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니 햇살이 밝다. 멀리서 장백 폭포의 물 소리가 숲을 스치는 바람 소리처럼 들려왔다. 창문을 열고 아이들 배낭과 짐을 정리 점검 했다. 오늘 저녁 식사 후에는 아이들은 다른 일행과 함께 연길에서 장춘으로 날아가 거기에서 자고 서울로 가고, 나는 연길에서 자고 아시아나 직항 편으로 서울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창문을 여니 멀리 장백 폭포가 보이고 백두산 정상쪽에서 싱그러운 그리고 적당히 차가운 바람이 불어 온다. 아이들을 깨우고, 어제의 부페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음식은 어제와 비슷했고 어제 공연을 했던 복무원들이 호텔 직원 복장으로 접시 정리등을 하고 있었다.
그날의 산행은 천문봉-철벽봉-고래등능선-흑풍구-불로봉-소천지 입구-관광 호텔까지의 원점 회귀 산행 이었다.
북파 산행은 천문봉에서 시작하여 계속 내려오는 길이어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아침 7시30분경 6명씩 태운 지프로 천문봉 기상대 까지 올라갔는데, 올라가는 길은 꼬불꼬불한 양장구곡, 아주 맑은 날씨이고 하늘은 청명했다. 한 없이 넓은 초원과 구릉으로 점철된 경관, 그리고 맑은 하늘은 찬탄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중국인 기사는 연신 크랙슨을 울리며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우리는 등줄기에 식은 땀을 흘려야 했다. 핸드폰 전화를 받으면서도 계속 속도를 줄이지 않고 질주해서 채 20분이 안되는 시간에 천지까지 올라갔다.
우리는 차에서 내리자 마자 즉시 짙은 안개와 강한 바람 매서운 추위에 휩싸였다. 중국 상인들이 국방색 오버같은 것을 중국 돈 20원 정도에 사라고 소리치며 몰려든다. 올라 올 때는 그렇게 맑았는데... 역시 백두산의 날씨는 예측을 불허한다. 겁에 질린 여성 회원 몇분은 등반을 포기하고 올라왔던 지프로 다시 내려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등반을 시작했다.
5분 쯤 버슬거리는 모래 자갈 길을 걸어 천지를 볼 수 있는 곳에 도착했다. 천지라 씌어있는 비석이 있고 그 너머의 천지는 안개때문에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면 천지가 보일 듯도 했으나 우리는 어제 보았던 협곡의 건너편 철벽봉과 고래등 능선을 향했다.
<철벽봉을 지나 고래등 능선으로, 구불구불한 양장구곡을 오르는 지프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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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지나온 용문봉쪽을 바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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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 폭포의 위용과 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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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서 부터 추위와 우리를 날려버릴 것 같은 바람을 뚫고 초원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철벽봉을 지나자
안개는 어느덧 걷히고 주변의 경관이 나타난다. 능선 우측으로 우리가 올라왔던 길이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있고, 좌측으로는 어제 내려왔던 장백폭포 아래의 협곡, 백하의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고, 앞 쪽은 확 트인 광활한 초원지대와 멀리 숲의 바다가 보였다.
바람은 점점 거세어지더니 9시 10분 우리가흑풍구에 도착할 때쯤은 서로 손을 잡고 걷지 않으면 바람에 밀려 날린다. 흑풍구는 장백폭포가 보이는 풍경 양쪽에 커다란 바위사이로 바람이 불어오는데 그 강도가 백두산에서는 제일 세다는 곳이다. 카메라를 쥔 손이 계속 흔들려서 사진을 찍는데 애를 먹었다.
<아래 길과 만나는 곳이 흑풍구 그 뒤로 불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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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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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의 바람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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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봉부근에서 초원과 하늘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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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충분하기에 우리는 초원에 앉거나 비스듬히 누워서 너무나도 파란 하늘과 그 하늘을 가로지르는 구름을 바라보기도 하고, 백두산의 맑은 바람을 들이 마시고, 바람의 냄새를 느껴보기도 했다.
누군가 배낭 속에 넣어온 소주를 찾아 내어 한잔씩 돌리기 시작했고, 나도 안주를 꺼내 거들기 시작했다. 큰아들에게도 한잔 권하면서 서로 편안한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이 곳에서 내려가기 싫다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정말 내려가기 싫었다.
산악 대장이 들쭉을 알려 준다. 아! 이것을 따서 담근 술이 들쭉 술이구나. 사방에 널려 있는 들쭉을 우리도 하나씩 따서 입에 넣어 보았다.
맛은 달콤 쌉싸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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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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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소천지가 보였다. 나뭇꾼과 선녀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곳, 자작나무 숲에 둘러싸인 조그만한 호수를 보며 우리는 비로소 관목지대로 들어섰다. 자작나무 숲을 지나며 야생화를 구경하고, 중국을 이야기 하고, 백두산을 이야기 하고, 우리 민족을 이야기 하며 아침에 출발했던 호텔로 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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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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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도백하까지는 40분 정도가 소요 되었다. 모든 길이 포장되어 있다. 비포장에다가 4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 서파 지역과는 대조적이었다.
가이드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70년대까지는 북한이 연변 사람보다 잘 살았다한다. 그래서 연변 사람들이 북한에 건너가 물건을 사고 팔고 하였다 한다. 그러나 80년대 초 등주석이 집권한 이래 역전이 되었단다.
한국은 83년 중국민항기 납치사건 때문에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는데 그 전에는 아주 가난한 나라라고 알고 있었단다. 납치되었다 돌아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한국에서 대접을 너무 잘 받았으며 또 너무 잘 살고 있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그후 다시 1988년 올림픽이 한국에서 개최되는 것을 텔레비전에서 보고 같은 동포임이 자랑스러워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자기 할머니는 남한이 고향인데 친척들이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되면서도 끝내 그리워하기만 하다가 돌아 가셨단다.
그후 탈북자들이 연변에 자주 넘어 오게 되었는데 붙잡히면 갈고리에 코를 꿰어 끌고 가던가 쇄골부위를 뚫고 갈고리에 걸어 끌고 갔다는 끔찍한 이야기들... 그 때는 한번 끌려가면 소식을 몰랐단다. 하지만 요즈음은 탈북 했다 끌려 간 사람도 다시 볼 수 있다고 했다.
우리 민족 뿐 아니라 인간들은 얼마정도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일까? 자기하고 생각이 틀려서, 자기하고 국적이 틀려서, 자기하고 민족이 틀려서등 그 외에도 셀 수 없는 이유들로 해서 인간들은 얼마든지 잔인 해 진다. 아! 흑풍구의 그 바람으로 인간들의 가슴을 다 쓸어버리고 그 파란 하늘로 채워 놓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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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 성님 !! 멋쟁이 성님..!! 두 아드님하고 찍은 사진이 넘 아름답습니다...부럽기도 하고요....!! 지금 제 마음은 백두산에 가 있는 기분입니다..울 성님 ...!!!!!!!!!!! 파이팅...!! 감사합니다.............
산행기를너무실감나게잘쓰써서 백두산에 안가도 간사람과같이대화가될수앴겠내요......정말 잘읽고감니다.........계속읽엇으면 좋겠는데 하산을사시는군요...............수고하셨읍니다......다음에만나면 삼겹살 소주 한잔하시지요...............
백두산 산행기 잘 감상하고 감니다. 너무 생생하게 글도 함께해서 보기도 좋았고 생각의 날개를 펼칠수 있었습니다. 오늘 꿈속에서 백두산 천지를 구경할까 합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