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 오후 6시 30분. 서울 명동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실 3층에서 유족과 13년 간 그를 기억해 온 이들이 함께 모여 故 김훈(요한 비안네) 중위 13주기 추모미사를 봉헌했다.
미사를 집전한 박동호(서울대교구 신수동본당 주임) 신부는 강론에서 “세상을 둘러보면 의인들은 고난의 길을 걷고, 악인들은 오히려 영광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선하고 옳은 길을 가는 이들이 자신의 길을 의심하게 된다”라면서 “가장 나쁜 것은 의로운 길, 선과 정의를 간직하고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외롭게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세상을 바꾸는 것은 포기할 수 있겠지만, 둘러보면 의로운 길을 꿋꿋하게 가는 누군가가 분명히 있다. 그런 이들을 외면하거나 잊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드러내놓고 악한 길을 가는 것 보다, 선한 길을 가는 이들에게 무관심한 것, 실천하지 않는 것이 훨씬 아픈 일이다. 아마도 김훈 중위는 우리가 그를 잊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울 것이다. 옳은 길을 가는 이들이 외롭지 않도록 따뜻하고 선한 마음으로 함께 진리의 길을 가자” 라고 당부했다.
|
 |
|
▲ 사진/정현진 기자 |
故 김훈(요한 비안네) 중위는 지난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241 GP 3번 벙커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수많은 의문점과 조사과정에서 자살로 볼 수 없다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그는 지금까지 경기도 벽제 군부대 영현실 창고 안 유골함에서 안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 김척(라우렌시오) 예비역 중장의 진상규명을 위한 싸움 역시 13년째를 맞았다.
김 중위가 사망한 당시, 군은 사고 발생 채 2시간이 지나지 않은 시각에 사망 원인을 '자신에게 지급된 권총을 이용, 스스로 격발하여 사망함', 즉 '자살'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초동수사의 부실로 현장에서 발견된 권총이 김훈 중위의 것이 아니라는 것도 나중에서야 제보로 밝혀졌고, 김훈 중위의 오른손에서 화약흔이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도 가장 중요한 의문점으로 남았다.
유족과 인권단체 몰래 군이 실시한 1998년 10월 2일, 1999년 2월 6일, 2000년 1월 28일 등 세 차례의 총기 시험발사 결과 시험자 7명 모두의 손에서 바륨과 안티몬 등 뇌관 잔재물이 나왔다는 결과에 대해 군 수사팀은 실험 결과를 은폐했다.
그러나 김 중위 사망 직후 1차 수사를 담당했던 미군 범죄수사대는 현장에서 발견된 권총(M9 베레타)과 실탄, 탄피 등의 유류품을 미 육군성 범죄수사연구소로 보내 감식을 의뢰했고, 한국군 군의관의 ‘자살’이라는 부검결과와는 달리 '사망자의 왼손바닥에서만 화약이 검출된 것으로 보아 스스로 쏘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특별한 주의 문구를 명시했다.
|
 |
|
▲ 故 김훈(요한 비안네) 중위 영정 (사진/정현진 기자) |
권총을 발사한 사람의 손에 묻은 뇌관화약 성분인 바륨과 안티몬 등을 채취하여 분석하는 '뇌관화약 잔사 확인시험'은 전 세계적으로 권총 발사자를 식별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김 중위의 왼손 바닥에서 발견된 화약은 '바륨'과 '안티몬' 등 뇌관화약 성분으로, 이것은 탄환의 추진제 역할을 하는 무연화약과는 다른 성분이다. 오른손잡이인 김 중위가 스스로 방아쇠를 당겼다면 오른손 손등에 뇌관화약 성분이 검출 되어야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자살로 단정하고 수사를 진행했던 1군단 헌병대(1차 수사), 육군 고등 검찰단(2차 수사), 국방부 특별 합동조사단(3차 수사)은 "김 중위의 왼손 바닥의 화약잔재로 보아 총구를 고정하기 위하여 왼손으로 총열을 잡고 발사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당시 뉴욕 주정부 소속 법의학자로 1천구가 넘는 권총 사망자 시신의 사인 분석 경험이 있는 노여수 박사는 김훈 중위의 왼손에서 발견된 뇌관화약성분은 '자신에게 겨눠진 총을 막는 과정에서 생긴 방어 흔적'(디펜스 제스춰)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군 수사단의 결과 발표 이후, 김 중위 유가족들은 '군 수사기관이 제대로 직무를 수행하지 않아 유가족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요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 1심에서는 패소했지만 2심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김훈이 사망하자마자 미군측과 부대원을 통하여 자살로 성급히 판단되었고, 이에 따라 당일 언론을 통해 김훈이 자살했다는 보도가 나왔으며, 부검을 담당한 군의관은 부검 직후 자살로 예단한 사체검안서를 작성하는 등 사건발생 초기부터 제대로 된 조사나 수사 없이 김훈이 자살한 것이라는 예단이 부대 내·외부에 지배적이었고, 그런 정황이 수사기관의 수사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바, 과연 군 수사기관에 진상규명의 의지가 있기나 하였던 것인지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2006년 12월 13일 대법원도 "초동수사를 담당한 군 사법경찰관은 현장 조사와 보존을 소홀히 하고 주요 증거품을 확보하는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소대원들의 알리바이 조사도 상당기간이 지난 뒤 형식적으로 하는 등 잘못이 적지 않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군 수사기관이 고의로 사건을 은폐 또는 조작했다거나 2차, 3차 수사도 잘못됐다는 유족 측 상고이유는 기각했다.
김 중위의 아버지 김척 씨는 2006년 5월, 대통령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아들의 사인을 정확히 밝혀달라며 진정했고, 군 의문사위는 같은 해 12월 김 중위 사건에 대한 조사 개시를 결정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2009년 12월 군 의문사위는 "군 수사기관의 초동 부실수사로 인해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기 어렵게 되었다"라고 발표하면서 김훈 중위 사인에 대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며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정했다.
|
 |
|
▲ 추모 기도를 올리고 있는 아버지 김척(라우렌시오) (사진/정현진 기자) |
유족들은 진상규명이 이뤄진 뒤, 당당하게 현충원에 안장되는 것을 바랬지만, 초동 수사 미흡으로 인해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결정이 난 뒤, 김훈 중위를 자살자가 아닌 순직자로서 현충원에 안장하고자 했다.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들을 쉴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2010년 6월, 김훈 중위의 부친 김척씨는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동창회장 오영우 예비역 육군대장)에 김훈 중위의 현충원 안장을 도와달라고 요청했고, 육사 총동창회는 운영위원회에서 논의를 거쳐, 국방부장관에게 공식 청원했다.
이유는 김훈 중위가 근무 중 총상으로 사망했으며 그의 사망 원인에 대해 군 의문사위 등 3개 국가기관의 결론처럼 "타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자살 역시 아니다"는 결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 5항 가호의 '군인이나 경찰공무원으로서 교육훈련 또는 직무 수행 중 사망한 자'에 대해 국가유공자로 예우 한다는 조항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결과는 사실상의 거부였다. 2010년 8월 5일, 육군 인사처리과는 중간 회신문을 통해 청원에 대해 국방 조사본부(합조단)에 의뢰하여 재조사 결과를 가지고 전(사)사망 심의위원회에 회부하여 결정할 예정'이라고 답했지만, 이는 거부를 위한 형식적 절차라고 판단한 육사 총동문회는 다시 2010년 8월 26일, '중간 회신에 대한 총동창회 의견서'라는 제목으로 육군 참모총장에게 ‘도의적 타당성을 가지고 합리적인 결론을 내려줄 것’을 재차 요청했다. 그러나 군은 2010년 11월 23일, ‘자살이므로 순직처리 안된다’는 결과를 보내왔다.
13년 전 발생한 김훈 중위 의문사는 우리사회의 군대 내 사망사고에 관한 대중적 관심을 촉발시킨 대표적 군의문사 사건 중 하나다. 김척 씨는 매 년 아들의 추모미사를 봉헌하면서, 군과의 외롭고 험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그는 “내 아들은 자살자가 아니다. 그리고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법의 정신으로라도 이 싸움은 꼭 이겨야 한다. 잘못된 초동수사, 증거훼손, 모든 의문점을 예외로 두고 자살자로 판명한 뒤,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국방부는 너무나 부도덕하고 비겁하다”고 말했다. 처음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는 비록 “아들이 의문의 죽음을 맞았지만, 사랑하는 군 조직이 전체적으로 불명예를 안게 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13년의 절망 앞에서 “도대체 정의란 무엇인가?”라고 분노로 되묻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