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을 위한 준비
2002년 팀 창단이후 처음 참가하는 2003년 K리그의 개막을 앞두고 대구FC는 강원도 삼척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당시 공개선수 선발 테스트를 실시하여 선발한 19명의 선수를 이끌고
박종환 감독 특유의 체력위주의 지옥훈련을 실시하였다.
삼척에서의 전지훈련 이후 2003년 2월 3일 1차 영입선수를 확정하고 2월 4일에는
서귀포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당시 선발된 선수로는 대학추계연맹전 MVP를 차지했던 홍순학(2013년 현재 수원블루윙즈소속),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출신의 이경수,
1995년 K리그 득점왕과 신인상을 차지했던 노상래(2013년 현재 전남드래곤즈 수석코치),
부산에서 방출되었던 임중용(훗날 인천의 레전드가 된다. 2013년 현재 인천유나이티드 코치),
벨기에리그에서 활약하던 이상일 등이 선발되었다.
(사진출처:영남일보)
최초의 외국인 선수들
대구FC는 총4명의 외국인 선수들인 로만(Gibala Roman), 얀(Kraus Jan), 라힘(Zafer Rahim),
호제리오(Rogorio Prateat)를 최초로 영입한다.
로만은 체코출신의 미드필더로 체코리그에서 1년 임대로 데려왔던 선수였다.
날카로운 패스와 킥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대구FC의 전력에 크게 보탬이 되지 못하였고
6개월만에 대구FC와의 계약이 해지되어 고국인 체코로 돌아가게 되었다.
▶로만선수의 모습(사진출처:풋케위키)
얀은 로만과 같이 체코출신으로 공격수로 대구FC에서 활약했다. 2003시즌동안
5골을 기록하여 팀내 득점 1위를 기록하지만 대구FC와의 재계약에 실패하여 팀을 떠나게 되었다.
▶얀선수의 모습(사진출처:풋케위키)
라힘은 터키국가대표 출신의 수비수로 유로96에도 참가한 경력이 있다.
하지만 대구FC에 합류할 당시 32세라는 적지않은 나이였으며 기량미달로 수비에서
자주 실수를 범하자 2003년 5월, 입단 4개월 만에 방출되었다.
▶라힘선수의 모습(사진출처:풋케위키)
호제리오는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전북에서 활약했던 브라질 출신의 수비수였다.
대구FC는 그간 K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던 호제리오를 거액을 제시하여 1년 임대로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호제리오는 28경기에 출전하면서 대구의 수비를 이끌었고
2003시즌이 끝나자 고국인 브라질의 제안을 받고 브라질로 돌아가게 되었다.
시민주 공모와 지하철참사
2002년 실시되었던 1차 시민주 공모에서 목표액 160억원에 훨씬 못 미치는 74억 8570만원을
마련한 대구FC는 2차 시민주 공모를 실시하게 된다. 2차 시민주 공모는 2003년 1월 13일부터
실시되었는데 시민들의 참여가 저조하자 2월 5일부터는 ‘사랑의 띠잇기 행사’(최초 청약자가
최소 청약액 이상의 금액을 다음 청약자의 계좌로 입금하면 입금받은 사람이 다음 청약자에게
같은 방법으로 청약금액을 계좌에 입금하는 등 띠를 잇듯이 연결해 공모주를 청약하는 방식)를
실시하여 경품증정과 여러 가지 이벤트를 통해 주주를 모집하려고 했다.
그러나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참사 라는 비극이 대구광역시를 덮쳤고 대구FC의
2차 시민주공모 청약은 시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버리게 되어 청약액이 8억원에도 못미치게 된다.
또한 A보드 광고마저 채우지 못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대구FC에게 삼성그룹 30억원, 롯데건설 20억원, 기업은행 1억 3000만원, 농협 1억원,
국민은행 2000만원, 대우건설 3억원 등 총55억6600만원의 후원금을 기업에서 지원하고
정부에서도 월드컵잉여금 20억원을 지원하면서 자금조달에 숨통이 트이게 되었다.
그러나 당초 대구FC가 목표로 했던 창단자금 300억원에 못 미치는 130억원 가량만 확보되어
대구FC는 3차 시민주공모를 검토하기도 했다.
조금 늦은 창단식
2003년 3월 19일에는 대구월드컵경기장(현재 대구스타디움)에서 서포터즈, 시민등 2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대구FC 창단식이 치러졌다. 창단식에서는 선수단 소개, 유니폼 공개, 엠블렘 공개가 있었다.
▶최초로 발표되었던 엠블렘
▶대구FC 서포터즈의 모습(사진출처:오마이뉴스)
유니폼
2003년 대구FC의 유니폼 스폰서로는 이탈리아의 브랜드인 ‘카파(Kappa)’가 참여하였고
메인 스폰서로는 대구의 지역은행인 대구은행이 참여하였다.
▶홈유니폼(사진출처:대구FC)
▶어웨이유니폼(사진출처:대구FC)
2003시즌 대구FC의 선수명단
(출처: 대구FC 홈페이지)
모든 것이 처음
3월 23일에는 대구FC의 역사적인 첫 경기가 있었다. K리그 1라운드 경기로 45,210명이라는 관중
(역대 대구FC 최다관중)이 모인 대구스타디움에서 수원블루윙즈를 상대로 경기를 치뤘는데
결과는 0:1로 패배했다.(첫 경기에서 첫 패배 기록!)
4월 2일에는 안양LG와의 홈경기에서 구단 창단 1호골을 전반33분 오주포 선수가 기록하게 된다.
창단첫승은 첫경기 이후 한달이 조금 넘게 지나서 기록하게 된다. 4월 27일에 부산을 상대로
6경기만에 2:0으로 승리을 거두면서 창단 첫승 으로 남게 되었다.
(사진출처 : 영남일보)
2003년 3월 23일 대구FC vs 수원블루윙즈 영상보기(클릭!)
2003년 4월 27일 대구FC vs 부산아이파크 영상보기(클릭!)
또 다른 집
2003 K리그가 한창이던 7월, 대구FC는 8월에 있을 대구광역시의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개최
준비로 인해 홈경기를 대구스타디움이 아닌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치르게 된다. 이후에도 10월부터
리그 종료까지 5경기를 다시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치르기도 했다.
훗날 대구가 2011년 세계육상경기대회를 개최하면서 2010년부터 2011년 9월까지 홈구장으로
또 다시 대구시민운동장을 쓰기도 한다.
▶대구시민운동장의 모습들
폭풍의 7월, 불전동차와 벌금세례
홈구장 이외에도 7월에는 여러 가지 사건으로 대구FC가 주목을 받게 된다.
7월 6일 당시 안양LG 서포터즈 홈페이지 경기일정란에 대구FC를 ‘불전동차’로 표현하면서
아직 대구지하철 참사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대구FC의 팬들과 대구시민들의 거센항의를
받게 된다. 이후 네티즌들에게도 이러한 사태가 급속도로 퍼져나가면서 안양LG 서포터즈
홈페이지는 하루종일 다운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프로축구연맹 홈페이지에도 항의글이
빗발치게 되었다. 이 사태로 7월 9일 안양종합운동장에서는 사죄의 현수막이 걸리기도 했다.
▶당시문제가 되었던 홈페이지(출처:오마이뉴스)
▶사죄의 현수막이 걸린 안양종합운동장(사진출처:오마이뉴스)
그러나 하루뒤인 7월 10일 대구FC의 서포터즈 연합과 대구에 연고를 두고있는 야구팀
삼성라이온즈의 팬클럽(!) 까지 가세하여 7월 20일 까지 온,오프라인 상의 공개사과 및
대구시민이 아닌 전 국민을 상대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 안양LG의 서포터즈가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면서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7월 6일 안양과의 경기에서는 대구FC가 5:0으로 패배하였는데 이는 대구FC 역사상 최다실점
패배를 한 경기로 기록되었다.)
▶안양서포터즈 회장의 사과문
하지만 이틀 뒤 새로운 사건들이 대구FC를 뒤덮게 된다.
7월 12일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전남드래곤즈와의 홈 경기중 심판판정에 불만을 품은 박종환 감독이
경기중인 선수단을 철수시켰다가 경기를 재개하였다.
그러나 경기가 끝나고도 심판판정에 앙금이 남아있던 박종환 감독은 심판실 까지 찾아가
주심에게 거친 항의를 하는 사태를 일으키게 된다.
프로축구연맹은 이 사태에 대해서 박종환 감독에게 6경기 출전정지와 600만원의 벌금이라는
무거운 징계를 내렸으나 박종환 감독의 재심요청으로 7월 22일 프로축구연맹은 4경기 출전정지와
벌금 400만원으로 징계수위를 완화하여 발표한다.
하지만 불과 4일뒤 대구는 수원과의 경기에서 후반46분에 주심의 페널티킥 판정이 나오자
선수들은 심판에게 거친 항의를 했고 항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남은 시간에도 선수들은
경기를 진행하지 않고 경기장에 가만히 서있기만 하면서 사실상 경기를 보이콧 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이로 인해 대구는 박종환 감독이 징계를 받은지 2주도 되지 않아서
주장인 김학철 선수가 4경기 출장정지와 벌금 400만원, 구단은 500만원의 벌금이라는 중징계를
받게 되었다. (이후 대구FC의 재심 요청으로 벌금이 300만원으로 감경되기는 했다.)
▶판정에 불만이 있던 이사람은 8년뒤.........(사진출처:영남일보)
최초의 2연승과 첫 FA컵
10월에는 12일 부천을 상대로 승리에 이어 26일 부산과의 경기에서도 승리하면서
구단 최초의 2연승을 기록하게 된다.
11월 16일 수원블루윙즈와의 경기를 끝으로 K리그는 종료되었고 대구는 처음 참가한
시즌에서 승점 37점으로 12개팀중 11위를 기록한다.
▶2003시즌 대구FC의 K리그 경기기록(출처:대구FC 홈페이지)
▶2003 K리그 최종순위(출처:대구FC 홈페이지)
리그 종료후 11월 21일부터 시작된 FA컵은 대구FC의 명지대의 32강 경기를 시작으로 막이 올랐다.
명지대를 5:2로 가볍게 잡은 대구는 부산을 꺾은 이변의 주인공 건국대를 만났지만
2:1로 승리하며 8강에 오르게 된다. 8강에서는 강호인 울산을 만나게 된다.
대구FC는 울산을 상대로 연장전까지 접전을 펼친 끝에 당시 울산의
유경렬 선수(훗날 대구FC 수비의 중심이 된다)에게 연장후반 2분 골든골을 내어주면서
FA컵 첫출전은 8강에서 마감하게 되고 대구FC의 다사다난했던 첫해가 끝나갔다.
▶대구FC의 2003 FA컵 경기기록
첫댓글 항상 비슷한 타이밍에 글이 올라오네요..^^
글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생많으세요 ~
첫경기 수원전에 직관했었는데...
옛날 기억이 떠오르네요ㅎㅎ
재밌게 잘봤습니다!!
와 진짜 추억 ㅋㅋㅋ
03시즌 막판에 3연승하고 그랬는데 ㅋㅋㅋ
좋은글 감사합니다^^!
구단 벌금 나왔을때. 서포터즈 홈페이지에서... 어떤 회원이 성금 모아서 벌금내자고... 계좌로 송금받아 모금도 하고 실제로 전달도 되었습니다만. 서포터즈 홈페이지 자료 소실로 증거는 없네요. 추가 되어도 멋질듯 합니다.
대구팬인데 이런게 생긴지는 몰랐네요ㅎㅎ
잘봤습니다~
역시 박종진.... 저떄도 있었네
전주대 안정환이라던 박성홍....... 리그 무득점 ㅠㅠ 시즌 막판에 fa컵에서 골 넣고 울었었는데 ㅎㅎㅎ 방출 ㅠ