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마대 요셉
아리마대 요셉은 4복음서 모두에 등장한다(마27:57, 막15:43, 눅23:50~51, 요19:389). 그에 대해 정리해보면 이렇다.
요셉은 아리마대 사람으로, (산헤드린) 공회원이었고, 부자였으며, 예수의 제자(따르는 자)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였고, 선하고 의로운 자로, 산헤드린공회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않았으며, 당돌하게 총독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했던 자이다.
신약에서 요셉의 고향은 “아리마대”라고 했는데 이는 헬라어 하리마다이아스(Ἁριμαθαίας)를 번역한 것이다.
헬라어 “하리마다이아스”는 히브리어 “하라마타임(הָרָמָתַיִם)”을 音譯한 것으로 “하(הָ)”는 정관사이므로 地名에서는 이를 빼고 번역 해야 한다. 하라마타임이라는 地名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헬라어 번역자가 실수하여 정관사를 넣어 번역하였고, 한글성경은 하(הָ)를 “아”로 번역하여 한 번 더 실수했다.
아리마대는 사무엘의 고향이다. 삼상1:1을 보자.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엘가나는 사무엘의 아버지로 라마타임 쪼핌(רָמָתַיִם צֹופִים)에서 살았다. 그런데 한글성경은 삼상1:1에서 두 단어를 합쳐 “라마다임소빔”이라고 번역했는데 이는 誤記다. 라마타임 쪼핌이란 “파수꾼들이 있는 高地”란 뜻이다. (아리마대 → 라마타임)
막15:1을 보자.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
새벽에 유대 최고 율법기관인 산헤드린공회가 소집되었다. 새벽에 모이는 것은 불법이었으며 그곳에서 예수의 사형 결정을 내렸다(마27:1). 그러나 그 투표에서 오직 한 사람만은 반대표를 던졌다. 눅23:51을 보자.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찬성하지 아니했다는 말은 반대표를 던졌다는 뜻이다. 잘못했다간 반역자로 몰려 목이 날아갈 수 있는 상황인데 요셉은 홀로 반대표를 던졌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눅23:50을 보자.
“공회 의원으로 善하고 義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요셉은 “善”과 “義”로 무장된 사람으로 마음에 꺼릴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은 죽음도 불사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惡도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惡이 사람의 양심을 지워버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