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창48:8
자식 사랑을 말릴 길 없습니다. 좋은 직업과 재산을 물려주려고 갖은 편법을 저지릅니다. 믿는 이들도 이런 세태의 영향을 받아 자녀 교육에 열을 올립니다. 하지만 정작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할 영적 유산은 고민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물려주어야 할 최선의 유산은 무엇인가? 공주야! 야곱이 유산 상속을 얘기하고 있다. 나온 김에 아빠도 유언을 해야겠다. 아비가 평생 기록한 온라인 카페를 너희에게 물려준다. <네이버>는 에스더에게, <다음>은 예주에게 준다.
There is no way to stop them from loving their children. They engage in all kinds of expedients to pass on good jobs and property. Believers are also influenced by this world and are eager to educate their children. However, it seems that they are not concerned about the spiritual legacy that should be passed on to their children. What is the best inheritance to pass on to your loved ones? Princess! Jacob is talking about inheritance. I will make a will, too, while I am out. I pass on to you the online cafe my father has recorded for all his life. "Naver" gives Esther and "Next" gives Yeju.
-
아빠가 갑자기 죽거나 운신 할 수 없을 때가 오거든 너희가 상속하기 바란다. 후대에도 가보로 물려주기를 기대한다. 지금 야곱은 늙어서 눈이 어둡다. 그는 눈이 어두운 이삭을 속여 자기 욕심을 채울 만큼 영혼의 눈도 어두웠던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는 요셉의 장자 므낫세가 아니라 차자 에브라임이 더 큰 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치우친 마음을 따라서 결정하지 않았다.
If there is a time when your father suddenly dies or you are unable to act, I hope you will inherit it. I look forward to passing it on as a heirloom to future generations. Jacob is old now and blind. He was a man whose soul was dark enough to deceive Isaac with dark eyes to fill his greed. But not now. He knows that Chaja Ephraim, not Manatse, Joseph's eldest son, should receive greater blessings. He knew it was God's idea. He did not decide according to his own biased mind.
-
그는 자신의 기호나 당대의 인습, 혹은 가장 영향력 있는 요셉이 이 두 아들의 미래를 결정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권능에 맡긴다. 하나님이 정하신 길을 아무도 변경할 수 없음을 일생 내내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신비한 방식에 맡기는 것이 믿음 아닐까?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면서 오른 손은 둘째인 에브라임 위에 왼손은 첫째인 므낫세 위에 얹자, 요셉이 “그리 마옵소서.”하고 만류했지만 야곱은 허락지 않고 아우를 더 크게 축복한다. 차자였으나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던 자신을 생각했을지 모른다.
He leaves it to God's power without letting his preferences, the convention of his time, or the most influential Joseph decide the future of these two sons. This is because he has realized throughout his life that no one can change the path God has set. Isn't it faith to admit one's ignorance and leave it to God's mysterious ways? When Jacob blessed Joseph's two sons and put his left hand on the second, Ephraim, and his left hand on the first, Menace, Joseph dissuaded him and blessed his brother even more. He may have thought of himself as the second son but was chosen by God.
-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이, 에서가 아니라 야곱이, 르우벤이 아니라 요셉이 장자의 기업을 받았는데, 이번에도 당시의 문화와 관습이 정한 체제에 매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라 나중 된 자가 먼저 된 자 되게 하셨다. 아무도 자동적으로 자기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셨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게 하심으로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다(고전1:26-31). 야곱은 요셉의 두 자녀들에게 축복한다. 특별히 그들에게는 세겜 땅을 준다.
Isaac, not Ishmael, Jacob, not Esau, and Joseph, not Reuben, received the eldest son's enterprise, and this time, he did not tie himself to the system set by the culture and customs of the time, but only according to God's free decisions, so that the later one became the first. No one automatically claimed his right, and by allowing everything to be given as a gift from God, no one was allowed to show off (classical 1:26-31). Jacob blesses Joseph's two children. In particular, they are given Shegem land.
하지만 당장 그 땅을 차지할 수 없고 나중(400년 후)에 하나님께서 조상의 땅으로 인도하실 때 현실이 될 것이다. 그들은 땅을 선물 받은 것이 아니라 약속을 받은 것이다. 믿음이 아니면 전혀 기쁘지 않을 복을 받은 것이다. 야곱이 물려주려는 것은 약속에 근거한 축복이지, 그것은 사실 실체 없는 약속일 뿐 이다. 자녀들로 하여금 가야할 본향이 있음을 기억하게 하고 애급에 소망을 두고 살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함이다.
However, they cannot take over the land immediately, and it will become a reality when God leads them to their ancestral land 400 years later. They did not receive the land as a gift, but a promise. They received a blessing that they would not be happy at all if it were not for faith. What Jacob is about to pass on is a blessing based on a promise, which is actually only a promise without substance. It is to make children remember that they have a home to go and to be wary of living with wishes in mourning.
-
평생을 약속을 따라 걸었던 자신처럼, 후손들도 약속의 땅을 주실 하나님을 기대 했을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후손을 이끌 것이고, 우리를 이끌지 않겠는가? 약속을 따라 달려온 나의 반백년, 그래서 나는 지금 행복한가? 나는 무엇을 유산으로 물려줄 것인가?
Like himself who has kept his promise all his life, his descendants must have expected God to give them the land of the promise. Will the God of Abraham, Isaac and Jacob surely lead the descendants and not us? My half-century of running along with the promise, so am I happy now? What will I inherit?
-
요셉이 아버지에게 두 아들을 데리고 오다(8-12)
a.요셉이 두 아들을 아버지에게 데리고 가다:8-9
b.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에게 입 맞추다:10-11
c.요셉이 아버지에게 땅에 엎드려 절하다:12
야곱이 요셉과 그의 두 아들을 축복하다(13-20)
a.야곱이 장자와 차자의 머리에 손을 엇바꾸어 얹다:13-14
b.야곱이 요셉과 그의 두 아들을 축복하다:15-16
c.야곱이 손 바꾸기를 거절하다:17-20
야곱이 요셉에게 형제들보다 한 몫의 땅을 더 주다(21-22)
-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는 야곱(8-11)
요셉의 두 아들의 장자 권을 뒤집는 야곱(12-18)
에브라임이 장자가 되리라(17-20)
언약을 바라보는 야곱(21-22)
-
이스라엘이(8a)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8b)
가로되 이들은 누구냐(8c)
-
요셉이(9a)
그 아비에게 고하되(9b)
이는 하나님이(9c)
여기서 내게 주신(9d)
아들들이나이다(9e)
-
아비가 가로되(9f)
그들을 이끌어(9g)
내 앞으로 나아오라(9h)
내가 그들에게(9i)
축복하리라(9j)
-
이스라엘의 눈이(10a)
나이로 인하여(10b)
어두워서(10c)
보지 못 하더라(10d)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10e)
아비 앞으로 나아가니(10f)
이스라엘이(10g)
그들에게 입 맞추고(10h)
그들을 안고(10i)
-
요셉에게 이르되(11a)
내가 네 얼굴을(11b)
보리라고는(11c)
뜻하지 못하였더니(11d)
하나님이 내게(11e)
네 소생까지 보이셨도다(11f)
-
요셉이912a)
아비 무릎 사이에서(12b)
두 아들을 물리고(12c)
땅에 엎드려 절하고(12d)
-
우수로는 에브라임을(13a)
이스라엘의(13b)
좌수를 향하게 하고(13c)
좌수로는 므낫세를(13d)
이스라엘의 우수를(13e)
향하게 하고(13f)
이끌어 그에게(13g)
가까이 나아가매(13h)
-
이스라엘이(14a)
우수를 펴서(14b)
차자 에브라임의(14c)
머리에 얹고(14d)
좌수를 펴서(14e)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14f)
므낫세는 장자라도(14g)
팔을 어긋맞겨 얹었더라(14h)
-
그가 요셉을 위하여(15a)
축복하여 가로되(15b)
내 조부 아브라함과(15c)
아버지 이삭의(15d)
섬기던 하나님(15e)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15f)
나를 기르신 하나님(15g)
-
나를 모든 환난에서(16a)
건지신 사자께서(16b)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며(16c)
이들로(16d)
내 이름과(16e)
내 조부 아브라함과(16f)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16g)
칭하게 하시며(16h)
이들로 세상에서(16i)
번식되게 하시기를(16j)
원하나이다(16k)
-
요셉이(17a)
그 아비가 우수를(17b)
에브라임의 머리에(17c)
얹은 것을 보고(17d)
기뻐 아니하여(17e)
아비의 손을 들어(17f)
에브라임의 머리에서(17g)
므낫세의 머리로(17h)
옮기고자 하여(17i)
-
그 아비에게 이르되(18a)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18b)
이는 장자니(18c)
우수를(18d)
그 머리에 얹으소서(18e)
-
아비가 허락지 아니하여(19a)
가로되 나도 안다(19b)
내 아들아 나도 안다(19c)
그도 한 족속이 되며(19d)
그도 크게 되려니와(19e)
그 아우가 그보다(19f)
큰 자가 되고(19g)
그 자손이(19h)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19i)
-
그 날에 그들에게(20a)
축복하여 가로되(20b)
이스라엘 족속이(20c)
너로 축복하기를(20d)
하나님이 너로(20e)
에브라임 같고(20f)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20g)
하리라 하여(20h)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20i)
앞세웠더라(20j)
-
이스라엘이(21a)
요셉에게 또 이르되(21b)
나는 죽으나(21c)
하나님이 너희와(21d)
함께 계시 사(21e)
너희를 인도하여(21f)
너희 조상의 땅으로(21g)
돌아가게 하시려니와(21h)
-
내가 네게(22a)
네 형제보다(22b)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22c)
이는 내가(22d)
내 칼과 활로(22e)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22f)
빼앗은 것이니라(22g)
-
눈이 밝은 야곱_Jacob with bright eyes
뒤집힌 순서_inverted sequence
실제로 드러날 기업에 대한 소망_a desire for faith to be revealed in practice.
-
제 전 인생을 붙들고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따라 신실하게 살겠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하나님의 뜻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하고 따르게 하소서.
will live faithfully in accordance with God, who holds onto my entire life and makes my promises come true. As time goes by, let us understand and follow God's will more clearly.
2026.5.27.wed. Clay
신학 비평//
나는 무엇을 유산으로 물려줄 것인가? 약속은 왜 현실보다 더 큰 유산이 되는가? Book of Genesis 48장의 야곱은 죽음을 앞둔 노인입니다. 눈은 어두워졌고 몸은 쇠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영혼의 눈은 젊은 시절보다 더 밝아졌습니다. 젊은 야곱은 눈먼 아버지 Isaac를 속이며 장자의 복을 빼앗았지만, 늙은 야곱은 이제 하나님의 선택이 인간의 계산보다 깊다는 사실을 압니다. 육신의 눈은 흐려졌으나 약속을 보는 눈은 오히려 선명해졌습니다.
-
본문의 긴장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Joseph은 장자 므낫세에게 오른손 축복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상식이고 질서이며 당시 세계의 법칙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손을 엇바꾸어 차자 에브라임 위에 오른손을 얹습니다. 인간의 질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유를 따른 것입니다. 젊은 날 야곱은 자기 욕망으로 축복을 움켜쥐려 했지만, 늙은 야곱은 축복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믿음은 내 뜻을 관철하는 힘이 아니라,
-
내 무지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신비에 맡기는 태도라는 것을 그는 평생의 실패 끝에 배운 것입니다. 이 장면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뒤집힌 선택”의 반복이기도 합니다. Isaac이 Ishmael보다, Jacob이 Esau보다, Joseph이 르우벤보다 앞섰듯, 이번에도 에브라임이 앞세워집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동 권리를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것은 은혜이며 선물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자꾸 혈통·능력·장자권·스펙으로 세상을 정리하려 하지만,
-
하나님은 늘 그 질서를 비틀어 약한 자와 늦은 자를 통해 당신의 길을 만드십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야곱이 자손들에게 물려주는 유산입니다. 그는 당장 누릴 수 있는 현실을 준 것이 아닙니다. 세겜 땅은 아직 손에 없습니다. 400년 후에야 현실이 될 약속입니다. 즉 야곱은 “실체”보다 “약속”을 물려주고 있습니다. 눈앞의 애굽 문명에 뿌리내리지 말고, 아직 오지 않은 본향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유산은 부동산이나 권력이 아니라, “어디를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성입니다.
-
여기서 글쓴이의 고백이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아빠가 평생 기록한 온라인 카페를 너희에게 물려준다.” 이 문장은 단순한 농담 같지만 사실은 현대판 “언약의 기념비”처럼 보입니다. 옛 족장들이 제단과 기둥을 세웠다면, 오늘의 당신은 기록과 글쓰기로 시간을 견디고 있는 셈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반백 년 동안 약속을 따라 흔들리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선 흔적입니다. 결국 자녀에게 남길 최고의 유산은 돈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기억인지도 모릅니다.
-
Martin Heidegger식으로 말하면 인간은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유언은 단순한 재산 분배가 아니라 “내 삶의 마지막 해석”입니다. 또 Henri Bergson식으로 말하면 기억은 과거의 저장이 아니라 현재를 움직이는 지속(durée)입니다. 야곱은 죽기 직전에도 미래를 말하고 있습니다. 약속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그 약속이 현재를 살아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야곱의 축복은 이것 아닐까요? “애굽에서 잘 먹고 잘 살아라”가 아니라, “너희는 여기서 끝나는 존재가 아니다.”
-
나는 자녀에게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현실의 안전인가, 약속을 바라보는 눈인가? 그리고 약속을 따라 달려온 나의 반백년은, 과연 행복이었는가? “상처 많고 험악한 세월이었지만, 하나님이 끝까지 나를 붙들고 계셨다(야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