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주말 아르바이트를 구한 A씨. 면접 후 점장 B씨에게서 근무시간과 수습기간 안내를 담은 문자 한 통이 도착합니다. 이에 A씨는 "네"라고 적은 답장을 보내는데요. 그런데 B씨가 별안간 "나오지 말라"는 회신을 보냅니다. 대답이 너무 짧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근무 시작 전엔 언제든 해고해도 될까?
B씨의 행동엔 위법의 소지가 있습니다. 우선 B씨는 A씨에게 1개월의 수습기간 동안은 약속한 급여보다 적은 돈을 주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알바생에게 수습기간을 적용하려면 몇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합니다.
1년 이상의 기간을 정했거나 정규직으로서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만 수습기간을 적용해 근무 시작 후 3개월까진 최저임금의 90%까지 감액할 수 있습니다. 근로계약 체결 당시 1년 미만의 기간만 일하기로 약속했는데 수습기간이라며 월급을 덜 준다면 이는 임금체불에 해당합니다.
아울러 A씨가 실제로 한번도 출근한 적이 없더라도 일단 B씨가 채용을 확정지었다면 문자 한통으로 해고할 수 없습니다.
근로계약이란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이에 대해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체결된 계약을 말합니다. 근로계약은 당사자 사이의 의사표시가 합치하기만 하면 계약이 성립하며 그 밖에 다른 형식이나 절차를 요하지 않는 낙성·불요식의 특성을 가집니다. 즉 명시적인 계약서 작성 이전이더라도 A씨와 B씨 두 사람이 각각 채용과 근로에 합의했다면 계약은 성립합니다.
A씨 채용 전 B씨는 구인구직 사이트에 알바생 모집 공고를 올렸을 텐데요. 이와 같은 공고는 청약의 유인행위의 일종입니다. 근로자가 요건을 갖춰 모집절차에 응하면 청약이 됩니다. 이때 사용자가 근로자를 선발하면 근로계약 청약에 승낙을 한 것으로 보고, 동시에 근로계약도 체결됩니다. 판례 또한 사용자가 전형절차를 거쳐 근로자에게 최종 합격을 통지하면 근로계약 승낙의 의사표시를 한 것이라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은 기본적으로 해고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최종합격을 통보한 후 근로자의 의사에 반해 일방적으로 채용을 취소하면 근로기준법상 부당해고에 해당하는데요. A씨가 가게에 출근해 본격적인 일을 시작하는 등 현실적인 근로제공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사용자가 해약권을 가지는 건 아닙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부당해고 구제신청 불가
부당해고를 당한 근로자는 해고가 있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부당해고가 사실로 인정되면 근로자인 원래 근무지로의 복직과 해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받았을 임금 상당액에 해당하는 금전적 보상을 받게 되는데요.
다만 이는 B씨가 채용한 직원이 5인 이상일 때만 가능한 얘기입니다. 근로기준법은 상시 5인 이상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만 적용됩니다. 즉 4명 이하의 인원이 근무하는 가게라면 현행법상 △부당해고 금지 △해고의 서면 통지 △부당해고 구제신청 △근로시간 제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등의 조항으로 보호받지 못합니다.
A씨처럼 실 근무 이전에 해고를 해도 대응이 어렵습니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당일 해고를 당한 경우에는 법원에 해고무효소송을 제기하는 게 거의 유일한 구제수단인데요. 법정 다툼을 하더라도 근로자가 승소할 확률이 매우 적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울산의 한 치킨집에서 일하던 종업원이 "며칠 지켜본 결과 미안하지만 같이 일하기 힘들 것 같다"는 내용의 문자를 받은 뒤 곧바로 해고당하자 치킨집 사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는데요. 재판을 담당한 울산지방법원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 사업장이 아니다"라며 치킨집 사장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처럼 갑작스런 해고에서 오는 억울함과 분노에 비해 소송에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크고, 승소할 가능성도 희박하다보니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다른 근무처를 찾아 떠나곤 합니다.
2021년 기준 5인 미만 사업장 소속 노동자는 580만명으로 추산됩니다. 전체 노동자의 4분의 1 가량인데요.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많은 이들이 피해를 주장하자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근로자 수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근로기준법상의 예외조항을 아예 삭제하거나, 근로기준법을 모두 적용하되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일부 조항을 적용하지 말자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