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문학 겨울호 수필 신인상 심사평
여환주론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인생에 대한 비전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여환주의 <복 많이 지으세요> 외 1편을 당선작으로 선한다. 여환주 씨는 지금까지 서울시 녹지과 공무원으로서 도시숲, 가로수, 공원 조성에 기여하였고, 하늘공원을 조성한 분이다. 그런 분야로 대학에서 강의도 했다. 역사는 기억에서 기록으로 남는다. 자신이 이룩한 기록을 묶어서 책을 낸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봉사가 어디 있겠는가. <산림문학>지에서 여환주 씨의 글을 가끔 읽었던 기억이 나서 반갑다. 그의 수필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봉사 경험을 토대로 깨달음의 길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다. 이명지 수필가로부터 수필창작법을 배우고 있다고 하니, 곧 좋은 수필가로 우뚝 서리라 믿는다. 하나의 제재로 스토리를 전개하면서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줌은 물론 인생에 대한 비전과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여환주 씨의 수필은 독자들에게 적잖은 감동의 물결을 일으킨다. 퇴직 후에 봉사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진정한 의미의 수필적 생활이 아니겠는가.
경험만큼 강한 설득력을 가진 것은 없다. 우리는 직접 경험, 간접 경험, 의미적 경험 등을 통하여 지식을 쌓을 수 있고 타인의 일정을 상상하며 공감능력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무언가를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지 무엇을 원할지, 어느 정도까지 기꺼이 감수할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 경험적 수필이 다른 수필보다 더 재미있게 읽히는 요인은 뭘까? 세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 여환주 씨는 녹지공원 분야에 전문성을 지닌 지성적인 교양인이라는 점이고, 둘째 이유는 그의 글이 자신의 봉사 체험을 바탕으로 한 진실의 글이기 때문이고, 셋째는 매우 정직하고, 인간적이라는 데 있다. 설명적인 글이 아니라 진실을 나름의 독특한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어 기대를 해도 되겠다. 그의 글이 일상의 진솔성에 호소하면서도 결국에 가서는 정서를 끌어들여서 독자를 흐뭇한 감동으로 이끄는 것은 복 짓는 일에 진심을 다하고, 정교한 서술적 기교를 바탕으로 글을 써나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 수필의 문학적 성취는 봉사자를 ‘나무’에 견주는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환주 씨는 “서울시 공무원으로서 곳곳에 푸른 공간을 위해 일하다 보니 나무를 많이 만나고 다루고 나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나무는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유익한 일을 많이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알게 모르게 진행되는 여러 봉사는 많은 이들에게 유익함을 준다.”라고 나무의 덕성을 치하하면서, 그 특성을 봉사자에 비유해서 문학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나무 같은 이들이 곳곳의 분야에서 자신의 마음을 다하여 봉사하는 분들이 아니겠는가.”라는 주제의식의 의미화는 여환주 씨의 문학적 잠재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서울특별시우회 우명규 회장의 "새해 복 많이 지으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하는 인사말에서, 여환주 씨는 그 복을 받으려면 바라기만 할 것이 아니라 복을 많이 지으면서 아직은 이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가자고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고 한다. 수필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은 담론층인 결말부에 가서 주제를 어떻게 의미화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자신만의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여환주 씨는 우명규 회장의 새해 인사를 잘 활용해서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누구만의 일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직분을 다하고 주위도 살피며 살아갈 때 만들어지는 것 같다.”고 하면서, “복 많이 지으세요! 그리고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로 수필을 마무리하였다. 마지막 의미화 문장의 ‘복 많이 지으세요!’가 의미하는 바를 잘 살피면, “복 많이 지으세요! 그리고 복 많이 받으세요!”가 단순한 것 같지만, 의미심장한 말로 다가설 것이다.
복 많이 지으세요
여환주
우리나라 종합병원 대부분이 자원봉사자들에게 병원의 각종 안내 등의 도움을 받고 있다. 나는 13~4년 전 뇌종양 수술받은 병원 서울 시내 모 종합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갔다가 우연히 내 고등학교 8년 선배님을 만났다.
선배님은 이 병원에서 청색 가운을 입고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도 이 봉사활동을 한번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때는 공직에서 퇴직 후 대학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를 할 때라 강의가 끝나게 되면 그때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그 후 학교 강의를 8년간 하고(2014.12) 나는 약속대로 그 선배님에게 전화를 드려 이제 학교 강의가 끝났으니 저도 봉사활동을 해보겠다고 했다. 병원 자원봉사 실장에게 간단한 면접을 본 후 기본적인 교육을 받고 2015년 3월부터 매주 목요일 오전 병원 자원봉사 활동을 하게 된 것이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처음 몇 달간은 수습 기간이라 기존 봉사자들의 조수 역할로 병원 내 여러 봉사처에서 수습 기간을 마치고 독자적으로 봉사처를 지정받고 각종 안내 등을 맡았다. 10년 차(코로나 기간 2년 제외) 하고 있는데 그때 나와 같이 봉사활동을 시작한 사람들이 10여 명이었는데 하나, 둘 그만두더니 지금은 나 혼자만 남아 있는 것 같다.
나는 매주 목요일이면 젊은 시절 직장 다닐 때처럼 집에서 아침 식사를 한 후 07:30이면 집을 나서 버스, 지하철을 이용 08:40경 병원 자원봉사자실에 도착한다. 지정된 가운으로 옷을 갈아입고 자원봉사 실장으로부터 전달사항 등 간단한 이야기를 듣고는 09:00부터 지정된 장소에서 봉사활동에 들어간다.
요즘 봉사활동은 주로 병원 진료를 받으러 온 분 중 처음 온 분들이나 나이 든 분들을 돕는 일이다. 이들은 진료 접수부터(무인 진료 접수)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것을 옆에서 도와주기도 하고 타 병원에서 각종 검사자료 CD를 가지고 오면 이를 해당 진료 의사에게 전달되도록 영상 CD 등록기에 입력시키는 일이다. 또 화장실은 어디 있느냐? 진료 후 처방전을 받기 위해 수납하는 곳은 어디 있느냐? 물을 마시는 음수대는 어디? 등 환자분들의 질문에 친절히 설명과 함께 안내하는 것이 주 업무다. 간단하지만 환자들에겐 요긴한 일이다.
처음 몇 년간은 그저 단순히 주어진 시간 내에(09:00~12:30) 봉사활동만 하고 시간이 끝나면 점심 후 귀가하였다. 5년 전 내가 서울시우회 강남구 회장으로 시우회 본회 이사일 때 들은 새해 인사가 인상적이었다. 서울특별시우회 우명규 회장(전 서울특별시장)이 새해 인사를 하면서 "새해 복 많이 지으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하면서, 복을 짓지 아니하고 어떻게 복을 받기만 바라는가? 하는 말이었다.
그 후로는 병원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환자분들에게 조그만 도움을 드리면 그분들로부터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아, 이것도 내가 작은 복을 짓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더욱 친절하고 자세한 안내를 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1927년생인 연로한 환자분이 가족 등 도움 없이 혼자서 오셨다. 도착 접수기에서 직접 진료 접수를 하시기에 내가 조금 도움을 드렸다. 접수증을 받으시고는 나에게 정중히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진료실로 가는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본 적이 있다.
이보다 훨씬 젊은 환자분들 중에도 본인 혼자 진료받기가 어려워 자녀 등 가족들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100세가 가까운 분이 혼자서 대형종합병원에 와서 진료받고 가는 모습을 보니 나도 건강관리 잘해서 나이가 더 들어도 가족 도움 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복을 받으려면 바라기만 할 것이 아니라 복을 많이 지으면서 아직은 이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가자고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된다. 서울시 공무원으로서 곳곳에 푸른 공간을 위해 일하다 보니 나무를 많이 만나고 다루고 나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나무는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유익한 일을 많이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알게 모르게 진행되는 여러 봉사는 많은 이들에게 유익함을 준다. 나무 같은 이들이 곳곳의 분야에서 자신의 마음을 다하여 봉사하는 분들이 아니겠는가. 병원에서 봉사를 하면서 봉사는 남을 도와주는 일이지만 그 결과는 내게 훨씬 많은 깨달음과 충만을 준다는 것을 다시 새기게 된다.
한 살씩 나이를 더해가니 주위 친구나 지인들의 관심사는 온통 건강 이야기다. 몸에 좋다는 건강식품이나 운동 방법 등의 정보를 공유한다. 얼마나 오래 살까 보다는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며 끊임없이 공부하는 시니어들도 많다.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누구만의 일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직분을 다하고 주위도 살피며 살아갈 때 만들어지는 것 같다. 복 많이 지으세요! 그리고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