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는 시간이 아주 빨라졌습니다. 오전 6시면 움직여도 좋을만큼 밖은 훤해집니다. 어제 오전까지 꽤 많은 비가 내렸으니 오늘 저만의 고사리 벌판에는 다 채취하지도 못할만큼 지천일겁니다. 이른 시간이니 다른 채취자들이 다녀갈 수도 없고 또 그들 중에는 선수들도 많아서 더 지천으로 깔린 장소를 꿰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혼자서 고사리 꺾으면서 고사리 꽃다발도 만들어보고 고사리의 자태를 사진에 담아보기도 합니다. 아들녀석, 웬만하면 엄마따라 나설 법도 하건만 고사리 꺾으러 간다는 말에 도로 이불뒤집어 씁니다. 엄마가 어디로 갈 지 머리 속에 훤히 그리고 있을겁니다.
고사리는 친정엄마가 참 좋아했기에 많이 생각나게 합니다. 이 자리에서 고사리뜯고 있었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요? 아마 종일 멈추지 않고 했을 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고사리 삶을 때도 옛날 어린시절 외삼촌 집에서 이른 새벽마다 풍겨오던 소여물냄새가 자꾸 생각납니다. 고사리 삶을 때 풍기는 냄새가 비슷합니다.
유난히 맛이 뛰어난 고사리는 줄기가 통통한 진하거나 약한 초코렛 색깔이 깔린 것이랍니다. 꺾을 때 정말 부드럽고 가벼운 똑 소리가 나는 것이 최상인 듯 합니다. 꺾는데 저항감이 느껴지는 것은 일단 맛에서 떨어질 것이라 봅니다. 새순이 벌어져서 아주 약간이라도 잎모양을 올렸다면 이미 줄기는 강해져 있습니다. 고사리까지 익혔으니 절반은 제주도 사람된 듯 싶습니다.
요즘들어 간만에 맡아보는 냄새때문에 머리는 자주 옛날 추억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태균이는 몇 가지 면에서 친정아버지와 비슷한 성향이 있습니다. 특히 음식에서 그렇고 저를 유난히 좋아해준 점이 그렇습니다. 특이하게도 친정아버지는 태균이가 만삭일 때 돌아가셨습니다.
고사리가 너무 많지만 다음 사람에게 그만 양보하고 집으로 갑니다. 오늘도 할 일은 너무 많고, 내 멋대로 건축을 위한 공식적 작업들이 이것저것 꽤 많습니다. 우선 건축허가부터 받아야하기에 그건 제가 못하고 전문건축사가 대행을 해주어야 해서 대략적인 구상안을 가지고 미팅도 하고. 미팅할 때마다 옆에 앉아있는 태균이, 뭐든 끼어들려 합니다.
제주시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둔지오름이 눈에 띄어서 둔지오름 산책길을 걸어보는데 어제와 달리 태균이가 엄청 꾀를 피워대고 입구에서부터 움직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름 정상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둘레길행인데도 일단 오름은 내심 힘들다고 생각하는지 꽤 느적거립니다.
앞서가면 따라오겠지 하고 준이랑 열심히 걷고 끝에서 기다려보지만 나타나는 기색이 전혀 없습니다. 겨우 1키로 남짓한 둘레길인데 왕복으로 하니 2키로 구간은 되네요.
기다리다지쳐 돌아와보니 아까 앉아있던 자리는 텅비었고, 헤어졌던 그 자리에서 앞으로 진전한 것이 아니라 되돌아 가버린 것 같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초입의 벤취에 앉아서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웃고 있습니다. 꾀쟁이 같으니... 그제서야 엄마 사진도 찍어주고.
가능하면 오름은 피해서 만보행을 해야 되겠습니다. 어제 세화오일장에서 사가지고 온 토종닭 덕분에 백숙 거나하게 먹으며 또 하루를 마감합니다. 가만히 지나가는 날은 단 하루도 없는 듯...
첫댓글 대표님, 고사리 사진 마지막 사진은 고사리 아니고 고비 같습니다.
고비는 하루쯤 물에 담궈 독을 빼야 합니다. 맛도 양분도 고사리 보다 윗길로 치지만 물에 충분히 울궈 내지 않음 쓴 맛이 강합니다.
태균씨 하루하루가 희망을 줍니다.🙏🌻‼️
네. 마지막 사진은 둔지오름에서 딴건데, 대학동기가 알려주더라고요. 잘하면 맛있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고비였군요. ㅎㅎ
@황순재 예, 데친 다음에 울궈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