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 집회서의 말씀 44,1.9-13
1 훌륭한 사람들과 역대 선조들을 칭송하자.
9 어떤 이들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고 존재한 적이 없었던 듯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태어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되었으며 그 뒤를 이은 자녀들도 마찬가지다.
10 그러나 저 사람들은 자비로워 그들의 의로운 행적이 잊히지 않았다.
11 그들의 재산은 자손과 함께 머물고 그들의 유산은 후손과 함께 머물리라.
12 그들의 자손은 계약을 충실하게 지키고 그들 때문에 그 자녀들도 그러하리라.
13 그들의 자손은 영원히 존속하고 그들의 영광은 사라지지 않으리라.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 11,11-25
예수님께서 군중의 환호를 받으시면서
11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그곳의 모든 것을 둘러보신 다음,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열두 제자와 함께 베타니아로 나가셨다.
12 이튿날 그들이 베타니아에서 나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시장하셨다.
13 마침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멀리서 보시고, 혹시 그 나무에 무엇이 달렸을까 하여 가까이 가 보셨지만,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4 예수님께서는 그 나무를 향하여 이르셨다.
“이제부터 영원히 어느 누구도 너에게서 열매를 따 먹는 일이 없을 것이다.”
제자들도 이 말씀을 들었다.
15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시어, 그곳에서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셨다.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도 둘러엎으셨다.
16 또한 아무도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지 못하게 하셨다.
17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18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그분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군중이 모두 그분의 가르침에 감탄하는 것을 보고 그분을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19 날이 저물자 예수님과 제자들은 성 밖으로 나갔다.
20 이른 아침에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있는 것을 보았다.
21 베드로가 문득 생각이 나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보십시오.
스승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습니다.”
22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을 믿어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려서 저 바다에 빠져라.’ 하면서, 마음속으로 의심하지 않고 자기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25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군가에게 반감을 품고 있거든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맨 먼저 찾아가신 곳은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그곳은 당신이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잃은 아들을 찾아 온 부모에게 “저는 저의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라고 했던 바로 그 성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면서 말씀하십니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마르 11,17)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당신의 집’으로 말씀하십니다.
곧 “성전”을 당신이 머무는 곳이요, 당신의 현존을 드러내는 곳으로 말씀하십니다.
사실 성전은 하느님께서 “내 이름이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1열왕 8,29)라고 말씀하신 곳이니, 당신 이름과 함께 현존하신 그분을 만나고 대면하고 마주하는 ‘기도의 집’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되어 장사와 환전이 행해지는 불결하고 부정한 곳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새롭게 정화하시는 일을 맨 먼저 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성전 정화는 교회 개혁의 표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교회는 언제나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을 드러내고 주님의 생명과 사랑에 응답할 때 교회다워진다는 말씀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쪼개시고, 성전의 장막을 두 갈래로 가르셨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물리적이고 공간적인 성전주의에 갇히지 않으시는 당신의 몸을 성전으로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당신의 지체로서, 하느님 현존의 성전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사실을 잘 깨우쳐줍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그것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1코린 3,16-17)
참으로 그렇습니다.
우리의 몸은 비록 질그릇 같은 깨지기 쉬운 몸이라 할지라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값진 보화를 간직한 거룩한 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주신 거룩한 품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께서 우리 안에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단지 우리 안에 계시고 활동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인은 집을 어찌할 수 있으되, 결코 집이 주인을 어찌할 수는 없습니다.
주인이 집을 소유한 것이지, 집이 주인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신을 기꺼이 주님의 소유로 내어드려야 할 일입니다.
주님의 성전인 우리의 몸이 ‘강도의 소굴’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1코린 6,20), 우리의 몸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어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몸으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것은 우리 몸을 잘 보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처럼 우리의 몸을 다른 이들을 위해 내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을 타인을 위해 내어놓을 때, 비로소 그분이 우리 안에서 잘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을 때, 곧 우리 자신을 타인과 세상을 위해 내어놓을 때, 성전인 우리는 ‘기도의 집’이 되고, 우리 안에서 그분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
(마르 11,17)
주님!
기도하게 하소서
제 몸으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
제 행실로 당신의 성전임을 증거하게 하소서.
제 영혼이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게 하소서.
제가 당신이 거주하시는 당신의 집인 까닭입니다.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