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봄 안개의 정취 – 용문산(마당바위,가섭봉,장군봉,함왕봉)
1. 안개 속 풍경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 정호승, 「봄길」
▶ 산행일시 : 2026년 4월 20일(월), 흐림, 오후에는 부슬비
▶ 산행코스 : 용문사 입구,용문사,마당바위,용문봉 능선,┫자 가섭봉 갈림길,장군봉,함왕봉,890m봉 서릉,
사나사계곡,사나사,용천2리 마을회관
▶ 산행거리 : 도상 12.7km
▶ 산행시간 : 06시간 38분(08 : 54 ~ 15 : 32)
▶ 갈 때 : 전철 타고 용문역으로 가서 군내버스 타고 용문사 입구로 감
▶ 올 때 : 용천2리 마을회관 앞에서 택시 타고 양평역으로 가서(요금 9,100원), 전철 타고 옴
▶ 구간별 시간
08 : 06 – 용문역, 77-8번 버스(08 : 35)
08 : 54 – 용문사 입구 버스종점, 산행시작
09 : 19 – 용문사
10 : 08 – 마당바위
10 : 14 - ┫자 갈림길
10 : 53 – 용문봉 능선
11 : 15 - ┣자 갈림길, 한강기맥, 용문산 정상 1.36km
11 : 57 – 용문산 정상(1,125m) 110m 전 ┫자 갈림길
12 : 35 – 용천리 배너미재 갈림길
12 : 52 – 장군봉(1,043m), 휴식( ~ 13 : 02)
13 : 21 –함왕봉(967m)
13 : 33 – 890m봉, ┣자 갈림길, 오른쪽으로 감
14 : 37 – 사나사계곡 용소폭포
15 : 00 – 사나사
15 : 33 – 용천2리 마을회관, 산행종료, 택시(15 : 45)
15 : 55 - 양평역
2. 산행지도
오늘은 정례 심춘순례로 용문산을 간다. 하늘이 우울하면 나도 우울하고 하늘이 맑으면 나도 기분이 상쾌하다. 일기
예보에는 정오쯤에 비가 오는 둥 마는 둥 할 거라고 하는데 하늘은 용문 가는 아침부터 곧 비를 뿌릴 듯이 잔뜩 찌푸
렸다. 오늘이 용문 장날이다. 용문역 앞길은 버스나 택시가 다닐 수 없다. 장터를 지나 큰길로 간다. 장터 좌판에 산
더미처럼 쌓아놓은 두릅에 눈길이 가지만 종일 배낭에 넣고 다닐 수 없어 그냥 간다.
장날에는 구 용문터미널 건너편 정류장에서 용문사로 간다. 용문이 오는 24일부터 27일까지 용문관광지에서 산나
물축제를 한다고 떠들썩하다. 무료셔틀버스도 운행한다고 광고한다. 용문사 입구 용문관광지는 산나물축제준비로
부산하다. 용문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곧 이속(離俗)이다. 말 없는 청산이요, 태(態) 없는 유수로다. 절로 읊조린다.
용문사 가는 길의 노거수는 눈부시게 화려하고, 지줄대며 흐르는 도랑물은 정지용의 실개천이다.
이런 풍경 사이에 걸어놓은 법구경 구절이 오히려 진부하고, 일주문을 지났음에도 이속이 아닌 세속에 갇혀 있는
느낌을 들게 한다. 무념무상의 시간을 훼방한다.
나쁜 말을 하지 말라
험한 말은 필경에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
악담은 돌고 돌아 고통을 몰고
끝내는 나에게 되돌아오니
항상 옳은 말을 배워 익혀야 하리
해탈교를 건너면 용문사 경내이다. 너른 화원이기도 하다. 사천왕문 앞에는 앵초가, 은행나무 주위에는 얼레지가,
절집 담벼락에는 흰젖제비꽃이 무리지어 환하다. 곧장 다리 건너고 데크계단 오르고 돌길을 간다. 오늘은 용각골
계곡으로만 갈 요량이다. 능선보다는 계곡에 풀꽃이 더 다양할 테고, 능선에 올라도 조망은 안개에 가렸다. 용각골
은 협곡이다. 왼쪽은 가섭봉 남서릉이, 오른쪽은 용문봉 진등이 가파르게 솟았다.
양쪽 능선 길이 그렇지만 계곡 길도 돌길의 연속이다. 계곡은 깊은데도 그 계류는 사나사계곡(함왕골)이나 조계골,
용계골, 수득골 등에 비해 볼품이 없이 사납다. 너덜투성이다. 계류를 목교로 건너고 너덜을 오르다가 다시 계곡으
로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산행 중 크고 작은 부상은 산꾼에게는 상사(常事)다. 너덜을 내릴 때였다. 바위에 걸려
한바탕 굴렀다. 오른쪽 무릎이 쓸렸다. 피 본다. 잠시 엎드린 채로 진정한 다음 일어났다.
오늘은 어려운 산행이 될 것을 예감한다. 절뚝이며 걷기가 불편하다. 특히 앉았다 일어나기가 거북하니 풀꽃들과
눈맞춤 하기가 된 고역이다. 그래도 이만하기 아내의 기도 덕분이다. 이튿날 자고 일어났더니 무릎이 퉁퉁 부었다.
동네 정형외과에 갔다. 여러 각도로 엑스레이를 찍었다. 다행히 뼈는 다치지 않았다. 엉덩이 주사 맞고, 3일치 약
처방을 받았다. 간호사에게 조용히 물어보았다. 가만히 며칠 있으면 나을 텐데 괜히 치료받으러 온 것이 아닌가요?
천만예요. 때 맞춰 잘 오셨습니다.
마당바위에서 6분쯤 오르면 ┫자 갈림길과 만난다. 왼쪽이 계곡 건너서 사면을 지그재그로 오르는 주등로다. 직진
은 인적 희미한 너덜인 계곡이 계속되는 오르막이다. 직진한다. 온 길이 업그레이드 된 너덜이다. 암릉 오르듯 너덜
을 오르고 또 오른다. 덩굴지대를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저기 쑤셔보다가 오른쪽 사면에 색이 바랜 산행표지기
를 발견한다. 반갑다. 희미한 인적을 안내한다. 그 인적도 사면이 가팔라서 오르다 뒤로 무르기를 반복했다.
3. 용문사 가는 길은 화려하였다
4. 계곡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산괴불주머니
5. 앵초
6. 흰젖제비꽃
7. 너덜지대 오르막에 어렵게 자라는 산괴불주머니
8. 금낭화
9. 얼레지, 능선에 오르자 얼레지들이 반긴다
10. 무늬족도리풀
11. 얼레지
12. 노랑붓꽃
13. 얼레지
날씨가 변덕이다. 비를 뿌리는가 했더니 해가 나고 다시 비를 뿌리곤 한다. 비 시늉하는 부슬비다. 피나물은 일기에
무척 민감하다. 흐리기만 해도 꽃잎을 오므려버린다. 한 걸음 한 걸음 올라 능선이다. 이럴 줄 알았다. 전에도 그랬
듯이 얼레지들이 떼로 다소곳이 고개 숙이고 맞이하는 게 아닌가. 배낭 벗어놓고 엎드려 일일이 눈맞춤 한다. 이제
부터 적어도 1km는 삼보일배가 아닌 일보삼배를 할 터이다. 하루만 늦게 왔으면 많은 얼레지들이 가고 말았을 것
같다.
한 봉우리 넘어 한강기맥 문례재 갈림길이다. 등로 벗어나 왼쪽 사면으로 10m쯤 가면 바위절벽 위가 멀리 추읍산
이 기경으로 보이는 나만의(?) 전망대인데 오늘은 안개로 근경도 가렸다. 발품 던다. 가섭봉 가는 길은 천상의 화원
이다. 얼레지와 현호색이 군무를 추고 있다. 홀로 또는 둘이서 또는 수대로 어울러 춤춘다. 나는 일어나기 불편하여
아예 엉금엉금 긴다.
사면 길게 올라 ┫자 갈림길. 직진은 예전에 한강기맥 마루금으로 가섭봉 정상 오른쪽을 철조망 따라 돌아가던 길이
다. 수 미터 앞에 출입통제 경고판이 있다. 왼쪽이 등로다. 옅은 지능선 세 개를 횡단한다. 가파른 사면을 움찔하며
트래버스 하는 구간도 나온다. 그리고 마당바위 등지에서 오는 주등로와 만난다. 여기는 노랑제비꽃 세상이다. 그들
의 응원 받으며 가파른 데크계단 한 차례 오르면 가섭봉 정상을 110m 남겨둔 ┫자 갈림길 쉼터다.
하늘이 나를 돕는다. 안개는 더 짙어졌다. 지척도 어둑하다. 무릎이 성치 않은데 굳이 가섭봉 정상을 오르지 말라는
계시다. 그에 따른다. 다만, 농환재 남도진(弄丸齋 南道振, 1674~1722)의 눈을 빌어 오름을 대신한다. 다음의 그의
「가섭봉에 오르다(登迦葉峰)」이다.
공중을 뚫고 치솟아 어루만지듯 세 번 돌아치니
세상을 떠나 마치 신선이 되어 날아가는 듯하네
풀을 헤치고 이슬 맞으며 오솔길 찾으니
넝쿨에 얽히고 안개를 헤쳐 봉에 오르니 옷이 젖네
구름 사이로 어지러이 산들이 널려 있고
하늘 밖 아득한 곳에는 먼 바다가 희미하게 보이네
바위에 기대 긴 휘파람 불며 적막한 시름 달래노라니
저물녘 안개는 흩어지고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네
凌虛飄拂捫參歸
遺世況如羽化飛
披草露侵尋逕屐
綠羅霞濕上峰衣
雲間歷亂群峯逈
天外蒼茫遠海微
長嘯依巖愁寂寞
晩來盪霧細霏霏
15. 얼레지
23. 족도리풀
24. 태백제비꽃
25. 등로 주변의 산괴불주머니
27. 늦둥이 큰괭이밥, 다른 곳에는 꽃이 다 졌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용문산에서도 모데미풀을 보았다는 글과 사진을 보았다. 자세한 장소는 알려주지 않고
1,000m쯤 되는 고지라고 했다. 내가 추측하기로는 장군봉능선이나 배너미재 가는 능선이 아닐까 했다. 그곳이
알고 싶다. 도리도리 주변을 자세히 살핀다.
등산객들을 만난다. 단체로 산악회에서 유명산을 넘고 배너미재를 지나서 온다고 한다. 마주치는 사람마다에게
수인사 건네고 물었다. 오시는 도중에 혹시 모데미풀을 보셨느냐고.
그들은 한결같이 모데미풀 자체를 모른다. 아예 등로 주변의 풀꽃에 관심조차 없다. 그들이 한편 부럽다. 나처럼 풀
꽃을 찾거나 사진을 찍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배너미재 갈림길에 배낭을 벗어놓고 배너미재 쪽으로
가본다. 빈 눈이다. 장군봉을 향한다. 오른쪽 사면을 연신 기웃거린다. 인적이 보이면 쫓아가본다. 덤불숲을 휘돌아
나오기도 한다. 삭막하다.
장군봉이 금방이다. 조망이 무망인 데크전망대에 앉아 휴식한다. 안개가 더욱 심해진다. 사방이 어두컴컴하다. 적막
한 산길이다. 바위 섞인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백운봉을 오를까 말까 망설인다. 일기예보로는 오후에 해가 날 거라
고 했다. 하늘에 맡기기로 한다. 잠깐 올라 함왕봉이다. 오른쪽으로 사나사 가는 ┣자 갈림길을 지나친다. 다시 쭉쭉
내린다.
890m봉. 여기도 오른쪽으로 사나사 가는 ┣자 갈림길이다. 안개는 걷힐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예 부슬비
뿌린다. 우산 받친다. 여태 붙들었던 백운봉을 그만 놓아준다. 불편한 무릎을 염려한 하느님의 뜻이다. 오른쪽(서쪽)
으로 간다. 낙엽이 수북하여 풀꽃들이 보이지 않으니 수월한 발걸음이기도 하다. 그러다 흙길이 나오고 그 돌 틈에
서 문득 알록제비꽃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마주보고 앉아 한참을 머무른다.
지능선이 마침내 맥을 놓고 사나사계곡 잘난 길과 만난다. ‘용천빙폭’이라는 사진 안내판을 본다. 지계곡이다. 인적
따라 조금 올라가자 ‘등산로 없음’이라는 표지판이 나오고 그 뒤가 용천빙폭일 바위다. 건폭이다. 더 오르지 않고 뒤
돌아 나온다. ‘용소폭포’ 사진 안내판을 본다. 주계곡이다. 바위에 가려 계류를 건너지 않고는 볼 수가 없다. 자연의
미끌미끌한 징검다리로 조심스럽게 건넌다. 암벽에 굵은 밧줄이 손잡이로 달려 있다. 밧줄 붙들어 바위틈에 버티며
용소폭포를 본다. 조계골, 수득골에 이어 자리매김할 폭포다.
용소폭포를 지나면 등로는 걷고 있어도 걷고 싶은 부드러운 숲길이다. 구름재로 가는 백운봉 갈림길을 지나고 사나
사다. 절집에 들른다. 큰 절이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이 주불전이다.
사나사에서 버스정류장이 있는 용천2리 마을회관까지는 대로 2km이다. 걸어간다. 설악산 비선대에서 소공원까지
3km, 덕유산 백련사에서 삼공리주차장까지 6.5km, 그 거리도 갈 때마다 걸었다.
용천2리 마을회관에서 군내버스 타기가 만만하지 않다. 버스를 타려면 2시간 넘게 기다려야 한다. 택시 부른다.
뒤돌아보는 성두봉이 봄산으로 우뚝하고 그 뒤로 백운봉은 안개에 캄캄 가렸다. 거기 오르지 않은 게 적이 위안이
된다.
28. 태백제비꽃
30. 함왕봉(967m) 정상
31. 안개 속 산길
36. 알록제비꽃
37. 사나사계곡 용소폭포
38. 용천2리에서 뒤돌아본 성두봉(441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