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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漢詩 한 수, 초여름의 정취
매실은 신맛이 돌아 치아를 무르게 하고,
파초는 창문 비단 휘장에 초록빛을 나눠준다.
긴긴해 낮잠에서 깨어나 무료해진 마음,
버들솜 잡는 아이들을 한가로이 바라본다.
梅子留酸軟齒牙(매자류산연치아) 芭蕉分綠與窓紗(파초분록여창사)
日長睡起無情思(일장수기무정사) 閑看兒童捉柳花(한간아동착류화)
―낮잠에서 깨어난 한가로운 초여름(한거초하오수기·閑居初夏午睡起) 양만리(楊萬里·1127∼1206)
여름 초입, 매실에는 아직 신맛이 남아 있고 창가 파초잎 그림자가 비단 휘장 위에서 파르라니 일렁대는 계절이다. 해가 길어지면서 낮잠도 푹 즐길 수 있고 공중엔 버들솜이 분분하게 흩날린다. 자연은 여름으로의 진입을 예고하고, 시인은 버들솜을 잡으러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구경하며 무료함을 달래고 있다. 파초와 비단 휘장이 싱싱한 푸름을 서로 공유하는 동안 시인은 버들솜 잡기 놀이에 빠진 동심과 교감하면서 초여름의 정취를 한껏 만끽하고 있다.
갓 마흔을 넘긴 이 시기의 시인은 시에서처럼 그렇게 마냥 느긋하게 지낼 처지는 아니었다. 당시 그는 부친의 3년상을 치르기 위해 관직을 떠나 고향에 머물렀고,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와의 갈등으로 조정은 주전파와 주화파로 나뉜 채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다. 주전파로서 시인은 분주히 애국지사들을 찾아다니며 조정의 무능과 부패를 질타했다. 이런 점에서 초여름 정취에 심취한 시인의 이 망중한(忙中閑)은 조금 낯설게 느껴지긴 해도 어쨌든 소중한 기회였을 것이다.
이 시는 2수로 된 연작시. 제2수에서도 시인의 시선은 아이들을 떠나지 않는다. ‘맑은 샘물 손에 담아 장난삼아 파초에 뿌리자, 아이들은 빗소리로 착각한다’라 했다. 천진난만한 동심의 프리즘을 통해 현실적 암울을 잊고 잠시 저만의 카타르시스를 찾으려 했는지 모른다. 잡념 없이 아이들을 바라보고 동심과 소통하는 사이, 세상사 번뇌는 초여름 긴긴해 속으로 사르르 녹아들었을 것이다.
✵ 양만리(楊萬里, 1127∼1206)는 자(字)가 정수(廷秀), 자호(自號)는 성재야객(誠齋野客)이며, 남송(南宋) 고종(高宗) 건염(建炎) 원년(元年, 1127) 길주(吉州) 길수현(吉水縣) 동수향(同水鄕) 신가리(新嘉里) 밤당촌(湴塘村)에서 태어났다. 28세에 과거 시험에 합격한 뒤, 고종, 효종, 광종, 영종의 네 황제가 통치하는 기간 동안 지방과 수도에서 관직 생활을 했다. 개희(開禧) 2년(1206), 80세에 세상을 떠났으며 이듬해(1207), 조정에서 광록대부(光祿大夫)를 추증(追贈)했고, 가정(嘉定) 6년(1213)에는 ‘문절(文節)’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양만리는 송대를 대표하는 문학가 중의 한 사람으로, 시인으로 특히 유명하며 산문(散文)도 잘 지어 <천려책(千慮策)>을 비롯한 좋은 글들을 남기고 있다. 비평서로 ≪성재시화(誠齋詩話)≫가 있다. 사(詞)도 15수 전한다. 양만리는 또 아버지의 영향으로 ≪역경(易經)≫에도 정통해 ≪성재역전(誠齋易傳)≫을 남기고 있다.
◇ 18세 청년 임윤찬이 연주한 ‘악마의 곡’은 어떻게 만인을 울렸나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임윤찬, 라흐마니노프로 감동의 드라마 써
|기교보다 자신 낮춘 헌신으로 오케스트라와 이룬 완벽한 화음에 청중들 기립 박수 보내며 눈물
|音樂의 이치와 政治는 서로 통해… 우리 위정자들이 꼭 들어보길
제60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Van-Cliburn-concours) 결승 무대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3)을 연주하며 지휘자 마린 알솝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임윤찬./ 반 클라이번 콩쿠르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y Vasil’yevich Rakhmaninov, 1873~1943)가 서른여섯에 작곡한 피아노협주곡 3번은 초인적인 파워와 기교를 요구하는 곡으로 악명이 높다. 겹겹이 쌓인 음표로 악보 해독부터 어렵고, 광폭의 음역대와 스피드, 40분이 넘는 연주 시간까지 고도의 테크닉과 집중력 없이는 완주가 힘들어 당대 최고 연주자들도 기피했다고 한다.
일반 대중에게는 영화 ‘샤인’의 주제곡으로 먼저 알려졌다. 아버지와 불화로 정신 질환을 앓던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David Helfgott, 1947~)을 통해 “미치지 않고는 칠 수 없는, 악마의 곡”으로 묘사된다. 올해는 그 인기가 폭발적이다. 지난달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18세 한국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결승 무대에서 연주해 세계 클래식 평단을 뒤집어 놓은 곡이 바로 이 곡이다. 영화 속 데이비드는 이 곡을 완주한 뒤 정신을 잃고 쓰러지지만, 임윤찬은 땀에 젖은 머리가 살짝 헝클어졌을 뿐 기립 박수를 치며 열광하는 청중을 향해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반 클라이번(Van-Cliburn-concours)이 쏘아 올린 ‘윤찬 신드롬’은 2015년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이상으로 뜨겁다. 콘서트 티켓은 삽시간에 매진됐고, 그가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3번 영상은 3주 만에 500만 조회 수를 돌파, 거장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뉴욕필과 협연한 영상을 넘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미국의 한 피아니스트는 반 클라이번 심사위원들까지 동원해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가 왜 독보적인지 악보와 영상을 비교해가며 분석했을 정도다. 이제 겨우 열여덟 살인 피아니스트는 어떻게 만인의 가슴을 울렸을까.
영어 일어 중국어 아랍어 등 각국 언어로 달린 댓글 9000개에 그 답이 있다. “100년 전 작곡가와 접신한” 임윤찬은 피아노 한대로 “광야에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별이 뜨는 한 편의 드라마”를 썼다.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 곤두박질치는 경제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어느 위대한 정치가도 안겨주지 못한 위로와 감동을 선사”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3) 자체가 인생을 은유하는 드라마다. 클래식 전문가 배현정의 표현을 빌리면, 삶에 지쳐 일어설 힘도 없는 한 사람이 다시 용기를 내어 인생의 파도와 맞서 싸워 나가는 이야기다. 러시아 특유의 우수와 서정이 흐르면서도 폭풍우 몰아치듯 질주해야 하는 이 장대한 곡을, 임윤찬은 허투루 날리는 음 하나 없이 맑고 강건한 타건(打鍵), 고요와 격정을 거침없이 넘나드는 표현력으로 압도했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Van-Cliburn-concours) 결선에서 연주하는 임윤찬./ 반 클라이번 재단 트위터/뉴스1
만인의 가슴을 흔든 건 오케스트라와의 완벽한 조화였다. 피아노가 주인공인 협주곡(Piano Concerto)이지만, 임윤찬은 자신의 기교를 뽐내는 대신 오케스트라 모든 악기를 동등하게 대하며 그들 소리에 귀 기울이고 호흡했다. 플루트의 독주가 시작될 때 피아노를 한껏 낮추며 연주자와 눈 맞추는 대목은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경쟁하면서 화합하고, 격돌하면서도 스며드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 오케스트라와의 동행은 운명의 신이 먹구름을 몰고 오는 마지막 3악장에서 절정으로 치닫고,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듯 전장의 장수처럼 돌진하는 청년은 마침내 가슴 벅찬 승전고를 울리며 뜨겁게 산화한다.
흩어진 소리와 음들을 율(律)로써 아름답게 바로잡는다는 점에서 악(樂)의 이치는 정치(政治)와 통한다고 했던가. 열여덟 살 임윤찬이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취임 후 최대 고비를 맞은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들이 꼭 한번 들어보길 바란다. 음악의 제단 앞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불살라 연주하는 이 청년처럼 우리 정치인들은 오직 국민만 바라보며 자신을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하나의 곡을 완주하려 매일 15시간 피아노라는 거대한 골리앗과 싸운다는 이 청년처럼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서민들을 위해 그들은 숨이 턱에 차고 발에 불땀이 나도록 뛰고 있는지, 최고의 화음을 빚기 위해 자신을 한없이 낮출 줄 아는 이 젊은 연주자처럼 한국 정치는 경청과 상생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지, 부디 돌아봐주길 바란다.
딱 40분이면 된다. 나랏일로 바쁘시면 마지막 4분만 들어도 충분하다.
제60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Van-Cliburn-concours) 결승 무대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3)을 연주한 뒤 지휘자 마린 알솝과 포옹하는 피아니스트 임윤찬./ 반 클라이번 콩쿠르
출처: 조선일보 2022년 07월 20일(수) 오피니언 〉朝鮮칼럼 The Column[朝鮮칼럼 The Column(김윤덕 주말뉴스 부장)]
✺ 18세 임윤찬 신들린 연주… 밴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 최연소 우승
◇ 임윤찬 “아직 부족함 많아… 내 음악 깊어지길 원해”
|18세 임윤찬, 밴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 최연소 우승
|세계 3대 콩쿠르 버금가는 권위, 선우예권 이어 한국인 연속 정상
|“관객에 진심 닿은듯… 응원 큰 도움” 러-우크라 연주자 나란히 은-동메달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18일(현지 시간) 폐막한 제16회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로 우승한 임윤찬이 격정적으로 연주하고 있다. 임윤찬이 17일 결선 무대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D단조를 신들린 듯 연주하자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은 심사위원장 마린 올솝은 감동해 눈물을 흘렸고 관객들은 기립 박수를 보내며 열광했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 제공
임윤찬이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18일(현지 시간) 폐막한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청중상과 신작 최고연주상도 받았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 제공
“이번 콩쿠르를 통해 제 음악이 더욱 깊어지기를 원했습니다. 관객들에게 진심이 닿았던 것 같습니다.”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18일(현지 시간) 폐막한 제16회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이 역대 최연소로 최고상인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2017년 제15회 우승자 선우예권에 이어 한국인이 연속으로 이 대회 정상에 오르는 기록도 세웠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는 미 대륙을 대표하는 국제음악콩쿠르로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유럽의 쇼팽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비교될 만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임윤찬은 청중상과 신작 최고연주상도 받았다. 은메달은 러시아의 안나 게니우셰네(31), 동메달은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로 초니(28)가 받았다.
이번 콩쿠르 결선은 14∼18일 열렸다. 임윤찬은 마린 올솝이 지휘하는 포트워스 교향악단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임윤찬은 이번 수상으로 금메달 상금 10만 달러(약 1억2900만 원)와 특별상 상금 7500달러(약 970만 원)를 받는다. 음반 녹음 및 3년 동안 매니지먼트 관리를 받고 미국 연주 여행 기회도 갖는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는 1958년 구소련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미국 피아니스트 밴 클라이번(1934∼2013)이 우승한 것을 기념해 1962년 창설됐다. 1966년 루마니아의 라두 루푸, 1989년 소련의 알렉세이 술타노프, 2001년 러시아 올가 케른 등 유명 연주가를 우승자로 배출했다. 한국인으로는 선우예권 외 2005년 양희원(조이스 양), 2009년 손열음이 각각 2위에 올랐다. 이번 대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1년 순연돼 올해 열렸다.
임윤찬은 2015년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했고 클리블랜드 국제 청소년 피아노 콩쿠르 2위 및 쇼팽 특별상을, 쿠퍼 국제 콩쿠르 3위 및 청중상을 받았다. 2019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는 최연소 1위 및 청중상, 박성용영재특별상을 수상했다. 2020년 2월 예원학교를 졸업한 뒤 2021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영재 입학했다. 2017년부터 한예종 교수인 피아니스트 손민수를 사사하고 있으며 목 프로덕션 소속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날 임윤찬에게 축전을 보내 “뛰어난 기량과 무한한 예술성을 세계에 입증했다”며 “시대와 세대, 국경을 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음악가로 성장하길 응원한다”고 축하했다.
지난달 29일 폐막한 시벨리우스 콩쿠르 양인모(바이올린)와 이달 5일 폐막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최하영(첼로)에 이어 임윤찬까지 우승하면서 최근 열린 주요 국제콩쿠르 3개의 최고상을 한국인이 휩쓸었다.
[자료출처 및 참고문헌: 〈이준식의 漢詩 한 수(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동아일보 2022년 06월 17일.(금)〉, 동아일보 2022년 06년 20일 사람속으로 《Daum, 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고봉산 정현욱 님
한시 초여름의 정취
시 쓰기에 이울리지 않을듯 한 초여름의 정취를 이토록 아름답고 여유롭게 표현한 시는 처음 봤고 감동을 주네요
은퇴한 고령의 선비도 아닌 40대 공직자가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듯한 느긋한 시를 읊었다는 점과 동심의 아이들 묘사는 초여름을 더욱 정취있게 다듬었다는 생각이 들게 하네요
고봉산 정현욱 님
2022. 6. 18일은 18세 임윤찬의 날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영원한 기념비적 날인것 같네요
지휘자를 울린것도 모자라 세계일들이 신이 내린 선물이다, 조그마한 나라에서 천재들이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는지 코리아는 지구상에 완벽한 나라라는 찬사까지 나오다니 정말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 조성진의 연주도 들어봤지만 임윤찬이 한수 위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https://m.youtube.com/watch?v=eLDc3KRZB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