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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장,
지숙은 지영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들이 함께 들어서자 노연희는 놀라서 바라본다.
"어머님!
언니가 많이 아파요.
당분간 우리 집에서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네가 또 얼마나 힘이 들겠니?"
"어머님!
정말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할 일이 무어냐?
그나저나 집안이 더 시끄럽게 생겼구나!"
지영은 말없이 미역국을 끓인다.
그러면서 지숙의 일을 생각한다.
무엇을 어떻게 도와주어야만 하는가?
현제로서는 지영이 지숙을 도와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아직까지 권윤석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고 도움을 받고 있는 데 어떻게 이런 일까지 말을 한다는 말인가.
지영은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며칠 동안 지숙은 아무소리도 하지 않고 조용히 지낸다.
그러다 몸이 차츰 쾌유가 되자 지영이 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심술이 나기 시작한다.
지영이 일이 밀려서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날이 있자 지숙은 대 놓고 빈정거린다.
"너는 도대체 어떤 돈 많은 사람을 잡은 거니?
어제 밤에도 그 남자와 같이 잤지?"
"언니!
애들이 들어요.
일이 밀려서 작업을 하느라고 못 들어온 거예요"
"네가 만든 옷이 그렇게 잘 팔리고 있다고?"
"주문이 밀려 있어요.
디자이너를 세 명이나 더 두었는데도 감당을 할 수가 없어요."
"흥!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여하튼 네 엄마의 핏줄을 타고 났으니 남자를 꼬시는 데도 탁월한 재능이 있겠지."
"언니!
도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여긴 내 집이에요.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려면 내 집에서 나가 주세요."
"뭐?
나더러 나가라고?
그래!
이젠 네 년이 우리보다 더 잘 살고 있다 이 말이지?
건방진 년!
감히 네 년이 우리보고 나가라 들어가라 할 수가 있다는 말이냐?"
지숙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악을 써가며 악담을 퍼부어댄다.
"제발 이제는 그런 식으로 나를 겁주지 말아요.
내가 큰어머니와 언니를 내 집에 받아주고 있는 것은 아버지를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아버지?
감히 첩년의 딸이 누구를 아버지라고 해?"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말을 해요?
첩은 내가 첩살이를 했습니까?"
"니 에미 년이 첩년이 아니냐?"
"그럼 언니는요?" 라는 말이 목으로 밀려오는 것을 지영은 꼭 눌러 참는다.
"언니!
이제 제발 그런 말을 하지 말아요.
조용히 내 집에 있다가 언니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아무 때나 나가시면 되요."
"내가 무슨 수로 빈주먹으로 나가니?
니가 가게라도 하나 차려주면 모를까........"
"..................."
지영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지숙의 말이 거짓은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맨 손으로 갈 곳도 없는 것이다.
지영은 염치가 없지만 권윤석과 상의를 해 보리라 마음을 먹어보지만 마음이 편치를 않았다.
그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렇게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들어 애들의 할머니인 시어머님의 안색도 좋지를 않다.
큰 어머님과 언니에게 하루 종일 볶이는 사람은 다름이 아닌 애들 할머니였던 것이다.
지영은 다시 권 윤석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든다.
권윤석은 지영의 좋지 않은 얼굴을 바라본다.
아까부터 무언지 말을 할듯하면서 말을 하지 못하는 지영을 바라보면서 그는 생각에 잠긴다.
"사장님!"
지영의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응?"
"죄송합니다만 제가 얼마만의 돈을 써도 될런지요?"
"그거야 김 사장 마음대로가 아니오?"
"아니지요!
이것은 아직 제 것이 아니지요."
"지영!"
사업을 새로 시작하고부터는 좀처럼 지영의 이름을 부르지 않던 권윤석이다.
지영은 그런 그를 바라본다.
"이것은 말이오.
바로 지영 당신 사업체인 것이오.
일일이 나한테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오."
"작은 돈이 아니고 좀 큰돈을 써야만 하겠기에......"
"갑자기 무슨 돈이 필요하오?"
"........실은 언니 때문에......"
"언니라면?
큰어머님의 딸 말이오?"
"네!"
지영은 현제 지숙이 자신의 집에 있게 된 경위를 말을 한다.
"당신이 많이 힘이 들겠군!
당신 성격으로 그들을 모른 체 할 수는 없을 거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어떻게 모른 척 할 수가 있어요?
어찌됐던 언니와 한 핏줄을 이어받았으니....."
"돈으로 무엇을 할 생각이오?"
"가게라도 하나 내 주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무슨 가게를 하고 싶다고 합디까?"
"그냥 저 혼자 생각이에요.
아직은 아무런 말도 하지를 않았어요."
"그렇다면 무슨 가게를 해야 할지 의논을 먼저 해 본 다음에 결정을 해야겠군!"
"아무래도 그래야겠지요."
"헌데 처음부터 큰 것을 요구하면 들어주지 마시오.
그리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번 한번만으로 끝낸다는 약속을 받아두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오."
"네!"
"남에게 의지하고 기대려는 사람들은 차츰 많은 것을 요구하려고 들것이오.
거기에 말려들다보면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 말아요.
당신의 마음을 자꾸만 이용하려고 든다는 말이오."
"사장님!
저도 제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지금껏 온갖 수모를 다 겪었는데 왜 모른 척 할 수가 없는지..."
"그것은 당신의 마음이 그만큼 순수해서 일거요.
그런 마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것을 이용하려 든다는 말이오."
"잘 알겠어요.
이번 한번만으로 끝을 내고 싶어요."
지영은 더 이상은 도와 줄 수가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신 곁에는 항상 내가 있으니 어떤 일이든 흔들리지 말고 당신 소신대로 밀고 나가요."
권윤석은 지영이 너무나 안타깝다.
마음 같아서는 그런 사람들을 지영의 곁에서 모두 끊어내 주고 싶은 마음이다.
지영을 생각하면 자꾸만 마음이 아려오는 그의 마음이다.
언제까지 그런 지영을 바라보아야만 하는지 그로서도 답답한 노릇이다.
지영은 집으로 돌아가 지숙과 마주 앉는다.
"언니!
무슨 일을 하고 싶어요?"
"왜?
니가 가게라도 하나 차려줄래?"
"큰 것은 해드릴 수가 없어요."
지숙의 눈은 금방 빛이 난다.
"그래!
크지 않아도 돼!
그저 나 혼자 벌어서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가게라면 돼!"
"어떤 가게를 하고 싶은데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니?
전에 하던 것 보다 조금 더 큰 카페나 하면 좋지."
"카페 말고는 다른 것은 없어요?"
"다른 것은 내가 해 보기나 했니?
그래도 해 보던 것을 해야지."
지영은 지숙의 뜻대로 작지만 아담한 카페를 차려준다.
지숙은 나이 어린 아가씨를 두고 다시 장사를 시작한다.
지숙이 가게를 차려서 집을 나가자 노연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쉰다.
그 동안 얼마나 지숙에게 멸시를 당하고 살았는지 노연희의 가슴은 시커멓게 멍이 들었던 것이다.
일을 부리기는 자신의 하녀처럼 부리면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멸시를 퍼 부어대는 지숙이 끔찍했었다.
우진과 예진은 그런 지숙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게 싫어했던 것이다.
툭하면 우진을 때리고 예진을 손찌검하는 것을 수없이 싸우곤 했던 것이다.
이제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그런 지숙의 매를 그냥 곱게 맞을 리가 없었다.
우진은 지숙에게 대 들어 보기도 하지만 지숙을 당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송현숙의 악다구리는 더 기승을 부리곤 했으니까 아이들이 피하고 만다.
지숙이 집에서 나가자 송현숙도 조금은 사그라진다.
지영이 그래도 지숙에게 가게를 내 준 것이 고마웠는지 한 동안 송현숙의 마음은 조용하다.
"휴!
이제야 사람이 살 것만 같다."
"어머님이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어요."
"아무튼 네가 큰일을 했다.
아이들이 밖으로 나돌아서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이제 애들이 한창 사춘기로 접어드니 여간 신경이 쓰이지를 않는구나!"
"그래도 어머님이 계시니까 제가 마음을 놓고 일을 할 수가 있어요.
어려서부터 어머님이 키워주신 애들이라서 어머님의 말씀을 잘 따르고 착하게 하고 있으니까요."
"그래!
우리들끼리만 있으면 무슨 걱정할 일이 있겠니?"
지영은 그런 시어머니가 너무나 고맙다.
이제는 시어머니라 생각되어지지를 않고 그저 친정어머니려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절에 들어가신 친정어머니는 아예 스님이 되어서 잘 만나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바쁘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오래 찾아가 보지를 못했다.
지영은 시간을 내어서 어머니를 찾아보리라 마음을 먹는다.
지영의 명성은 날로 높아만 간다.
정기적인 패션 쑈는 물론이고 연예인들의 의상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하자 지영의 시간은 나날이 바쁘기만 했다.
모처럼 오랜만에 권윤석과의 저녁 시간을 마련할 수가 있었다.
"요즘은 나보다 우리 김 사장이 더 바쁘군!"
"정말 그렇게 되었네요.
이번에도 디자이너를 더 두었는데도 바쁘기는 매일반이니..."
"하하하........
내가 우리 김 사장이 이렇게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믿고 있었지!"
"모두가 사장님 덕이에요.
사장님이 아니셨다면 오늘의 제가 있을 수나 있었겠어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지영!
이제 그런 말은 그만 했으면 하오.
당신이 능력이 없다면 어찌 오늘과 같은 성공을 거둘 수가 있었겠소?
모두가 다 당신의 능력이지."
"안 그래요.
사장님이 아니었다면 그런 능력이 제게 있다는 것도 모르고 살고 있을 거예요."
권윤석이 지영을 바라보는 눈이 매우 다정스럽다.
그들은 다정한 연인들처럼 서로를 사랑하는 눈으로 바라보면서 다정한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언니는 장사를 잘 하고 있오?"
"그런대로 잘 되고 있나 봐요.
큰어머님이 가끔씩 다녀오시는데 기분이 상하시지 않고 오시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아요."
"그래야지!
당신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고마운 일이 어디에 있겠소?"
"사장님은 언제나 저를 걱정을 해 주시니...."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
"이제 그만 결혼을 하세요."
"결혼?
누구하고?"
"이쁘고 참한 아가씨하고요."
"당신을 두고 내가 다른 여자하고 결혼을 하리라 생각하오?"
"저는 사장님하고는 어울리지 않아요."
"그건 내가 결정하는 것이오.
당신이 아니면 다른 어떤 여자하고도 결혼을 하지 않으리다."
지영은 그런 권윤석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의 과거가 한없이 원망스럽다.
이미 이혼한 경력을 가지고 있고 두 아이의 엄마인 자신이 어떻게 아직도 총각인 그의 청을 받아드릴 수가 있겠는가.
이제 권윤석은 자신의 마음을 감추려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을 오직 지영을 바라보고 살아왔던 권윤석이다.
지영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녀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고 기둥이 되어주었던 권윤석이였다.
지영의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었고 지영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있는 그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지영에게 결혼을 하자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진과 예진이도 권 윤석을 무척 잘 따르고 있었다.
허지만 아직도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의 아이들이다.
엄마의 재혼으로 그 아이들이 상처를 받는다면 지영의 고통이 얼마나 클 것인가.
권윤석은 하나에서 부터 열까지 지영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권윤석의 마음을 알고 있는 지영은 고맙기도 하고 그런 윤석이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감히 자신이 넘볼 수가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장님!
지금도 결혼이 너무나 늦었어요.
이제는 저에 대한 생각은 하지 말고 결혼을 하세요.
그래야만 저도 마음 편히 사장님을 볼 수가 있을 것만 같아요."
"지영!
당신은 나를 사랑하고 있지 않소?"
"제가 어떻게 감히 사장님을 사랑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건 무슨 소리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로 해석을 해야만 하오?"
"..................."
"정말 그런 것이오?"
"저도 사장님을 사랑하지 않는다고는 말을 할 수가 없어요.
허지만 저는 이미 결혼을 했던 사람이고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계시잖아요?"
"그것을 내가 모르고 하는 소리 같소?
당신의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오.
내가 아는 당신을 있는 그대로 말이오."
"허지만 저는 그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어요."
지영은 마음이 답답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그 사랑을 선뜻 받아들이겠는가.
"당신의 마음만을 알면 됐소!
결혼을 하자고 당신을 괴롭히지 않으리다.
언젠가는 우리가 서로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었을 때 그때 해도 늦지 않소!"
"...................."
"너무 부담을 갖지 마시오.
그저 당신이 마음 편하고 행복할 수만 있다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는 사람이오."
지영은 그런 권윤석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마음이 변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해준 사람이 어디에 또 있을 수가 있겠는가.
지영의 마음은 그에게 점점 다가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의 여자가 되어 그의 곁에서 평생을 살 수만 있다면 하는 바람이 점점 크게 지영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었다.
글: 일향 이봉우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히 잘 봤습니다
즐감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