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펼치는 순간
와~
음......
어...?
이렇게 세 마디 감탄사가 나왔다.
먼저 그림이 간결해서 눈에 쏙 들어오면서 집중하게 했고 " 와~ 정말 멋진 그림에 글이네,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역시 *슌타로 답다. 그림도 너무 좋네"
다 읽고 난 순간, 음.....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득함이 있었다.
삽질하는 그림이 내 마음에 구덩이를 파고 있다.
그리고 어...?
내가 잊어버린 것들, 내가 팠던 그 많던 구덩이들
그것들을 생각나게 했다.
일요일 아침, 아무 할 일이 없어서 히로는 구덩이를 파기로 했다.
엄마가 왔다. " 뭐해?"
히로가 대답했다. "구덩이를 파" 그러고 나서 계속 구덩이를 팠다.
여동생 우키가 왔다. " 나도 파고 싶은데"
히로가 대답했다. "안 돼" 그러고 나서 계속 구덩이를 팠다.
옆집에 사는 슈지가 왔다. " 뭐 할 거야, 이 구덩이"
히로가 대답했다. "글쎄" 그러고 나서 계속 구덩이를 팠다.
우리가 하는 것 중에 무엇을 하는지, 왜 하는지, "그냥" 하기도 하고 이유 없이 하기도 하는 것들, 생각, 깊은 사색 등등 이유 없는 행위나 사고가 얼마나 많은가.
거기에다가 히로는 아이 아닌가! 아이의 놀이에는 이유가 없는 것이 맞을 것이다.
혼자서 하고 싶은 것도 있고, 혼자 해야 하는 일도 있다. 꼭 목적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그냥 하는 일도 있다.
히로는 그냥 구덩이를 판다.
아빠가 왔다. "서두르지 마라, 서둘면 안 된다"
히로가 대답한다 '흠' 그러고 나서 계속 구덩이를 판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혀 아프다. 귀 뒤에서 땀이 흘렀다.
'더 파야 해 더 깊게' 히로는 생각했다.
그때 커다란 애벌레가 구덩이 아래쪽에서 기어 나왔다.
그 애벌레도 구덩이를 팠다.
"안녕" 히로가 말했다. 잠자코 도로 흙 속으로 되돌아갔다.
그때 히로는 파는 일을 그만두고 쪼그려 앉는다.
몰입 뒤에 찾아온 자신을 만나는 시간
구덩이 안은 조용했다. 흙에선 좋은 냄새가 난다.
히로는 구덩이 벽에 생긴 삽 자국을 만져 본다.
'이건 내 구덩이야' 히로는 생각했다.
그리고 히로가 구덩이 안에서 바라본 하늘
그 하늘을 날고 있는 나비
그 나비는 아마도 구덩이 안에서 만난 커다란 애벌레가 아닐까?
자신이 판 구덩이 안아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히로
구덩이를 파기 전에 히로는 이미 없는 것이다.
나비가 될 과정에 한발 다가선 성장한 히로가 있다.
그리고 구덩이에서 나와 구덩이를 다시 덮는다.
"이건 내 구덩이야"
파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의 구덩이
걸어 본 자만이 볼 수 있는 자신의 발자국과 한 걸음마다의 경탄을 부르는 아름다운 자연, 이처럼
어쩌면 우리는 끊임없이 구덩이를 파는 존재이다.
이 그림책을 읽다 보면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나만의 구덩이'는 무엇이 있었나? 무엇인가?
'구덩이'에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리고 이 시가 생각난다.
놀다
김일영
제 안에 든 움직임을 펴보며
새끼 고양이가 논다
저를 배우고 있다
수십만 년의 시간을 거슬러 갔다 돌아와
고양이는 고양이가 된다
아장 아기가 걷는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저 걸음을 위해
얼마나 많은 무릎들이 다쳐왔던가
둥근 무릎뼈는 축적된 상처
우릴 걷게 하고 춤추게 하는 힘
아장 아기가 걷는다
단단해진 상처 위에서 아기가 놀고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이 떠오른다.
<모래성과 아이들> 아지즈 네신의 《당나귀는 당나귀답게》 2005, 푸른숲주니어
모래성 쌓기를 아이들은 놀이로 생각하고"찡그린 얼굴의 아저씨”는 일로 생각한다.
놀이를 일로 생각하며 찡그린 아저씨는 놀이를 잊고, 웃는 방법을 잊었다. 지금도 아이들은 비 오는 날 도로에 고인 물을 튀기며 논다. 아이들은 모든 일에 호기심이고 그 자체를 즐긴다. 열심히 일하던 어른들이 휴가를 가는 것도 다시 그런 어린 시절의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한 게 아닐까?
아지즈 네신의 모래성과 아이들도 슌타로의 구덩이도 우리에게 어린아이처럼 노는 것의 본질로 돌아가 보면 나의 본질과 만나게 될 것이라 이야기한다.
그래 한번 놀아보자. 나를 찾을 수만 있다면 가장 쉬운 방법부터 시작해 보자
* 슌타로
다니카와 슌타로(Shuntaro Tanikawa,たにかわ しゅんたろう,谷川 俊太郞)
1931년 도쿄에서 철학자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철학, 문학, 음악 등 예술 분야에 관심을 가져왔다. 중학교 시절 시를 쓰기 시작해, 1950년 도요타마(豊多摩)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문예지 『문학계』에 「네로」 등의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이 되어 1952년 21세때 첫 시집 『20억 광년의 고독』을 펴내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적인 시집으로는 『살다』, 『당신에게』, 『사랑에 관하여』, 『62의 소네트』, 『귀를 기울이다』를 비롯해 많은 시가 널리 사랑받았으며, 1982년 『일상의 지도』로 제34회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그의 시는 교과서 뿐만 아니라 유명CF의 CM 혹은 유명 가수들의 노랫말이 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애니메이션 『우주소년 아톰』의 주제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엔딩곡을 작사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인, 작사가로 뿐만 아니라 그림책 작가와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번역서로는 『키다리 아저씨』를 비롯해 레오 리오니의 『으뜸 헤엄이』, 찰스 슐츠의 『피너츠 북스』 등을 펴냈다.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동화, 그림책, 산문집, 대담집, 소설집, 번역서 등 꾸준히 활동 중이다. 어린이책에도 관심이 많아 『우산을 쓰지 않는 시란 씨』, 『구덩이』, 『살아 있다는 건』, 『우리는 친구』 등의 작품을 썼다. 아사히상, 요미우리문학상, 마이니치예술상 등을 받았다.
-출처 yes24
첫댓글 구덩이다~~^^
내가 읽은 구덩이와 다른 구덩이다~^^
어째 이 구덩이가 더좋아 보이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