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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신도시 향남 2지구 광장에 가면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생긴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거리에 구세군 자선 남비가 등장했고 수원에 나가면 백화점크리스마스시즌 바겐세일이 시작된 것을 보게 됩니다. 연말연시 오고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진 것을 보게 됩니다. 성탄절이 이제 한 주일 뒤로 다가왔고 이제 연말도 두 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오늘 주일을 빼면 이제 주일도 한 번만 남았습니다. 오늘을 포함해서 이제 남은 두 주의 주일설교를 준비하면서 마침 그간 해오던 마가복음 설교도 끝이 나서 나머지 두 주일을 성탄에 관련된 설교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특히 오늘 말씀은 예수님 오시기 전 오래전 활동했던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이 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야가 예언할 때 그 메시야를 기대하며 신앙을 회복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야를 예언해주신 말씀입니다. 희망을 잃고 이제 어둠과 좌절속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백성에게 생명으로 빛으로 오실 예수님을 예언해주신 것입니다. 본문 이사야 35장은 지금부터 약 2600년 전에 살았던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 땅의 사람들에게 주신 예언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사회적 종교적 죄악을 지적하며 멸망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이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이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셔야한다는 것을 예언합니다.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죽음앞에 놓인 이스라엘의 유일한 소망은 메시야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메시야를 기대하며 다시 희망을 찾고 오실 메시야를 기대하며 살았던 이스라엘백성들처럼 지금 이 시대 정말 희망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어둠가운데 절망속에서 하루하루 버티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성육신하신 것을 기억하며 성탄의 의미를 바로 깨닫고 이제는 예수님으로 희망을 찾고 예수님으로 정말 감격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35장은 비유와 상징적 언어가 많이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대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이 지금부터 2600년 전 이스라엘의 문화속에서 히브리어문장으로 쓰여진 이 시적 표현, 상징적 표현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충분히 이해했을 말씀이겠지만 우리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하나님의 사람에게 주신 말씀이라면 우리에게도 성령의 감동으로 이 말씀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성령의 감동으로 깨닫고 은혜가 충만하게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구원에는 구속과 회복을 포함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참 구속은 죄를 용서받아 죄의 형벌인 사망에서 건져냄을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구속을 통해 우리는 죄사함을 받는 것에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같이 한 번 읽겠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죄로 인해 잃어버렸던 에덴동산을 이제 구원받고 죄사함을 얻게 되면서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과 단절되었던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회복되게 되는 것입니다. 어두움과 죽음이 물러가고 빛과 생명이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막과 같은 황무지에서 샘이 마르지 않는 평원이 우리앞에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35장은 이사야 전반부의 마무리 부분으로 이제 메시야가 이 땅에 임하게 될 때 회복되어 질 거룩한 땅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실 것을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예언하시고 이제 이 땅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시온의 회복’이라는 희망이 찾아오게 될 것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35장 4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이 땅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임하시고 인간으로 오신 그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고난과 고통을 당하며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그의 백성을 살리시고 구원하시는 놀라운 역사를 행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 땅에 임하실 메시야가 오셔서 우리에게 일어나게 되는 놀라운 복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죽음의 상태에 놓여서 여전히 지옥같은 삶, 사막과 같은 심령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메시야가 임할 때 일어나게 될 일들을 오늘 말씀을 통해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암흑의 세상, 죄악에 물든 환경속에서 이제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는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구주와 주님이 되어서 경험하게될 회복의 역사를 체험하는 인생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구주가 되셔서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는 어떤 회복이 일어나게 될까요? 예수님께서 오셔서 회복되는 세상, 첫째는 온전한 육신의 회복을 만들어주십니다.
이사야 35장 5,6절입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메시아가 다스리는 때가 되면 일어날 일들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구체적으로 증거해 주셨습니다. 그 때에는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듣지 못하는 자의 귀가 열릴 것이며, 다리를 절던 자들은 사슴같이 뛸 것이며, 말 못 하는 혀가 노래하리라고 선지자 이사야는 예언합니다. 시각장애인이 앞을 볼 수 있게 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듣고 말하게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사역을 하시는 동안 눈멀었던 사람들이 눈에 시력을 찾게 되었고 언어에 장애가 있어 말을 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아 의사소통에 어려웠던 사람들이 귀가 들려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약에 약속하신 메시야가 바로 자기 자신임을 보여주는 표적이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눈먼 사람의 눈, 듣지 못하던 사람들의 귀, 다리를 저는 자들의 다리를 고쳐주셨습니다. 나병환자들이 고침을 받고, 심지어 죽은 자가 살아나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께서 각종 병든 자를 고치신 것은, 예수님이 바로 우리를 구원할 구세주이심을 보이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마가복음 7장 33~3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공생애의 사역을 하시면서 육신의 아픔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을 만나주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수 많은 환자들은 그냥 몸만 아픈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기피하고 멀리하는 존재였습니다. 전염되지 않는 질병마저도 전염이 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격리 대상이 되었던 것이 당시 분위기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찾아주시고 안타까움을 표시하시며 치유의 역사를 행하셨습니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시며 그들을 적극적으로 치료하셨습니다. 방금 읽은 마가복음 본문에서 예수님은 귀가 멀고 말을 더듬고 있는 환자를 만나 “에바다”라고 외치셨습니다. “에바다”라는 말은 아람어로 “열리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귀와 입이 열리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 이적을 통해 그 사람이 이제 온전하게 듣고 온전하게 말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35장 5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볼까요? 같이 읽겠습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의 이 예언을 이 땅에 온전하게 이루시며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연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고, 구원받지 못할 광야와 메마른 땅과 사막과 같은 자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 그 모든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사막을 오랜 시간 동안 여행하는 자들이 너무 피곤하고 목이 마르면 태양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모래사막을 보면서 마치 물이 있는 오아시스로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신기루’라고 합니다. 이런 신기루만 찾다가 결국 사막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목숨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인생이 광야이고, 사막이고, 메마른 땅입니다. 이런 세상살이 속에서 신기루만 쫓다가 죽는 인생이 우리 인생입니다. 우리는 참 오아시스, 참된 샘물을 찾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세상 사람들은 예수 탄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쾌락과 환락과 유흥에 집중하며 여전히 육신적 고통속에서 살아가는 이 때 우리는 우리에게 참 육신의 회복을 주시고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신 예수님, 하나님과의 관계를 열어주시고 회복시켜주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참 멋진 인생, 참 행복한 신앙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구주가 되셔서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는 어떤 회복이 일어나게 될까요? 예수님께서 오셔서 회복되는 세상, 둘째는 완전한 자연의 회복을 만드십니다.
이사야 35장 7절입니다.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이사야 35장 9절입니다.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온갖 악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실제로 악한 마음으로 살인하고 간음하고 도둑질하고 사기를 치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 세상에 살아가는 온갖 죄로 가득한 사람들도 이제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을 길이 열렸습니다. 얼마나 흉악한 죄를 저질렀고 어떤 악한 마음을 품고 사람들에게 악한 말과 행동을 했다고 할지라도 이제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변화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과 행동이 메마른 광야같고 아무 희망도 찾아볼 수 없는 사막 같았지만 이제 예수님을 만난 인생은 마음에서 신령한 물이 나오고 성령의 시냇물이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막이 변하여 연못이 되고, 비가 조금만 오지 않아도 곧바로 사막이 되는 메마른 땅이 언제나 물이 솟아 나오는 샘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 안에 성령이 들어오시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기쁨과 평강을 채워주십니다. 그러므로 가뭄에도 그치지 않고 항상 솟아 나오는 샘물처럼 항상 주님의 은혜 속에서 살게 하십니다.
이와 같이 강퍅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도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생수를 공급받아야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속에 예수님께서 오시면 우리의 삶의 환경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사막같은 환경이 오아시스가 있고 샘물이 가득한 환경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의 삶속에서 항상 기쁨의 원천이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요한복음 7장 38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우리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의 삶의 환경을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사막과 같은 환경이지만 그 환경이 젖과 꿀이 흐르는 상황으로 만들어가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겠다고 했지만 그 당시 가나안땅은 젖과 꿀이 흐리지 못하는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들어간 그 곳은 아브라함이 그 땅으로 들어간 이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전혀 젖과 꿀이 흐를 수 없는 땅이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 곳으로 인도하셔서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으로 변화시키신 것처럼 예전의 우리의 삶은 사막과 같고 광야같고 메마른 상황이었지만 예수님을 통해 회복된 우리들에게 생수의 강, 영원한 생명의 물을 마시는 인생으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광야에서 가장 좋은 곳이 있다면 오아시스입니다. 물이 있으니 식물이 자라고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광야를 지나는 사람들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곳입니다. 목이 말라 지쳐있는 사람에게는 구세주와 같은 곳입니다. 하나님은 옥토를 광야가 되게 하시고, 광야를 옥토가 되게 하시기도 합니다. 이것은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강퍅하다 할지라도 예수만난 인생은 천국과 같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 하나님만이 우리의 도움이시며 광야 같은 우리의 삶을 옥토로 바꾸어주실 분입니다. 그저 주님만 바라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힘입어 담대히 살아가며 항상 은혜의 체험을 통해 우리의 인생이 풍요로운 삶인 것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구주가 되셔서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는 어떤 회복이 일어나게 될까요? 예수님께서 오셔서 회복되는 세상, 셋째는 구원자를 택하시고 구원자들에게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이사야 35장 10절입니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속량함을 받은 자”에서 ‘속량’이라는 단어의 히브리어는 פָּדָה (파다,padah)입니다. 이 히브리어는 פָּדָה (파다, padah)는 “대신 값 치르다”라는 뜻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 처음 태어난 양의 희생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어린 양의 피로 죽음에서 구원받는 것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죄악으로 인해 멸망당하고 좌절과 낙담속에서 죽음의 삶을 살아가는 죄인들을 위해 죄값을 대신 치러주시고 생명을 치유하시고 원래의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으로 회복시켜주시는 것이 바로 속량입니다. 그 속량은 내 힘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전적 은혜”이며 “인간의 절망적 상황”을 치유하셔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지고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속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 하나님의 은혜로 속량함을 받은 사람들은 세상의 그 어떤 강한 세력으로부터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슬픔과 탄식이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영광스러운 나라에서 살아가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35장 8절입니다.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로 이르는 거룩한 길, 시온의 대로가 생기게 될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원래 ‘대로(大路)’는 일명 ‘왕의대로’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이 ‘대로’가 거룩한 길이 된다고 예언하며 오직 구속함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길을 만들고, 이 길을 지나갈 수 있도록 해주신 분은 바로 우리에게 오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선택하시고 이끌어주실 때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든지 예수님 이름으로 그 대로(大路)를 통해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사람이 사막을 빠져나갈 수 있는 도시와 연결된 큰 길을 만나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 길에서 희망의 길, 생명의 길을 만나 결국은 살아가게 되는 은혜를 우리는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구속함을 받은 자’란 예수님을 통해 죄사함을 받은 자를 뜻합니다. 누구나 회개하면 그 죄를 다 용서해주신다고 성경에 약속하셨음에도 세상의 수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죄를 자복하지 않습니다. 죄를 자복하고 용서해주시기를 간구하면 사막과 같은 자라도 천국 백성이 되는데 이 일을 원하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구원의 길, 생명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모든 사람들이 그 길을 걸어간다고 하지 않고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만 다닐 수 있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이 ‘대로’는 거룩한 길이기에 아무리 세상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 아무리 막강한 지식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 세상의 무력을 다 가진 강력한 세력이라고 할지라도 이 ‘대로’에 접근조차 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만 다닐 수 있는 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구원으로 인도하는 참 길, 참 진리, 참 생명이 되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에게 갈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메마르고 건조한 우리의 인생에 생명 샘이 되시고 은혜의 강물을 흐르도록 하셨습니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인생의 길에 정확한 길이 되어주셨고 참 생명으로 인도하셔서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참 구주로 받아들이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갈 길을 찾지 못하는 우리들... 참 복된 삶과 젖과 꿀이 흐르는 복된 세상을 허락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메시야를 보내시기로 작정하시고 우리에게 예수님이라는 메시야를 허락하셔서 우리의 죄의 문제뿐 아니라 인생의 궁극적인 복을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는 그 길을 열어주신 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감사하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우리가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야했는 지를 깨닫습니다. 정말 성탄절의 깊은 의미를 우리가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다음 주일 성탄예배에도 우리 주님의 이 땅에 오심을 기억하며 감사의 예배를 드리겠지만 우리가 정말 성탄시즌만 되면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을 기억하고 감사할 것이 아니라 진정 예수님 성육신의 의미를 잊지 말고 항상 은혜가운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감격을 주실 뿐 아니라 육신적인 고통에서도 자유함을, 사막과 광야같은 세상의 삶속에서도 풍요함과 기쁨을 주시는데 왜 우리는 자꾸 불평과 불만이 앞서고 죽겠다, 힘들다. 짜증난다, 등등의 말이 앞설까요? 진짜 구원받은 사람이 다니는 길은 그런 길이 아닐텐데 말입니다. 정말 저와 여러분이 이제는 주님이 오셔서 풍성하게 채워주시고 해결해놓으신 수많은 환경을 기쁨으로 경험하며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갇힌 자같은 삶을 살지 말고 자유한 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병든 자같은 삶을 살지 말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억눌린 자 같은 삶을 살지 말고 담대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시면서 구원받은 우리들에게 허락한 이 삶을 평생 누리며 사시다가 영원한 천국에서도 영원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