에 더욱 귀추가 주목되는 그룹이다.
영국 맨체스터 롱사이트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 태어난 갤러거 가의 삼형제, 폴 갤러거(Paul Gallagher:'Brothers from childhood to OASIS the real story'를 집필한 저자)와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 g), 그리고 리엄 갤러거(Liam Gallagher, vo)는 축구를 하거나 비틀즈의 음악을 듣기 위해 학교를 빼먹는 대단한 말썽꾸러기들이자 굉장한 싸움꾼들이었다. 이들중 실독증이란 장애를 타고난 둘째 노엘 갤러거는 11살 때 생일 선물로 받은 기타를 만지작 거리며 미래의 자니마(Johnny Marr: The Smiths의 기타리스트였고 현재는 Electronic의 기타리스트)를 꿈꾸게 되었고 막내 리엄 갤러거 역시 1989년에 관람한 스톤 로지즈의 공연을 계기로 음악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의 부재와 그로부터 비롯된 생활고에 견디다못해 남의 집 털이에 나섰다가 발각되어(봇주: 코업숍을 털고 보호관찰명을 받았음) 평소 친분이 있었던 밴드 인스파이럴 카페츠(Inspiral Carpets)의 기타 테크니션으로 고용되어 4년 동안 타향 살이를 한 노엘 갤러거는 1992년에 고향 맨체스터로 돌아왔고 폴 '본헤드' 아더스(Paul 'Bonehead' Arthurs, g)와 폴 '귀그스' 맥귀건(Paul 'Guigs' McGuigan, b),그리고 토니 맥캐롤(Tony McCarroll, ds)과 함께 레인(Rain)이란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하고 있던 동생 리엄 갤러거를 발견하게 되었다.
단순한 카피 밴드에 지나지 않았던 레인은 훌륭한 작곡가이자 뛰어난 기타리스트인 노엘 갤러거를 맞아들여 오아시스로 개명하고 자신들의 오리지널 데모 테잎을 제작하며 본격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1993년 5월, 주인을 반협박, 생떼로 구슬려 글래스고우의 와와(Wah Wah)클럽 무대에 설 수 있었던 오아시스는 단번에 크리에이션(Creation) 레코드사 사장 앨런 맥기(Alan McGee)를 매료시키며 앨범 체결 제의를 받아냈고 이곳에서 영국 음악계에 가장 빠른 속도로 팔려나간 작품이자 발매 첫 주에 UK 앨범 차트 1위로 진입한 데뷔 앨범 <Definitely Maybe>를 발매하며 데뷔 직후부터 급속도의 상승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데뷔작을 발매한 직후부터 시작된 술과 마약, 그리고 밴드 멤버들간의 끊임없는 불화, 그중 특히 갤러거 형제의 피튀기는 감정 대립이 노골적으로 표면화되며 밴드의 해산설을 부채질했지만 오아시스는 두 장의 미니 앨범 [Whatever]와 [Some Might Say]를 선보인데 이어 1995년 9월, 그들에게 두 번째 앨범이 되는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를 발매하며 향간에 떠도는 모든 루머를 일축해버렸다.
오리지널 드러머 토니 맥캐롤의 해고와 새로운 드러머 앨런 화이트(Alan White)의 영입이라는 과정 속에서 제작된 오아시스의 2집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는 빌보드 앨범 차트 5위권 진입은 물론 미국에서만도 4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대성공을 거두며 명실공히 오아시스를 세계적인 밴드로 약시키며 밴드 멤버들간의 불화도 얼마간 잠잠한 듯했다. 하지만 지난 1996년 9월, 또 다시 악화된 노엘 갤러거와 리엄 갤러거의 신경전이 밴드의 구체적인 해산설로 이어지며 오아시스의 3집 앨범 발매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니냐는 예측이 조심스레 언급되기 시작했다.
-THE SHOW MUST GO ON-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후 오아시스의 주위를 맴돌고 있던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들의 새 앨범 소식이었다. 지난 9월, 피튀기는 전쟁판을 벌인 뒤 몇 개월 동안의 냉각기를 가진 갤러거 형제 - 그 동안 노엘 갤러거는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의 히트곡 "Setting Sun"을, 그리고 리엄 갤러거는 전(前 스톤 로지즈의 기타리스트 존 스콰이어(John Squire)의 새로운 밴드 시호시스(Seahorses)의 데뷔작 <Do It Yourself>에 수록될 곡들을 제작하며 나름대로 머리를 식혔다-는 지난 해 말 다시금 오아시스를 규합했고 그들에게 세 번째 작품이 되는 이 앨범 <Be Here Now>('97)를 제작했던 것이다.
2집의 히트 싱글 [Wonderwall]과 마찬가지로 조지 해리슨의 앨범 제명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이 앨범 <Be Here Now>는 또 다시 오아시스를 맹목적인 존경의 대상인 비틀즈와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그리고 스톤 로지즈의 성공적인 조합물이라는 평가를 끌어낼 만한 작품이다. 물론 오아시스의 신작 <Be Here Now>를 접하며 떠올리게 되는 궁극적인 질문은 전작과 비교하여 어느 정도의 차이점을 지니고 있냐는 것이다. 거액이 걸린 'The Crow: City of Angels'의 사운드트랙 제작 제의를 뿌리치고 오아시스의 새로운 작품만 열정을 쏟았다는 노엘 갤러거의 새로운 창작물들을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오웬 모리스(Owen Morris)와 노엘 갤러거의 공동 프로듀스로 제작한 이 앨범 <Be Here Now>는 듣는 이에 따라서는 그들의 최대 히트작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보다 좀 더 메인스트림쪽으로 기운 작품이 아니냐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겠지만 밴드의 그 어떤 앨범보다도 풍부한 색감과 다양성이 넘치고 있는 앨범인 동시에 그들의 열정 분출과 공격성, 그리고 극단적인 헤비함 등 다분히 미국 지향적인 사운드가 귀를 솔깃하게 만들고 있는 작품이다.
사이키델릭한 기타 사운드와 역동적인 드럼 비트가 그 헤비함을 유도하는 첫번째 싱글로 N.W.A.의 <Straight Outta Compton>을 샘플링으로 사용한 "D'You Know What I Mean?"을 시작으로 섹스 피스톨즈식의 록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에너지 덩어리 "My Big Mouth"나 전작의 "Don't Look Back in Anger"와 마찬가지로 노엘 갤러거의 보컬을 전면에서 감상할 수 있는 진귀한 트랙 "Magic Pie", 유연하게 흘러내리는 블루지한 기타 리프와 비음 섞인 보컬이 최대의 호소력을 발휘하는 아름다운 연민의 곡 "Stand By Me"와 자연스레 비틀즈를 떠올리게 되는 트랙 "The Girl in the Dirty Shirt", 미국 남부 지방의 서든 록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블루지한 곡으로 스페셜 게스트로 초빙된 자니 뎁(Johnny Depp)이 멋진 슬라이드 기타 솔로를 들려주는 "Fade In/Out"과 단번에 듣는 이의 힘을 쭉 빼버릴 정도로 조용조용하게 위력적인 설득력을 발휘하는 "Don't Go Away", 극단적인 헤비함으로 그 방향 선회에 나선 "Be Here Now"와 "It's Getting Better (Man!!)", 그리고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에 이어 문닫는 효과음 처리로 그 휘날레를 장식하고 있는 "All Around the World(Reprise)"에 이르기까지 장장 72분이란 러닝 타임을 향해 달리고 있는 이 앨범 <Be Here Now>는 오아시스 기존의 사운드를 위배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밴드의 새로운 방향성에 초점을 맞추어 그들에게 돌아올 반동을 미리 염두에 두고 제작된, 다분히 능동적인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이 지면을 통해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이 앨범 <Be Here Now>를 오아시스의 세계적인 성공작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의 후속타로서가 아닌, 밴드의 육적인 성장 과정중의 한 단계로 보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3집 발매에 앞서 선보인 첫 싱글 [D'You Know What I Mean?]이 벌써부터 빌보드 모던 록 트랙스 차트에 얼굴을 내밀고 9월로 스케줄이 잡힌 그들의 영국 투어 콘서트 티켓이 판매 하루만에 동이 나는 등 벌써부터 이 앨범 <Be Here Now>에 대한 과열 분위기가 조장되는 있다는 느낌인데 이런 서포모어 징크스는 전작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단 한 번으로 충분히 족하지 않을까. 쓸데없이 부풀어 오른 거품을 걷어내고 이 앨범 <Be Here Now>의 실체를 똑바로 주시하는 것.
오아시스에게 그 이상의 배려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글/1997.7.30. 권혜수
원문: http://oasiskbot.blog.me/50159398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