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가파른 내리막이었다.
더구나 공사 중이어서 위험하기까지 했다.
물론 여기도 '태백산맥'의 한 줄기일 터라, 그 내리막을 따라 내려가기만 하면 동해안이기도 할 터고.
그렇게 바빡 긴장한 상태로 내리막을 타 한 구비를 도니,
내가 아까 지나왔던 터널 공사의 맞은 편이 나왔는데,
그리고 또 한 구비를 도니,
이 터널 공사의 제일 아래 구멍과 마주했는데,
이제 머잖아 차들은 이런 터널로 달릴 것인데, 그나마 나는 구 도로(고개)를 자전거로 넘어본 사람이 되기도 할 것이었다. ('옛날 사람'이 되는 기분이기도 했다.)
그러고도 내리막은 계속 돼,
이제 크게 힘들 일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쏜살같이 고개를 내려오는데, 여전히 사과 과수원이 이어지고 있었고,
내가 이렇게 험한 영양군을 지나면서, 그 많은 사과밭을 지나오면서, 손만 뻗으면 하나 따먹을 수도 있는 사과 과수원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곳인데, 단 하나 맛도 못 보고 벗어난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고,
좀 억울하기도 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자전거를 멈췄고, 조금 되돌아 올라갔다.
과수원 집이 보였고 거기엔 사과박스가 몇 개 놓여 있었던 것을 보고 지나쳤기 때문으로,
문 앞에서 보니 저 쪽에서 한 사람이 뭔가를 하고 있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조금 큰 소리로 불러서야 그 쪽에서 나를 봤는데, 40대로 보이는 젊은이였다.
"저... 귀찮게 하지 않았나 모르겠네요."
"?...."
"보시다시피 저는... 이렇게 여행을 하는 사람인데, 지나는 길에 여기 사과 맛이라도 한 번 보고 갈 수 있을까 해서요......" 하자,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떴던 그는,
"아, 예......" 하고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 보더니, 그 사과 상자에서 몇 개의 사과를 고르기 시작했다.
(나중에 갖고 온 사과는 세 개로, 옆이 터진 것들이었다.)
"이 건 병든 사과가 아니고......" 하는데,
"나도 알아요. 먹는 데는 하나도 이상이 없다는 걸." 하고 웃으면서, 나는 가방에서 이미 2천 원을 꺼내고 있었다.(천 원짜리 두 장이 있어서) 그러면서,
"이 정도 드리면 될까요?" 하자,
"아니, 돈을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예!" 했지만,
"나도, 그냥 공짜로 먹을 생각은 아니었답니다. 그냥, 성의로......" 하자,
계속 아니라고 하던데,
"저 쪽, 사과나무 아래서 먹어도 되겠지요?" 하고 묻자,
"아니, 이 안으로 들어와 저 의자에 앉으셔서 편하게 드시지요." 하기에,
"나는 과수원이 더 좋은데요. 자유롭고......" 하면서 길 건너 과수원 쪽으로 갔는데,
내가 자전거를 세우고 거기에 자리를 잡으려는데, 그가 의자와 사과 세 개를 더 가지고 나타났다.
"이렇게나 많이 필요하지 않아요. 여행 중이라 가져갈 수도 없으니......" 했는데도,
"남으면 가방에 넣어가시면 되잖아예?" 하면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거기에 자리를 잡고, 허기진(아침으로 먹은 게 대추 몇 개가 전부였으므로)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또 극성맞게(?) 동영상으로도 남긴다. (아래)
깊은 산골이었고, 아름답기까지 했다.
더구나 날씨도 좋았다.
그렇게 사과 두 개로 허기를 달랜 뒤,
가방 안에 나머지 사과를 집어넣고는,
또 달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바다에 닿으면 끝인가?
그럴 것이기도 했다.
그 다음엔 어떡한다지? 하다간,
일단 바다에 닿은 뒤 생각해 보자. 하면서 달려나갔다.
점점 바다가 가까워지는가 보았다.
어쩐지 그런 냄새(?)가 풍기는 것 같기도 했던 것이다. (바람의 색깔(냄새)이 달랐다.)
그렇게 '영해'에 닿았는데,
일단 거기 '버스 터미널'에 가서 차 시간표를 본 다음에 다음 행선지를 정하기로 했다.
남쪽인 '영덕'이거나 '포항', 아니면 북쪽으로 '울진'이거나 '삼척' '동해'......
배가 등에 붙어 있기는 했지만 고픈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대구'나 '안동' 쪽으로의 버스는 곧 있었는데,
거기서 '포항' 쪽으로의 버스는 한참 기다려야만 했고(하루에 몇 차례 없었고),
북쪽도 마찬가지였는데,
'울진' 쪽으로 곧 출발하는 버스가 있었다.
그래서 보니 2분 뒤에 출발이어서,
바다도 못 보고 떠나야 하나? 하는 심정이면서도,
울진에 가야만 그 위 쪽인 강원도 '삼척'이나 '동해'로 가는 버스가 있다기에,(그 버스를 놓치면 오늘 중으로 강원도에 갈 수도 없을 것이어서)
부랴부랴 버스에 자전거를 싣자마자,
버스가 출발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아무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아쉬웠다.
여까지 왔는데, 밥은 고사하고 바다도 못 보고 떠나다니......
그러다 보니 뭔가 미련이 남아, 버스 안에서도 바다 쪽의 풍경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어대기 시작했다.
여기도 가을 들판은 절정이었다.(아래)
결국 '울진' 터미널에 닿았는데,
'동서울'행 버스가 한 시간 정도 후에 출발한다는 것이었다.
오늘 '삼척'이나 '동해'에 가서, 거기서도 하룻밤 찜질방에 가서 잘 생각이었는데, 그냥 바로 서울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계산을 해 보니, 차라리 그 대로 서울로 가는 게 훨씬 경제적일 것 같았다.(내일도 서울까지의 고속버스 비는 마찬가지일 테지만, 오늘 밤에 숙식을 해결해 나가는 것에 비해선......)
더구나, 이 근방의 어딜 가거사 '돼지국밥' '순대국밥' 같은 것은 여전히 싫어,
그저 하얀 쌀밥에 김치 하나만 가지고 먹는 '집밥'이 너무 그리워서,
타지에서 뭘 먹을까 고민하는 대신,
집에 가서 밥을 해먹자! 하는 생각이 강해,
그대로 서울로 돌아가기로 거기서 결정을 내리고 만다.
(계산을 해 보니 어떻게든 바다를 볼 수 있는 시간은 될 것 같아서)
그렇게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기에,
어쨌든 바다는 보고 가야지! 하면서 나는 그 즉시 바다쪽으로 자전거를 몰았다.
'망양정' 방향이었고,
곧 바다에 닿을 수 있었다.
바다야, 내가 왔다. 이빨 빠진 노인네의 모습으로...... 그나마 이렇게라도 마주할 수 있어서 다행이구나. 이 순간을 맞보려고 그 험한 산맥을 넘어왔는데, 그냥 떠날 순 없지......
그나저나, 이번에 (자전거로)태백산맥을 넘은 게 몇 번째라지?
(그렇게 울진 터미널에 돌아와 동서울행 고속버스를 탔고, 동서울에 도착한 뒤(밤 10시 경?) 한강 자전거길로 달려 '내 자리'에 도착했을 땐,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새벽부터 하루 종일 정말 먹은 건 대추와 사과 뿐이었고(물 포함), 샤워부터 한 뒤 밥을 해서... 한밤중에 밥을 먹은 뒤에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첫댓글 대단한 여정입니다.
동해에 하루 쯤 더 머물고 왔더라면 다 좋았을 걸 그랬네요.
하루가 줄어든 것보다는 나았을 거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