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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의
‘흑과 백으로’(2) / 리흐테르의 음악에의 몰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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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치까지
음반에 담아낸 대가의 자유로움과 당당함 |
글/
김주영(피아니스트) |
피아노 현이 끊어지는 돌발 상황을 목격했다면, 당신은 행운아!
여러분은 연주회장에서 피아니스트가 피아노의 현을 끊어뜨리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다. 콘서트홀에 연주를
위해 준비된 그랜드 피아노는 고도의 메카니즘으로 이루어진 기계이며, 나름대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관리되어지고
있기 때문에 연주 도중 줄이 끊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청중들은 아주 가끔 이런 돌발 상황을
만나는 행운을(?) 누릴 때도 있다.
필자도 콩쿠르나 연주회 도중 줄을 끊는 피아니스트들을 몇 번 목격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입상자인 빅토르 카스만은
쇼팽의 ‘겨울바람’ 연습곡 마지막 부분에서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 저음의 굵은 줄을 부수는 괴력을 발휘했으며, 젊은
나이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현재 투병중인 알렉세이 술타노프 역시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리스트의 ‘메피스토 왈츠’ 연주
도중 넘치는 힘을 과시한 바 있다. 또 세계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여류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도 몇 년
전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와 함께한 내한 공연에서 피아노 줄을 끊어뜨리는 위력을 발휘해 청중들을 당황케 한 적이
있다.
필자도 음악회 중은 아니었지만 연주 당일 리허설에서 줄을 끊는 경험을 했다. 거슈인의 ‘랩소디 인 블루’를 협연하던
중 후반부의 카덴차에서 “탕!!”하는 소리와 함께 고음의 강철 현 하나가 끊어진 것이다. 현 하나에 가볍게는 70Kg에서
최고 300Kg이라는 강한 장력을 지닌 피아노 줄이 끊어지는 순간은 소리도 소리려니와 늘 예기치 못한 순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피아니스트를 깜짝 놀라게 하기 마련이다. 필자도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은 기억이 생생하다.
역시 대가의 풍모는 다르다
이런 순간이 실황 녹음으로 고스란히 담긴 희귀한 자료도 있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흐테르가 체코 프라하에서 1986년
5월에 가진 연주회 실황이 바로 그것인데,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 아홉 번째 변주에서 그만 요란한 탁음을 내며
줄 하나가 끊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극도로 예민해져있는 무대 위의 피아니스트에게 이런 사고는 치명적일 수도 있지만,
리흐테르는 이런 사소한 일은 자신의 음악에, 그리고 청중들과의 대화에 전혀 방해요소가 되지 않는다는 듯 꿈쩍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특유의 집중력과 강한 추진력을 살려 대작의 핵심으로 흔들림 없이 진행하는 멋진 연주를 들으며,
‘역시 대가의 풍모는 다르구나’ 하며 감탄했던 적이 있다.
사실 리흐테르의 이런 강한 집중력과 연주에의 몰입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음악교사인 아버지에게서 약간의 기초를 배웠을
뿐 피아노의 주법이나 양식적인 면의 마무리 등은 애초부터 독학이었던 리흐테르는, 그 뛰어난 직관과 천재성, 그리고
작품의 본질을 꿰뚫어내는 초인적인 끈기와 노력을 무기 삼아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는 고고한 아집이 느껴지는 독자적인
예술을 그려냈던 것이다. 틴에이저 시절 이미 오데사 가극장의 피아니스트로 일했던 리흐테르가 22살의 만학도로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했을 때, 당대 최고의 명교수 네이가우스가 그에게 가르쳐 준 것은 반주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면서 붙은 어깨를
흔드는 버릇을 없애는 방법 뿐이었다니 놀라울 뿐이다. 1940년 25살의 젊은 리흐테르를 프로코피예프에게 추천한 사람도
네이가우스였으며, 마침내 현대 피아노 문헌의 최고봉을 차지하는 프로코피예프의 전쟁 소나타들이 당시 무서운 신예 피아니스트
리흐테르의 손으로 세상에 첫 선을 보이는 음악사가 쓰여지게 되었다.
천재적인 독보력으로 바로크에서부터 아방가르드까지 연주하지 못하는 곡이 없는 리흐테르이지만, 앞서 언급한 그만의 특징,
즉 몰아지경에 이르는 고도의 집중과 기교의 극한까지를 추구하는 초인적인 추진력과 열정 등이 작곡가의 기질과 잘 맞아떨어져
상상할 수 있는 최대의 시너지 효과를 내는 작품들이 그의 주 영역이라고 하겠다.
필자는 그러한 작곡가로 베토벤, 슈베르트, 프로코피예프 등을 들고 싶다. 악성의 거인적인 발걸음과 함께 따뜻한 인간미가
살아있는 베토벤, 투명한 초월의 아름다움이 한결같이 서려있는 슈베르트의 선율들, 기계적인 차가움과 가벼운 유희성이
동시에 느껴지는 프로코피예프의 매력 등등.. 이 모든 것들이 리흐테르만의 개성이라고 할 수 있는 ‘완전에 가까운 음악에의
몰입’ 이 없다면 생각할 수도 없다는 데 동의할 분들이 많으리라 보여진다.
자신의 예술에 한없이 헌신한 겸손한 인간의 모습
리흐테르의 이런 강한 몰입은 여유와 사색이 느껴지게 하는 동시에 건반 위에서의 한없는 자유로움과 당당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1983년 뮌헨에서 녹음한 라흐마니노프의 ‘음의 그림-연습곡’ 모음은 그 긴장감과 거대한 스케일 면에서 리흐테르의
대표적인 라흐마니노프 레코딩으로 꼽을 수 있는 명반이지만, 스튜디오 녹음임에도 미스터치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꼼꼼한 독일인들이 이를 놓칠 리 만무하나, 연주자의 자존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흥분과 열정, 그리고 밀도 높은
아우라의 결정적 순간이 담긴 이 녹음의 릴리즈를 허락하는데 중요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순도 높은, 진짜 ‘100 퍼센트’ 음악가 리흐테르의 색다른 일면을 볼 수 있는 사실이 또 하나 있다. 한국 청중들은
리흐테르 최만년에서야 힘들게 이루어진 내한 공연에서 피아노 위의 스탠드 하나에 의지해 ‘악보를 보면서’ 연주한 대가의
모습을 아직도 얘기하곤 한다. 물론 이는 리스트 당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암보의 관행을 깨트리려는 시도가 아니었음이
분명했으며, 당시 인터뷰에서 ‘나이가 들수록 암보에 대한 확신이 엷어져 악보를 사용하고 있다’ 고 밝힌 리흐테르의
태도에서 필자는 자신의 예술에 한없이 헌신적이고 겸손한 인간의 모습이 느껴졌다. ‘대가니까 그렇게 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해버릴 수도 있지만, 악보를 외우는데 시간을 쓰기보다는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새로운 레퍼토리와 미답의
경지에 끊임없이 다다르고자 애쓰는 성실한 피아니스트의 표본을 발견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일본의 피아니스트 나카무라 히로코는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호로비츠가 되기를 꿈꾸지만, 이를 위해 리흐테르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고 지적했다. 호로비츠와 같은 눈부신 피아니즘은 바라지 않더라도, 천직인 음악에 쏟아
부은 열정과 온전한 헌신, 그리고 무대 위에서 리흐테르가 보여준 그 몰입의 경지를 백분의 일만큼이라도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아서 가히 ‘피아노의 신선’ 의 경지에 올랐던 스비아토슬라프 리흐테르가 진짜 신선의 나라로 떠난지
벌써 6년이나 되었으니, 이제 그 해답은 그가 우리에게 온 몸으로 던져 남기고 간 피아노 소리들에서 찾을 수밖에 없을
듯 하다.(계속)
피아니스트 김주영에 대해 보다 자세한 것을 알고 싶으신 분은 www.youngpiano.com을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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