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팔다
‘팔다’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돈을 받고 물건을 남에게 주다의 뜻이다. 그런데 식량을 살 때만은 사러 간다고 하지 않고 팔러 간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 어떤 이는 ‘팔다’라는 말이 원래 ‘흥정하다’라는 뜻이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의견은 설득력이 별로 없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양식을 사는 경우에만 그 말을 사용했겠는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사는 것을 판다고 하는 것을 살펴보면, 양식을 판다, 콩을 판다, 쌀을 판다 등 곡식류의 거래에만 적용된다. 돈을 주고 벼를 사들이는 일을 ‘벼팔이’라고 하는 것도 이와 같은 계열이다.
아마도 이것은 가난에 따른 부끄러움을 감추고자 하는, 우리의 의식에서 표현되는 하나의 아이러니라 생각된다. 굶주리며 살아 왔던 우리의 치부를 가리고자 했던 넋두리이기도 하다. 가난의 극단이 굶는 것이며, 양식이 없는 것보다 더 서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체면을 중시했던 문화 속에서, 그것은 한없는 부끄러움이기도 하였다. 나이 많은 세대는 안다. 민초들이 얼마나 굶으며 살았던가를.
그래서 그들은 양식이 떨어져 근근이 모은 얼마를 가지고 양식을 사러 가면서, 없이 사는 서러움과 부끄러움을 겉으로 덮기 위하여 팔러 가는 척했던 것이다. 자인 장에 쌀 팔러 간다고 하고, 영천 장에 콩 팔러 간다며, 밀려오는 서러움과 부끄러움을 가슴에 묻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