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서울 송파경찰서 소회의실에서 권은희 송파서 수사과장이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대선 개입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청장이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지 하루만이다. 권 과장은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경찰 수뇌부가 사건 수사에 개입했다”고 주장해 사건을 증폭시킨 인물이다. 권 과장은 김 전 청장에 대한 선고 공판이 있던 6일 오후엔 사무실을 비운 채 기자들과의 접촉을 피하다가 오후 늦게야 취재진에게 “서울경찰청에 보고한 뒤 질문에 답하겠다”고 밝혀왔다.
이날 오전 8시14분쯤 출근한 권 과장은 ‘판결문에 권 과장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겨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나중에 공식적으로 답변하겠다”고만 했다. 이후 권 과장은 서울청에 연락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하겠다’고 알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 댓글 사건 재판이 한창이던 지난해 9월,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가 ‘서면경고’ 조치를 받았던 것을 의식한 행동으로 보였다.
경찰 수뇌부 수사 개입 의혹 제기해 사건 증폭 시킨 인물 “수사 축소, 지연 문제에 대해 재판부의 판단이 부족했다”
권 과장은 “수사 책임자로서 제기했던 축소·지연 문제에 대해 재판부의 판단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경찰 공무원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계속 사실을 밝힐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작년 8월 국회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장에 증인으로 나온 권은희 수사과장.
―어제 판결에 대한 입장은? “어제 언론 보도된 1심 재판부의 판결문을 검토한 결과, 국정원 댓글 사건에 수사 책임자로서 제기했던 축소·지연 문제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부족했다고 봤다. 아직 사실심인 항고심 등 절차 남아있는 만큼 1심 재판부가 판단하지 않았거나, 부족하게 판단한 부분은 경찰 공무원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계속 사실을 밝힐 수 있도록 말씀 드릴 것이다.
국정원 사건 발생부터 오늘에 이르기까기 수사 관련자들의 진술이 부합하지 않고 평행선을 달려왔다. 수사의 주체인 전 수서경찰서 수사팀에서 즉시 감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지휘 체계를 달리하는 증거분석팀에서 (수사가) 별도로 진행돼 사실 관계가 밝혀지기 힘들었다. 수사의 효율성, 실무상 어려움, 법리적 제한에 따라 올바른 수사가 불가능했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또 수서경찰서 전담팀의 구체적인 수사권이 무시되고 배제됐다.
2012년 12월14일 서울청 증거분석팀에서 아이디·닉네임을 발견하고도 수서경찰서에 바로 알리지 않아, 수사 진행을 못했다는 점을 5일 뒤에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12월 16일 중간수사발표에서도 전혀 그 내용을 담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2012년 12월16일 수서경찰서 중간 수사발표 내용이 부족했고, 이후 2013년 4월 경찰 수사 발표, 6월 검찰 발표와도 상이할 수 밖에 없었다.
재판부는 증거분석 의뢰의 범위에 대해서 ‘수사의 효율성, 신속성’ 등을 이유로 키워드를 제한했다고 판단했는데, 검토 주체가 누구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주체는 수서경찰서 수사팀이었다. 충분히 검토할 수 있도록 일련의 과정들이 공개되고 수서경찰서 수사팀에 전달됐는지, 위법이 있지 않았는지 알아봐야 한다. 수서경찰서가 의뢰한 범위를 축소한 것은 수사 주체인 수서경찰서 사이버팀의 수사 권리를 침해한 것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은 2012년 12월 ‘국정원이 댓글을 통해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는 민주당의 의혹 제기에 따라 시작됐다. 2012년 12월11일 민주당은 국정원 직원인 김모(여·29)씨의 집인 서울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에 찾아가 장시간 대치하며 “국정원이 직원들을 동원해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댓글을 작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튿날 민주당은 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국정원 여직원을 경찰에 고소했고, 이로부터 나흘 뒤인 12월16일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 수서경찰서는 “국정원 여직원의 컴퓨터에서 대선과 관련된 댓글을 작성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대선 이후 경찰 수사엔 뚜렷한 진척이 없었다. 2013년 2월 경찰은 수사 책임자였던 권은희 당시 수서서 수사과장을 송파서 수사과장으로 옮기고, 임병숙 서울 서초경찰서 수사과장에게 사건을 맡겼다. 이 때부터 수사팀과 수뇌부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나왔다. 같은 달 민주당은 “대선 직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축소하고 은폐했다”며 김용판 전 청장을 검찰에 고발했고, 서울중앙지검은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4월부터 이 사건을 본격적으로 수사하기 시작했다.
권 과장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점은 이때부터다. 사건 초기 수서서에서 국정원 여직원 PC 분석을 지휘했던 권 과장은 사건을 검찰로 송치한 직후 “김전 청장이 댓글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폭로했다. 권 과장은 “김씨와 관련해 영장 신청을 준비하는데, 김 전 청장이 전화를 걸어와 ‘검찰에서 영장을 기각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영장을 신청하지 말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키워드 78개를 4개로 줄이라고 하는 등 분석 범위를 제한하게 했고, 허위 수사 결과를 대선 직전에 발표하게 해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권 과장의 주장에 대해 정치권에선 ‘현직 경찰 간부의 양심선언’이라는 칭찬과 ‘근거 없는 의혹 제기’라는 비판이 동시에 쏟아져나왔다.
권 과장은 이후에도 ‘경찰 수뇌부가 수사에 개입했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펼쳤다. 2013년 8월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 참석한 권 과장은 “2012년 12월16일 국정원 정치 개입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 목적은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고, 김 전 청장의 재판에도 증인으로 출석해 “김 전 청장이 전화를 걸어와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지 말라고 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작년 9월 권 과장은 ‘서울경찰청에 보고하지 않고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는 이유로 서면 경고 조치를 받았다. 이때에도 권 과장은 “경찰청이 김 전 청장 재판과 국민에 영향을 끼치려고 서면 경고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경찰 수뇌부와 각을 세웠다.
하지만 이번 6일 판결에서 법원은 “2012년 12월12일김 전청장이 전화해 보류를 종용했다는 권 과장의 진술은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경찰관들과 김기용 전 경찰청장, 수서서장 등의 진술이 일관된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은 또 “분석 범위를 제한했다”는 권 과장의 주장에 대해서도 “분석관들이 현실적인 분석 시간을 고려해 박근혜·문재인 후보 관련 글을 찾는 데 주력하려고 키워드를 박근혜·문재인·새누리당·민주통합당 4개로 결정한 것일 뿐”이라고 판단했다. ‘대선 직전 일부러 정해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당시 분석 결과 정치 관련 지지·비방 글이 나타나지 않았고, 보도 자료 초안에 분석 결과를 공란으로 비워둔 점을 보면 미리 결과를 정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무죄 선고를 예상했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충격적인 결과다.”
―왜 그렇게 판단했나? “재판부에서 무죄 이유로 들었던 ‘나(권은희)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는 내용은 말이 안되는 것이다. 직무를 이용한 (은폐) 행위는 사이버 수사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는 특성이다. (나는) 이런 특성을 감안하고 다른 간접사실들을 결합을 해서 명확하게 사실판단을 했다. 1심은 (사이버 수사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는 특성들을 그저 나열하고, 그를 이유로 무죄 판결했다. 추가로 재판부에서 직무를 이용한 범죄 행위, 조직 내부에서 일어나는 행위에 대해서 더 면밀히 봐야 하는 간접 사실들에 대한 판단은 없다.”
권은희 송파서 수사과장.
―수사책임자로서 검찰 수사 중 미진했다거나 아쉽다고 판단되는 부분이 있나? “현재로서는 검찰 수사 내용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을만큼 구체적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전제로 이야기하겠다. (수사 당시) 현장에서 모든 상황을 즉시 관리하고 통제, 번복하지 않도록 하기가 힘들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 검찰이 (면밀히 검토해) 기소하고 이를 법원이 판단했어야 했는데, 평행선을 달려왔다.”
―검찰이 부족했다는 뜻인가? “평행선을 달려왔다는 것이다. 수사과장으로서 신속하게 증거 분석 내용을 입수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그래서 (서울청에) 신속한 증거물 반환을 거듭 요청했다. 그런데도 14일 서울청에서 ID와 닉네임이 기재돼 있는 증거를 발견하고서도, 저에게 알리지 않았다. 5일이 지난 뒤에야 수서서에서 받아봤다.
이 사안에서 핵심적인 쟁점은 누구나 다 아시다시피 12월 14일 이미 ID, 닉네임이 나왔다는 것. (서울청은) 알고서도 중간발표 때 (공개)하지 않고 증거물을 나중에 반환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증거물 반환 거부고 지연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재판부는 ‘12월 16일 밤 11시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 정도로 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아쉽다는 말 정도로 (의혹이) 명확히 해소되기 힘들다. (서울청이) 그 당시에 발견된 자료들을 수서서 수사팀에 알리지 않은 점, 수사결과 발표 시기와 내용이 적법했는지 명확하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판부는 ‘다른 경찰들이 재판에서 거짓말을 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했다. 권 과장이 거짓말 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재판 진행되면서 나오겠지만 거짓말에 대해 최종 판단을 내리기 보다는, 수사팀이 극히 제한되고 의도된 사항을 가지고 수사한 것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재판부가 ‘국정원 여직원이 서울청 관계자와 통화한 증거가 없다’ ‘증거물 반환과 관련해서도 (권 과장과) 서울청 수사2계장과 통화한 기록이 없다’고 판단했는데. “이 사건 진행하면서 서울청이나 다른 수사 대상자들과 수차례 통화했다. 통화는 휴대폰을 이용한 통화 이외에 직무상 전화로도 이뤄진다. (나는) 서울청 수사 2계장과 통화한 내용까지 말씀드렸다. 당시 서울청과 수서서 사이에 공문이 오고 가는 상황이 연속해서 발생했다. 일련의 연속적인 과정들을 설명드렸다. (재판부는) 특정 부분 만을 얘기 하고 있는데, 결론을 말씀드린다면 내부를 이용한 통화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