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5월 11일 월요일
[(백) 부활 제6주간 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바오로 일행이 필리피에서 복음을 전하였을 때 리디아가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 아버지께서 보내 주실 진리의 영을 보호자로 약속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는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6,11-15
11 우리는 배를 타고 트로아스를 떠나 사모트라케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폴리스로 갔다.
12 거기에서 또 필리피로 갔는데,
그곳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첫째가는 도시로 로마 식민시였다.
우리는 그 도시에서 며칠을 보냈는데,
13 안식일에는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 그곳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14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15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진리의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26─16,4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6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27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16,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3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짓을 할 것이다.
4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우리는 성령의 힘으로 예수님을 증언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닥칠 박해도 예언하십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 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요한 16,2).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을 박해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하느님을 위하여 봉사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옳은 일을 한다고 믿으면서 예수님께 하였듯이 제자들에게도 할 것입니다.
미국 유학 시절, 저는 고생하며 얻은 공부 요령을 막 유학 온 후배 신학생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후배들은 저를 멀리하였습니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후배들의 생각이나 처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 강요하였기 때문입니다.
흔히 우리는 교회가 박해를 받은 일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교회도 하느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폭력을 휘두른 적이 있습니다. 천주교는 이러한 역사를 통하여 배우고 성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종교와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고 넉넉하게 품는 교회가 되려고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그들의 때가 오면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16,4). 우리 또한 자신이 옳다고 믿으며 다른 이를 박해하지 않도록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 생각에 갇혀 있지 말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갑시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그분이 움직이시도록 우리가 좀 멈춥시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요즘 계속되는 복음 말씀은 주제어는 성령입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스승 예수님께서 떠나가신 자리를 진리의 성령, 협조자이신 성령, 보호자이신 성령께서 채워주시고, 늘 함께 하실 것임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 교회 안에서, 그리고 우리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삶 안에서 성령의 역할은 절대적입니다. 우리 모두가 꿈꾸는 충만하고 활기찬 영적 생활의 원동력은 곧 성령의 현존이요 활동입니다.
돌아보니 제 수도 생활 안에서 가장 부족했던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내 안에, 우리 공동체 안에 항상 현존해계시고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계시는 성령의 현존에 대한 깨어있는 의식! 그것의 결핍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도 생활도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밋밋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영적 생활에 대한 의미도, 재미도 사라져갔습니다. 영성 생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작은 것에 크게 좌절하고 실망하곤 했습니다.
따지고 보니 그랬습니다. 성령께서 부재하시면 우리 신앙 공동체는 그저 하나의 집단이요 여인숙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을 때 우리가 행하는 모든 사목활동 역시 그저 지루한 일일 뿐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 공동체에 정말 필요한 것은 진리의 영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도록 우리 각자의 마음을 활짝 여는 일입니다. 협조자 성령께서 섭리하시고 활동하시도록 우리가 좀 멈추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삶 안에 분명히 살아 숨 쉬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큰 위안으로 다가오는 한 가지 실화가 있습니다. 존경하는 지난 세기 대 영성가 헨리 나우웬 신부님께서도 자주 영적 메마름, 성령 부재 체험으로 인해 힘겨워하셨습니다.
하루는 헨리 나우웬 신부님께서 살아있는 성녀 마더 데레사 수녀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수녀님 앞에 일대일로 앉자마자 신부님께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속사포처럼 당신 내면의 숱한 문제점들을 줄줄이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헨리 나우웬 신부님의 고민 보따리를 오래도록 말없이 듣고 계시던 수녀님께서는 그가 말을 그치자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짧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신부님, 고생이 많으시군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딱 두 가지만 매일 실천해보십시오. 첫째, 매일 한 시간 동안 주님을 흠숭하십시오. 둘째, 죄라고 생각되는 일은 절대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 신부님은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짧은 충고가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해서 실망했지만, 나중에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수녀님의 짧은 한 마디 말씀은 머지 않아 제 존재의 중심을 관통했습니다. 그분의 솔직하고 단순한 한 말씀이 제 불만의 큰 풍선을 터트려버리셨습니다. 제게는 더 이상 또 다른 그 무엇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여전히 제 마음과 정신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평생토록 실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헨리 나우웬 신부님은 그때 완전히 깨달았습니다. 기도에 대해 강론을 하고 글을 쓰는 것보다 실제로 기도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동시에 공동체 생활에 대해 연구하고 강의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공동체 생활을 잘 하는 것이 몇 백배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헨리 나우웬 신부님께서는 그 뒤로 매일 한 시간 이상 꼬박 꼬박 주님의 성체 앞에 앉아 기도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잘 나가던 대학 교수직을 내려놓고 토론토 데이 브레이크 공동체에 들어가 본격적인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 헨리 나우웬 신부님께서는 전보다 훨씬 더 가깝게 성령의 능동적인 현존하심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인생의 동반자이자 인도자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 신부님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순례자들에게 따뜻하고 감명 깊은 영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수녀님 역시 평생토록 강한 하느님 부재 체험, 혹독한 성령 부재 체험에 시달리셨습니다. 살아생전 얼마나 영적 어둠 속에서 힘겨우셨으면 수녀님께서는 이런 말씀까지 남기셨습니다. “만일 제가 성녀(聖女)가 된다면 ‘어둠의 성녀’가 될 것입니다.”
그 오랜 영적 메마름과 지독한 영적 어둠과 시련 속에서도 수녀님께서는 매일 주님을 간절히 갈구했으며 매일 그분께 매달리셨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끝끝내 보여주시지 않자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안에서 주님을 찾았고 마침내 그분을 발견했습니다.
성령을 받으려면 변호인이 필요한 존재가 돼라.
전삼용 요셉 신부님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중략)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내쫓을 것이다.
게다가 너희를 죽이는 자마다 하느님께 봉사한다고 생각할 때가 온다."
(요한 15,26-16,2)
찬미 예수님! 부활 제6주간 월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참으로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가지를 동시에 선언하십니다.
하나는 '진리의 영이신 보호자'를 보내주시겠다는 황홀한 약속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들이 회당에서 쫓겨나고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섬뜩한 박해의 예고입니다.
우리는 흔히 성령을 받으면 만사형통하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칭송을 받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런데 왜 진리의 영이 오시는 사건과 세상의 박해가 세트 메뉴처럼 묶여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진리를 주장하는 자'가 되어야만 성령이
필요해지기 때문입니다.
진리가 없으면 우리는 박해받을 일도 없습니다. 물론 성령도 없을 것입니다.
이 기막힌 영적 역학을 소름 끼치도록 정확하게 보여준 실제 방송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2012년 SBS 방송 프로그램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2012)에 방영되었던 '50년째 산속 은둔 할아버지'의 사연입니다.
할아버지는 50년 전 세상에서 받은 끔찍한 상처 때문에 깊은 산속 동굴로 숨어들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극도로 불신한 그는 산짐승처럼 개 사료를 주워 먹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제작진이 다가가 그를 문명 세계로 구출하려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낡은 자아에 갇힌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의 구원'을 선포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제작진을 자신을 해치려는 적으로 간주하고 돌을 던지며 극렬하게 저항했습니다.
제작진의 진심 어린 말로는 도저히 닫힌 문을 열 수 없는 '박해'의 상황에 부딪힌 것입니다.
이때 제작진은 기가 막힌 묘안을 냅니다. 할아버지가 유일하게 마음을 열었던 옛 고향 친구들을 수소문해 산속으로 모셔 온 것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가장 좋아했다던
따뜻한 군고구마를 구워서 친구들 손에 들려 보냈습니다.
잔뜩 경계하던 할아버지는 친구들의 다정한 목소리를 듣고, 그들이 내미는 따뜻하고 달콤한
군고구마의 온기를 느끼자마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군고구마의 온기가 할아버지의 얼어붙은 영혼의 빗장을 녹여버린 것입니다.
마침내 할아버지는 50년 만에 동굴 밖 세상으로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논리가 파생됩니다.
깊은 산속 동굴(가짜 세상) 밖으로 이끌어내려는 제작진이 '우리(그리스도인)'라면, 그들의 굳은 마음을 열게 만든 고향 친구와 군고구마가 바로
'진리의 영이신 성령'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령을 뜻하는 그리스어 '파라클리토스(Paraclete)'는 곁에 불림을 받은 자, 즉 '변호인'을 뜻합니다.
제작진은 할아버지의 완고한 고집을 꺾고 진실을 증명해 줄 '변호인'이 절실하게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군고구마를 동원한 것입니다.
만약 제작진이 할아버지가 돌을 던질 때 "아유, 저렇게 고집을 피우는데 그냥 짐승처럼 살게
내버려 둡시다"라며 세상(할아버지의 고집)과 적당히 타협하고 철수해버렸다면 어땠을까요?
그들에게는 굳이 고향 친구를 수소문하고 군고구마를 구워가는 그 수고로운 '변호인'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완벽하게 똑같습니다. 파라클리토스이신 성령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이 사기꾼이 아니라 우주의 구세주이심을 세상의 법정에서 입증해내시는 하늘의 변호인이십니다.
우리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 "예수님이 진리입니다!
돈과 쾌락이라는 동굴에서 나오십시오!" 라고 주장할 때, 세상은 우리의 주장을 거부하며 돌을 던집니다.
바로 그 치열한 영적 법정에서, 내 힘과 내 언변만으로는 저 세상을 꺾을 수 없음을 뼈저리게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파라클리토스(변호인)이신 성령을 애타게 부르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오시어, 군고구마처럼 거부할 수 없는 은총의 온기로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시고 우리의 주장이 참 진리임을 변호해 주시는 것입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직장에서, 이웃 사이에서, 세상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며 "너희가 믿는 돈도 좋고, 적당한 쾌락도 좋지"라며 세상과 둥글둥글하게 타협하며 산다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은 우리에게 돌을 던지지 않습니다.
박해도 없습니다.
박해가 없으니 나를 방어하고 내 주장을 입증해 줄 '변호인(성령)'도 굳이 필요가 없습니다.
변호사는 법정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에게나 필요한 존재입니다.
아무하고도 싸우지 않고 모든 불의와 적당히 타협하며 소파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 세상에서 가장 비싼 변호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절대적인 원리를 법학적, 사회적 법칙으로 아주 명확하게 보여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바로 '내부 고발자 보호 프로그램(Whistleblower Protection Program)'입니다.
국가나 거대 기업의 끔찍한 비리를 발견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그 비리를 덮어주고 조직과 타협하여 뇌물을 챙기기로 했다면, 그는 떵떵거리며 편안하게 살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양심을 걸고 그 거대한 어둠의 세력을 향해 진실을 폭로(증언)하기로 결심하는 순간, 거대 조직은 그를 죽이기 위해 맹렬한 박해를 시작합니다.
이때 국가는 이 정직한 증언자를 살리기 위해 최정예 요원들을 파견하여 그를 보호하고,
법정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최고급 변호인단을 무상으로 붙여줍니다.
증언을 했기에 목숨의 위협을 받았고, 위협을 받았기에 국가의 막강한 보호 시스템(변호인)이 가동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폭로하는 투신이 없으면, 변호인도 출동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삶 속에서 파라클리토스이신 성령의 권능을 강렬하게 체험하고 계십니까?
만약 성령의 도우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삶이 무미건조하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우리를 버리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세상의 썩은 가치관과 단 한 번도 부딪히지 않고, 너무나 평화롭게 타협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성당에 나와 "성령이여 오소서, 저를 변호해 주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정작 세상 문밖을 나가면 불의와 적당히 타협하고 복음을 단 한 번도 외치지 않아 핍박받을 일이 전혀 없는 안전한 삶을 살고 있다면 성령의 위로도 바랄 수 없게 됩니다.
교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요한 복음 강해』에서 이렇게 단언하셨습니다.
"그대가 세상과 친하게 지낸다면 그대는 이미 진리의 변호인을 해고한 것이다.
파라클리토스 성령은 잠자는 자의 베개가 아니라, 진리를 위해 피 흘리는 투사의 검과 방패가 되기 위해 오시는 분이다."
(출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요한 복음 강론』).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매일 아침 산책길에 새 소리를 듣습니다. 요즘은 좋은 앱이 있어서 새 소리를 녹음하면 새의 이름과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그냥 듣던 때도 좋았지만 새의 모습을 알 수 있으니 더 좋았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땅을 기어다니는 작은 벌레를 봅니다. 발을 조심해서 걷게 됩니다. 혹 저의 실수로 벌레를 밟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벌레는 그런 줄도 모르고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천천히 기어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이런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작은 벌레를 잡기 위해서 바라보는 참새가 있습니다. 그 참새를 잡으려는 매가 있습니다. 그 매를 잡으려는 포수가 있습니다. 돌아보면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인 것 같지만, 늘 더 넓고 더 깊고 더 큰 세상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 이런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릴 때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학생이 되면서 나라를 바꿀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회사를 바꿀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가정을 이루면서 가족을 바꿀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결국은 나 자신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근 무력증으로 투병 중인 형제와 함께 부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봉사자들과 함께 병원에 찾아가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작년처럼 병원에서도 기꺼이 미사 봉헌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이제는 손도, 발도 사용할 수 없는 형제님이지만 밝은 모습으로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챗지피티, 제미나이, 클라우드, 그록을 이야기했더니 형제님은 그런 도구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거라고 했습니다. 형제님은 주로 클라우드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움직일 수 없고, 홀로 병원에 있어야 하는 형제님에게 인공지능은 세상과 연결해 주는 다리와 같습니다. 대화할 수 있는 친구와 같습니다. 그날 미사에 참례한 분 중에 수녀님을 제외하면 모두가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인공지능인 챗지피티를 자주 활용합니다. ‘글로벌 엔트리’를 신청할 때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신용카드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마치 길을 안내해 주는 도우미처럼 제가 질문하면 친절하게 답해줍니다. 10번을 물어도 친절하게 답해줍니다. 답변은 물론 다른 해결책도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길을 이야기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진리의 성령입니다. 진리의 성령께 의탁하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이 밝혀질 것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세상의 그릇된 기준은 무엇입니까? 부정한 여인을 돌로 치려고 했던 단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는 이들이 먼저 돌을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정한 여인의 죄를 묻지 않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의로움을 독점하려고 하는 권위주의입니다. 의로움은 권위주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의로움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봉사에서 드러납니다. 십자가를 지는 희생에서 드러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한 빌라도의 심판은 불의한 심판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남의 눈에 있는 작은 티를 보기 전에 내 눈에 있는 큰 들보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독서는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의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사도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꽃은 피었다 지기 마련이고, 사람은 나올 때가 있으면 들어갈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역사는 혼자서 모든 것을 하려 했던 사람들 때문에 본인은 물론 공동체가 수렁에 빠지는 것을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때가 다 될 것을 예감하십니다. 구원의 역사에 또 다른 협조자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것을 바쳐서 함께 했던 제자들을 떠나야 하고, 하느님 나라 운동에서도 떠날 때가 되었음을 말씀하십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주님의 ‘비움’이 바로 참된 자유의 시작입니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오늘의 성인
성 이냐시오 (Ignatius)
신분 : 수사
활동지역 : 라코니(Laconi)
활동연도 : 1701-1781년
같은이름 : 이그나티오, 이그나티우스, 이냐시우스
성 이냐시오 빈첸시오 페이스(Ignatius Vicentius Peis)는 이탈리아 사르데냐(Sardegna) 섬의 라코니에서 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들에서 힘든 일을 하며 자랐고 17살 때에 건강이 극도로 나빠지자 살아나기만 하면 수도자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건강을 회복한 후 그는 아버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살 때 그는 자신이 몰던 말을 통제하지 못하고 거의 죽을 뻔했다. 그런데 갑자기 말이 멈추고 조용히 걷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는 이 하느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셨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즉시 수도성소에 응답하여 부온캄미노(Buoncammino)에 있는 카푸친회에 평수사로 입회하여 1722년에 서원을 하였다.
그는 주로 이 집 저 집을 다니며 애긍한 것으로 동료 수도자들을 도왔는데 그 일을 거의 40년 동안이나 하였다. 그는 병들거나 외로운 이들을 위로하고 거리의 아이들을 격려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 이냐시오 수사로부터 오히려 선물을 받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적대하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고 죄인들을 회개시키며 문제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 주었다. 그는 일부로 한 악덕 대금업자의 집을 들르지 않고 건너뛰었는데, 이를 알고 그 대금업자가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장상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래서 장상은 성 이냐시오를 그 집으로 보냈고 그는 배낭에 음식을 가득 넣고 돌아왔다. 그러나 그 배낭이 텅 비워졌을 때 그곳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러자 성 이냐시오는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피입니다”라고 한 후 조용히 설명하기를 “이것이 제가 그 집에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은 이유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심을 지닌 그는 부드럽고 천진난만한 성품으로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의 잔꽃송이에 버금가는 행적을 쌓았다. 그는 1951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 간굴포(Gangulphus)
활동년도 : +760년
신분 : 순교자
지역 : 부르고뉴(Bourgogne)
같은 이름 : 간골포, 간골푸스, 간골프, 간굴푸스, 간굴프, 젠굴포, 젠굴푸스, 젠굴프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의 기사요 조정신하였던 성 간굴푸스(또는 간굴포)는 피핀(Pepin) 왕으로부터 총애를 받았다. 그는 한 귀족 여성과 결혼했으나 그 여인은 품행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부인의 행실을 비난하거나 해를 입히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집을 떠나 아발론(Avallon)에 있는 그의 성에서 은수자가 되었다. 그러던 중 그는 부인의 정부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의 명성은 특별히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고 사부아(Savoie, 프랑스 남동부와 이탈리아가 접하는 옛 지방)까지 퍼져나갔다.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고 있는 그는 간골푸스(Gangolphus, Gangolf), 간굴프(Gangulf), 젠굴프(Gengulf) 등으로도 불린다.
성 마메르토 (Mamertus)
활동년도 : +475년경
신분 : 주교
지역 : 비엔(Vienne)
같은 이름 : 마메르또, 마메르뚜스, 마메르씨오, 마메르씨우스, 마메르투스, 마메르티오, 마메르티우스, 맘메르또, 맘메르뚜스, 맘메르토, 맘메르투스
시인 클라우디아누스(Claudianus)의 큰형으로 알려진 성 마메르투스(또는 마메르토)는 프랑스 리옹(Lyon) 근교에서 태어난 사제로 학덕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열심하기가 그지없었다고 한다. 461년 비엔 교구의 주교가 된 그는 463년 자신의 관할권 밖에 있던 디(Die) 교구의 주교 축성과 관련하여 심각한 문제를 일으켜 큰 곤욕을 치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교황청에서 그에 대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 비엔의 주교로서 여생을 마쳤다. 교회사에 큰 자취를 남긴 그의 공적은 주님 승천 대축일 전 3일간을 '주님 승천 주간'으로 정하고 '보속하는 행렬'을 실시한 것이었다. 이때 바치던 기도문은 후에 로마 전례에 도입된 후 모든 서방 교회로 확산되었다. 그는 맘메르투스(Mammertus) 또는 마메르티우스(Mamertius)로도 불린다.
복자 베닌카사 (Benincasa)
활동년도 : +1426년
신분 : 은수자
지역 : 몬테치엘로(Montechiello)
같은 이름 : 베닌까사
이탈리아의 유명한 피렌체(Firenze) 가문의 후손인 베닌카사는 아주 어린 나이로 몬테풀치아노(Montepulciano)에 있는 성모의 종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25세 때에는 시에나(Siena) 교외 몬타냐타(Montagnata) 산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여기서 온전히 기도에만 전념하였으나 수많은 유혹과 싸워야 했다. 또한 그의 움막에는 조그마한 창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그 창문을 내다보면서 권고를 청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가르침을 전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를 긋거나 혹은 성수로써 치유의 기적을 베풀기도 하였다. 그는 이어서 사람들이 거의 접근하기 어려운 몬테치엘로의 한 동굴에서 여생을 보냈다. 주민들은 그가 살던 동굴에서 한줄기 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고 그가 운명한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29년에 승인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