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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그후 며칠, 지옥성(地獄城) 옹중서 주개는 영 편치 않은 기색이었다. 이름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묘! 고양이라니……! 그의 별호가 쥐인데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은 뭔가 어색한 일 이 아닐까? 게다가 고양이도 보통 고양이가 아니지 않은가! 그는 머리에서 꼬리까지의 길이가 장장 일 장 반에 달하는 고 양이는 본 일도, 들은 일도 없었다. 검은 표범이라 해도 마찬가지였고……. '이런 놈을 길에서 주웠다니……!' 주개는 인상을 쓰다가 피식, 실없는 웃음을 짓고 말았다. '사제다운 일 아닌가……!' 그는 야광충이 데리고 돌아온 검은 표범, 아묘에 대한 경계심 이 약간 풀리자 비로소 생쥐처럼 생긴 얼굴에 미소를 담뿍 담고 야광충을 바라보았다. "그래…… 네가 연무를 받는 동안은 내가 보살펴 주마. 안심 해라." 야광충은 사형을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언제나 정(情)이 넘치는 사형이었다. 철모르는 어린 시절부터 지옥성 내에서만, 그것도 극히 한정 된 몇 개의 공간에서만 지내던 그가 지옥성을 떠나갈 때 사형이 얼마나 걱정했을지를 그는 잘 알 수 있었다. 이제 돌아온 그를 보고 마치 전쟁터에서 무사히 돌아온 병사 를 바라보듯이 하는 주개의 눈빛이 야광충은 부담스러우면서도 싫지는 않았다. 주개가 물었다. "그 일은 그렇다고 치고, 지옥연무는 어떻게 받을 작정이냐?" 그도 이미 지옥연무를 통과했기 때문에 그 과정을 잘 알고 있 었다. 인간이하의 대접을 받는 그 지옥 같은 과정을! 야광충이 통과하지 못하리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그 자신이야 사부의 후광으로 간신히 삼관문까지 통과했지만 사제인 야광충이야……! 다만 무언가 음모가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누군가가 그를 함정에 빠뜨리려 하고 있다는 냄새가 짙었다. 더구나 그에게는 근본적인 약점이 있지 않은가? 야광충은 그 이야기가 시작되자 평소의 싸늘한 표정을 되찾았다. 그가 친숙하게 보아 왔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야광충은 약간은 비웃는 듯한 느낌으로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팔관돌파(八關突破)를 하겠습니다!" 주개는 최대한 인상을 썼다. 그의 쭈글쭈글 얼굴로 더 이상의 인상을 쓸 수 없는 것이 한스러울 정도였다. 그가 지금 느끼는 걱정을 표현하는 데에는 이 정도로도 부족 한 감이 있는 것이다. 팔관돌파는 지옥성 출신이 아닌 외부인물이 들어왔을 때 사용 하는 방법이었다. 굳이 더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 나름대로 쟁쟁한 실력을 자랑하는 자들이 연무의 과정을 생략 하고 바로 관문을 돌파하는 것이다. 방법은 간단했다. 관주가 제시하는 방법으로 통과하거나, 관주와 직접 겨루어 이기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자존심과 체면이라는 문제가 얽혀 있었다. 연무를 받은 수련자들이야 관주들도 사정을 봐줘 가며 통과를 시키지만, 외부에서 온 떠돌이들까지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그들이 순조롭게 관문을 통과하기라도 하면 관주의 체 면이 깎인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팔관돌파의 기준은 대개 일반관문보다 어렵기 마련이 었다. 더구나 관주와 겨루고 싶다고 한다면……. 최소한 병신이 되는 결과를 주개는 충분히 보아 왔던 것이다. 떠도는 말로는 그런 방식으로 팔관을 모두 통과한 사람은 이십 년간 단 세 명이고, 그들이 바로 지옥삼룡이라고 했는데……! 주개는 야광충이 그의 충고를 듣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떠듬떠듬 만류의 의사를 표시했다. "어지간하면 그냥 연무를 받는 것이……?" 야광충은 역시 그의 층고를 듣지 않았다. "첫번째 관주가 아마 등활지옥주 노염군(老閻君) 위대봉(韋大 峯)이겠죠?" 그가 물었다. "응!" "첫번째 관문에서 배우는 내용은?" 기초체력과 내공! 말은 간단하지만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그가 겪어야 했던 고 련(苦鍊)은 전혀 간단한 것이 아니었었다. "그가 그쪽에 조예가 있었던가요?" "염왕수(閻王手)라는 기문궤공(奇門詭功)의 고수지!" "본 적이 있습니까?" "한철(寒鐵)로 만들어진 판에 도깨비 머리를 세 치 깊이로 찍 더군 그 자리에선 파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세 치면 깊은 것인가요?" 주개는 묘한 표정이 되었다. "설마…… 장력(掌力)에 대해 모른다는 것은 아니겠지?" 석판도 아니고 한철판에 세 치 깊이로 손자국을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장력을 배운 사람이면 누구도 모를 수 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야광충은 모르고 있지 않은가? "전 장법(掌法)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야광충의 대답은 간단했다. 누구도 그에게 장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주개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사부님이 안 가르쳐 주셨나?" 그는 정말 몰랐다. 야광충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일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 었기 때문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던 일이었다. 사부가 어련히 알아서 그런 것들도 가르쳐 주셨으려니 했는 데, 그게 아니었다는 말인가? 그들 귀영문의 독문무공이 금나술과 경신술이라는 것은 주개 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귀영문의 장문제자이니 말이다. 그러나 사부가 다른 무공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무림에 이름을 날리는 절정무공은 아니라 해도 기본적인 장법 이나 권각지술, 그리고 병장기 다루는 법 둥둥은 웬만큼 알고 있는 것이다. 어떤 문파도 독문의 무공을 가르치기 전에 강호의 이런저런 무공을 가르쳐 주는 법이니까. 그럼으로써 견문을 넓히고, 자파의 무공을 배울 기초가 형성 되는 것이다. 사부가 그에게도 가르쳐 준 적이 있으니 그건 확실했다. 물론 그가 제대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더 필요할까요?" 주개는 말문이 막혔다, 강호에서 살아 나가는데 모든 것에 정통할 필요는 물론 없었 다. 한 가지라도 남보다 잘 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도 충분 할지도 모른다. 그는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이번 일에는 필요할 거다!" 제일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장력으로 칭석판에 자국을 남 겨야 하는 것이다. 미세한 흔적이라도……! 팔대관문 중 가장 많은 사람이 탈락되어 죽는 곳이 바로 이 제일 관문이었다. 내공에 진보가 었으면 그는 무공에 전혀 소질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처형되었던 것이다. 그나마 연무를 받은 수련생들이야 자국 정도로도 통과되겠지 만 팔관돌파를 하려면 그 정도로도 안 될 것이다. "가장 깊은 자국을 낸 사람이 위대봉인가요?" 관주가 가장 뛰어나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주개는 고개를 저었다. "다섯 치 두꺼의 청석판을 뚫어 버린 사람도 있지 아마 한철 판을 쳤어도 뚫어졌을 거라는 평가가 돌더구나." "그게 누굽니까?" "양인장(兩刃掌)이라 불리던 사람이었다." 양인장은 한인(漢人)이었다. 중원에서 뭔가 죄를 짓고 사천, 귀주를 거쳐 이곳까지 도망온 사람인데, 지옥연무를 받는 중에 그런 위업을 남겼었다. "지금 지위가?" "옥졸(獄卒)!" "예?" 그는 지금 어딘가의 옥졸로 구르고 있다는 소문이었다. "양인장이라는 별호가 붙은 이유가 그것인데……." 양인장! 양쪽으로 날이 달린 장력이라는 뜻이었다. 그가 대막을 가로질러 오면서 어떤 라마를 구해 주고 배운 장 법이 바로 그렇게 불리고 있었다. 그 장법을 시전하기 전에는 그도 그 사실을 몰랐었다. 안다면 절대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진 장법이었지만 시전하는 사람에게도 동일한 충격을 준다는 것이 문제였다. 청석판을 뚫은 대신 그의 오른팔도 곤죽으로 뭉개져 버린 것 이다. 옆에서 보던 사람들이 모두 이 믿기 힘든 사실에 뒤집어졌다 는 소문인데……, 사정을 참작해 죽이진 않고 어느 구석자리의 옥졸로 삼았다고 한다. 야광충은 말을 돌렸다. "제가 없는 동안 별일은 없었습니까?" "응? 아……! 별일이야 없었지!" 주개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는 것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제가 간 이후로 사부님 신변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주개는 크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다! 별일없었다." 봄 223 주개는 야광충에게 손짓을 했다. "그보다 먼 길 다녀오느라 피곤했을 텐데, 가서 쉬어야지." 야광충은 주개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군요. 저는 피곤하지 않으니 말쏨해 주세요." 주개의 눈동자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궁지에 몰리면 그랬었다. 어색한 표정을 제대로 감추지도 못하는 주개였다. 그가 결국 입을 열었다. "그…… 통로의 시체가……, 방각이 문제를 삼아서……." 그러더니 주개는 야광충의 손을 잡고 다른 손은 눈앞에서 흔 들었다. "아니, 사제가 걱정할 일은 아니야. 방각이 옥주라지만 사부 님의 체면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야. 중원에서의 이름도 사부님쪽이 위였고……." "방각이 어떻게 귀찮게 했읍니까?" 하는 수 없다는 둣 주개가 그 동안의 경과를 말해 주었다. 야광충이 지옥성을 떠난 후, 주개는 그의 말대로 통로에 가 봤었다. 처음에는 남몰래 시체를 치워 버리고 모른 척하면 끝날 일로 알았었다. 그러나 거기에 죽어 있는 두 사람을 보았을 때, 주개는 당황 해 버렸다. 그냥 넘어갈 일은 분명히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총옥주 휘하의 영주 중 하나가 죽어 있었다. 다른 하나도 바로 혹승지옥주 독목야차 방각의 첩 아닌가? 그들 중 어느 하나도 실종보고로 넘어갈 수 있는 인물은 아니 었다. 주개는 고민했었다. 그리고 결국은 사부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사부는 당연히 그 사실을 위에 보고했다. 정황(政況)은 분명했다. 종옥주의 휘하 영주 중 하나가 팔대옥쭈 중 하나의 첩과 무간 지옥의 영역 내에서 밀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곳을 지나던 야광충과 시비가 붙었으리라고 추측되 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죽었다. 이것이 예충이 한 보고의 요지였다. 두 사람이 밀통한 것이 분명한 이상, 총옥주는 할말이 없었다. 이런 경우 누가 잘못했든 간에 수하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책임이 그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휘하 영주 중 하나가 옥주의 첩을 건드리다니! 실제로 총옥주가 불만을 품고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 불만이 노골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것은 분 명했다. 문제는 독목야차 방각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안사람이 자기 외의 다른 누구의 손에 죽음을 당한 것을 참고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예충에게 사람을 보내어 살인자의 처벌을 요구했다. 당연히 이루어질 수 없는 요구였다. 그 살인자, 야광충은 현재 지옥성에 없을 뿐만 아니라 설혹 있다고 하더라도 타옥주의 손에 넘겨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요즘 들어 그 문제 때문에 방각과 예층의 사이가 소원 해졌고 덩달아 흑승지옥과 무간지옥의 사이에도 험악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사제가 돌아온 것을 알면 방각이 또 사람을 보낼지 도……. 그보다 연무 중에 심술을 부릴지도 모르겠고!" "오면 저에게 보내세요!" 야광충은 간단히 말했다. 생각한 것보다 사소한 문제였다. 그가 진정 걱정하던 문제는 아직 고개를 내밀지 않고 있었다. 주개가 아직 모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야광충은 주개의 방을 나갔다. 주개는 멍하니 앉아 그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원래 냉정하고 감정의 표현이라는 것을 찾아보기 힘든 사제였 기는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성질이 더욱 강해진 것 같았다. 게다가 알 수 없는 힘이 그 속에 덧붙여져 있었다. 바로 그 점을 주개는 의문스럽게 생각했다. 어딘가 분명히 다른데 그 부분을 정확히 꼬집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참 후에야 주개는 탄성을 토했다. 알 수 없는 힘! 야광충의 태도에서 은근히 풍기는 그 느낌은 뭔가 성장했다는 것이었다. 이전까지는 외곬로 자기자신의 속으로만 파고들어 벼랑 위에 선 사람을 보는 것처럼 위태로운 감정을 느끼게 하던 사제였다. 그러나 이제는 여전히 냉정하고 여전히 귀기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지만 걱정스럽지가 않았다. 어떤 일이든 그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직한 느낌이 그의 분위기에 덧붙여져 있었다. 단 한 달 사이에 사제가 이렇게 변했다는 것을 주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것이 주개가 야광충에게서 어딘지 모르게 느꼈던 낯선 감정 의 원인이었다. "이제 정말 어른인가?" 주개는 감회에 찬 모습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 * * "예충의 제자가 돌아왔습니다." "……!" "사람을 보내 불렀는데, 팔을 부러뜨려서 돌려보냈습니다." 전광 같은 눈빛이 보고를 하는 흑승지옥의 대주, 대과조(大瓜 爪) 상음(常陰)에게 향해졌다. 그 눈빛은 한 사람에게서, 그리고 하나의 눈에서 쏘아지는 것 이었다. 독목야차 방각! 바로 그의 외눈에서 나오는 빛이었다. 그는 외눈이었다. 다른 하나에는 눈꺼풀 위아래로 길게 그은 칼자국이 있었다. 그 칼자국의 유래에 대해서는 상음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가장 큰 상처가 그것이지만 사실 방각의 몸에는 그보다 더한 상처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그 상처들 중 누구의 어떤 무기에 당했는지 방각이 기 억하고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방각이 야차라 불리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그는 싸울 때만은 극도로 흉폭한 사내가 된다. 그리고 그가 겪은 대부분의 싸움은 그런 성질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었다. 마주보고 절하고, 점잖게 사양촤다가 몇 수 휘두른 다음 역시 점잖게 패배를 자인하고, 숭자는 패자를 격려하는 식의 싸움을 그는 해본 적이 없었다. 일단 싸우게 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했고, 그 판정 은 둘 중 하나의 죽음으로 내려졌었다. 무의 극의(極義)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누가 한다면 그가 할 대답이란 단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적을 죽인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 자신을 위해서는 잘 싸우려 들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개인 대 개인으로 싸우는 것을 그는 명예에 목 숨을 건 멍청한 짓이라고 비웃었다. 그는 살기 위해 싸웠다. 그리고 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싸웠다. 자연히 그의 싸움은 단체 대 단체의 싸움인 경우가 많았다. 흑도의 문파에 속해서, 그 명에 따라 싸우는 경우가 그가 싸 운 대부분의 경우였던 것이다. 그는 일생의 대부분을 거의 그렇게 보냈다. 그런 만큼 자신의 몸에 난 상처도 거의 기억하는 경우가 없었다. 난전(亂戰) 중에서 악귀, 야차같이 날뛰고 나서 돌아와 피에 물 든 읏을 벗어 보면 몸에는 무수한 상처가 남아 있다는 식이었다. 그런 그가 기억하는 단 하나의 상처가 바로 그 칼자국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의 내식에 대해서 방각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누군가 거기에 대해 언급만 해도 그는 불같이 화를 내었다. 그건 이 세상에 그와 상음, 단 둘만이 알고 있는 내력이었다. 바로 상음, 그 자신이 만들어 준 상처였기에! 그래서 그는 방각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같은 대주급의 인물이라지만 그와 다른 대주들과는 격이 달랐다. 지옥성이 규율상 옥주의 아래로 대주 두 명밖에 둘 수가 없 어서 그런 것이지 대과조 상음이 단지 대주의 실력인 것은 아 니었다. 또 중원 혹도에서 쌓은 명망으로 보더라도 거의 다른 옥주들 에 필적할 만한 인물인 것이다. 그가 혹승지옥의 대주를 맡고 있는 것은 그와 방각이 목숨을 서로 바칠 정도로 친하다는 의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가 세상에서 인정하는 단 하나의 진정한 사나이가 바로 방 각이기 때문에 그 아래에 있는 상음이었다 지금은 비록 늙었지만 방각의 성미는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상음은 그의 성질을 잘 알고 있었다. 방각이 이런 눈빛을 할 때는 그 누구도 말릴 수가 없다는 것을……! 그는 허리줌에 매달린 세 개의 낫을 하나로 묶은 것처럼 보이 는 갈고리, 그의 성명병기인 대과조(大瓜爪) 두 자루를 툭 건드 리며 말했다. "제가 가서 끌고 오겠습니다." "아니!" 누군가가 그의 말에 반대했다. "제가 하지요!" 훤칠한 키에 가냘픈 몸매의 여인 하나가 방각과 상음의 효으 로 나섰다. 횐 착수대포(窄袖大袍)를 걸쳐 입은 아래로 역시 흰색의 표범 가죽바지를 입었다. 횐 표범은 몽고에서도 멀리 고산지역에서나 드물게 발견되는 동물이니 그 가죽 또한 희귀한 것이었다. 그렇게 아래위로 횐색을 차려 입고, 가는 러리에는 마치 넓은 허리띠처럼 검은 가죽끈이 칭칭 감겨져 있었다. 어지간한 남자들보다 훨씬 큰 키에 가냘픈 몸매, 거기에 가는 허리를 강조한 띠를 매고 있어 얼핏 보기에 버들잎처럼 휘청거 린다는 느낌을 줄 정도였다. 절세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독특한 매력을 풍기는 미녀, 그녀가 바로 흑승지옥주의 딸이었다. 문제는 성격이 극도로 괴팍한데다가 무공이 또한 그 성격만큼 이나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그녀 자신에게 있는 듯이 행동하고 말하 는 여인, 그리고 그 손끝이 극도로 악랄한 여인이었다. 방소접(龐少蝶)이라는 본명보다는 '월몽영(月夢影)' 이라는 별 명으로 더 잘 알려진 여인. 그녀가 안개 속을 걷듯 윤곽이 잡히지 않는 묘한 걸음걸이로 앞으로 다가왔다. "전부터 그에 관한 얘기를 들었어요." 어쩐지 듣는 사람을 나른하게 만드는 듯한 묘한 음색(音色)이 었다. 그녀는 낮은 소리로 음조리둣 말하고 있었다. "지옥성의 밤을 배회하는 유령이라던가? 사람들이 작게 소근 거리고 있었죠. 전 그를 한번 만나 보고 싶었어요. 이번에는 제 가 갈게요." "흠!" 상음은 그녀의 목소리에 잠겨 드는 것 같은 기분을 떨치려 헛 기침을 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는 대단히 건방지고, 난폭한 놈이다. 오지 않겠다고 하면 어쩔 셈이냐?" 촤악! 허공을 때리는 소리가 방안에 퍼졌다. 월몽영의 손에는 어느새 검은 가죽채찍이 들려 있었다. 바로 그녀의 허리에 감겨져 있던 넓은 가죽띠가 이것이었다. 그녀의 애병(愛兵)인 대선룡(大旋龍)이 그것인데, 새끼손가락 굵기에 이 장이 넘는 긴 채찍을 그렇게 칭칭 감고 다녔던 것이다. 채찍은 장병(長兵)에 속하는 무기, 병기는 길면 길수록 유리하 지만 한편으로는 길면 길수록 다루기 까다로운 것이기도 했다. 그녀가 채찍을 풀어 드는 솜씨, 그리고 지금 빳빳이 곤두서서 머리를 치켜 들고 있는 채찍의 끝으로 보아 월몽영은 채찍을 완 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녀는 흐릿한 미소를 입가에 떠올리며 말했다. "목을 감아서 끌고 오지요." * * * 혈부용은 무감동하게 석대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친 돌로 만들어진 석대 위에는 몇 개의 물건--정말 그렇 게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는 몇 개의 물건들--이 놓여 있 었다. 그녀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고란고성에서 거두어 온 것이다." 쌍고르마였다. 그 말에 혈부용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뒤에는 쌍고르마와 혈응이 서 있었다. 혈응이 비통한 얼굴로 말챘다. "네 작은 오빠가 거기 있다." '작은 오빠? 이게?' 그녀는 다시 썩대 위를 보았다. 가슴이 뚫려진 인형 하나, 그것이 혈당랑의 것인 줄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혈당랑 본인! 머리에 큰 구멍이 나 있는 혈당랑의 시체였다. 사막의 건조한 기후 속에서도 부패가 진행되었는지 고약한 냄 새가 났다. 그리고 이중(二重)의 시체. 혈오공이 들어가 있던 보기 흉한 인형과 그 속에 있는 혈오공 본인의 시체였다. 누가 수거해 왔는지 몰라도 알뜰하게도 잘려진 혈오공의 인형 머리까지 석대 위에 있었다. 어쩌면 혈오공 본인의 머리 대신인지도 몰랐다. 혈오공의 몸에는 가죽만이 붙어 있을 뿐, 머리라고 할 만하 것은 남아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녀는 지금 지옥칠살 중 두 명의 시체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작은 오빠는?'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혈응에게 물었다. "혈지주는 어디 있지요?" 그녀의 작은 오빠가 바로 혈지주였던 것이다. "그거다. 네가 보고 있는 바로 그것." 혈부용은 석대 위를 다시 천천히 훌어보았다. 혈당랑과 혈오공의 시체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하나 더 있기는 있다. 시커멓게 타 버린 그 무엇인가 였다. 그녀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것?" "그래, 그것이다. 그게 네 작은 오빠 혈지주다." 그녀는 눈물을 홀리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으로 무엇인지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타 버린 '그것'을 건드리며 서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한 점의 슬픔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잠시 후, 그녀가 돌아섰다. "그렇군요. 작은 오빠가 죽었군요." 그녀는 쌍고르마와 그녀의 큰 오빠, 혈응의 사이를 지나 문을 향해 걸어갔다. 두 사람은 그녀에게 길을 비켜 주었다. "누구죠?" 혈부용은 문 앞에 갔으나 나가지는 않았다. 혈응이, 뒤돌아 선 그녀는 볼 수 없겠지만, 그녀를 향해 고개 를 저었다. "모른다." 혈부용흔 나가며 말했다. "알아내 주세요." * * * 등활지옥은 팔대지옥의 가장 위에 있었다. <구사론(俱舍論)>에 의하면 등활지옥은 죄인이 서로 죽이며 고통을 받다가 찬바람이 불면 되살아나서 처음부터 다시 고통을 받는 지옥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지옥성의 둥활지옥도 연일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가 요란하게 울려퍼지는 곳이었다. 노염군 위대봉이 실전을 추구하는 사람이라 이곳의 옥졸들은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을 쉬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등활지옥은 지옥성의 선봉대로 소위 팔대지옥 중 집단 전투에 가장 능한 곳이었다. 그 등활지옥의 한구석에 병기고(兵器庫)가 있다. 이가 빠지고 망가진 병장기를 고치는 대장간도 옆에 붙어 있 었는데 여기 조구(曺九)라는 외팔이가 언제부터인가 허드렛일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손으로 부러진 창이나 칼들을 모아서 들 고 다니는 그의 모습은 여러모로 어설퍼 보였고 일에 도움도 되 는 것 같지 않았지만, 그도 한때는 유명했던 사람이었다. 지옥 연무 제일 과정에서 신화를 남긴 인물, '양인장'이 바로 그였던 것이다. 한때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었다. 그가 신기해서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의 양인장에 대한 호 기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그런 이유 때문에 그를 찾지 않았다. 양인장은 쓸모없는 무공임이 명백했다. 철판 하나를 뚫기 위해 팔 하나를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구는 조금 전부터 깨어 있었다. 방안에 감도는 원인 모를 냉기가 그를 깨운 것이다. '누군가 방안에 있다.' 조구는 알고 있었지만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이런 깊은 밤중에 그를 찾는 사람이란 좋은 의도로 왔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려움보다는 귀찮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이런 방문을 받은 것은 이미 일 년이 넘었다. '낮에 그냥 와도 가르쳐 줄 것을…….' "양인장?"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는 조구가 깨어 있는 것을 눈치챈 듯했다. 조구는 불현듯 몸을 떨었다. 저것이 사람의 목소리일까? 사람의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분명히 부족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감정이었다. 아무 감정 없이 무색투명한 목소리가 그를 전율케 했다. '이자는 여태까지의 사람들과는 다를지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낮에 오시지 그러셨소?" 그 다음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침상 저편 방 한구석에 서 있는 방문객의 모습에 질려 버린 것이다. 불빛도 없는 방안에서 푸른 불빛 두 개만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마치 야수가 한 마리 서 있는 둣한 느낌이었다 "내가 왜 왔는지 알고 있는 것 같군!" 목소리는 파란 불빛과는 다른 곳에서 났다. 파란 불빛은 방문객의 눈빛은 아니었다. 아니, 적어도 사람의 눈빛은 아니었다. 조구는 머리맡을 더듬거려 등불을 켰다. 불빛 속에 한 사람과 한 마리의 야수가 드러났다. 조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일 장 반에 달하는 거대한 야수가 그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그 옆에 선 창백한 얼굴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말해 봐." 그의 말대로 조구는 말했다.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너무도 분명했다. 그날 이후 수없이 말해 왔던 것이었으니까, 이런 경우는 이번 이 처음이 아닌 것이다. 그는 더듬더듬 양인장의 구결을 알려 주고 말읗 맺었다. "어렵지 않지요? 나도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오만 하도 많이 말했더니 막히는 데도 없구려." 야광충은 침묵하고 있었다. 조구가 알려 준 구결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조구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무공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조구가 말한 것으로는 뭔 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그가 말한 구결이 중간에 빠지거나 한 것이 아니 라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조구는 자신이 사용했던 양인장의 구결 그대로를 말해 주었니까!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시도를 했었고 하나같 이 실패했었다. 물론 그들은 조구처럼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지는 않았지만……. 도대체가 무공의 기본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그 구결 대로 익힌 결과가 어떤 것이라는 것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 을 테니까. 조구처럼 내공의 기본이라고는 전혀 몰랐던 하류무사가 아니 라면 말이다. '이 구결로는 아무리 익혀 보아도 내 꼴이 될 수밖에 없을 것 이다.' 조구가 속으로 중얼거릴 때 야광충이 눈을 들어 그를 보았다. 조구는 다시 한번 등골을 스치는 싸늘한 기운을 느껴야 했다. 자신이 오랫동안 가슴속 깊이 간직해 온 비밀이 야광충의 유 리알 같은 눈에 그대로 비추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야광층은 예의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지. 제대로 말해 봐!" 조구의 눈속 깊숙한 곳에서 희미한 공포(恐怖)가 휘몰아쳤다. 오늘의 방문객은 이전에 그가 만났던 방문객들과는 달랐다. 이전의 자들은 그를 위협하고 고문하고 으르렁거렸지만, 적어 도 사람이었다. 무언가 그가 감춰 놓은 것이라도 있을 거라는 어림짐작 때문 에 그를 죽이기까지 할 자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자는 달랐다. 이자는 자신이 납득되지 않으면 그를 죽이려 할 것이다. 그가 실제로 숨긴 것이 있든 없든 말이다, 그렇지 않고는 이런 살기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이 정드의 위헙에 일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지난 삼 년간의 고행이 너무도 아까웠다. 조구는 최대한 당당하게 말하려고 노력하며, 그러나 실제로는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내게 뭘 바라는 거요? 그, 그게 내가 배운 전부요. 다른 사람들도 당신처럼 내가 감춘 것이 있을 거라고 의심했지만, 결 국은 포기했소! 내가 들은 구결은 그것이 다니까!" 그는 당당할 수 있었다. 적어도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가 들은 양인장의 구결은 그게 전부였던 것이다. 야광충의 등이 벽에서 떨어졌다. 그는 조구를 향해 소리없이 걸어가며 말했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군. 그러나 사실도 아니야. 말로 들은 것 외에 더 있다는 거겠지?" 조구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왼주먹을 움켜쥐며 침상구석으로 뒷걸음질 쳤다. "어, 어림짐작만으로 이렇게 사람을 죽이려 해도 되는 거요? 게 다가 그건……, 그런 것이 더 있다 해도 당신 것은 아니잖소?" 야광충이 다가오는 것을 멈추었다. 조구는 자신의 말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고 말의 강도를 높 였다. 물건을 빼앗고 사람을 죽이는 것도 강호의 도의(道義)에는 어긋나는데, 다, 당신은 어림짐작만으로 사람을 죽이려는 거 요?" "강호도의라……!" 야광충이 나직하게 말했다. 그 속에 뭔가 비웃음 같은 것이 깔려 있다는 것을 조구는 느 꼈다. 야광충이 그의 말에 전혀 영향을 받고 있지 않다는 것도……! "그런 건 사람끼리나 해!" 순간적인 일이었다. 야광층은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조구는 움켜쥐었던 왼쪽 주먹을 아무런 사전동작 없이 뻗었다. 뭔가가 보이지도 않았고,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가 야광충의 몸을 통과해 초라한 방안의 벽에 바 람구멍 하나를 만들었다. 파아아……. 어린아이의 주먹만한 구멍이었다. 다음 순간 조구는 경악에 질려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분명 가슴이 관통당채 죽어 넘어졌어야 할 야광충이 그대로 서 있는 것이다. 야광충은 고개를 돌려 벽에 난 구멍을 보고, 다시 고개를 돌 려 조구의 주먹을 보았다. 조구의 주먹은 멀쩡했다 야광충이 낮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과연 그렇군. 그것을 연성(鍊成)했군!" 콰아아! 다시 아무런 기척도 없이 야광충의 오른편 뒤쪽의 벽에 커다 란 구멍이 뚫렸다. 양인장이 아니고는 조구가 이런 위세를 보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야광충을 향해 연속으로 주먹을 날리고 있는 조구가 예 전 그대로의 하급무사라면 낡기는 했지만 옇전히 단단한 석벽에 허공을 격하고 구멍을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그가 양인장을 보완하지 않았다면 그러고도 주먹이 멀쩡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구는 이미 양인장을 완성했던 것이다. 야광충은 이매십보를 펼쳐 조구가 날린,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장력, 양인장을 피했다. 방금도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게 피 했던 것이다. 조구가 주먹을 쥐는 순간부터 그가 제자리에 그냥 있었던 적 은 없었다. 계속해서 중심을 이동시켜 순간반응을 보일 수 있도록 준비를 했던 것인데…… 조구는 거기에 넘어갔다. 야광충의 가슴을 향해 조구의 팔이 뻗어 왔다.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창(槍), 양인장이 달려 있는 것과 마찬 가지였다. 뚫지 못하는 방패가 없는 극강(極强)의 창이었다. 게다가 느껴지지도, 보이지도 않는 무형의 창! 절정의 고수가 이런 공격을 가한다면 어느 누가 피할 수 있 는가? 게다가 허초(虛招)와 실초(實招)의 구분도 없으니, 단순히 손 만 뻗어도 상대는 영문도 오른 채 쓰러지고 말 것이다. 야광충은 오른쪽으로 몸을 틀어 조구의 손이 뻗어 오는 방향 에서 비켜섰다. 조구의 주먹이 손목에서부터 꺾여졌다가 다시 펴졌다. 야광충의 눈빛에 이채가 번졌다. 그는 오른손을 펴 조구의 주먹을 감싸 잡았다. 팍--! 둔탁한 소음이 조구의 주먹과 야광충의 묵린수 사이에저 터져 나왔다. 일반적인 권, 혹은 장력은 내공을 모았다가 터뜨리며 발출되 고, 그에 따라 팔을 끌어당겨 기를 끌어안는 동작을 필요로 하 는데 조구의 양인장은 달랐다. 짧은 동작만으로도 경력의 발출을 자유자재로 하고 있는 것이다. 순간직으로 야광충도 피할 길이 없어서 그 주먹을 감싸 안았 던 것인데 다행히 묵린수가 견뎌 주었다. 조구의 화후(火候)가 아직은 깊지 않는 덕일 것이다. 조킁,의 안색이 파랗게 질려 갔다. 경황중에 급히 발출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청석판도 뚫는 그의 양인장이 적의 손에 잡히다니……! 양인장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단 말인가? 야광층이 그의 눈을 정면으로 주시하며 말했다. "네 양인장에는 결정직인 약점이 있다." 그는 조구의 주먹을 풀어 주었다. 조구는 주줌 두 걸음 밀려나 벽에 등을 기대었다. 야쾅충이 그에게 손짓했다. "다시 덤벼봐!" 조구는 처음에는 어떨떨해서 그리고 그 다음에는 분노로 정신 을 잃을 지경이었따. 제대로 연성한 후 처음 써 보는 양인장이 터무니없이 꺾인 것 만 해도 분한데 이렇게 사람을 모욕하다니! 그는 이를 악물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언제까지나 하급무사일 수는 없었다. 사소한 도둑질 한번 한 죄로 포두(捕頭)들에게 개 쫓기둣 쫓 겨서 여기 몽고까지 도망온 것도 따지고 보면 그가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혹도의 내노라하는 도둑놈들은 사람을 부지기수로 죽여도 까 딱없이 잘 살고만 있지 않은가? 여기서 물러 앉으면 그의 인생은 정말로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살아 있었다는 흔적만은 남겨야 했다. 최소한 저 머리 하얀 놈에게라도! 야광충은 그의 그런 심경변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표정 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조구가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비장한 기색을 띠 고 있다는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가 조구를 달리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평소 갈았으면 않았을 말을 했다. "기백이 가상하군. 덤벼 봐라, 제대로 가르쳐 주지." 순간, 조구의 양인장이 폭발했다. 보이지 않았지만 야광충은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늘 끝처럼 예리하게 찔러 드는 양인장의 위력을……! 그러나 그는 처음의 자리에 없었다. 이매십보는 아니었다. 그는 조구에게 강호의 웬만한 고수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평범한 보법(步法)으로도 양인장을 피할 수 있음을 보여 주려 한 것이다. 조구의 팔은 다시 잡혔다. 야광층은 조구의 왼쪽 손목을 움켜쥐고 냉랭하게 말했다. "이게 네 약점이다." 조구의 눈빛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들은 것이다. 천하에 다시없는 기공(奇功)을 지녔어도, 다른 기본적인 무공 이 받쳐 주지 않아서야 요행히 한두 번은 이긴다 해도 절정고수 는 될 수 없는 것이다. 야광충이 다시 짧게 말했다. "그리고 이것!" 퍽! 야광충의 발이 조구의 배에 꽂혔다. 조구는 아스라히 멀어져 가는 의식의 끈을 잡으려 노력했지만 불가눙했다. 바닥이 그에게 올라오고 있었다. 조구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야광충은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 조구는 한동안 천장만 올려다보았다. 허탈했다. 한참 후에야 그는 움직였다. 천천히 허리띠를 풀고 바지를 까내렸다. 야광충은 아무 말도 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조구는 바지를 완전히 내런 후에 허벅지를 야광충쪽으로 내보 였다. 그의 허벅지에는 마치 오래 씻지 않아 때가 낀 것처럼 검은 반점이 있었다. 야광충은 그 반점 하나하나가 글자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도 범어(梵語)였다. 야광충이 그것을 다 읽도록 조용히 기다리던 조구가 야광충이 시선을 돌리자 입을 열었다. "부탁이 있소." "왜 조건으로 내걸지 않나?" 조구는 피식 웃었다. "조건부로 무얼하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는 정확히 본 것이었다. 야광충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구가 말했다. "수하로 써 주시오." "네 약점을 보완할 무공을 가르쳐 주면서 말이지?" 조구는 다시 웃었다. 이것은 도박이었지만, 걸어 볼 만한 도박이었고, 달리 선택할 여지도 없었다. 그는 아마도 자신이 최선의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확신이었지만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았 으면 그는 못 견뎠을 것이다. 조구가 사막에서 라마승을 구해 주고 들은 구결은 처음에 말 해 준 그것뿐이었다. 그는 확실히 그대로를 말했다. 자신의 팔을 잃게 만든 그 구결……! 그러나 그가 한 가지 말하지 않은 것은 책이었다. 그로서는 알아볼 수도 없는 서장어가 씌여져 있는 한 권의 책 이었다. 그가 서장어만 알았더라면 이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양인장을 사용하기 전에 익히는 단련법이 그 안에 설명되어 있 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양인장과 단련법이라는 것은 별개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둘 다 사용하지 못하는 것 이었다. 그 결과가 바로 잃어버린 한쪽 팔이었다. 그는 그날 이후,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며 자신의 비참한 몰골 을 만든 양인장에 매달렸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에게 추호도 속이지 않고 알고 있는 구결을 말해 주었었다. 양인장은 어떤 장법 초식이 아니라, 기(氣)를 운용하는 방법뿐 이었기 때문에 구결만으로도 충분히 연성이 가능한 무공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완벽한 양인장을 익히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양인장을 익히는 것에 있어서는 그도 잘못하 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그는 이런 몰골이 되어야 했던가? 그 빌어먹을 라마가 그에게 무슨 원한이 있어서 그런 말도 안 되는 무공을 가르쳐 주었던 것인가? 죽어 가는 자에게 물 한 모금 준 것이 그렇게도 나쁜 것이었던가? 일 년이 지나서야 그는 비로소 라마승이 그에게 남긴 것이 한 가지가 더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라마승의 바랑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챙겨 둔 불경(佛經) 한 권이었다. 라마승이 죽어 가면서 게나그라…… 뭐에게 전해 주라고 한 것인데 그 동안 잊고 있었다. 의미를 짐작할 수 없는 글자가--자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사실은 범어(梵語)였따.--구불구불 씌어져 있어 읽을 엄두도 내지 못하던 것이었다. 아직 가지고 있었던 것은 그저 겉장에 둘려진 금박만으로도 값이 나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비싼 값에 팔아 넘기려 했던 것이다. 여기에 양인장의 비밀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는 희망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니, 오기를 불태우기 시작했다고 봐야 했다. 이 불경에 양인장의 비밀이나, 보완방법이 들어 있기만 하다 면 그는 잃어버린 한쪽 팔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몇 곱절로……! 그런 가공할 위력을 가진 기공이라면 그 하나만으로도 무림의 일류고수로 행세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여기 지옥성의 평범한 옥졸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책을 읽는 일은 쉽지 않았다. 서장어, 실은 범어는 전혀 모르는데다가 누구에게 섣불리 물 어 볼 수도 없었다. 그가 이런 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알려져도 모든 꿈은 사라 질 수도 있었다. 조구는 엄청난 인내심을 가지고 책의 문자를 해독하기 시작했다. 지옥성 안에는 범어를 아는 사람도 적었고, 그나마 글 중간 중간을 토막토막 잘라 맥락이 연결되지 않도록 물어 봐야 했다. 그렇게 한마디씩 물어서 겨우 알게 된 책의 제목은 <안우타라 바라 삼스카라>였다. '안우타라'가 지고의 경지를 뜻하는 '무상(無上)'이고, '바 라'는 더 이상 단련될 것이 없는 '금강(金剛)', '삼스카라'는 수행, 혹은 공부를 뜻하는 '행(行)'이라는 것도 그때서야 알게 된 것이었다. 안우타라 바라 삼스카야! '무상금강행(無上金剛行)'이었다. 그리고 양인장을 사용하기 전에 반드시 익혀야 할 단련방법이 었다. '무상금강행으로 손을 단련하고, 양인장으로 마귀(魔鬼)를 징 계한다.'가 책의 첫 문장이었던 것이다. 조구는 땅을 쳤다. 그리고 기뻐서 환호했다. 진작에 책부터 봤더라면 그는 팔을 잃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라도 알았으니 된 것이다. 이것을 완벽히 익히기만 한다면, 적어도 장력에서 그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천하에 드물 것이다. 그는 끈기있게 조금씩 글을 알아내고, 익히기 시작했다. 쉽지는 않았다. 양인장이 그랬던 것처럼 무상금강행도 무학의 이론에 관한 것 이고, 기의 운용에 가한 것이었다. 그러나 양인장을 비교적 쉽게 익혔던 것에 반해서 무상금강행 은 극도로 익히기 어려웠다. 말로 설명을 들은 것과 그냥 책에서 보고 짐작하는 것과의 차 이였다. 게다가 무상금강행은 불교의, 그것도 밀교(密敎)의 심오한 진 리와 연계되어 있어서 더욱 어려웠다. 번뇌를 끊고 또 끊어 마음을 금강처럼 단련한 뒤에야 손이 그 를 따른다는 말이 그 일례였다. 왜 손을 단련하는데 번뇌를 끊으라는 말이 나오는가 말이다. 마음을 갖지 말고 마음을 내라는 것은 무슨 소리고, 치려고 하지 말고 치라는 소리는 또 무슨 헛소리인가? 수없이 좌절했지만 조구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조금씩 그 오의(奧義)를 깨달았고, 어느 정도까지는 양인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팔이 어느 정도의 충격까지는 견뎌 낼 수 있을 정도였다. 양인장은 기를 한점에 모아 폭발시킨다는 극히 간단한 원리의 기공이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한가를 모른다는 것뿐이었다. 그것이 라마승이 말한 구결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 구결이 어마어마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조 구가 몸으로 보여 준 대로였다. 양인장의 약점이 그것이었다. 발출한 기의 강함만큼이나 강한 반탄력이 시전자에게 돌아온 다는 것이었다. 그는 청석판을 쳤지만, 사실은 종잇장을 쳤어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되었을 것이다. 무딪치는 대상의 강함과 상관없이 동일한 반탄력이 돌아오는 괴상망측한 무공이 바로 양인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만약 청석판을 뚫는 그 강도로 아까 야광충을 공격했더 라면, 그리고 야광충이 역시 손으로 막았더라면 제아무리 묵린 수라 해도 견뎌 내지 못했을 것이다. 야광충이 일어섰다. 그는 자리에 누운 조구를 뒤로하고 방문을 나서며 말했다. "조만간 다시 올 것이다." |
첫댓글 즐독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검은 눈동자님 너무 재미 있읍니다
중단하시면 이글 어디서 보나요?
꼭 꼭 연재
계속하여 주세요
즐감합니다.``````````````````
ㅈㄷㄳ
ㅈㄷㄱ~~~~~~```````````````
잘보고있습니다.
즐감^^*
즐감합니다
즐독
즐독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