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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노동정책연구소 이슈페이퍼]
4․15총선 통해 새 정치지형 만들어야
정용일 (사)평화철도 사무처장
2020년 경자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 한국 정치에서 가장 큰 이슈는 단연 21대 국회의원 총선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든 자유한국당(이하 자한당)이든, 또 다른 정당들이든 모든 길은 총선으로 통한다. 자한당이 국회를 버리고 성조기부대와 한 몸이 되어 거리를 헤집고 다니는 것도, 국회 안에 들어와서도 농성과 단상을 점거하고 몸싸움을 벌이는 것도 결국은 다 ‘총선 승리’를 위해서이다.
여당 심판보다 야당 심판 여론 높아
2020년을 맞아 MBC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4․15총선에서 누구를 심판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국정 실패한 여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의견이 35.2%, 반면 국정의 발목을 잡는 야당을 심판해야 한다는 의견이 과반이 넘는 51.3%로 나타났다.
물론 여론조사가 민심을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통상적으로 집권 하반기에 치러지는 총선은 집권 여당의 무능을 ‘심판’하는 기류가 일반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번 여론조사 결과가 예외적인 건 사실이다. 그만큼 정부․여당의 무능보다 거대야당의 의회정치 파괴에 대한 국민적 비판이 높다는 반증이라 할 것이다.
총선을 불과 100일 정도 앞둔 현재 주요 정당들의 입장을 살펴보자. 민주당의 경우 ‘어부지리’란 말로 대변된다. 민주당 지지자들 중에서도 자한당에 비해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것이 “민주당이 뭘 잘해서라기보다는 자한당이 자살골을 계속 넣은 덕분”이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최근에는 원안에서 많이 후퇴하기는 했지만 자한당을 제외한 4+1합의를 통해 선거법과 공수처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득의양양한 분위기이다.
반면 황교안 대표 체제하에서 자한당이 그동안 보여준 행태는 정치라기보다는 ‘발악’에 가깝다. 한기총과 전광훈 목사, 성조기부대, 엄마부대 등 극우집단과 한 몸이 되어 의회정치를 파괴하고, 사사건건 국정과 민생의 발목을 잡는 행태를 달리 표현할 방법이 있을까. 나머지 정당들은 살아남기 위해 아니면 조금이라도 몸집을 불리기 위해 ‘암중모색’하고 있는 형국이다.
‘비례자유한국당’ 꼼수, 국민 기만행위
해가 바뀌자마자 정치 혹은 총선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사안들이 언론의 주요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그 중 우리가 관심 있게 지켜보아야 할 사안 몇 가지만 살펴보자.
우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자한당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창당이다. 실제로 자한당은 해가 바뀐 직후인 1월2일 선관위에 ‘비례자유한국당’을 등록했다. 자한당이 위성정당 창당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무력화”이다. 사표를 막고, 민심을 조금이라도 더 반영하는 꼴은 눈 뜨고 보지 못하겠다는 몽니를 부린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위성정당’ 전략이 제대로 먹히면 47석의 비례대표 중 30석까지 가져갈 수 있다고 계산하고 있다.
다시 MBC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자한당의 위성정당 창당에 대해 ‘의석만 얻으려는 편법’이라는 의견이 59.6%,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응답이 28.5%로 나타났다. 두 배 이상 격차가 벌어졌다. 물론 자한당 지지자들의 경우에는 ‘불가피한 선택’이란 응답이 67.5%, ‘편법’이라는 응답이 20.9%로 나타났다. 자한당의 노림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집토끼만 제대로 잡아도 비례의석을 다수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지만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아도 싸늘한 여론에다 ‘비례꼼수’까지 더해진다면 정작 지역구선거에서 반대로 폭망할 수도 있다. 자한당 중심의 보수대통합이 실패하고, 보수정당들이 각자도생 한다면 현재 의석을 보전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리고 20% 가까운 중도층과 자한당 지지자들조차 비례후보로 자한당을 찍는다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민주당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보수정당 지지자들도 비례후보로는 진보정당을 찍어왔다는 과거를 볼 때 자한당의 ‘비례 다수당의 꿈’은 일장춘몽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자한당은 왜 여론의 불리함을 감내하면서 장내에서도, 장외에서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극단적인 행동을 일삼는 것일까. 첫째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현재 자한당의 지도부는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당연히 대중의 지지도 얻지 못하고 있다. 특히 20~40대 유권자들은 자한당을 괴물처럼 인식하거나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당내에서 뿐만 아니라 보수 인사들 속에서도 “지금 이대로는 앞날이 없다”는 목소리가 울려나오고 있다.
둘째, 황교안 대표의 리더십과 권위의 부재 때문이다. ‘탄핵정당’이라는 위기에 편승해 당 대표가 되기는 했지만, 당 내에서의 지지기반도 없고 경험가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권위도 없다. 의회정치에 대한 철학과 비전도 없으니 안길 곳은 ‘마음의 고향’ 같은 보수기독교세력과 성조기부대 같은 극우세력뿐인 것이다. 지난 2일 3선의 여상규 법사위원장이 “최근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과정에서 보인 당 지도부의 무기력함을 비판”하며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황교안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당내 기류의 반영으로 보인다.
보수대통합 아니면 보수대분열?
또 하나 선거에 영향을 미칠 요인으로는 ‘보수대통합’이다. 어떤 선거도 비슷한 세력들끼리는 힘을 합치고, 상대방의 힘은 분산시키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다. 그러나 지금 보수진영은 헌정사상 가장 분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래서는 총선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그래서 모든 보수정당과 인사들이 ‘보수대통합’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자한당은 가장 세력이 강한 자신들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이재오 전 의원을 비롯한 친이계 인사들은 “어느 한 정당이나 단체가 우리 쪽으로 다 모이든지, 내 중심으로 뭘 하자든지 이런 식의 통합은 어렵지 않는가”라며 지난 해 12월23일 ‘국민통합연대’를 출범시켰다. 자한당과의 통합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바른미래당의 유승준 의원 등은 ‘새로운보수당’을 출범시켰다. 유 의원은 서울시당 창당대회에서 “명분도 철학도 없이 걸어가면, 한국당이 총선에서 대승하느냐.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식으로 통합하면 국민에게 아무런 감동을 안 준다”며 자한당 중심의 통합론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폈다. 보수 정객인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원장도 KBS와의 인터뷰에서 자한당 중심의 통합론에 반대의사를 밝히고 ‘세대교체’와 ‘중도’를 화두로 던지기도 했다.
이처럼 모두가 ‘통합’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각자의 계산법이 다르고, 갈등을 봉합하고 통합을 이끌어 갈 권위와 리더십이 없는 상황에서 보수진영이 ‘대통합’으로 갈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보수가 사분오열된 상태에서 총선을 치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선거는 ‘공천놀음(?)’
권력의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정당들에 있어 ‘공천권’이란 달콤한 유혹이자 동시에 ‘양날의 칼’과 같은 것이다. 선거철이 되면 공천권을 가진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 정당들마다 공천심사위원회, 인재영입위원회 등을 두고 공정성과 참신함을 보장하려 했지만 성공한 사례는 그리 찾아보기 어렵다. ‘공천’을 잘 해서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는 실력 있고 참신한 인재들을 널리 등용하면 유권자들은 반드시 그에 지지를 보내기 마련이다. 반면 특정 계파의 입장만 옹호하면서 전횡을 휘두르거나 기득권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이면 국민들은 단호히 심판한다. 후유증도 오래간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진박’이니 ‘비박’이니 하며 공천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고, 아직도 그 여진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금 보수의 분열상은 탄핵에 대한 입장 차이와 이후 대응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갈등을 풀지 못하면 보수대통합도 참신한 공천도 불가능해진다.
지금 민주당을 비롯한 여러 정당들에서 중진 의원들의 불출마선언과 영재 영입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당내 갈등의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세대교체’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적 기대와 압박이 높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각 당의 ‘공천’은 여론의 흐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민적 지지가 높고 뭔가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어야 실력 있는 인재들이 지원할 것이 아닌가. ‘공천’은 지금부터 시작이므로 유권자들이 유심히 살펴볼 일이다.
그 밖에 총선에 영향을 미칠 요소로는 패스트트랙 재판 결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이 있으나 패스트트랙 재판은 지금까지 검찰의 행태로 봐서는 선거가 끝날 때까지 기소만 한 상태에서 시간을 끌 가능성이 크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당리당략에 따른 주판알 튀기기보다는 자한당의 ‘꼼수’를 막고 ‘비례대표제’의 중요성과 확대의 필요성을 전 국민적으로 공감하는 계기로 만드는 것이 과제라 생각된다.
자한당의 ‘깽판정치’와 민주당의 ‘우유부단’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만약 이럴 때 민주노동당이나 통합진보당 같은 진보정당이 있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을 토로하곤 한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만 놓고 보자면 진보대통합은 앞서 살펴본 보수대통합보다 더 가능성이 낮은 것이 현실이다. 우선 논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당사자들의 의지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통합을 필요성을 제기하고 이를 밑에서 추동할 노동․농민 등 대중조직들도 뚜렸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정의당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대중의 관심에서조차 멀어져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치는 생물이라고 했던가. 언제 진보정당들이 국민적지지 속에 대안정치세력으로 떠오를지, 언제 진보대통합이 정치권 최대의 화두로 등장할지 아무도 모른다. 단, 기회는 미리 준비한 자들에게만 차려지는 법이다. 진보대통합 관련 논의는 4․15 총선이 끝나고 결과가 나와 봐야 어떤 식으로든 수면 위에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셀프 개혁’의 딜레마와 4․15총선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다”는 말이 있다. 못 믿을 사람 믿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야유이다. 소위 ‘개혁’이란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대표적인 사례가 검찰이다. 적폐 중의 적폐로, 개혁대상 1호로 손꼽히는 검찰의 행태를 보자. 그동안 각종 검찰 발 비리나 범죄가 드러날 때마다 ‘스스로 개혁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셀프개혁이 실제로 이루어진 적은 한 번도 없다. 오히려 국민의 법 감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검찰개혁 반대와 제 식구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오죽하면 공소장 변경이라는 편법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여러 검사들이 담당 판사에게 거칠게 대들며 법정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을까. 전례가 없는 일이다.
정치개혁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권에 정치개혁을 맡긴다는 것이 얼마나 무망하고 고통스러운 것인지 지난 몇 달 동안 벌어진 선거법 논란을 보며 많은 국민들이 느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민적 지지와 정당들 간의 협력으로 적폐세력을 견제하고 제압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4․15총선 결과 지금과는 전혀 다른,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을 위해 펼쳐지는 참신한 정치지형이 만들어지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호소처럼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행동이 어려우면 벽에다 대고 욕이라도 해야”한다.
따라서 4․15총선의 일차적 목표는 새로운 정치지형의 확보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사사건건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자라나는 아이들과 비정규직 청년들의 인권을 볼모로 삼으며, 마침내 극우세력의 행동부대로 전락한 자한당을 비롯한 수구세력을 정치권에서부터 퇴출시키는 것이다. 그런 연후에 진보와 중도개혁, 합리적 보수세력들이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면서 국민의 이익을 실현하고, 정치 발전을 도모해나가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양비론’이다. 정치혐오증과 양비론이 과연 누구에게 유리한지 생각해 보면 답은 뻔한 것이다. 비록 마음에 들지는 않더라도 중도개혁세력과 진보정당을 적극 지지함으로써 수구정치집단을 퇴출시키고, 초보적인 개혁을 법적․제도적으로 안착시켜야 한다.
‘새로운 정치’를 위한 세 가지 과제와 바람
현재 우리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그 첫 번째가 ‘불통’이다. “구두장이 셋이 모이면 제갈량보다 낫다”는 속담도 있는데, 어찌된 셈인지 우리 정당과 정치인들은 선거철만 지나면 제외하고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농민들을 말할 것도 없고, 중소기업인들이나 자영업자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경제가 어렵고 정책도 모순이 많지만 답답한 심경을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다”고 가슴을 친다.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민주정치의 근본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국민들 속에 답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21대 국회의원에 출사표를 던진 사람들이 잊지 말았으면 한다. 당선 여부를 떠나서 진정한 정치인이라면 말이다.
두 번째는 ‘무능’이다. 미국의 그늘에 숨어서 아무 것도 못(안) 하고 있는 남북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민생, 청년실업, 교육, 비정규직, 복지 등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사안들에 대해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에는 실력이 없는 탓보다는 관료들을 제대로 장악․통제하지 못한 탓이 크다.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와 무관한 ‘통계 수치’에만 사로잡혀 정책을 펴는 것도 문제이고, 일방적으로 언론에 휘둘리는 것도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21대 국회에서는 전문적 소양과 정치력을 갖추고 관료들에 휘둘리지 않는 정치인들이 많이 진출하기를 기대한다.
세 번째는 ‘오만’이다. ‘오만’은 한국 정치의 적폐 중 하나인 과도한 특권에서 오기도 하지만, 앞서 지적한 ‘불통’과 ‘무능’이 그 토양이기도 하다. ‘잘 하고 있고, 잘 되고 있는데 도대체 왜 저렇게 난리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정치는 죽고, 오기만 남게 된다. 21대 국회에서는 언제라도 문과 귀를 열어놓고 국민들이 찾아가서 세상을 논할 수 있는 정치인, 찾아오기 전에 먼저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찾아들어가는 정치인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