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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 효 선
엄마 있는 아이
용아는 암만 생각해도 이상하기만 합니다. 국민학교에 들어간 뒤로 엄마가 미
워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전까지는 뭐든지 용아가 하자는 대로 하는 엄마였읍니다.
엄마가 시장에 가실 떼면 용아는 시장바구니를 뺏어들고 앞장서서 깡충깡충 뛰어갑니 다.
“혼자 가면 위험하다. 엄마하고 같이 가야지.”
엄마는 성큼성큼 따라와 용아의 손을 꼭 잠으십니다.
시장에 가면 으례 먹을 것을 사주십니다.
용아가 과자가게 를 기웃기웃하면,
“응, 오늘은 우리 용아가 과자가 먹고 싶은 게로구나. 뭘 사줄까?”
엄마는 용아가 가리키는 대로 비스켓도 사주고 초콜렛도 사주십니다.
용아가 과일 가게 앞에서 머뭇머뭇하면,
“응, 오늘은 우리 용아가 과일이 먹고 싶은 게로구나, 뵐 사줄까?”
엄마는 용아가 가리키는 대로 사과도 사주고 토마토도 사주십니다.
흙장난을 해도 이웃집 영이네로 놀러 가도 가만두셨읍니다.
저녁 먹고 언니 누나들하고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아도 자라고 하지 않으셨읍니다.
아침에는 언니 누나가 학교에 간 뒤까지 늦잠을 자도 그냥 자게 두셨읍니다.
그러던 엄 마가 아주 달라졌읍니다. 시장에 따라가려고 나서면,
“커다란 게 엄마를 따라다니면 못써요.”
하고 등을 밀어 들여보내십니다.
“그럼 나 과자·….”
용아가 손가락을 입에 물고 엄마를 쳐다봅니다.
“아니, 커다란 게 군것질할 생각만 하면 못써요.”
하고 야단을 치 십 니다.
숙제를 하다가 싫증이 나서 영이네로 놀러가려고 신발을 신으면 엄마는 어떻게 아시는지,
“아니, 숙제를 하다말고 영이네 가려구·…·커다란 게 이집 저집 놀러다니면 못써요.”
하고 손을 잡아 끌어들이십니다.
저녁 먹고, 언니 누나들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용아는 그만 보고 가서 자요. 늦게 자고 늦잠자면 못써요.”
하고 쫓으십 니다.
그뿐인가요, 인제 일어나려고 꼼질꼼질하고 있으면 엄마가 이불을 홱 벗기고 볼기를 때리시면서,
“아니, 앤 오늘 학교에 안 가려나, 커다란 게 늦잠자면 못써요.”
하고 두 손을 잡아 일으키십니다. ¡
― 엄마는 왜 나만 가지구 그러실까? 엄마는 하루종일 못써요, 못써요야.
용아는 옷을 주워입으며 으아 울고 싶었읍니다. 엄마가 저만 미워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울긴 왜 우니? 커다란 게 울면 못써요.”
그 러실 게 틀림 없읍니다.
그렇지만 눈이 시큰시큰해옵니다. 울음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읍니다. 용아는 못써요 소리를 안 들으려고 눈을 딱감고 눈물만 쭉 짜냈읍니다.
“용아, 용아.”
이웃집 영이가 와 부릅니다. 학교에 같이 가자고 찾아온 것입니다.
용아는 영이를 앉혀놓고 밥을 먹으면서 영이는 참 좋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영이 엄마는 집에 안 계십니다. 아빠하고 미국에 가 계시답니다.
엄마가 안 계시니까 영이는 못써요 소리를 안 들을 것 같았읍니다. 영이를 미워하는 사람도 없을 것 같았읍니다.
용아는 그만 엉뚱한 생각이 들었읍니다.
―우리 엄마도 어디나 갔으면 좋겠다.
용아는 이제 울고 싶지 않았읍니다. 영이와 나란히 학교로 갑니다.
“영이야. 넌 엄마가 집에 없어서 좋겠다!”
“앤, 난 엄마가 보고 싶어 죽겠는데·….”
용아의 말에 영이는 눈이 둥그래졌읍니다.
엄마 없는 아이
엄마는 용아의 점심을 차리시느라고 바쁘십니다. 1학년이기 때문에 12시만 되면 꼭꼭 돌아옵니다.
밥을 짓고 달걀을 삶고·….
그런데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초인종이 울리지를 않읍니다.
“웬일일까, 우리 용아가?”
엄마는 기둥시계를 쳐다보시며 안절부절 못하십니다. 집이 비어서 학교에 가
볼 수도 없읍니다.
“길을 잃어버렸을 리는 없고, 학교에서 뮐 잘못해서 벌을 서고 있지나 않을까?”
30분이 지났읍니다. 엄마는 더럭 겁이 납니다.
“나쁜 사람에게 옷벗김 당하느라고 끌려갔는지도 몰라.”
엄마는 전화 다이얼을 급히 돌렸읍니다.
담임 선생 님을 찾았읍니다.
“저 용아엄마예요. 용아가 여태 돌아오질 않아서요오.”
“네, 30분 전에 파했는데요, 지금 가는 중이겠지요.”
담임선생님은 걱정이 안되는가 봅니다. 엄마는 수화기를 탁 놓고 벌떡 일어섰
읍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할 수는 없읍니다.
용아는 지금 영이네 집에서 놀고 있읍니다.
영이네로 놀러 가려면 엄마는,
“커다란 게 이집 저집 놀러 다니면 못써요.”
그러시기 때문에 살짝 좀 놀다가려고 가방을 든 채 영 이네로 간 것입니다.
“아즘마, 나 밥 줘.”
밥상을 들여왔읍니다. 법도 찬밥 같읍니다. 달걀 삶은 것도 없읍니다.
“아줌마, 물 줘.”
용아 같으면 엄마를 부를 텐데, 영이는 아줌마만 부릅니다.
“아줌마, 내 그림책 어디 있어?”
건넌방 쪽에다 대고 영 이가 외쳤옵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니? 찾아봐라.”
하고 소리치더니,
“자꾸만 불러서 일을 할 수가 있어야지.”
하는 조금 조그만 목소리가 들립니다.
용아는 영이 옆에서 그림책을 보고 있읍니다. 재미가 있어서 배고픈 줄도 모
릅니다.
인제 1시 입니다. 용아 엄마는 울상이 되었읍니다.
용아가 유괴범에게 끌려간 게 틀림없을 것 같았읍니다. 그냥 있을 수는 없읍니다.
엄마는 대문을 지쳐놓고 영이네루 달려갔읍니다.
“영이 아줌마, 영이 아줌마, 있소!”
숨이 가쁘게 영이 아줌마를 불렀읍니다.
“네, 나가요.”
용아엄마의 얼굴이 핼쑥합니다.
“아, 글쎄, 우리 용아가 여태 안 돌아와서 그래요. 유괴범에게 끌려갔나봐요.
영이는 돌아왔죠? 영이 하줌마, 우리집 좀 봐줘요. 어디로 찾으러 가야겠어요.“
용아도 영이도 그림책을 펼쳐든 체 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다 들었습니다.
“아이 용아엄마두, 용안 우리집에서 영이하고 노는 걸요, 호호호……”
“넷, 그래요? 아이구 그 생각을 못했군. 휴·….”
용아 엄마는 얼굴빛이 발개집니다.
용아가 가방을 들고 콩콩콩 현관으로 뛰어나왔읍니다.
“엄 마·….”
“용아·….”
용아는 엄마 품에 답삭 안겼읍니다.
엄마는 용아를 꼭 껴안았읍니다.
“용아야, 배고프지. 우리 가서 점심 먹자.”
엄마의 향긋한 냄새가 몰칵 났읍니다.
용아의 달콤한 아기 냄새가 물컥 났읍니다.
“엄마, 어디 가지 마, 엄마. 어디 가지 마.”
용아가 조그만 소리로 말했읍니다.
“내가 가긴 어딜 가니? 너나 가지 말아라. 엄마한테 어디 가낟고 말하고 가야지. 그냥 가면 못써요.”
영이가 옆에서 부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었읍니다.
엄마 편지
영이는 엄마가 집에 없는데도 엄마가 집에 없는 줄 빤히 알면서도 엄마를 찾을 때가 있읍니다. 엄마를 부를 때도 있읍니다.
엄마 대신 아줌마가 밥을 해주고, 옷을 빨아주고, 머리를 빗겨주고, 숙제도 가르쳐주고, 과자랑 과일이랑 사주고, 학용품 값도 내주고, 모든 것을 엄마처렴 해줍니다. 아니다뿐이지, 엄마와 조금도 다를 게 없읍니다. 아줌마는 엄마보다 더 잘해주려고 힘씁니다.
그런데도 영이는 아줌마가 못마땅할 때가 많읍니다.
가방 속에 든 공책을 마음대로 꺼내보고는,
“아니, 이걸 글씨라고 썼니. 발가락으로 써도 이보다는 낫겠다. 너의 엄마가 알면·…·아이 속상해, 이제부턴 더 잘 써야 햇. 알았어?”
하고 야단을 칩니다. 바로 그 앞장까지는 잘 썼는데, 조금 싫증이 나서 막 쓴 거랍니다. 영이는 눈물을 쪽 짭니다. 아줌마한태 야단맞는 건 정말 싫읍니다.
학교에서 조금만 늦게 돌아와도 대문 밖에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섰다가,
“아니, 너 어디로 돌아다니다가 인제 오니? 아랫집 용아는 벌써 돌아왔는데,
응, 너의 엄마가 알면·…· 아이 속상해, 이제부턴 꼭꼭 제시간에 돌아와야 해,
알았어!”
바로 어지께까지는 제시간에 꼭꼭 돌아왔는데, 오늘은 왜 늦었는지 알려고도
않고 야단부터 칩니다.
어디로 돌아다니기는요, 학교가 늦게 파했답니다.
영이는 눈물을 쪽 짭니다. 분해서 분해서 엉엉 울고 싶었읍니다. 그렇지만 마음놓고 울 수도 없읍니다. 울었다가는 아줌마에게 더 야단을 맞을 테니까요.
영이는 눈물을 쓱 씻고 마당으로 내려섰읍니다. 아줌마가 벌써 소리를 지릅니다.
“아니, 숙제 안하고 어딜 가니? 용아네 놀러가려고 그러지. 다 안다, 다 알아.”
영이는 가만있을 수가 없었읍니다.
“아줌만 알지도 못하고·…· 안 가요, 안 가.”
“저게, 너 아줌마에게 대드는 거냐. 아이 속상해. 너의 엄마가 얼른 돌아와야 내가 살겠다.”
아줌마는 말린 빨래를 만지며 한숨을 푹 쉽니다. 아줌마가 한 말은 바로 영이가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릅니다. 영이는 테라스에서 쭉 뻗고 낯잠자는 강아지
피츠를 답삭 안았읍니다. 엄마가 무척 귀여워하던 피츠입니다.
피츠는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고 짖으려다가, 영이인 줄 알고 그만둡니다.
영이를 말똥말똥 쳐다봅니다.
“넌 엄마가 보고 싶지 않니? 우리 엄마 말야아.”
피츠는 눈만 깜박깜박 말이 없읍니다. 영이는 피츠의 머리랑 등이랑 쓰다듬어
줍니 다.
―지금쯤 엄마는 무얼 하고 있을까? 나처럼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거야아. 집에 돌아와서 숙제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편지를 쓰고 있는지도 몰라. 그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러 가는 길인지도 몰라·……
그러고 보니까, 엄마에게서 편지 올 때가 되었읍니다. 일주일마다 꼭꼭 한장씩 옵니다.
이발소 간판처럼 가장자리에 빨간 줄을 어슷어슷친 네모난 파란 봉투, 파란 하늘빛 편지, 파란 바닷빛 편지.
그 편지는 비행기를 타고 파란 하늘을 날아온답니다. 파아란 바다 위를 날아온답니다.
영이는 파란 하늘을 쳐다봅니다.
“앗, 파란 편지봉투가!”
반짝반짝 반짝반짝 파란 하늘빛 편지봉투는 하얀 은종이가 되어 저어기서 이리로 날아옵니다. 올라갔다 내려왔다 너울너울 춤을 추며 나비처럼 날아옵니다.
반짝반짝 반짝반짝·…….
자꾸만 이리로 다가옵니다.
영이는 그만 눈이 부셨읍니다. 눈을 딱 감았읍니다. 그래도 하늘빛 파란 편지는 자꾸만 이리로 다가옵니다.
엄마 없는 날
오늘은 일요일입 니다. 그렇지만 용아는 다른 날보다도 일찍 일어났습니다. 엄마가 아빠하고 같이 시골 외가집에 가시기 때문입니다.
“엄마하고 아빠하곤 저녁때에나 돌아오게 될 거다. 점심은 상을 봐놓았으니까 먹고·…· 그리고 과자는 찻장에 있으니까 꺼내 먹고, 그리고 숙이하고 싸우지 말고 잘 데리고 놀아야 한다. 알겠니?”
“응!”
용아는 싱글벙글 좋은 눈치입니다.
“난 싫어, 따라갈 테야아.”
숙이는 손가락을 입에 물구, 옷 갈아입는 엄마 옆에서 조릅니다.
“글쎄 못 간대두, 버스를 두 시간이나 타고 가서 한 시간이나 또 걸어야 한단말야. 그러니까 못 데리고 가요오.”
“그까짓 한 시간, 나도 걸어갈 수 있어 저번때 소풍갔다 왔지 않아. 그때도 많이 걸었는데 뭐어.”
“소풍갔을 땐 삼십 분도 안 걸렸단다. 그런데도 다리가 아프다고 그러잖았니.
내 올 때 초콜렛 많이 사가지고 올께 숙이하고 집에서 잘 놀란 말야아.”
“그럼 잊어버리고 안 사오면 안돼, 꼭 사와야 해.”
“그래 그래.”
숙이는 초콜렛을 사온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 더 따라가겠다고 하지 않았읍니다.
용아는 아빠 구두를 닦아놓고 엄마 구두의 먼지도 털어놓았읍니다. 엄마가 가고 나면 제세상이 되기 때문에 신이 나는가 봅니다.
대학에 다니는 언니는 있으나마나입니다, 자기 방에서 하루종일 낯잠을 잘 게
빤하니까요.
“엄마, 안녕히 다녀오셔요. 아빠 안녕 히 다녀오셔요오.”
용아는 대문을 닫고 들어오자마자 찻장에 있는 과자봉지부터 꺼내 왔습니다.
여느때 같으면 용아의 손이 안 닿는 맨 윗선반에 얹어두고 엄마가 두 개나 세 개쯤 꺼내주던 과자를 오늘은 맨 아랫선반에 봉지째 놓고 가셨읍니다.
하나는 용아 것, 하나는 숙이 것, 그래서 두 봉지입니다.
용아는 엄마가 집에 없는 게 정말 좋았읍니다. 마룻바닥에 홱 쏟아보니까, 과자는 스무 개도 넘었읍니다.
아침 밥을 먹은 지 얼마 안되었는데도 용아는 후딱 먹어치웠읍니다.
“팍.”
“아잇 깜짝야, 귀청 떨어지겠다.”
용아가 과자봉지에 바람을 넣어서 터뜨린 것입니다. 숙이는 쫑알쫑알 용아를 흘겨 봅니다.
“하하하아 숙아, 넌 과자 그냥 있구나 나 하나만 줘, 이 구슬 줄께.”
“싫어, 그까짓 구슬 싫어.”
용아는 덤벼들어 빼앗을까 했지만, 언니가 알면 혼날 게 부서워서 슬그머니 엎드려 그림책을 보기 시작했읍니다.
언니 방에서 라디오가 정오를 알립니다.
“숙아, 배고프지 않니, 우리 점심 먹을까?”
용아와 숙이는 마주앉아 다 먹 어치웠읍니다.
용아는 심심했읍니다. 과자를 반만 먹을 걸 괜히 다 먹었다고 뉘우쳤읍니다.
숙이는 반도 더 남은 과자를 혼자 먹기가 안되었던지,
“오빠 과자 하나 줄께, 이담에 도로 줘야 해.”
하고, 용아의 입에다 물려주었음니다.
용아는 심심해졌읍니다. 그림책도 재미가 없습니다.
저녁지을 때가 되었는데, 엄마가 돌아오시지를 않읍니다.
― 웬일일까? 버스가 고장이 났나?
용아는 걱정이 되었읍니다. 엄마가 늦게 오시면 배가 고파서 어떡할는지 큰 걱정입니다.
옆집 초인종이 울려도 엄마인가 하고 귀를 기울이곤 하였읍니다.
시계를 보니까 여섯 시입니다. 지녁 먹을 시간입니다. 베가 고프기 시작합니 다.
일곱 시가 되었읍니다. 배는 점점 더 고픕니다.
날이 어두웠읍니다.
“엄마 왜 안와.”
말똥말똥 앉았던 숙이는 으아 울음을 터뜨렸읍니다.
용아도 울음이 쏟아졌읍니다.
“엄마아 으흐흐으. ”
아기 없는 밤
영이 엄마는 두꺼운 책을 읽고 있었읍니다. 책상 위에는 고개를 숙인 전기 스탠드 불빛, 책이랑 노트가 이리저리 쌓이고 펼쳐진 틈에 영이의 방긋이 웃는 사진이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는 듯이 놓여 있읍니다.
아파트의 다른 방들은 모두 커튼이 드리워지고 전등이 꺼졌읍니다.
밤이 꽤 깊었나 봅니다. 엄마는 눈이 자꾸 감겼읍니다. 보던 책을 놓고 일어섰읍니다. 엄마는 힘없이 창가로 갔읍니다.
창밖에는 이지러진 그믐달이 쓸쓸히 걸려 있읍니다. 별들도 졸린지 희미하게
깜박거립니다.
엄마의 마음은 갑자기 미국의 넓은 벌판을 지나 태평양 푸른 물을 단숨에 전
너, 고향집 영이의 방으로 쑥 들어갔읍니다.
영이는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나 봅니다. 방안을 휘둘러보았읍니다.
벽에 결린 영이의 원피스 목둘레에 까아맣게 때가 묻어 있읍니다. 방바닥에 벗어던진 하얀 커버에는 구명 이 뽕 뚫려 있읍니다.
책상 위에는 책들이 되는대로 쌓였읍니다. 공책이 한 권 펼쳐진 채로 있읍니다.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
국어 공책 인가 봅니다. 그런데 글씨가 엉망입니다. 앞장은 또박또박 잘 썼읍니다. 어젯밤 늦게까지 숙제를 했나봅니다.
―그런데 이 공책을 왜 안 가지고 학교엘 갔을까? 선생님께 꾸중 듣고 벌을 서고 있지나 않을까.
엄마의 마음은 아줌마도 만나보지 않고 학교로 달려갑니다. 마침 쉬는 시간이었읍니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읍니다. 극을 뻥 뻥 차는 사내아이, 팔짝 팔짝 줄넘기를 하는 여자아이,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들, 달음박질을 하는 아이·…· 엄마의 마음은 아이들 틈을 여러 바퀴 돌았읍니다.
그런데 영이가 보이지 않읍니˙다.
―우리 영이가 어디 있을까?
엄마의 마음은 털썩 내려앉습니다. 뒤 운동장으로 허둥지둥 가보았읍니다.
― 우리 영이가 어딜 갔을까? 학교에 안 왔을 리는 없는데·……
엄마의 마음은 두근거리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운동장 담밑을 돌아봅니다.
아카시아나무에서는 하얀 꽃이 비오듯 떨어집니다. 매운 향기가 날립니다.
그 그늘에 영이가 혼자 앉아 있었읍니다.
“아유 영아, 너 거기서 뭘 하구 있니? 어디 아프냐? 왜 그렇게 기운없이 앉아 있니 ? 저애들 처럼 뛰놀지 않고·….”
영이는 아무 대답이 없읍니다. 엄마의 마음은 영이 앞에 마주앉았읍니다.
영이의 손에는 사금파리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땅바닥에 글씨를 쓰고 있었읍니다.
보고 싶은 엄마.
우리 엄마 엄마는 미워.
엄마는 마음이 언짢아졌읍니다.
“영아아.”
엄마는 영아를 부둥켜 안았읍니다. 그렇지만 그건 영아가 아니고 허공이었읍니다.
엄마의 마음은 울고 싶도록 아팠읍니다. 깍지 낀 두 손을 힘없이 떨어뜨리고, 책상 앞 의자에 털썩 주저앉읍니다. 고개를 숙인 전기 스탠드 불빛 그 밑에서 영이의 사진이 방긋이 웃고 있읍니다.
“영이야, 엄마가 밉지. 너하고 같이 있지 않으니까 말야, 부지런히 공부해서 빨리 마치고 돌아갈께.”
엄마는 다시 책을 보기 시작했읍니다. 그러나 글자들이 영이의 얼굴로만 보였
읍니다.
아무리 눈을 비벼도 글자는 보이지를 않았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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