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 태어났다, 한 번 죽는 거지만, 그리고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기간을 사람들은 말하기를 “한 평생”이라고 합니
다. 이 한 평생 살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아주 어린 유아
를 제외하고는 인간이라면, 대개 다 알고 있습니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일컬으며, 다른 생명을 경시하는 경향이 만
연되어 있습니다.
각설하고, 사람들은 삶이 어렵기에,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느냐
에 대하여, 유사 이래 수많은 논의가 있어왔고, 삶에 관한 이 같은 논
의의 집적을 인생철학이라고들 한다고 생각합니다.
크게 보면, 종교라는 것도, 사실은 인생철학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
습니다. 종교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긴 것이고, 또 종교의 종
류도 다종다양한 것임은 익히 아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이 자신의 마음 속에 품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사람마다 각양각색임
에 틀림 없습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의 경우도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역사적 발전 단계에 따라, 또 문화적 차이에 따라, 표면적으로는 같은
불자라 해도, 마음 속 불교의 모습은 천태만태 구만태 모두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진정으로 양식 있는 불자라면, 타인이 신앙하는 불교의 모
습이 자신이 신봉하는 불교의 모습과 다르다고 해서, 타인을 폄하하면
안 되리라 믿습니다.
최고의 교육을 받은 손자의 불교가 같은 집에 사는, 일자무식의 자기
할머니의 불교보다 우수하다고 한다면, 이는 종교의 본질, 삶의 모습
을 잘못 파악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손자의 삶도, 할머니의 삶도 다
중요한 것이라면, 손자의 불교와 할머니의 불교는 모두 존중해야 한다
는 것이 소승의 변함 없는 신념입니다.
우리 불교의 역사도 긴 세월 동안 이어왔기에, 각 시대적, 지역적 상황
에 따라 각양 각색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에
존재하는 불교의 양태로는, 북방불교와 남방불교, 소위 대승불교와 소
승불교가 있습니다. 이들 내부로 들어가 보면, 또 다른 수많은 종류의
불교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삶의 평화를 이루고자 한다면, 사람마다 다 다른 모습
그대로 존중해야 합니다. 외면적인 차이는 물론 그들 내면의 차이까지도
서로가 인정할 때, 비로서 평화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북방불교는 남방불교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남방불교는 북방불교를 인정
하고 존중할 때, 불교세계의 평화는 오리라 믿습니다. 온 세상의 평화는
그 다음으로 생각하거나, 불교평화를 이루어내는 같은 사고 방식으로 살아
갈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결론은 단순명료합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고, 타방을 인정할 때,
자신도 존중된다는 사실을 직시합시다!
가야산 대덕사
기산지은 합장
첫댓글 스님 가르침 새깁니다
고맙습니다 _()_
고여 있는 물은 결국 썩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습니다.
A rolling stone gathers no moss.
세월은 무한하고, 삶은 아주 짧습니다.
끝없이 사색하여 깊어지시기를.....!
늘 감사합니다! Ich danke Dir sehr!
자신을 성찰하며
참회합니다
고맙습니다 스님
ㅡ()ㅡ
솔향님이 가꾸시는 나무들 처럼, 나날이 성장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스님()
저는 다르면서 같고 또한 버립니다.
불교의 목적은 중생구제에 있고,
인류의 和正과 생명행복에 있습니다.
모두 저마다의 불법이 있고,
모든 불교가 가능하지만
우리들의 생명속에는
자비중생(저도 포함)= 자타일시성불도입니다!
나 하나만 안온하다면 없어져 버리는 것도 무방합니다.
님께서 불교의 목적이라고 표현한, “중생구제, 인류의 和正과 생명행복”은
불교의 목적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의 목적이 되어
야 한다고 믿습니다. 아무쪼록 님의 삶이, 님이 설정한 삶의 목적에 충실
한, 삶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