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향, 은어
이은규
한낮의 여름
수박 향이 나는 물고기에 대해 알고 있니
은어라는 이름의 물고기래
때로 어떤 문장은 화석처럼 박힌다
언젠가 물 맑은 곳으로 떠나자, 약속
뾰족했던 마음이 한결 둥글어질 거야
나는 생각했다
한 사람의 눈동자보다 깊은 수심은 없어,
어디에도
흐리고 비, 흐리고 가끔 비
물고기에게서 어떻게 수박 향이 날까
은어는 초록 이끼를 먹고 무럭무럭 자라난대
허공에 떠다니는 우울을 알뜰하게 모아
바라봤다 나는
우리 사이, 이끼와 수박 향의 거리만큼 가
깝게 먼
흥얼거리는 콧노래도 없이, 투명한 여름
약속처럼 언젠가는 오지 않았고
몇 번의 여름을 서툴게 배웅하는 동안
나는 잃어버린 적 없는 시간을 그리워했다,
때때로
저기 밤의 웅덩이에서 피어오르는 목소리
은어가 돌아올 때까지 뭘 하며 지낼 거야
여름이 오지 않기를 믿으며 바라며
뭘 하며 지낼 거야 한 사람이 사라지면
원이 닫히지 않기를 바라며 믿으며
종이 위 빗방울이 마르는 동안만 뭉클한
것, 내내
이제 수박 예쁘게 자르는 방법 따위를 지우
며
수심을 다스리자 안녕 초록 이끼로 번지는
우울들아
먼 데 화석으로 반짝, 밤을 건너는 물고기
자리
-월간 <<현대시>> 2021년 9월호 재수록,
<<문학3>> 2020년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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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 1978년 서울 출생. 2008년 <동아
일보> 신춘문예로 시 등단. 시집 <<다정한
호칭>>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