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차를 구입했었던 1996년부터 결혼 후 강서구에서 살았었던 2005년까지 10년간 김포와 강화도에 뻔질나게 드나들었었습니다. 딸아이의 유년기와도 맞물렸기에 반나절짜리 나들이 코스로 맞춤이었습니다. 지금이야 김포하면 신도시가 연상되지만 당시만 해도 신도시는 커녕 김포시청 부근만 번화했을 뿐 고촌, 양촌, 대곶 등 지명에서 조차 촌내를 풀풀 풍기던 지역이었습니다.
김포는 강화도로 가는 경유지이자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 있는 곳입니다. 유리공예 체험을 해볼 수 있는 김포 그라스빌, 초등학교가 국민학교로 불리던 시절을 엿볼 수 있는 덕포진교육박물관, 북녘까지 밝게 비추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유명한 애기봉 전망대와 예쁜 절 개운사, 산책하기 좋은 문수산자연휴양림, 그리고 큰기러기, 쇠기러기, 황오리, 재두루미, 저어새(멸종위기의 천연기념물) 등 수많은 새들을 관찰할 수 있는 조강포 등 세밀하게 찾아보면 재미진 곳이 무궁무진합니다. 다소 식상해 보이는 강화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장곶돈대, 마니산, 참성단, 함허동천, 동막해변, 외포리 등 유명 관광지뿐만 아니라 돋보기로 들여다보면 깨알같이 흥미진진한 곳들이 참 많습니다.
산 좀 타봤던 갑판장이 최고로 꼽는 봄철 산행지는 강화도 고려산입니다. 군부대가 주둔하기에 평소에는 패쇄된 곳이지만 진달래가 필 무렵에 한시적으로 등산로를 개방합니다. 여수의 영취산 진달래 군락지와 더불어 구름을 밟고 올라선 고려산 정상에서 바라 본 진달래 군락지는 아니 본 사람은 곧이 믿기 힘든 별천지입니다.
봄철 고려산을 올랐다면, 가을엔 마니산을 추천합니다. 강화도 남쪽에 있는 정수사를 기점으로 마니산 참성단까지 다녀오는 왕복 3시간짜리 코스입니다. 정수사에서 30분 정도면 능선에 도달합니다. 거기서 한 시간 거리에 참성단이 있는데 거기까지 가는 능선길이 장쾌합니다. 바위벼랑 아래 남쪽으로 광활한 동막해변이 펼쳐져 있고, 흙벼랑 아래 북쪽으로는 황금벌판이 넘실거립니다. 능선을 타고 가다보면 짜릿하니 손바닥과 발바닥에 전기가 수시로 오르는 경험은 덤입니다.
겨울엔 한옥으로 지어진 독특한 분위기의 성공회 성당 두 곳을 둘러볼만 합니다. 강화성당과 성 안드레성당입습니다. 오가는 길엔 가끔 하늘을 우러러 보기를 바랍니다. 여기가 천수만인가 싶을 정도로 철새들의 군무를 실컷 구경할 수 있으니까요. 특히 저녁놀이 불타오르는 하늘에서 펼쳐지는 새들의 군무는 엄청납니다.
갑판장이 김포나 강화도로 나들이 갈 때 절대 빠뜨리지 않는 일정은 목욕입니다. 김포 약암홍염천과 옥천탕, 강화도 강화해수탕, 강화로얄사우나, 마라칼슘탕 등 시설은 후지지만 물이 좋은 목욕시설이 여럿 있어 골라가는 재미가 솔솔합니다. 이 중 황복으로 유명한 창후리선착장 입구에 있는 마라칼슘탕은 1980년대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가족탕입니다.
김포와 강화에는 즐길거리뿐만 아니라 먹을거리도 풍부합니다. 철마다 대하, 꽃게, 장어, 주꾸미, 농어 등으로 유혹하지만 품과 비용에 비해 만족도가 높지 않기에 본척만척 할 뿐입니다. 기분 내려다 되려 기분 잡치는 수가 있으니 말입니다. 김포에선 벌말매운탕(인천 계양구)의 민물매운탕과 태백산 장기점의 점심한정 한우불고기를 주로 먹습니다.
강화도에선 봄이면 진달래축제가 벌어지는 고려궁지에서 진달래와 쑥 내음이 벤 화전과 쫀쫀한 도토리전을, 여름엔 밴댕이나 병어를 별미로 맛만 봅니다. 식사는 강화섬쌀과 순무김치를 맛볼 수 있는 식당으로 정합니다. 십중팔구는 초지진 부근에 있는 향토음식점인 대선정에서 시래기밥이나 메밀칼싹두기(메밀칼국수)를 먹습니다.
시래기밥/대선정
아마 시래기밥을 먹어 본 사람은 드물지 싶습니다. 뭐 별거 없습니다. 요즘 각광 받고 있는 곤드래밥과 비슷합니다. 밥을 지을 때 곤드레 대신 시래기를 넣으면 시래기밥이고, 무를 넣으면 무밥, 콩나물을 넣으면 콩나물밥, 굴을 넣으면 굴밥입니다. 여기에 들기름과 양념간장을 끼얹어 비벼 먹습니다.
메밀칼싹두기(메밀칼국수)도 별미입니다. 메밀로 반죽을 빚다보니 밀가루에 비해 반죽이 찰지지 않아 면발이 툭툭 끊깁니다. 면발을 열심히 흡입하다 보면 짧게 끊긴 면발이 콧등을 치기도 합니다. 이쯤에서 눈치를 채셨겠지만 강화도 향토음식인 메밀칼싹두기는 강원도 향토음식인 콧등치기국수와 동류입니다. 예전엔 1인분씩도 주문할 수 있었는데 요즘엔 2인분 이상 주문해야합니다.
시래기밥 2인분 상차림/2017년 9월 3일 저녁
제 1열 : 시래기밥
제 2열 : 양념간장, 고구마줄기, 시래기나물, 열무김치, 콩자반
제 3열 : 약과와 흑설기(후식), 된장찌개, 순무김치
제 4열 : 고구마순무침, 부추김치, 잔멸치볶음, 고사리나물, 고추지
제 5열 : 시래기밥
지난 일요일에도 대선정에서 시래기밥을 먹었습니다. 주연인 시래기밥도 맛났지만 조연인 된장찌개는 물론이고 감초격인 양념간장과 단역인 반찬들까지 모두 제 역할에 충실합니다. 시래기밥은 푸근한 시래기 내음이 베었고, 된장찌개는 구수한 시골 맛이 풍깁니다. 반찬들 하나하나, 간장, 들기름, 파, 마늘 따위의 양념류까지 제 맛을 냅니다. 이러니 아니 맛있을 수가 없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이렇게 먹을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반찬을 첩첩이 쌓아 놓으면 무엇 하겠습니까? 젓가락 한 번 데지 않을 것들이 수두룩할텐데 말입니다.
대선정(외관)
부디 오래 번창하길 바랍니다만 바람과는 다르게 점점 낡아가는 대선정의 외관에서 흥망성쇠의 풍진 세월이 읽힙니다. 문득 어머니와 대선정이 닮았단 생각이 듭니다.
<갑판장>
첫댓글 강화에 가면 토가에서 순두부.손두부 새우젓찌개나 우리옥에서 백반으로 한다지.
기분내려다 기분잡친다에 공감 백만표...ㅎㅎ
한 종류를 왕창 먹는 거보단 요것 조것 다양하게 먹는 걸 선호하니 서울의 단골집들이 만족도가 높아서요. 식재료 못지않게 솜씨도 중하고요.
강화도는 갈때마다 오가며 차 막힐까 두려워했던 기억이,,,태백산 불고기가 생각납니다
오후에 출발하면 거의 안 막힙니다. 김포나 강화에서 목욕부터 한 후에 좀 이른 저녁식사를 하면 한결 여유롭습니다. 드라이브삼아 해안을 따라 돌다 전망이 좋은 카페에서 석양을 즐기세요. 어두워지면 귀경길도 잘 뚫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