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생 동생
한 살 터울 여동생이 있다. 대전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기차는 설렁설렁 간이역마다 들려서 사람들을 내려놓고 다시 싣고 칙칙폭폭 들길을 가로질러 달리며 어느덧 종착역 대전역 닿았다. 마지막 역이라서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갔다. 텅텅 빈 기차를 역에 홀로 남겨놓고 인정머리 없이 사람들은 어디론가 바쁘게 가고 있다. 동생이 나를 부르며 다가온다. 살이 더 빠진 듯한 핼쑥한 모습이 안쓰러웠다. 꼭 쥐면 부서질 것 같은 풀잎 같은 여자이다. 일부러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아니니까 건강하기만 하면 좋겠다.
점심을 먹으러 역사를 빠져나왔다. 남동생이 미리 알려준 소제동이라는 곳으로 갔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많이 찾는다는 곳이다. 오래된 집을 개조해서 카페를 만들고 음식점을 만든 동네였다. 요즘 이런 곳이 많다. 날씨가 여름을 방불케 한다. 하루 머물다 가는데 괴나리봇짐이 이렇게 무거울 수가 없다. 간단히 준비해서 왔건만 어깨가 내려앉는 기분이다.
동화 속에 나오는 작고 예쁜 카페들이 소품처럼 앉아있다. 노란 의자가 사랑스러운 카페에는 젊은 친구들이 꽃처럼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가게가 정말 손바닥만 했다.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고 싶은 생각보다는 그냥 구경만 하면서 지나가고 싶은 곳이다. 들어가서 앉아 쉬거나 수다를 떨 수 있는 곳이 아니고 잠시 머물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그런 곳이 더 어울리는 곳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점심 먹을 만한 곳이 없다. 어렵게 찾은 브런치 카페에도 영업이 끝났다고 한다. 하나 둘씩 재료가 떨어져서 문을 닫고 오전 영업은 끝났다고 하고 이곳에서 식사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다시 대전역으로 가기로 했다. 대전역 식당은 여행자들을 위해서 문을 닫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날도 덥고 배도 고프고 가방에 짓눌린 어깨는 무너져 내리고 정말 집 나오면 고생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반가움도 잠시 우리는 지친 몸을 이끌고 역 안에 있는 식당에서 늦은 점심상을 마주했다.
대전역에서 만나기로 한 남동생이 우리를 보더니 누나들 얼굴이 왜 그렇게 어둡냐고 웃는다. 회사 일을 마치고 오는 시간에 맞추려고 식사하고 커피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날도 덥고 지리에도 어둡고 정말고생했다. 여행은 힘들고 고생스럽지만, 그 또한 재미다.
막냇동생이 이사해서 화분을 하나 샀다, 보석 금전수다. 축하 글을 고르라고 하는데 재미있는 글귀가 있었다. ‘돈 세다가 힘들면 전화해’ 다소 장난 같지만 유쾌하게 웃자고 그것으로 적어서 리본을 달았다, 장어집에서 술을 마시며 모처럼 마음 놓고 크게 웃었다. 언제나 만나면 친구 같은 동생들이다. 나이 차이가 없으니까, 친구처럼 지낸다. 마음 다 내려놓고 술을 마셨다. 형제들이 모두 술을 좋아하니까 이렇게 만나 술 마시고 노래하고 웃고 떠들면서 보낸다. 엄마 아빠도 이런 모습을 보면 좋아하실 것이다.
현충원에는 아버지 어머니가 계신다. 기일에 못 와서 오늘 동생들과 왔다. 보라색 들꽃을 사 들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맥주를 따라드렸다. 언제나 보고 싶은 분들이다. 하늘은 파랗고 바람은 싱그럽고 동생들과 함께 아버지 어머니 묘소를 찾으니 더 바랄 것이 있을까. 형제들이 모두 환하게 웃으며 함께 모였으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다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이 서운함이 함께 한다. 피곤하지만 헤어지는 마음이 더 커서 말이 적어진다. 동생을 바라보면 언제나 마음이 짠하다. 살도 좀 붙고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다시 경산으로 돌아간다. 내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곳으로. - 2023년 5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