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블록 장난감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블록 장난감은 종류는 브랜드별로 다양하지만 ‘레고’만큼 인지도가 높은 장난감은 없을 텐데요. 블록 장난감의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레고(LEGO)’. 레고는 다양한 콘셉트와 함께 미니피규어, 레고무비, 레고 게임 등으로 인해 어린아이와 어른을 막론하고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죠. 오늘 동국제강그룹 블로그 D’talK에서는 전 세계인들의 장난감인 레고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볼까 합니다.
레고의 역사, 전설의 시작
레고의 역사는 1934년 덴마크의 작은 마을 빌룬드라는 곳에서 시작했습니다. 아들을 넷이나 데리고 살았던 목수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Ole Kirk Christiansen)이 경영난으로 목공소를 닫고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그는 회사를 지어 레고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레고는 덴마크어로 ‘잘 논다’라는 뜻의 “Leg godt”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라틴어로는 ‘나는 모은다, 조립한다’라는 뜻을 가졌죠.
▲ 초창기 레고에서 출시된 목재 장난감(1936년) - 이미지 출처 : 레고
그 후 조금씩 성장하던 레고는 한 해에 3천 크로네(덴마크 화폐)를 벌어들였고, 그 수익을 모두 밀링 머신(milling machine)을 구입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 후 장난감 사업은 점점 더 성장해갔습니다. 이 시기에 올레의 아들 갓프레드(Godfred Kirk Christiansen)와 관련된 재미난 일화가 있습니다. 조금 더 이익을 창출하고 싶어했던 아들은 아버지께 이익을 조금 더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며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올레가 무엇이냐고 묻자 아들은 장난감에 옻칠을 세 번 할 것을 두 번 만 하면 엄청난 가격이 절약된다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죠.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만들어 출고가 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올레는 그 얘기를 듣고 화를 내며 다시 출고된 상품을 수거해와 아들에게 옻칠을 한 번 더 시키고 운송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최고만이 충분한 것이다’ 라고 하는 그의 신념이 작용한 것이죠. 그리고 그 신념은 아들이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성장하던 레고는 한 번 위기를 맞습니다. 1942년 빌룬드에 불어닥쳤던 폭풍우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여 공장이 모두 불에 타 버리게 된 것이죠. 하지만 심기일전하여 다시 공장을 짓고 올레는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코펜하겐 박람회에서 올레는 일생일대의 도전을 시작하죠.
레고의 역사, 도전의 연속
레고가 만들어졌던 시기는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였습니다. 그 이후에도 장난감 시장은 쉽게 열리지 않는 소비자들의 지갑으로 어려운 사정이 이어지기도 했죠. 레고라고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레고 역시 몇 차례 파산 위기가 있었죠. 하지만 지금까지 레고가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레고의 끊임없는 도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그 도전은 기업의 존재 목적인 ‘이익 창출’이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장난감을 갖고 노는 이에게 최상의 질을 제공한다는 그의 신념 ‘최고만이 충분한 것이다’를 실현하기 위한 도전이었죠. 그렇다면 레고가 도전했던 것들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레고의 역사, 플라스틱 사출기를 도입하다
코펜하겐 박람회에서 올레는 플라스틱 사출기라는 기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 기계를 통해 플라스틱 장난감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플라스틱 블록의 시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레고가 만든 플라스틱 장난감, 페르구슨 트랙터. 실제 트랙터처럼 분해, 조립할 수 있게 되었다.
- 이미지 출처 : 레고
레고는 플라스틱 사출기를 통해 여러 장난감을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금붕어 모양의 딸랑이, 페르구슨 트랙터, 그리고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블록이 그것이죠. 하지만 그 당시 블록은 블록끼리 접합이 약해 인기를 끌지 못했고, 페르구슨 트렉터가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블록 간의 접합 문제는 블록 내부에 파이프를 설치함으로써 해결되었습니다.
레고의 역사, 시스템을 적용하다
▲ 레고 최초의 시스템 완구(1954년) – 이미지 출처 : stackexchange
영국 출장에서 돌아오게 된 갓프레드는 어느 쇼핑몰의 사장과 만나 장난감 시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이 때 얻은 영감으로 갓프레드는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는데요. 그 영감은 바로 ‘시스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장난감에도 ‘체계’라고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이죠. 지금까지의 레고 장난감은 ‘그렇게 놀게끔 만들’어진 것뿐이었습니다.
레고에서 장난감으로 솔루션을 제공하면, 그 방법 말고는 아이들이 다른 방법으로는 놀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갓프레드는 만일 레고에 시스템을 적용하면 아이들이 자신의 상상대로, 더욱더 창의적이고 재미있게 놀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품게 되었습니다. 곧 그의 아이디어는 실현이 되었습니다. 레고 시스템이 개발되어 출시된 것이죠.
아이들은 레고로 집을 짓고, 마을을 만들어 내었죠. 그리고 설명서에 나온 방법 이외에도 자신만의 집과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레고로 만들어진 마을과 자동차를 통해 교통법규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습니다.
▲ 세계 최초로 개장한 레고 랜드의 모습(1968년) – 이미지 출처 : entertainmentdesigner
레고 시스템은 다시 한 번 레고를 흥행시키며 전 세계에 수출을 하게 되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1968년 빌룬드에는 레고랜드가 개장해 첫해에만 60만 명의 사람들을 불러들였습니다.
레고의 역사, 미니피규어를 만들다
레고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눈과 입이 그려져 있는 노란색 얼굴의 플라스틱 인형이죠. 이 인형은 미니피규어라고 불리며 1974년에 처음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미니피규어의 탄생은 레고 뿐 아니라 레고를 갖고 노는 아이들에게도 또 다른 혁신을 안겨주었습니다. 레고 건물과 자동차를 조립하는데에만 레고를 활용했던 아이들은 미니피규어의 등장으로 인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미니피규어에 몰입해서 레고를 더욱 재미있게 활용하게 되었죠.
▲ 최초의 미니피규어(좌로부터 1974년, 1978년, 1989년)
이미지 출처 - wikipedia, kevinm, brickset
최초의 미니피규어는 표정과 팔이 없었죠. 그렇기 때문에 최초의 미니피규어를 1978년도에 생산된 표정과 팔이 있는 경찰관 미니피규어로 보는 입장도 있습니다. 11년간 같은 표정이었던 미니피규어는 1989년도에 턱수염을 기른 해적을 시작으로 다양한 표정을 갖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이렇게 혁신을 거듭했던 레고는 1990년대 말에 점점 재정적 위기를 맞게 되었고 2004년도에 그 위기는 절정을 맞이해 파산 직전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레고의 역사, 스토리의 매혹
1990년대 말부터 레고에게 닥쳐온 위기는 굉장히 컸는데요. 아이들이 노는 방식과 트렌드가 달라진 것입니다. 일본에서 출시된 게임기인 PSP를 통해 아이들은 블록을 갖고 놀기 보다는 게임을 하게 되었고 플라스틱 장난감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은 시들해졌죠.
▲ 레고 무비 – 이미지 출처 : 포브스
하지만 레고는 다시 한 번 혁신을 일으키게 됩니다. 바로 ‘스토리’를 이용한 것인데요. 레고 무비를 시작으로 레고 키마, 닌자고 등의 스토리가 있는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제작하였습니다. 레고 미니피규어들이 나오는 재미있는 만화를 본 아이들은 당연히 레고를 찾게 되었고 레고는 다시 흥행하게 되었죠.
이러한 스토리를 활용한 것은 레고 무비와 애니메이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레고는 게임을 출시하며, 게임에 눈을 돌린 아이들의 흥미를 채워주면서도 다시 플라스틱 장난감에도 눈을 돌리게끔 한 것이죠.
1958년을 기점으로 지금까지 만들어진 레고 블록만 560억 개라고 합니다.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분배하였을 때 한 사람당 78개를 가지고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죠. 재미있는 사실은 1958년에 만들어진 레고 블록과 현재의 레고 블록이 서로 잘 결합된다는 점입니다. 반세기가 넘도록 일관되게 유지해왔던 레고의 창업주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의 신념과도 닮아 보입니다.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레고, 어린 시절 갖고 놀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겨 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