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욕망이란 무엇인가,
욕망은 '인간의 행동을 이끄는 원동력' 이다. 이 때의 행동이란, 단순한 물리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특정한 의도를 지닌 것으로 이해된다. 즉, 욕망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2. 욕망에 대한 서양의 연구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 서양의 많은 학자들은 그 욕망을 체계적인 '개념'으로 정의하고자 시도했다. ①매슬로우는 인간의 욕망을 5가지의 계층으로 나누어 결핍-지배의 원리 및 충족-출현의 원리를, ②앨더퍼는 매슬로우의 5가지 위계를 가진 욕망을 3가지로 압축하여 충족-진행의 원리와 좌절-퇴행의 원리를, ③맥클랜드는 인간의 욕망에는 서열이 없고 개인마다 각자 지배적인 욕망이 상이하며, 대표적인 3가지 욕망으로 성취욕망, 권력욕망, 관계욕망을 제시했다. 특히 맥클랜드는 3가지 욕망 중에서 성취욕망이 가장 높은 개인이 더 높은 생산성을 달성할 수 있기에, 성취욕망을 훈련하기 위한 훈련기법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3. 서양의 연구가 가지는 한계
그러나, 인간이 가지는 욕망에 대한 서양의 연구들은 ①실증적 연구가 부족했다는 점 ②인간의 욕망을 단순히 몇가지로 제시할 수 없다는 점 ③인간의 행동을 특정한 욕망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판받는다. 무엇보다 여러 학자들의 욕망에 대한 연구가 가지는 목적은, 결국 인간을 생산을 위한 '도구' 로 보고, 어떤 환경 속에서 인간이 가장 높은 생산성을 달성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는 점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은 하나로 정의될 수 없다. 인간을 도구로 보고, 가장 높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달성하고자 했던 연구와 이론에서는 '생명'과 '관계성' 이 부재하다.
4. 성경이 바라보는 인간이 가지는 욕망에 대한 관점
창세기 3장에서는 인간이 가지는 욕망에 대해 '사건'과 '관계성' 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건'과 '관계성'은 인간이 태초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명'을 통해 드러난다.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명은 에덴의 생명에게 '이름' 붙이는 것이었다. 이름 붙이기 위해서는 그 생명이 가지고 있는 '온'을 알 수 있는 '관계성' 이 전제되어야 한다. 생명을 알고자 하는 욕망,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태초에 주신 욕망이었고, 선한 욕망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명'을 어기는 사건으로부터 변질되었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명을 어긴 것에 더 주목되었던 것은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가 아니라, 다른 생명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창세기 3장 후반부에 '하와'라는 이름이 등장하긴 하지만, 당연히 '하와'라는 이름을 먼저 붙여주지 않았을까...?) 아담은 '하와'를 '하와'라 부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짝지어 주신 여자' 라고 불렀다. 성경은 인간의 욕망이 악하게 변질될 때, 철저하게 타자를 '온생명'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되는 사태, 즉 그 관계성이 끊어지고 있음을 선악과의 사건으로 보여주고 있다.
5.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이름들
주변에서 수많은 생명들과 사건들을 마주한다. 오늘 하루 내가 나의 목소리로 가장 많이 불렀던 이름은 같이 일하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그 사람의 직급이다. '직급'은 효율적인 관리와 경영을 위한 것이며, '승진' 이라는 제도를 통해 인간을 동기부여 시키기 위한 서양의 여러 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욕망에 대한 이론으로부터 비롯된 인사관리 제도이다. 이는 그 생명이 가지고 있는 '온'을 사상시킨 채 '도구화' 시키고 '상품화' 시킨다.
내가 타인을 부르는 명칭과 이름에는 그만큼 수많은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 기업이 상품화하기 위해 붙인 이름 혹은 한 생명의 '온' 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이름(대표적으로 쿠팡맨, 배민라이더...?), 때로는 곳곳에서 들리는 멸칭은 우리가 어떠한 욕망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가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내가 가장 많이 부르는 이름 역시, 내가 어떠한 욕망에 붙들려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게 하기도 한다. (교회 내에서 불리는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이라는 명칭 역시 어쩌면 그 생명이 가지고 있는 온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긴장된다)
예수께서는 형제에게 '라가(바보)' 라고 하는 자는 지옥불에 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선한 욕망은, 다른 생명을 어떠한 이름으로 부를 것인가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깨닫는다. 내가 부르는 생명의 이름은, 내가 가지고 있는 욕망을 보여주고, 그리고 나의 행동을 이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