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强 없인 평화도 없다>
러시아의 일방적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1000일이 지났다. 1129일간 한반도를 초토화하며 300만 명 가까운 인명을 앗아간 6·25전쟁에 버금가는 장기전이다. 추정 기관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외신 등에 따르면 사상자는 양쪽 합계 최소 100만 명이 넘고 전사자도 27만 명에 달한다. 600만 명 이상의 우크라이나인이 해외에서 난민 생활을 하고 있고 총인구는 4분의 1이 줄었다. 경제도 3분의 1이 토막 났다. 6·25전쟁의 참상을 겪은 우리는 전쟁이 얼마나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고 국토를 황폐화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지난 1000일은 견디기 힘든 나날이었다. 공포와 누군가의 죽음이 늘 곁에 있는 지옥이었을 것이다. 그나마 나라를 지키겠다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강한 의지가 서방의 지원을 끌어냈고, 단기전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여태껏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스스로 지킬 힘이 없으면 평화를 얻기는 어렵다는 걸 보여준 전쟁이기도 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24시간 내 끝낼 수 있다”고 장담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후 전황이 격해지고 있다. 트럼프가 지원 중단 카드로 현 상황에서의 종전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동남부 전선의 전투가 격렬해졌다. 북한군까지 참전한 러시아 쿠르스크 전선도 마찬가지다. 이대로 가면 내년 1월 트럼프 취임 이후 우크라이나는 국토의 20%를 러시아에 빼앗긴 채 종전을 맞아야 할 수도 있다. 지금도 휴전상태인 우리에겐 남의 일 같지 않은 전쟁이고 우리의 안보 인식에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전쟁이다. 우크라이나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지만 힘이 없으면 국가의 운명도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운 게 냉혹한 현실이다.
핵무기를 쥐고 위협하는 북한과 그런 북한을 이용해 세를 과시하는 러시아와 중국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는 대한민국이다. 우크라이나 지원 등 북한군 파병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과는 별개로 자강(自强)의 각오를 다지지 않으면 안 된다. 한·미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고 외교·안보 지평도 넓혀야 함은 당연하지만, 먼저 우리 스스로 강해지지 않으면 모든 게 사상누각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것을 다시 한번 증명해주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한때는 핵 보유국 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신생 독립국이 됐을 당시 옛 소련이 보유했던 핵무기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176개의 핵미사일과 1천800여 기의 핵탄두를 보유했다. 하지만 1994년 미국, 영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4개국이 체결한 부다페스트 협정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기로 했고 그 대가로 안전보장을 약속받았다.이 안전보장 약속은 20년 만에 허무하게 깨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전격적으로 침공해 병합했기 때문이다. 만일 지금까지도 핵을 보유했으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을 할 수 있었을까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한편 프랑스는 미국,러시아,영국에 이어 네번째 핵보유국이 되었다. 프랑스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드골 대통령이 "워싱턴이 공격을 받으면 미국이 프랑스를 지켜주겠는가"라고 하며 핵개발에 성공했다. 제 2차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은 거의 절대적으로 미국에게 의존했다. 국가주권과 관련이 있는 일조차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 드골은 미, 소 두 나라 권력자들이 전쟁의 주요회담에서 프랑스가 무시당하는 것에 분노했다. 프랑스는 베트남과 수에즈, 알제리 전쟁에서 미국에 의존했다.
1914년 1차세계대전 당시 프랑스는 연합군 덕에 생존했으나 혹독한 비용이 들었다. 1940년 미국과의 동맹은 2차 세계대전에서 나라를 구하는데 실패했다. 프랑스는 미국과의 동맹에 다소 희망을 걸고 있었으나 자존심이 높은 드골은 미국을 믿을 수 없었다. 드골은 나토를 미국, 영국, 프랑스 3강체제로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프랑스에는 핵무기가 없다며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거절당하자 드골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독자적인 핵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프랑스는 핵개발을 주장했다. 드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독자적인 핵전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프랑스는 더 이상 유럽의 강대국도 아니며 더구나 주권국일 수도 없으며 미국의 종속국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에 미국과 소련은 프랑스의 핵개발 포기를 종용하는 결의안을 유엔에서 통과시키지만 드골은 1960년 2월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자 "위대한 프랑스 만세!", "오늘 이후로 프랑스는 더욱 강력하고 자랑스런 국가가 되었다!"고 외쳤다.
핵개발에 성공한 프랑스가 핵폭격기를 구비하자 프랑스의 핵무기는 미국과 소련의 10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미국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키신저는 나토와 갈등하는 프랑스를 비난했고 프랑스에서 미국은 전술적 핵무기를 철수했다. 프랑스의 핵무기를 미국은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드골은 미국에 대항하여 1964년 1월 27일 적대국이던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소련의 모스크바를 방문했으며 미군장성이 지휘권을 행사하는 나토연합군에서 탈퇴했다. 또한 프랑스 주둔 미군을 쫓아내면서 사실상 프랑스는 독자노선을 걸었다.
드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토는 프랑스의 독립과 국익에 배치된다. 우리가 나토 회원국이 된 것은 소련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받으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나는 지금은 소련이 공격해 올 것으로 믿지 않는다. 프랑스는 나토, 미국과 더 이상 동맹체제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의 종속체제이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주권을 회복한 이후에 프랑스는 미국과의 동맹에 참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책임져주는 미국과 같은 상전은 받아들일 수 없다” 결국 미국과 프랑스의 적대적 관계는 1969년에 가서야 해소되었다. 닉슨이 프랑스를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며 진정한 우방으로 미국이 먼저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프랑스의 핵무기는 미국에 비하여 보잘 것도 없었지만 핵무기를 가진다는 건 강대국을 의미하고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이라도 함부로 할 수 없으며 외교적으로 동등한 입장이 된다.
미국과 적대관계에서 핵무기를 개발한 북한에게,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엔제재는 거의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 만약에 제재가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미국의 적대행위에 대항해 전쟁이라도 선포하면 , 미국은 단 몇 분 안에 핵공격을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미국은 언제든 생각을 바꿔 북에게 조건 없이 손을 내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프랑스를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손을 내밀지 않았다면, 미국은 세계의 패권국이 될 수도 없었을 것이며, 자본주의 종주국으로서 미국의 헤게모니는 지난 세기에 붕괴 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한반도의 번영과 평화를 위하여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는 건, 미국의 빗나간 패권주의 때문에 70년 동안 분단된 이 땅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불행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금이라도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해주고 전쟁 직전의 위험천만한 대북 적대정책을 버리고 북과의 문제를 대화로 풀어가기 바란다.
힘에 의하여 좌우되는 국제관계에서 국익을 위해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게 프랑스의 핵개발과 미국의 데탕트가 주는 교훈이다. 한국의 핵개발에 열린 생각을 갖고 있는 트럼프 집권기에 주한미군이 철수하거나 감축된다면 프랑스의 핵개발 과정을 타산지석 삼아 우리의 안보 주권을 확립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국을 유럽에 갖다 놓으면 경제력이나 기술력, 군사력 면에서 프랑스 정도의 나라라고 하는 평가가 있습니다. 프랑스가 핵개발을 한 시기는 1960년 알제리에서 핵실험에 성공했응 때 입니다. 그 때의 프랑스와 현재의 한국을 비교하면 우리의 국력이 프랑스를 능가하고도 남을 것 입니다. 우리도 기회를 틈타 핵을 개발하고 그로 인한 이런저런 문제는 그때 해결하는 용기가 필요할 것 입니다. 염려되는 것이 수출 문제인데 한국 제품을 수입하는 국가들은 우리 사정을 봐서 물건을 사주는 것이 아니고 품질과 가격면에서 한국 제품의 가성비가 좋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서 사는 것 입니다. 중국,러시아, 북한은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로서 모도 핵을 보유한 국가들이고, 북한은 노골적으로 한국을 핵으로 공격을 할 수 있다고 공언하고 있는 실정입니다.더구나 러시아와 군사동맹 수준으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도 한반도의 긴장감을 고조 시키고 있습니다. 한국의 처지가 참으 백척간두에 서 있는 형국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