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聖神) 11 (1)
김진석은 자신이 쓴 소설의 제호를 내게 부탁 했다. 그리고 자신의 글을 출판해 줄 마땅한 출판사를 수소문했다. 그러나 수천 개나 되는 출판사 가운데 그의 책을 출판해 줄 출판사는 그리 많지가 않았다.
많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예 없었다. 이야기 자체가 종교적인 냄새가 다분히 풍겼고, 마땅히 들어가 재미를 주어야 할 SEX적인 요소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SEX가 없어서‥‥‥‥“
김진석은 자신의 소설 이름을 출판사 경영자에게 입이 닳도록 설명했으나 먹혀 들어가지 않았다. 서구의 소설은 거의 모두가 종교 소설이라 할 정도로 종교적인 냄새가 풍긴다. 특히 명작이란 종교가 삽입되는 것이 원칙이라 할 정도로 종교는 그들이 쓰는 주제였다. 음악과 미술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추리 소설에 있어서도 종교가 등장한다. 그것은 그들의 생활 전체가 종교적이기 때문이다. 불란서나 이태리의 작품을 보면 그건 더욱 확연히 알 수가 있다. 그들의 국가가 가톨릭을 신봉하고 있기 때문에 가톨릭이 국민들 사이에 배었다. 또 인간의 삶의 모습이 종교적이고 구원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탕달의 '적과 흑', A.j크로닌의 '천국의 열쇠', 빅톨 위고의 '장발장', 괴테의 '파우스트'들이 모두 종교를 배경으로 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다르다. 종교도 가지각색이고, 종교를 다루면 책전체가 종교를 선전하는 홍보물처럼 돼버리는 것이 실상이다. 특히 종교인 가운데 남의 종교를 배타적으로 선전하는 경향이 있어서, 불교적인 소설을 쓰면 기독교인이 아예 수용을 하지 않는다. 또 불교인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불신 한다. 민속 신앙의 상징처럼 동네 입구에 세워 놓은 장승이 수난을 당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종교 간의 골이 깊게 파여 있는지 알 수가 있다.
김진석이 말했다.
"내가 쓴 소설은 종교가 주제가 아니야. 가톨릭의 신부가 주인공이 되면 가톨릭 소설이고, 스님이 주인공이라면 불교 소설이란 것에 대해 나는 견해를 달리하네. 주인공은 스님이 될 수가 있고, 신부나 수녀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범죄자가 될 수도 있지. 범죄자가 등장하는 추리 소설을 범죄 소설이라고 할 수 없듯이, 주인공의 신분이 소설의 전체에 영향을 주니 반드시 주인공과 같은 소설, 즉 주인공적 소설이라고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문제는 누가 등장했고 주제가 무엇이고 간에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줄 수가 있고, 그 가운데 사랑의 함량이 얼마나 크게 포함 되어 있는 건가 하는 거야. '레미제라블'에 늙은 신부 미리엘이 등장했다고 해서 '레미제라블'이 가톨릭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나. 가톨릭적인 글을 쓰다 보면 개신교 신자들은 읽으려 하지 않지. 사실 종교란 인격의 가치에 일역을 담당하는 것인데 말이야. 또 있네. 내 것이 최고선이고, 상대의 것은 최고 악이라는 생각 말이야."
김진석은 여러 군데의 출판사 경영자를 만나 자신의 작품을 설명했으나 거절을 당한 데 대한 불만을 내게 토로하고 있었다. 그 즈음 '성신(聖神)'이란 제명이 붙은 책 광고가 모 일간지에 게재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 책의 저자는 김진석의 후배 유준성이었다. 유준성은 앞서 말했듯이 '사람들의 시장'이란 책을 써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한창 팔리고 있는 작가였다.
그 책의 내용은 문무를 겸한 젊은 주인공이 악의 소굴에 뛰어 들어 무차별적으로 악인들을 응징하고 정의의 편에 서서 활약 하는 소설이었는데, 그 시대에는 독재 권력이 판을 쳐 함부로 사람들이 독재 권력에 대한 비판을 못하고 있는 숨죽이는 시대였다. 내용은 무협지와 같았는데, 이상하게도 그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무명 작가였던 유준성은 그 소설로 인해 당장 명사가 돼 버렸고, 월세방에서 전세방으로, 몇 달 후에는 큰 저택을 사서 옮기는 둥 횡재를 했다.
소설을 써서 돈을 번 몇몇 안 되는 작가의 계열에 들어간 그는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비록 자신의 소설이 잘 팔려서 경제적인 이득은 좀 취했다고 해도 작가로서 문제작이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작품들은 일년이나 이년 후면 바람처럼 사라져 청계천 헌책방에나 가 있을 책이었다. 말하자면 일회용 소모품적인 책이었다. 그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자신 작품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무엇인가 좀더 비중 있는 내용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던 그가 마침내 '성신'이란 책을 썼던 것이다. '성신'의 책 광고는 매일같이 여러 신문에 게재 되었고, 평론가들의 찬사가 쏟아져 나왔다. 김진석은 평론가들이 쓴 기고문을 읽어 보았다.
신(神)의 목소리 담긴 걸작
작가 유준성은 그의 생애에 괄목할 만한 작품을 남기기 위해 고민을 해 왔다는 것은 문단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제 그의 생애에 부끄럽지 않은 소설을 남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작자인 본인의 의견만이 아닌 것이다.
우선 그가 즐겨 다루고 있는 소재가 무협 소설의 주인공 류를 벗어나 진정 인간의 내면을 훑어보고 고민하는 주인공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성신'이란 제호가 뜻하듯이, 주인공들은 모두 이 세상에서 불우한 역경을 역경이라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가치관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물론 아니다. 그들은 고통을 통해 신의 뜻이 어디 있는가를 규명하려고 애쓴다. 주인공인 신부와 그의 사생아나 다름없는 아들 등을 통해 진정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관과 운명 같은 것들을 그의 소설로 조명시켜 주었다.
이런 작품이 드문 한국 문단에서 '성신'의 탄생은 대어를 낚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도찬(평론가)
또 다른 평론가는 아예 그를 문호(文豪)처럼 표현해 놓았다.
작가 유준성은 일찍이 김동리가 쓴 '등신불'이 그랬듯이 종교 와 현실과의 벽을 세심히 그려냈다. 그가 그려 낸 종교의 벽이란 두텁지 만은 않았다. 어차피 종교란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관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독자들의 말초 신경이나 건드려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내는 문단 풍토에서, 유준성의 작품은 군계일학이 아닐 수가 없다. 그의 나이가 아직 젊고 필력이 건재한 이상, 다음 작품을 기대할 만하다. 그가 언제 종교에 대한 깊숙한 구석을 연구했는지 그의 투철한 작가 정신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반호명(평론가)
김진석은 유준성의 작품 '성신'의 광고에서 낯익은 주인공의 냄새를 맡았다. 그는 유준성이 무신론자이면서 인간적으로 그리 탐탁치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성신'이란 작품을 썼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서점으로 달려갔다. 서점에서 그는 '성신'을 한 권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 꼼꼼히 읽어 보았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가? 자신이 쓴 작품과 줄거리가 같을 뿐 아니라, 주인공 여덟 명의 이름도 똑같지 않는가. 그는 그걸 읽어 내려가다가 분노로 그만 졸도를 할 뻔했다.
아니 이럴 수가!"
그는 방금 배달된 석간신문의 광고 면을 훑어보았다.
'성신'의 광고문이 주먹만 하게 실려 있었다.
탄생의 비밀은 마침내 알려지게 되었고
부모는 뜻밖에 성직자였다.
그것도 독신을 고수하는 가톨릭의 사제와 수녀였다.
그들의 불륜은 신의 뜻을 거역했다.
좌절과 실망 끝에 마침내 주인공은
최후의 도전을 하게 되었고‥‥‥‥
도전은 과연 그를 승리케 했는가?
그가 마지막 찾은 안식처에서 그는 죽었다.
오늘의 세상에 충격적으로 와 닿는 보기 드문 문제작!
전국 서점에 있습니다.
김진석은 책을 들고 급히 내게 달려왔다.
"큰일 났어. 이런 나쁜 놈이‥‥‥‥
그는 입에 거품을 물었다. 너무 흥분을 했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진정하고 차근차근히 이야기하게."
그는 '성신'이란 책을 내게 보여 주었다.
"이것 보게. 이 내용이 누가 쓴 것인가. 자네가 잘 알 것이 아닌가?"
그는 나를 증인으로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이야기가 비슷한 것이 아니라 아예 똑같애."
내가 첫 장을 훑어보니 김진석의 말이 실감이 났다.
"우린 모두가 피해자야. 탁현총이란 놈에게 농락을 당한 거야. 그놈이 내 원고를 빼돌렸어."
"빼돌려 뭘 하게?"
"뻔하지 않은가. 그걸 유준성이란 사이비 작가에게 돈을 받고 팔았던 거야. 나 모르게‥‥‥‥
"탁현총이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 인물은 아니지 않아?"
"틀림없어."
"자네의 글을 탁현총에게 맡겼었단 말인가?"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