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신문 [아침시산책] 해질녘 -박복영
해질녘 / 박복영
땅거미 덜컥 어둑해졌다
문풍지 떨어 문설주에 기댄 노인의 귀는 심란心亂하다
둘 데 없는 바람의 거처가
손에 쥔 둥근 문고리처럼 차가웠다 꺼진 알전구처럼.
달빛 들여 귀를 닦아도 문지방을 넘지 못한 바람은
주춤했다
처마아래 시래기다발 툭툭, 말라가는데
머위 잎을 다 씻기지 못하고 지나는 빗방울들
노인의 귀 바깥에서 울다 갔다
땅거미가 내리고 어둑해진 저녁은 쓸쓸하다. 그 무렵 혼자된 노인은 있는 곳이 어디든 아마 더욱 외롭고 쓸쓸할 것이다. 하물며 바람까지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날리는 날, 기다려도 찾아 주는 이 하나 없는 어스름 속에서는 아마 온몸이 눈물을 흘렸으리라. 혹여 무거운 침묵 속에 빠진 문고리를 잡아당기며 그만 생을 떠나는 상상을 하지는 않을까. 그러나 노인이여, 그동안 온갖 풍상을 견뎌왔듯이 그대는 말라가는 시래기다발을 잡고 고독한 울음을 참아야 한다. 다시 빗방울이 찾아와 머위 잎을 깨끗이 씻기는 날이 올지니. 바람에 문풍지 떨리고 달빛이 스며드는 방에 홀로 앉아 우주의 소리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지 않는가! /송소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