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약함의 영성
마지막으로 나약함의 영성인데 제가 사제 서품 성구로 정한 바오로 사도의 2코린토 (12, 9. 10) " 나의 힘은 약한데에서 드러난다. 내가 약할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인 말씀입니다. 나약함을 약점으로 자랑한다는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힘과 권력, 능력등의 어떤 그룹과 맞서서 우리가 그동안 봐오지 못했던 나약함이 지니고 있는 어떤 가치, 이것을 새롭게 보자는 말씀이고 제가 볼때는 이것이 구원의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은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한 사람들의 겸손함을 통해 구원될 수 있다는 것이 사도 바오로의 경험이었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사실은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한 것만큼 발전 가능성이 높은것도 없죠.
뭐 나는 베스트다. 이러면 끝, 진짜
끝인거예요.
최근에는 다양함에 대해서 새롭게 접근하는 움직임이 있는데 나약함, 상처입기 쉬운 (vulnerable),취약함은 인공지능 시대에 더 부각되는 중요한 가치로 여기엔 긍정적 가치로 상처입기 쉽지만 동시에 상처입기 쉬운 어떤것을 무릅쓰고 남에게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피 흘려 길에 쓰러진 사람을 보고 레위는 할 일이 있어서, 사제는 부정 탈까봐 그냥 지나치지만 착한 사마리아인은 그를 보고 가엾은 생각이 들어, 이 가엾은 맘은 자신이 상처입는걸 무릅쓰고 도움을 주는겁니다. 저 사람의 처지가 나의 처지라 느끼고 저 사람의 처지를 나의 강력한 도움의 요청으로 받아들인거죠. 이게 바로 나약함이고 여기서 하느님의 나약함을 얘기할 수 있습니다. 연약하게 부서지기 쉬운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비참한 현실, 즉 삶을 보고 저 위에서 뒷짐지고 무관심하게 계시는 분이 아닌 인간이 되셔서 상처입고 당신의 존재를 내어줌으로써 인간을 돌보시고 치유하시고 건강을 회복시키고
생명을 주시는 분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나약하신 하느님까지 이야기 할 수 있다는거죠. 포용력 있고 민감하게 다른 사람의 처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때에 따라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다가가서 자신의 삶을 나누는 그런게 바로 나약함의 영성입니다.
오늘 결론적으로 시노달리타스의 영성은 바로 나약함의 영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상처입은 사람의 처지를 보고 나를 강력하게 요청하는 울부짖음을 알아듣고 그에게 도움을 베풀어 그와 삶을 나누고 그와 하나되는게 바로 나약함의 영성이고 시노드적인 영성이 아닐까요??
그러기위해서는 늘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한거죠. 그리고 상대방의 처지에 관심을 갖고 늘 가까이 다가가 가르치고 말하기보다는 먼저 듣고 배우려는 그런 자세가 필요한데 이것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긴 어렵더라도 우리가 속해 있는 다양한 소공동체, 레지오, 직암회등 소그룹 속에 들어가 경청과 공감하는 시간들을 통해 많이 훈련할 수 있을 때에 우리안에 나약함의 영성이 더 커지고 그걸 통해서 우리가 변화된 공동체에 그런 나약함이 무르익는다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황일광 복자께서 경험하신 바로 그러한 아름다운 형제 공동체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으로 기도하면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한민택 바오로 신부님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나약함의 영성
너의 나약함과 나의 나약함이 함께 가는 길
인간이 되시고 당신의 존재를 내어주시며
나약함으로 내려오시는 하느님
나약함의 신비여~~
나약함의 영성은 선한 사마리아이신 예수님이 기준점인듯요. ...늘 그분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키워야 겠어요. 더운 날씨 건강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