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답지 않게 선선하네...'
문뜻 그녀는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선선하긴 하지만, 바람이 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곳은 영원의 고요가 약속된 침묵의 숲이었고, 그곳에서는 어떠한 공기의 움직임도 현실화 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것은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그의 마법의 작용일 것이다.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마 어떠한 말로도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라 그녀는 느꼈다.
그는 여전히 앉아있는 그녀를 뒤로하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가 어디로 향하는지 그녀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 전해야만할 말이 있다. 또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녀는 그의 마음을 움직여야만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의 뜻을 바꿔야만했다. 그녀의, 그리고 그의 모든 것을 위해서. 하지만 그녀는 움직일 수 없다. 정적의 소산인 그 위대한 침묵의 속에서...
그녀가 생각하기에 그의 머리카락은 묘하게 아름다웠다. 머리결이 좋다든지, 색갈이 마음에 든다든지, 머리모양이 멋있다는 것과 같은 개념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때때로 그녀는 그의 머리카락이 멋있다는 생각을 하곤한다.
그는 계속 걷고 있다. 진한 녹색으로 가득찬듯한 느낌이 인상적인 침묵의 숲 속을...
그가 그의 모습을 숨길 생각 없이 그냥 앞으로 나가고 있기에, 그녀의 눈에는 그의 뒷모습이 여전히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일어서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점점 멀어져간다.
'왜, 나를 막지 않는 것이지?'
그가 전심(轉心)마법을 이용해서 말을 걸어왔다. 서로가 느끼고 있는 사실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마법이다. 어떠한 거짓도 없이, 어떠한 소리도 없이 그냥 순수하게... 그것만이 침묵의 숲 속에서 서로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왜 그를 막지 않는 것인지 그녀는 고민한다.
사실 답은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다. 물론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를 막아야만 하는 이유라면 얼마든지 나열할 수 있지만, 그를 막기 싫은 이유 따위는 그녀의 마음 속 어디에도 자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막지 않았다.
'침묵의 숲이어서?'
어느새 그의 발걸음은 멎어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런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너도 마법사 잖아. 전심마법 정도는...'
그의 말을 듣는 그녀의 얼굴은 점점 쓸쓸함을 더해간다.
'물론 나도 알어. 니가 마법을 싫어한다는 것을. 하지만 마법은 도구일 뿐이야. 알잖아, 그것은...'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갑작스럽게 마법을 발동시킨 그녀는 생각했다.
'진짜로... 마법이 언제까지나 도구로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천천히, 그녀의 질문을 부정하듯이...
그는 답한다.
'하지만... 하지만... 꼭 그런것만은 아니잖아. 니가 생각하는 그런 것만은.'
'그래서 너는 이런 감옥을 만들었니? 이 숲에 영원의 저주를 걸었니?'
'그래. 어쩌면 그럴 수도 있어. 너와 달리 난 모든 사람들을 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인간을 진화 시키는 것이 뭐가 나쁘지...'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아니. 한숨을 쉬는 듯이 보였다. 소리가 없었다. 소리가 빠진 한숨은 마치 김 샌 맥주와 같이 어딘가 맥빠진 한숨이 되었다.
'진화? 넌 언제나 그렇게 너 자신은 변호하지...'
'변호? 변명?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하지만. 그렇겠지. 인간이 서로의 마음을 완전히 알 수 있다면... 아니,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 하나가 되면 얼마나 평화로울까... 넌 언제나 그렇게 말하지... 하지만 모든 사람이 완벽해야한다는 것은 편집증일 뿐이야.'
'편집증... 그럴 수도 있겠네... 난 편집증일 수도 있어. 어쨋든 보통 인간은 아니니까... 넌 언젠가 나이 들어 죽겠지. 어쩌면 그것은 행복일 수도 있어. 하지만 난 리치(불사마법사)니까... 내 자신의 의지로 영원의 목숨을 손에 넣었으니까... 이 침묵의 숲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한명의 리치이니까... 더 이상 너에게 이해를 바라지는 안할께. 하지만 니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때때로 나를 찾아와줘. 넌 나의 의지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야. 너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일들이 있어. 그것만은 알아줘.'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그는 마음을 정한듯이 몸을 뒤로 돌렸다. 그리곤 다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곧 그는 침묵의 숲의 짙은 녹색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슬펐다. 한 없이 슬펐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은 하염 없이 그의 이름을 부른다.
소리 없이...
'알프레드. 알프레드. 알프레드...'
후기 : 라키의 모험에서 적이 될 리치 알프레드를 다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알프레드... 불사의 마법사. 침묵의 마스터... 정도로 소개할까요? 그녀의 이름은 언젠가 소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