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밤에 성지의 쉼터에서 혼자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성전에 앉아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자연 속에서 바치는 기도도 좋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날의 밤은 정말로 운치가 있었습니다.
반짝이는 밝게 빛나는 별들과 환한 둥근 달이 너무나 예뻤고,
밤의 정막을 조용히 깨뜨리는 조그마한 벌레 소리 역시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의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이런 밤에 제가 키우는 강아지와 함께 밖으로 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서 성무일도를 바치고 있었는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글쎄 테이블 위에 잠시 놓아 둔 저의 안경을 몰래 물고 가서, 다시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든 것입니다.
렌지에는 심한 흠집을 남겨놓아서 도저히 재사용이 불가능했습니다.
안경테 역시 심하게 휘어져 있었고 이곳저곳에 이빨 자국이 가득합니다.
다음 날 안경점에 갔습니다.
전에는 코의 눌림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값이 조금 더 나가더라도 가벼운 안경테를 찾았는데
이번에는 굳이 가벼운 안경테가 필요할까 싶어서 저렴한 안경테를 찾았습니다.
만 원짜리부터 찾다가 2만 원짜리 안경테를 선택했습니다.
이제 안경렌즈를 선택할 차례입니다.
전에 갔던 안경점에서는 이런 렌즈가 좋다고 하면서 주로 수입 렌즈를 추천하곤 했었지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예 비싼 수입 렌즈를 꺼내보이지도 않고
그냥 국산렌즈가 만 원, 이만 원, 삼만 원으로 있는데 이 중에서 하나 선택하라고 합니다.
고가의 안경테를 선택하면 무조건 고가의 안경 렌즈를 추천받았는데,
저가의 안경테를 선택하니 고가의 안경 렌즈는 아예 말씀도 하시지 않더군요.
그러면서 전에 괜히 비싼 안경을 썼던 것이 아닐까 싶더군요.
저렴한 안경으로도 충분했는데 안경점 직원의 호객행위(?)에 넘어가서
이제까지 제 분에 넘치는 안경을 썼던 것 같습니다.
이 정도로도 충분한 것을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을 선호했던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만족의 삶이 아니라, 차고 넘치는 풍족한 삶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차고 넘치는 것들을 모두 누리며 사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그런데도 왜 더 많은 것과 더 좋은 것들만을 원하며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상의 것들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하시지요.
주님의 계명은 차고 넘치는 이 세상의 풍족함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비워야만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계명을 지키면 주님의 말씀처럼 기쁨이 우리 안에 가득하게 됩니다.
세상의 풍족함만을 쫓아서는 안 됩니다.
그 풍족함에 길들여져서 점점 더 많은 것들을 더 원하게 될 것이고,
그 욕심과 이기심으로 인해 주님의 사랑과 정반대편에 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것들이 아니라, 주님께 길들여져서 주님 사랑에 머무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