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팔백열세 번째
귀꽃은 청聽입니다
여주에 가면 폐사지에 오래된 아름다운 탑이 있습니다. 고달사지 승탑 驪州 高達寺址 僧塔입니다. 이 탑은 고려시대의 부도浮屠라고 합니다. 덕이 높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넣고 쌓은 돌탑입니다. 고달사지 승탑에는 귀꽃이 달려 있습니다. 귀꽃, 들어보셨나요? 사전적으로는 석등이나 석탑 등의 귀마루 끝에 새긴 꽃 모양의 장식을 말합니다. 어느 수필가가 이를 보고 그 깊은 아름다움에 푹 빠졌습니다. “석등의 지붕 모서리마다 돌꽃이 솟았다. 귀꽃이다. 귀마루에 새긴 꽃장식이라 귀꽃이라 불린다. 하지만 나는 꽃의 귀라 칭하고 싶다. 사방으로 열려 있는 귀, 누구든 무슨 사연이든 다 들어주는 귀 말이다.” 어느 고승高僧이 열반에 들어서도 이승의 중생들과 자비慈悲, 사랑과 슬픔을 함께하기 위해 열어둔 귀일 터, 그토록 아름다우니 꽃의 귀가 더 좋습니다. 귀꽃은 청聽입니다. 귀耳, 임금王, 열十, 눈目, 한一, 마음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임금님 귀로 열 개의 눈, 다섯 사람 모두가 하나의 마음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곧 듣기라고 합니다. 소통입니다. 귀를 항상 열어두고 상대의 말에 주의를 기울여 지혜를 얻고 공감을 키우라는 가르침일 것입니다. 작가는 입 밖의 말뜻부터 입안의 말속까지 품을 수 있는 귀꽃은 세이공청洗耳恭聽의 끝에서 한 겹씩 트인다고 합니다. 귀를 씻고 남의 말을 경청할 때마다 꽃이 핀답니다. 그는 또 그럽니다. 말해야 할 때 침묵하고 들어야 할 때는 귀를 막았던 일들을 후회하며 세 치 혀는 묵언에 접어두고 두 귀를 꽃처럼 펼친답니다. 세상의 허언을 씻고 침묵의 언어를 듣는답니다. 귀 기울이면 보이기 시작하고, 보이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된다는 이치를 깨달은 겁니다. 성 비안네 신부처럼 공감共感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웠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