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을미년 (1595년 3월)>「 "오늘 군량을 계산하여 딱지를 붙였다"」
147
3월 초1일 (갑술) 맑다. [양력 4월 10일]
148
삼도에 겨울을 지낸 군사들을 모아 임금님께서 하사하신 무명을 나누어 주었다.
149
조방장 정응운(丁應運)이 들어왔다.
150
3월 초2일 (을해) 흐렸다. [양력 4월 11일]
151
3월 초3일 (병자) 맑다. [양력 4월 12일]
152
3월 초4일 (정축) 맑다. [양력 4월 13일]
153
조방장 박종남(朴宗男)이 들어왔다.
154
3월 초5일 (무인) 비가 내렸다. [양력 4월 14일]
155
노대해가 왔다.
156
3월 초6일 (기묘) 맑다. [양력 4월 15일]
157
3월 초7일 (경진) 맑다. [양력 4월 16일]
158
조방장 박종남(朴宗男) ∙ 조방장 신호(申浩) ∙ 우후(이몽구) 및 진도군수(박인룡)가 와서 봤다.
159
3월 초8일 (신사) 맑다. [양력 4월 17일]
160
식사를 한 뒤에 대청으로 나갔다. 우수사(이억기) ∙ 경상수사(배설) ∙ 양 조방장(박종남 ∙ 신호) ∙ 우후(이몽구) ∙ 가리포첨사 ∙ 낙안군수 ∙ 보성군수 ∙ 광양현감 ∙ 녹도만호가 아울러 모두 와서 이야기 했다.
161
3월 초9일 (임오) 맑다. [양력 4월 18일]
162
저녁나절에 대청으로 나갔다. 방답의 새로 부임한 첨사 장린(張麟) ∙ 옥포의 새로 부임한 만호 이담(李曇)이 공사례의 인사를 했다.
163
진주의 이곤변(李坤 )이 와서 보고 돌아갔다.
164
3월 초10일 (계미) 흐리고 가랑비가 내렸다. [양력 4월 19일]
165
조방장 박종남(朴宗男)과 함께 이야기했다. 보성군수 안홍국(安弘國)이 아뢰고 돌아갔다.
166
3월 11일 (갑신)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양력 4월 20일]
167
사도시(대궐 안의 쌀 ∙ 간장 등을 맡은 관청)의 주부 조형도(趙亨道)가 와서 전라좌도의 왜적의 정세를 말하고, 또 투항해 온 왜놈 들의 말을 전하는데, 풍신수길(豊臣秀吉)이 삼년간이나 출병해도 끝내 효과가 없으므로, 군사를 더 내어 바다를 건너 부산에다 진영을 설치하려고 하는데, 3월 11일에 바다를 건너 오기로 벌써 정해졌다고 했다.
168
3월 12일 (을유) 흐렸다. [양력 4월 21일]
169
조방장 박종남(朴宗男)과 우후(이몽구)가 장기를 두었다.
170
3월 13일 (병술)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양력 4월 22일]
171
아침에 자윤 박종남(朴宗男) 영감을 불러 같이 밥을 먹었다.
172
저녁에 식사를 한 뒤에 조형도(趙亨道)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173
3월 14일 (정해) 비는 오고 바람은 그쳤다. [양력 4월 23일]
174
남해현령이 진에 이르렀다.
175
3월 15일 (무자) 비가 잠깐 그치고 바람도 잤다. [양력 4월 24일]
176
식사를 한 뒤에 조형도(趙亨道)가 아뢰고 돌아갔다. 저녁나절에 활을 쏘았다.
177
3월 16일 (기축) 비가 내렸다. [양력 4월 25일]
178
사도첨사 김완(金浣)이 들어왔다. 그 편에 들으니, 충청수사 입부 이순신(李純信)이 군량미 이백 여 섬을 조도어사 강첨(姜簽)에게 발각되어 그 때문에 잡혀 심문당했다고 했다.
179
또 새로 부임한 충청수사 이계훈(李繼勛)은 배에서 불을 내었다고 하니, 참으로 놀랄 일이다.
180
동지 권준(權俊)이 본영에 왔다고 했다.
181
3월 17일 (경인) 비가 걷힐 듯하다. [양력 4월 26일]
182
아들 면 ∙ 허주(許宙) ∙ 박인영(朴仁英) 등이 돌아갔다. 오늘 군량을 계산하여 딱지를 붙였다.
183
충청우후(원유남)가 달려 와 보고 하는데, 수사 이계훈(李繼勛)이 불을 내고 자신은 물에 빠져 죽었으며, 군관과 격군 백마흔 여 명이 불에 타 죽었다고 하니, 놀랍기도 하다.
184
저녁나절에 우수사가 달려와 보고하기를,
185
"견내량의 복병한 곳에 서 온, 투항한 왜인 심안은이(沈安隱已: 시마즈)를 문초했더니, 그 놈은 본시 영등에 있던 왜놈이고, 그의 장수 심안둔(沈安頓: 島津 義弘)이 그의 아들(島津忠恒)을 대신 두고 가까운 시일내에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라 한다."
186
고 했다.
187
3월 18일 (신묘) 맑다. [양력 4월 27일]
188
권언경(權彦卿) ∙ 아우 여필 ∙ 조카 봉 ∙ 이수원(李壽元) 등이 들어왔다. 그 편에 어머니께서 편안하시다는 말을 들으니, 천만다행이다.
189
우수사가 와서 이야기했다.
190
3월 19일 (임진) 맑다. [양력 4월 28일]
191
권언경(權彦卿) 영감과 함께 활을 쏘았다.
192
3월 20일 (계사) 비가 내렸다. [양력 4월 29일]
193
식사를 한 뒤에 우수사에게로 가다가 길에서 수사 배설(裵楔)을 만나 배 위에서 잠깐 이야기했다. 그는 밀포(蜜浦)의 둔전치는 곳을 살펴 볼 일로 간다고 했다. 그 길로 우수사에게로 가서, 몹시 취하고, 저물어서 돌아왔다.
194
3월 21일 (갑오) 맑다. [양력 4월 30일]
195
저녁나절에 아우 여필 ∙ 조카 봉 ∙ 이수원(李壽元)이 돌아갔다. 나주반자(元宗義)와 우후(李夢龜)가 와서 봤다.
196
3월 22일 (을미) 샛바람이 세게 불었다. [양력 5월 1일]
197
날씨가 일찍 흐리다가 저녁나절에 개었다.
198
세 조방장과 함께 활을 쏘았다. 우수사가 여기 와서 같이 쏘았다. 날이 저물어 헤어져 돌아왔다.
199
3월 23일 (병신) 맑다. [양력 5월 2일]
200
아침식사를 한 뒤에 세 조방장 및 우후와 함께 걸어서 앞산 봉우 리에 오르니, 삼면으로는 바라보이는 앞이 막히지 않고, 길은 북 쪽으로 트여 있다. 과녁을 세우고 자리를 닦고, 거기에 앉아 종일 토록 돌아올 것을 잊었다.
201
3월 24일 (정유) 흐리고 바람이 없다. [양력 5월 3일]
202
공문을 결재했다. 저녁나절에 세 조방장과 함께 활을 쏘았다.
203
3월 25일 (무술) 종일 비가 내렸다. [양력 5월 4일]
204
동지 권준(權俊) ∙ 우후 ∙ 남도포만호 ∙ 나주반자가 와서 봤다. 영광 군수도 왔다.동지 권준(權俊)과 장기를 두었는데 권준(權俊)이 이겼다.
205
저녁에 몸이 몹시 불편했는데 닭이 울어서야 열이 조금 내리고 땀은 흐르지 않았다.
206
3월 26일 (기해) 맑다. [양력 5월 5일]
207
영광군수(丁淵)가 나갔다. 저녁나절에 조방장 신호(申浩) ∙ 박종남(朴宗男)과 우후와 함께 활 열다섯 순을 쏘았다.
208
저녁에 수사 배설(裵楔) ∙ 이운룡(李雲龍) ∙ 안위가 와서 새 감사(監司) 맞이할 일을 아뢰고, 사량(통영시 사량면)으로 갔다.
209
밤 열 시쯤에 동쪽이 어둡다가 밝아지니, 무슨 상서로운 조짐인지 모르겠다.
210
3월 27일 (경자) 맑다. [양력 5월 6일]
211
식사를 한 뒤에 우수사가 여기 와서 종일 활을 쏘았다. 어둘 무렵 조방장 박종남(朴宗男)에게로 가서 발포만호 ∙ 사도첨사 ∙ 녹도 만호를 불러서 같이 이야기하다가 헤어졌다.
212
탐후선이 들어왔다. 표마(表馬)와 종 금이가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한다.
213
3월 28일 (신축) 맑다. [양력 5월 7일]
214
활 열 순을 쏘았다. 저녁나절에 사도첨사가 와서 보고하기를,
215
"각 포구의 병부(兵符)를 순찰사의 공문에 따라, 각 포구에 직접 나누어 주었다."
216
고 했다.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217
3월 29일 (임인) 맑다. [양력 5월 8일]
218
식사를 한 뒤에 두 조방장과 이운룡(李雲龍) ∙ 조계종(趙繼宗)이 활 스무세 순을 쏘았다.
219
수사 배설(裵楔)이 순찰사에게서 오고, 미조항첨사(성윤문)도 진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